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9일(월)

[‘기업 사회공헌의 현실과 대안’ 시리즈] ④”기업 사회공헌, 시대 흐름과 비즈니스 전략 조화를”

기업 사회공헌베테랑에게 물어봤다
과거, 건물 수리·PC 지원 지금은 진로적성교육 등 꿈 키워주는 방식으로
‘홍보 잘되는 프로그램이 좋은 사회공헌’ 공식 깨야
기업과 비영리단체 간 협력하는 동반자로…

더나은미래는 지난 5월부터 ‘기업 사회공헌의 현실과 대안’이라는 주제로 기획 기사를 연재해왔다. 국내 기업 사회공헌의 투명성과 진정성 부족, 일회성 마케팅 이벤트로 전락한 사회공헌, NGO 등 이해관계자와 파트너십이 결여된 사례 등을 통해 기업 사회공헌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과연 기업 사회공헌의 대안은 무엇일까. 이에 더나은미래는 짧게는 10년, 길게는 18년 동안 국내 기업에서 사회공헌 프로그램을 기획·실행해온 대표주자 4명을 한자리에 모아 의견을 나눴다. 좌담회에는 방대욱 다음세대재단 상임이사, 나영훈 포스코 사회공헌그룹 차장, 박필규 GS칼텍스 사회공헌팀 차장, 이경운 LG디스플레이 사회공헌팀 팀장이 참석했다.

기업 사회공헌의 대안은 무엇일까. 10년 이상 국내 기업에서 사회공헌 프로그램을 기획·실행해온 대표주자 4명이 한자리에 모여 의견을 나눴다. 왼쪽부터 박필규 GS칼텍스 사회공헌팀 차장, 방대욱 다음세대재단 상임이사, 이경운 LG디스플레이 사회공헌팀 팀장, 나영훈 포스코 사회공헌그룹 차장.
기업 사회공헌의 대안은 무엇일까. 10년 이상 국내 기업에서 사회공헌 프로그램을 기획·실행해온 대표주자 4명이 한자리에 모여 의견을 나눴다. 왼쪽부터 박필규 GS칼텍스 사회공헌팀 차장, 방대욱 다음세대재단 상임이사, 이경운 LG디스플레이 사회공헌팀 팀장, 나영훈 포스코 사회공헌그룹 차장.

사회= 결론부터 얘기해보자. 어떤 사회공헌 프로그램이 좋은 프로그램인가.

방대욱= 좋은 프로그램이라는 것도 시대에 따라 변화하고 있다. 기업 사회공헌은 크게 ABC 3단계로 구분해 볼 수 있다. A 단계(Altruistic Stage) 의 기업 사회공헌은 불우이웃돕기 성금을 내는 등 단순 기부에 머물렀다. B 단계(Business Focued Stage) 에선 비즈니스와 연계된 전략적 사회공헌을 시도하고, 임직원이 참여하는 자원봉사를 기획했다. ‘다음(Daum)’의 대표공익사업인 ‘희망해’를 보면, 인터넷이라는 미디어 플랫폼을 이용해 모금활동을 한다. 기업전략과 사회공헌 사업이 그 맥을 같이 하고 있다. 아직 C 단계(Community Involved Stage) 로 가는 기업 숫자는 많지 않지만, 몇몇 기업에서 고민하고 있다. 지역사회의 니즈(needsㆍ욕구)를 찾아 적극적으로 개입해서 해결하는 단계다. 즉 단계별로 좋은 프로그램이 다를 수 있을 것 같다.

나영훈= 지속성은 사회공헌 프로그램에 있어 중요하다. 하지만 무조건 오랫동안 지속한다고 좋은 게 아니라 그 시대를 반영해야 한다. 포스코청암재단은 처음에는 보육원 아이들에게, 다음엔 포항지역 아이들에게 장학금을 줬는데, 이제 아시아지역의 미래 인재 네트워크를 만들기 위한 장학금을 준다. 아시아 23개 개도국으로 유학을 가려는 한국 학생들, 반대로 한국에 유학온 아시아 개도국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한다. 이는 아시아 진출을 본격화한 포스코의 비즈니스 전략과 맞고, 해당 지역에서 원했던 교육 프로그램이기에 반응이 좋다.

