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9일(월)

통조림 공장을 카페로… 영리기업 능가하는 세계의 사회적 기업

프랑스 ‘SOS’파리 시내 5개 병원 빈곤층 대상으로 운영
돈뿐만 아니라 문화·제도적 변화로 성장해 나가야

‘코인 스트리트 커뮤니티 빌더스(Coin Street Community Builders·이하 CSCB)’는 영국에서 가장 성공한 사회적 기업으로 꼽히는 곳이다. 연간 총수익은 70억원(약 360만파운드)에 달한다. 영국 런던의 사우스뱅크 지역에 있는 사무실에 가면 인상 깊은 사진을 한 장 볼 수 있다. 템스 강 남쪽의 공장 밀집지역이던 이곳이 급격히 슬럼화된 채 버려졌던 1970년대 사진과 함께 2000년대를 비교한 조감도다. 한 민간 개발업자가 만든 조감도엔 강변에 고층 타워를 중심으로 근사한 빌딩들이 서 있다.

하지만 30년이 지난 이곳은 CSCB라는 사회적 기업에 의해 전혀 다른 모습이 됐다. 민간 개발업자의 재개발 계획에 반발한 주민들이 대대적인 반대 캠페인을 벌였고 1984년 아예 자체적으로 CSCB를 만들었다. 결국 런던시는 지역 주민들의 뜻을 존중해 민간 개발업자의 토지를 사들인 후 CSCB에 지역 정비사업을 위탁했다.

CSCB는 13곳의 폐허 공간을 새롭게 변모시켰다. 코인 스트리트 주민센터(Coin Street Neiborhood Center)는 지역 주민들을 위한 탁아 공간, 각종 교육·편의시설이 있다. 1930년대 템스 강변의 랜드마크였던 ‘옥소 타워(OXO Tower)’는 인스턴트 고기 통조림을 만들던 공장이었으나 지금은 전시 갤러리와 디자이너들의 작업 공간, 이색숍, 레스토랑과 카페 등으로 탈바꿈됐다. 30여개 상업시설의 임대료, 주차장 수입 등에서 벌어들인 수익은 지역의 문화와 복지에 재투자된다. 공원과 강변 산책로 등이 있는 고급 아파트임에도 임대료가 저렴한 이유다. 코인 스트리트는 현재 주민들의 요구로 수영장도 지을 계획이다.

◇전 세계의 사회적 기업은 진화 중

유럽과 북유럽에선 사회적 기업의 역사가 20년을 넘는다. 최혁진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 기반조성본부장은 “협동조합, 혁신적인 기업 모델, 비영리 법인 등 형태는 다양하지만 각종 사회문제를 비즈니스적 방법으로 해결하겠다는 목적은 같다”고 말했다. 영국의 경우 이미 전체 국민총생산(GDP)의 5% 정도를 사회적 기업이 차지하고 있다. 영국 캐머런 총리는 지난해 사회적 기업을 위한 민간 투자를 전문으로 하는 ‘빅 소사이어티 뱅크’도 설치했다. 미국도 GDP의 7%가 비영리 단체의 수익사업에서 나온다. 미국이나 유럽의 경영학 석사(MBA)에는 사회적 기업이나 소셜 벤처에 학생들이 몰린다.

캐나다 퀘벡주의 사회적 기업 ‘라 토후(La Tohu)’는 몬트리올을 세계적 서커스의 수도로 변신시킨 일등 공신이다. 원래 이곳은 몬트리올 외곽의 석회석 채석장이자 쓰레기 매립장이었다. 4000t 이상의 독성화학 쓰레기가 매립됐고 악취와 가스, 수질이 오염돼 주민들의 항의가 빗발치자 쓰레기 매립이 중단됐다. 라 토후는 몬트리올시와 협의, 지하 침출수를 정화해 강으로 흘려보내고 메탄가스를 이용, 전기를 생산해 인근 1만여 가구에 공급했다. 매립장 옆에 대형 서커스 공연장을 마련, 1984년 세계 최대 규모의 서커스 회사인 ‘태양의 서커스’가 이곳으로 이전했고, 1987년 국립서커스학교도 입주했다. 지역의 저소득 청소년에게 직업교육을 실시해 서커스단에서 일하도록 도왔다.

