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7일(화)

역할극 통해 친구 입장을 느껴보고… 구호 외치며 캠페인 활동까지

서울 신동초 ‘잠원사랑’ 학교폭력예방 캠페인

“체육복 아직 안 빌려놨냐. 이 재수탱이야!”, “야, 빨리 좀 뛰어! 찌질해가지고…. 기어가냐?”

무리 지은 아이들의 앙칼진 목소리가 한 아이에게 집중된다.

“쟤는 심부름 되게 좋아해” “그러니까 데리고라도 다니지.”

조롱과 비웃음 역시 그 아이를 향한다. 지난 4월 29일 열린 서울 신동초등학교 ‘잠원사랑’의 학교폭력예방 캠페인. 아이들은 ‘역할극’을 통해 왕따의 참상을 여과 없이 전했다. 비록 연기지만, 아이들이 쓰는 거친 말투에 놀란 반응을 보이는 학부모도 눈에 띄었다. 역할극 후 이어진 인터뷰 시간. 주현서(이하 신동초5)·김민경·김지원·김주원양이 참여한 3조는 새로 전학 온 아이가 겪는 왕따 이야기를 진솔하게 표현해 많은 공감을 얻었다. 왕따당하는 역할을 맡았던 김주원(11)양은 “속상하고 기분이 나빴어요”라고 했다. 사회를 맡은 학부모 이승신(40)씨가 “연기이고, 잠깐인데도 그래요?”라고 묻자 “네. 기분이 아주 더럽더라고요”라며 인상을 찌푸린다. 이에 승신씨가 아이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주원이는 잠깐인데도 기분이 무척 나빴대요. 실제로 당하는 아이는 어떻겠어요. 아까 우리가 본 영상처럼 죽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거죠.”

신동초등학교 5학년 아이들과 학부모가 함께하는‘잠원사랑’이‘2012 세계청소년자원봉사의 날’을 맞아, 지난 4월 29일 한강 잠원지구 에서 학교폭력예방 캠페인을 진행했다.
신동초등학교 5학년 아이들과 학부모가 함께하는‘잠원사랑’이‘2012 세계청소년자원봉사의 날’을 맞아, 지난 4월 29일 한강 잠원지구 에서 학교폭력예방 캠페인을 진행했다.

이 프로그램을 기획한 자원봉사단체 ‘잠원사랑’은 신동초등학교 5학년 아이들과 학부모가 주축이 되어 만들었다. 시작은 의무감 때문이었다. 이승신씨는 “올해부터 초등학교에서도 의무적으로 외부 봉사활동(1년에 2시간)을 하라는 지침이 내려왔다”며 “갑작스러웠고, 아무런 정보도 없던 터라 엄마들 사이에서도 고민이 많았다”고 했다. 학부모 김정현(40)씨 역시 “막상 초등학생이 봉사활동을 하려고 보니, 할 만한 게 별로 없었어서 아이들이 참여하고 이해할 만한 수준의 아이디어를 모으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3월 말, 잠원사랑은 마침 ‘세계청소년자원봉사의 날’ 행사 소식을 알게 됐다. 이승신씨는 “올해 주제가 ‘소외된 사람들과 함께하는 자원봉사’였어요. 학교에서 소외라고 하면 왕따나 폭력으로 시달리는 아이들이니, 학교폭력예방캠페인을 해보자는 데 의견이 모이게 되었죠”라고 전했다. ‘세계청소년자원봉사의 날’은 매년 4월 셋째 주말부터 5월 중순까지 전 세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개최되는 행사로, 1988년 시작돼 현재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고 규모가 큰 봉사 관련 행사로 알려져 있다. 국내에선 한국청소년활동진흥원이 주최한다.

이날 진행된 잠원사랑의 학교폭력예방캠페인은 신동초등학교 5학년 아이들 23명과 학부모, 그리고 초등학교 저학년 동생들을 포함, 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신동태권도장(실내교육), 한강잠원지구(실외 캠페인) 등에서 치러졌다. 유치원 교사 경력이 있는 이승신씨의 진행 아래, 학교폭력에 대한 교육과 관련 동영상 자료를 감상하는 것으로 활동이 시작됐다. 동영상은 학교폭력으로 결국 자살에 이르게 된 대구 중학생을 추모하는 내용. 가해학생이 피해학생 머리에 우유를 붓는 등 심한 장면이 나올 때면 아이들은 짧은 탄식을 내뱉었다.

동영상 교육이 끝난 후 다섯 조로 나눠 역할극이 진행됐다. 아이들은 왕따의 피해자도, 가해자도 되어보며 여러 상황을 겪었다. 학부모 서희경(40)씨는 “겪어보지 않았거나, 주변에 힘든 사람이 없으면 아이들은 그 마음을 모를 수밖에 없다. 역할극을 통해 그들 입장도 헤아리게 되고, 나아가 소외된 사람들을 돌보는 마음도 생기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이날 행사에 참여했던 정희원(11)군은 “우리 반에도 따돌림당하는 친구가 있었어요. 오늘 피해자 역할을 했는데, 그 친구의 입장을 알 것 같았어요. 앞으로 그런 친구들을 더 도와줘야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라고 했다. 역할극이 끝난 후 이들은 손수 제작한 피켓을 들고 거리로 나갔다. “폭력 없는 밝은 학교, 우리 함께 만들어요!”, “배려는 웃음, 왕따는 울음!” 등 구호를 외치는 발걸음에 지나가던 사람들은 고개를 돌려 관심을 보였다. 아이들의 우렁찬 외침이 기특한지 웃음으로 화답하는 어른들도 많았다. 이들은 ‘학교폭력 근절을 위한 선언’을 함께하며 한 시간여의 한강 캠페인 활동을 끝냈다.

이승신씨는 “처음 엄마들은 대부분 개인적으로 하려는 경향이 있었는데, 함께하니까 의미도 있고, 서로 마음도 열 수 있었던 것 같다”며 “앞으로 엄마들이 함께 뭉쳐 의미 있는 캠페인을 계획하고 싶다”고 말했다.

관련 기사

Copyrights ⓒ 더나은미래 & futurechosun.com

전체 댓글

제261호 2024.3.19.

저출생은 '우리 아이가 행복하지 않다'는 마지막 경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