박필규= 기업 사회공헌이 성장한 건 분명하지만, ‘보여주기식’ 프로그램이 늘어난 것은 문제다. 사회공헌 팀을 여수에 두고 있는 GS칼텍스는 ‘GS칼텍스 예울마루’를 건립하고, 섬지역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여수의 불우이웃 자립을 돕는 등 지역사회 중심의 진정성 있는 프로그램이 많다. 지역사회가 발전하면 기업에도 직접적인 효과가 있다. 그러나 지역사회나 고객 등 고객의 직접 이해관계자를 대상으로 하는 해외와 달리, 국내 사회공헌 활동은 전국적이고 포괄적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이경운= “기업 사회공헌이 뭐냐”고 물어보면, “기업과 커뮤니티(기업이 속한 사회)와 커뮤니케이션해가는 과정”이라고 답한다. 커뮤니케이션 방식이 시대나 사회환경에 따라 변하듯이 기업 사회공헌도 시대나 사회적 요구에 맞게 변화해야 한다. 지역아동센터를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도 예전에는 건물 수리·PC 지원 등이었다면, 이제는 예술교육이나 진로적성 개발 등 꿈을 키워주는 방식으로 발전했다.

사회= 좋은 사회공헌에 대해서는 대체로 통일된 의견이 나온 것 같다.

방대욱= 현재로선 ‘사회적 가치와 기업적 가치가 최고의 접점에서 만나는 프로그램’이 가장 좋다고 볼 수 있겠다. 그런데 좋은 사회공헌 프로그램이라는 것에는 현실적 함정이 하나 있다. 홍보가 잘되는 것이 좋은 사회공헌이라는 구조는 깨져야 할 것 같다. 요즘 어떤 NPO를 만나면 지역사회의 문제가 무엇인지 얘기하기보다, ‘이렇게 프로그램하면 기업 홍보가 된다’고 해서 오히려 불편할 때가 있다. 외국의 사회공헌 콘퍼런스에 가보면, 실패경험까지 속속 나누는 데 반해 우리는 보도자료 내보내느라 급급한 것이 현실이라 안타깝다.

이경운= 기업 사회공헌을 논할 때, 규모가 큰 기업을 기준으로 기업 사회공헌을 논하면 안 될 것 같다. 규모가 작은 기업의 임직원 자원봉사나 적은 금액의 기부가 사회적으로 큰 의미를 가질 수도 있다. 그리고 일반 소비자를 대상으로 하지 않는 B2B 기업의 경우 무조건 전국을 대상으로 한 사회공헌 프로그램보다 그 기업에 맞는 사회공헌 프로그램이 필요할 것이다. 이런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사회= 기업 사회공헌 담당자로서 느끼는 가장 큰 어려움은 무엇인가.

방대욱= 기업 내부의 사회공헌 인지도는 달라졌다. 상당히 많은 독립부서가 생겼다. 하지만 아직도 내부 관계자들과의 갈등은 존재한다. 자원봉사에 참여할 직원을 모집할 때 다른 부서와 마찰이 생기기도 한다. ‘우리 부서 말고 다른 부서에서 찾아봐라’ ‘업무가 산더미라 자원봉사 프로그램에 투입할 인력이 없다’는 반응이 있다. 또 사회공헌 전문인력을 양성하고 수급해야 하는 등의 고민도 있다.

박필규= 사람들의 인식 속에 반기업 정서가 자리잡은 데다가, 기대치도 높아서, 아무리 좋은 사회공헌을 해도 인정받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지역사회를 돕고 싶은 순수한 마음으로 시작한 프로그램인데, ‘불순한 의도가 있을 것’이라며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분들도 많다. 기업이 지역사회에 도움을 주고자 하는 노력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셨으면 좋겠다.