1 영국 런던의 사우스뱅크 지역에 위치한 코인 스트리트 지역의 사회적기업인‘코인 스트리트 커뮤니티 빌더스’는 지역주민을 배려한 도시재개발로 유명하다. 2 캐나다 퀘벡 몬트리올 쓰레기매립장 자리에 설치된 사회적 기업‘라 토후’. 세계 최대규모 서커스회사인‘태양의 서커스’가 입주하는 등 이곳을 서커스의 수도로 변신시킨 일등공신이다. 3 이탈리아에는 협동조합형 사회적 기업이 많다.‘ 코프(Coop)’는 소비자협동 조합으로 이탈리아의 최대 소매기업이다.
1 영국 런던의 사우스뱅크 지역에 위치한 코인 스트리트 지역의 사회적기업인‘코인 스트리트 커뮤니티 빌더스’는 지역주민을 배려한 도시재개발로 유명하다. 2 캐나다 퀘벡 몬트리올 쓰레기매립장 자리에 설치된 사회적 기업‘라 토후’. 세계 최대규모 서커스회사인‘태양의 서커스’가 입주하는 등 이곳을 서커스의 수도로 변신시킨 일등공신이다. 3 이탈리아에는 협동조합형 사회적 기업이 많다.‘ 코프(Coop)’는 소비자협동 조합으로 이탈리아의 최대 소매기업이다.

◇프랑스 사회적 기업 SOS, 연매출 8000억원

프랑스에서도 협동조합이나 혁신형 사회적 기업이 많다. 프랑스의 공익협동조합은 현재 200여개가 있으며, 지난 10년 동안 월평균 2개씩 새로 만들어졌다. 이 중 31%는 비영리 민간단체에서, 10%는 일반 기업에서 협동조합으로 전환된 것이다. 환경과 농업·먹거리, 지역 개발, 문화·역사 보존 등 분야도 다양하다. 아틀라 프랑스 공익협동조합은 음악 교육을 통해 지역사회와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사회적 기업이다. 자폐증을 가진 학생들을 위한 음악 치유 프로그램을 개발했고, 프랑스 대선 때 이 프로그램과 관련된 캠페인을 진행하기도 했다.

프랑스의 사회적 기업 SOS는 역사만 28년 됐다. 직원은 7000명, 매년 8000억원의 매출을 올린다. 34개의 자회사가 있고 프랑스와 해외에서 270개 비영리 단체를 운영한다. 니콜라 아자르 프랑스 SOS그룹 부회장은 “우리는 돈만 버는 게 아니라 사회문제의 해법을 찾는 일을 동시에 한다”고 말했다. SOS는 파리 시내를 포함해 5개의 병원을 소유해 빈곤층을 대상으로 운영한다. SOS의 사업 중엔 일반 건설회사를 인수해 사회적 기업으로 만드는 일도 있는데, 2015년 1100억(약 7500만유로) 매출을 목표로 한다. 케이터링사업의 경우 오랜 기간 일자리를 찾지 못한 실업자를 고용해 230억(약 1600만유로)의 매출을 올린다.

◇이탈리아는 협동조합의 나라

이탈리아는 협동조합형 사회적 기업이 많다. 국내 총생산의 30%를 협동조합이 차지한다. 이탈리아 협동조합은 당기순이익의 3%를 정부 기금으로 낸다. 영리 기업이 파산하면 법정관리하듯 협동조합이 파산하면 이 기금으로 조합원을 지원하는 절차도 있다.

‘코프 라스트라다’는 1988년 노숙인들의 자립을 목적으로 자발적으로 설립된 협동조합이다. 37명의 조합원이 노숙자 쉼터를 관리하고, 공중화장실이나 공원 청소, 경비 업무 등을 맡아 이들이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도록 돕는다. 이명희 함께일하는재단 국제팀장은 “이탈리아의 경우 취약계층을 고용한 복지사업 형태와 사회 혁신을 위한 사회적 기업은 지원 형태가 다르다”고 말했다.

최현진 본부장은 “OECD의 보고서(2009년)에 의하면 북미지역의 사회적 기업들이 설립돼 10년간 생존할 확률이 대략 50% 정도인데, 일반적으로 영리 기업의 10년간 생존율 20%에 비하면 놀라운 성과”라며 “사회적 기업은 단지 돈만으로 이뤄지는 게 아니라 전체 사회의 문화적·제도적 변화와 함께 성장해가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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