2024년 4월 28일(일)

[Cover Story] 희망봉사단, 인도네시아 해외봉사 가다

마음으로 가까워진 거리… 금세 ‘지구촌 친구’가 됐다
희망편지 수상아동 10명 인도네시아 봉사 여행 아궁이·찌그러진 냄비 차가운 시멘트 방바닥 그들의 생활 속으로…
한국에서 준비해 온 인도네시아 노래 부르고 또래 현지 아이들은 전통 춤으로 고마움 전해 하나 된 ‘문화교류의 밤’

“아, 눈 매워.”

마침내 하얀 연기가 어두컴컴한 부엌에 피어올랐다. 나뭇가지를 손에 꼭 쥔 기범(8)이가 잿빛 바닥에 엎드려 아궁이 속을 확인한다. “붙었어요”라고 말하는 기범이를 압둘(10)이 조심스럽게 일으킨다. 두 사람 손목에 연결된 종이 팔찌가 끊어질까 봐서다. 두 사람이 손을 꼭 잡고 있는 것도 그래서다. ‘불붙이기’를 성공하고 집을 구경했다. 방금 불을 붙인 아궁이 위로 찌그러진 양은 냄비가 있을 뿐, 다른 요리도구는 보이지 않는다. 마른 장작만 덩그러니 쌓여 있다.

조윤서(7)군과 핸드릭(7)군이 ‘미션게임’ 종목 중 하나인 ‘구멍 난 바가지로 물 옮기기’를 하고 있다. 한국과 인도네시아 아이들이 짝을 이뤄 진행된 미션게임을 통해, 그들은 말이 통하지 않아도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몸소 보여줬다.
조윤서(7)군과 핸드릭(7)군이 ‘미션게임’ 종목 중 하나인 ‘구멍 난 바가지로 물 옮기기’를 하고 있다. 한국과 인도네시아 아이들이 짝을 이뤄 진행된 미션게임을 통해, 그들은 말이 통하지 않아도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몸소 보여줬다.

학부모 지현숙(40)씨는 “여기서 제대로 된 음식을 만들 수 있을까”라며 안타까운 듯 읊조린다. 그때 검은 닭 한 마리가 부엌으로 성큼성큼 들어왔다. 얇은 나무문 하나를 두고 부엌은 숲과 바로 연결돼 있다. 집주인 이야(47)씨가 일행을 방으로 안내했다. 압둘은 손이 부자연스러운 기범의 신발을 벗겨준다. 방바닥은 시멘트의 냉기가 그대로 전해졌다. 방은 두 개다. “여기서 11명이나 산대요” 기범이가 신기한 듯 말한다. 기범 일행은 처음 출발했던 장소로 되돌아왔다. 5개조 중 가장 먼저다. 손목의 종이 팔찌도 끊어지지 않았다.

기범이는 “줄이 안 끊어져서 기분이 좋다”며 “우린 너무 쉽게 요리를 하는데, 매일 저렇게 나무를 하고, 불을 붙이면 힘들 것 같아요”라고 했다. 친구와 서로 손을 묶고 그들의 방식으로 불을 붙여보는 게임을 함께 한 아이들. “같은 시대를 살면서 나와 다른 삶을 사는 친구들의 모습을 많이 보고 갔으면 좋겠다”던 박동철 굿네이버스 인도네시아 지부장의 바람대로, 지구촌 아이들을 이해하는 세계시민으로서의 걸음마를 뗐다.

지난 7월 29일 10명의 ‘희망봉사단’ 아이들이 인도네시아 땅을 밟았다. 굿네이버스가 진행하는 ‘제4회 지구촌나눔가족, 희망편지쓰기’ 전국대회를 통해 뽑힌 아이들이다. 라유진(12)양은 “우리가 얼마나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친구들과 어떻게 친해질 수 있을까 걱정이다”라고 했다. 김다혜(10)양은 “예전에 인도네시아에 온 적이 있었는데 그땐 관광만 해서 여기에 어려운 친구들이 있다는 생각은 전혀 못했다”며 “봉사를 하러 왔다고 생각하니 새롭게 느껴진다”고 전했다.

인도네시아의 수도 자카르타 시내 한 편에 위치한 ‘라와바닥(Rawa Badak)’. 굿네이버스가 1:1결연으로 후원하는 아이들을 방문하기로 했다. 집을 향해 가는 좁은 골목길에선 악취가 풍겼다. 함께 걷던 정은혜 굿네이버스 인도네시아 대학생 자원봉사단원이 “상하수도 시설이 안 좋아서 그래요”라고 한다. “뚜껑만 덮어놨을 뿐, 모든 생활폐수가 걸러지지 않고 다 뒤섞여요”라는 설명에 하수구를 들여다보니 투명한 벌레들이 눈에 들어온다. 주위 집들은 공사를 다 마치지 않은 듯 철근 구조물들이 드러나 있다. 구조물에는 빨래가 널려 있다.