이경운= 기업의 경영상황을 고려하지 않는 기업 사회공헌은 다소 모순이 있는 듯하다. 매출액이 줄어도 사회공헌 예산을 줄이지 않겠다는 기업이 늘고 있지만, 수천억 원 이상 적자를 보는 상황에서 사회공헌 비용을 유지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경영사정에 따라 사회공헌 비용은 선택과 집중을 통해 다소 조정될 수 있겠지만, 중요한 건 기업이 경영상황이 어렵더라도 진정성을 갖고 지속적으로 사회공헌에 참여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나영훈= 기업 사회공헌 분야는 영리와 비영리가 만나는 접점에 있다. 사회공헌 담당자가 영리와 비영리를 모두 이해하고, 전문성을 쌓지 않으면 진정성 있는 프로그램은 만들어지지 않는다. 기업 사회공헌이 분명히 전문성을 필요로 하는 분야인데도,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여기는 분들이 많다. 우리 사회에서 봉사나 사회복지 영역에 대해 전문가라는 인식이 안 돼 있어서, 기업에서도 똑같은 인식을 갖고 있다. 회사 돈을 쓰면서 좋은 일을 하는 사람이라는 생각 때문에, 사회공헌 활동의 지원이나 영역이 제한된다.

방대욱= 100% 동의한다. 모든 사회공헌 실무자들은 영리와 비영리의 줄타기를 하는 사람들이다. 그 줄타기가 사회공헌의 매력이 아닐까. 아무리 사회공헌이 진화해도 이 줄타기는 계속될 것이라 생각된다.

박필규= 2000년 3월 회사 내에서 일반 업무를 담당하다가 사회공헌 부서로 옮겼을 때, 예비 장인·장모님이 “그 부서 곧 없어질 테니 가지 말라”고 말렸는데, 10년 넘게 하고 있다. 지속가능한 기업 사회공헌의 풍토는 조성된 것 같다. 사회공헌 실무자들의 최고 덕목이 ‘전문성’이라고 하는데, 전문성은 경험과 네트워크가 있으면 쌓인다. 그보다는 오히려 기업가치와 사회적 가치를 조화시키는 ‘진정성’이 가장 중요한 덕목 같다.

사회= 최근 들어, 기업과 NGO 간의 파트너십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좋은 파트너십을 위한 대안은 없나.

방대욱= 예전에 기업 사회공헌 조직이 아주 작을 때는 비영리기관 의존도가 높았다. 기업 조직이 커지고 사회공헌의 전문성이 강조되면서 오히려 현장 전문가들과 소통이 약간 어려워지는 걸 느낀다. 기업 내부에서 전략을 모두 수립해놓고 거기와 가장 적당한 비영리단체를 고르는 현상이 생겨나고 있다.

나영훈= 비영리단체에서 8년간 일하면서 ‘이렇게 좋은 프로그램을 기업이 왜 거절할까?’라는 의문이 있었다. 막상 기업에 와보니 그 상황이 이해가 되더라. NGO는 제안서를 내기 전에 해당 기업에 대해 충분히 연구하고, 이해해야 한다.

박필규= 기업은 NGO의 고충을 이해하고, NGO는 기업에 좋은 프로그램을 제안하면 된다. 지금 기업이 관심을 갖고 있는 대상이 A라 해도, 사회적으로 B라는 대상을 지원할 필요가 있다면, 이를 기업 사회공헌 관계자에게 충분히 설득하는 노력이 있었으면 좋겠다.

방대욱= 기업들 간의 파트너십도 필요하다. 비즈니스에서는 경쟁을 하더라도, 사회공헌 영역에서는 함께 협력해야 한다. 이와 함께 사회공헌에서도 ‘간접지원’이라는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 기업 사회공헌 담당자들끼리 이야기하면 비영리단체의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하지만, 실제 그 조직을 지원해주는 것은 상당히 미약하다. 10명의 아이를 직접 지원하는 것보다 1명의 실무자를 지원하면 100명의 아이가 행복해진다.

진행=박란희 편집장

정리=정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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