미상_사진_희망봉사단_불_2012다혜양과 기범군이 에카(11)의 집에 들어서자, 부모 없이 에카를 키우는 할머니 아니(52)씨가 반갑게 맞는다. 아니씨는 사촌들이 모아주는 생활비로 에카를 돌본다고 한다. “정해진 것은 없고 이따금 5만루피(한화 약 5000원)씩 준다”는 게 아니씨의 설명. 어두운 집으로 들어서자 벽 한쪽에 진열된 각종 상패가 눈에 들어온다. 그림을 잘 그려서 받은 상이란다. “그림 좋아해?”라고 묻자 대답 대신 종이를 꺼내 보인다. 그림을 그려 주겠다는 것. 다혜와 기범이도 덩달아 종이를 펼친다. 인도네시아의 전통가옥을 그린 에카는 손가락으로 하나하나 짚어가며 지붕이나 창문 같은 것들을 설명해준다. 가정 방문을 마친 다혜양은 “우리나라도 선생님이 꿈인 애들이 많은데, 에카 언니도 영어 선생님이 꿈이란다”며 “다른 나라에도 우리 같은 아이가 살고, 같은 꿈을 꾸는 게 신기하다”고 말했다.

자카르타에서 2시간여 떨어진 산골마을 ‘수카부미(Sukabumi)’. 초저녁부터 마을 입구 앞 너른 공터에 주민들이 모여든다. 한국과 인도네시아 아이들이 함께 꾸미는 ‘문화교류의 밤’을 보기 위한 인파다. 박동철 지부장은 “마을이 생긴 이래 외국인이 들어온 것이 거의 처음이기 때문에 관심이 굉장히 크다”고 했다. 캠프파이어 점화를 신호로 문화교류의 밤이 시작됐다. 점화식엔 한국대표 고희윤(11)양과 인도네시아 대표 다단(13)군이 나섰다. 점화와 동시에 여기저기서 불꽃이 터져 나왔다. 아이들은 함성과 박수로 행사를 자축했다. 봉사단 아이들과 현지 아이들은 손을 맞잡아 둥근 원을 만들어냈다.

“오이오이 까완, 오이오이 까완, 오이오이 까완 스무아~.”(어이 친구, 어이 친구, 어이 모든 친구들) 모닥불을 바라보고 일렬로 선 봉사단 아이들이 장기자랑을 시작한다. 한국에서부터 틈날 때마다 맞춰봤던 ‘인도네시아 어린이날 노래’다. 긴장 탓인지, 목소리가 떨린다. “마리 버르사마, 마리 버르사뚜.”(같이 가자, 하나가 되자) 갑자기 울림이 더해진다. 함께 모인 인도네시아 아이들 몇 명이 노래를 따라 부르는가 싶더니 이내 100여명의 아이가 모두 함께 부르기 시작했다. 봉사단 아이들의 목소리도 커졌다.

한국인 친구들의 노래에 보답하기 위해, 인도네시아 아이들은 화려한 전통의상을 입고 춤을 췄다. 춤을 마친 하유(12)양은 “자바 섬의 전통춤으로 방과 후 시간을 쪼개 준비했다”며 “설레는 마음으로 연습했는데, 잘 마쳐 기쁘다”고 했다. 문화교류의 밤은 ‘풍등 날리기’로 마무리됐다. 저마다 소망을 적은 풍등은 양국 아이들이 맞잡은 손을 떠나 시커먼 밤하늘에 동동 떠갔다.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졌다. 라유진(12)양은 “인도네시아 친구 둘 하고 풍등을 날렸는데, 함께 풍등을 잡고 있던 순간 뭔가 통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고 했다. 고희윤양은 “풍등에 ‘지구촌 아이들이 모두 행복해지길’이라고 적었는데, 이뤄졌으면 좋겠다”고 소감을 전했다.

“뜨리마까시.”(고맙습니다)

 수카부미 찌블릭(Cibilik) 초등학교 도서관 ‘벽화그리기’ 봉사를 마친 아이들이 지역아동들과 한자리에 모였다.

수카부미 찌블릭(Cibilik) 초등학교 도서관 ‘벽화그리기’ 봉사를 마친 아이들이 지역아동들과 한자리에 모였다.

마지막 인사. 수카부미 아이들의 목소리에 힘이 없다. 악수를 하고 포옹을 하는 한국·인도네시아 아이들에게 처음 느껴졌던 어색함은 없다. “나도 안아 줄래”라며 두 팔을 펼치는 윤서(7). 이슬람 기도 시간에 맞춰 서둘러 발길을 돌리는 인도네시아 아이들. 친했던 아궁(11) 형이 떠나는 모습을 볼 수 없었는지, 도연(7)이가 고개를 떨군다. “헤어지기 아쉬워요. 많이 친해졌는데…. ” 어정욱 굿네이버스 캠페인사업부 대리는 “지구촌 안에서 더불어 사는 것의 중요성을 알려주고 싶었다”며 “이런 경험이 성장하면서 가치관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밑거름이 될 것으로 믿는다”고 했다.

헤어지기 직전에 있었던 편지 교환식. 도연이는 아궁 형에게 보내는 편지에 이렇게 적었다.

“옛날에도 외국 사람과 눈을 마주친 적이 있는데, 말을 하고 싶어도 하지 못했어. 하지만 아궁 형을 만나고 알게 됐어. 대화를 나누면 누구든지 친해질 수 있다고. 나중에는 내가 인도네시아 말을 배워서 다른 형들이 통역을 안 해 줘도 형과 많은 대화를 하고 싶어.”

인도네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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