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8일(일)

전봇대 250개 시간이 멈춘 島에 속도를 전하다

KT, ‘방글라데시 기가 아일랜드’ 사회공헌

방글라데시 모헤시칼리섬 25개 기관.. 최첨단 기술로 통신 환경 개선

 

 

#1

방글라데시 모헤시칼리섬에 사는 소니아(8)양의 꿈은 선생님이다. 하지만 선생님 한 명이 학생 500명을 가르쳐야 하는 섬 학교에선 양질의 교육은 어림도 없다. 올해 초, 한 한국 기업이 섬에 통신 기술을 지원하면서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원격 화상 기기가 보급되면서 수도 다카에서만 볼 수 있던 교육 콘텐츠를 활용한 영어 수업이 진행된 것. 소니아양은 “이제 영어 단어와 문장까지 쓸 수 있다”면서 “선생님이란 꿈에 더 가까워진 것 같다”고 말했다.

#2

같은 섬에서 최근 출산한 칼리드(28)씨는 얼마 전 일을 생각하면 아찔하다. 출산 몇 달 전부터 알 수 없는 복통을 앓고 있었다. 아기가 걱정돼 섬의 병원을 찾아갔지만 검사 기기가 없어 치료를 받지 못했다. 어느 날, 섬 병원에 최첨단 모바일 초음파 기기가 들어왔고 의사는 그의 복부 초음파 사진을 다카에 있는 의사에게 보내 원격 진료를 요청했다. 그 결과 배속 아이가 잘못된 자세로 누워있다는 걸 알게 됐다. 때맞춰 적절한 치료를 받은 칼리드씨는 무사히 아들을 출산했다.

지난해 오영근 KT 글로벌사업추진실 차장이 방글라데시 모헤시칼리섬에 설치된 전봇대를 점검하고 있다. KT그룹은 모헤시칼리섬의 네트워크 속도를 향상시키기 위해 약 250개의 전봇대를 설치했다. ⓒKT

 

‘가난이 빼앗은 꿈과 삶을 최첨단 기술로 되찾다.’

방글라데시 모헤시칼리섬에서 사회공헌을 펼치는 KT그룹 이야기다. KT는 지난해 2월 ‘방글라데시 기가 아일랜드 프로젝트’를 시작해 올 4월 27일 모헤시칼리섬에서 공식 출범했다. 섬 3개 지역 25개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약 5개월간 통신 환경을 개선한 결과, 섬 주민 10명 중 3명이 서울 시내 공공 와이파이 속도 수준인 100mbps로 인터넷을 이용할 수 있게 됐다. 국내 사회공헌을 넘어 해외로 뻗어 나가고 있는 KT그룹의 ‘기술 나눔’을 조명해 봤다.

 

◇맞춤형 지원, 자립 모델 세워 지속 가능성 높여

 

KT의 대표 사회공헌 사업인 ‘기가 스토리’는 정보 격차가 심한 도서(島嶼) 및 산간 오지에 기가 네트워크 기반 정보통신기술(ICT)을 적용해 주민들의 생활 환경을 개선하는 공유가치창출(CSV) 프로젝트다. 2014년 10월 처음 시작해 국내 임자도, 대성동, 백령도, 청학동, 교동도 등 5곳에 출범했다. 해외 기가 아일랜드로는 모헤시칼리섬이 처음이다. ‘기가 아일랜드’는 기가 스토리의 한 종류로, 섬 지역에 ICT 시설을 지원하는 사회공헌이다.

“사실 모헤시칼리섬은 최빈국 방글라데시에서도 생활 수준이 매우 낮은 지역이에요. 인구 약 30만의 이 작은 섬에는 당장 먹고사는 문제를 걱정하는 이들이 넘쳐나죠. 이런 상황에서 KT는 음식, 물 등이 아닌 통신 기술을 지원했습니다. 왜일까요. 우리는 가난의 근본적 문제가 육지로부터의 ‘고립’이라고 판단한 거죠.”(정명곤·KT 지속가능경영기획팀 팀장)

KT의 영상 회의 화상 기기 ‘케이박스’로 수도 다카의 선생님들에게 영어 수업을 받고 있는 섬 아이들 ⓒKT

정명곤 팀장은 지난해 7월 섬에 처음 간 날을 잊지 못한다. 섬은 쓰레기로 뒤덮여 있었고 악취가 진동했다. 학교와 보건소, 병원 등 공공 인프라가 있었지만 무용지물이었다. 섬 내 유일한 병원에는 흔한 CT나 초음파 기기도 없었고 의료진 수준 또한 매우 낮았다. 심한 부상을 입은 환자가 와도 소독약을 발라주는 게 전부였다.

정 팀장은 “모헤시칼리섬은 육지와 멀리 떨어져 있어 안전, 교육, 의료 등 생활에 필요한 공공 인프라 및 서비스가 매우 열악하다”고 말했다. KT가 일회성 구호품 대신 지속 가능한 통신 기술을 보급하기로 결정한 이유다. 섬에 있는 통신시설이라곤 속도가 매우 느린 무선 네트워크뿐이어서, 인터넷 사이트를 여는 데만 몇 시간이 걸렸다. KT는 섬과 육지를 연결하는 무선 네트워크를 자사의 ‘마이크로웨이브’ 기술을 활용해 업데이트하고 250여 개 전봇대를 세워 광케이블을 섬 25개 공공기관에 연결했다. 마이크로웨이브는 광케이블이 연결되어 있지 않은 도서 지역에서 10배 빠른 기가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이다.

 

◇글로벌 사회공헌은 ‘협력’이 관건

 

섬 주민이 섬에 보급된 모바일 초음파 기기 ‘소논’으로 진료를 받고 있다. ⓒKT

프로젝트 시작과 동시에 협력과 소통의 연속이었다. 방글라데시 기가 아일랜드 같은 글로벌형 사회공헌을 하려면,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생기기 때문이다. 지원에 필요한 땅, 인력, 장비 등을 이용하려면 현지 정부 및 단체와의 협력은 필수적이다. 현지 사정을 잘 아는 NGO와의 협업 등도 없어서는 안 될 조건이다. 지난해 2월 KT는 방글라데시 정보통신부, 국제이주기구(IOM)와 3자간 양해각서(MOU)를 체결하면서 기가스토리의 첫 삽을 떴다. 이후 같은 해 4~8월 교육, 의료, 보안, 농업 등 주민들의 수요 조사와 네트워크 설치를 위한 사전 준비를 했다. 이후 지난해 9월부터 5개월간 네트워크 구축 작업에 본격 돌입, 올 4월에야 전격 출범했다. 올 초에는 12개 교육기관에 풀(full) HD 화질로 영상회의를 할 수 있는 화상 기기 ‘케이박스’를 보급했다. 섬 학생들은 케이박스를 통해 방글라데시 수도 다카에 사는 선생님들에게 주 3회 영어 수업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사업 시작부터 완료까지 무려 1년 넘게 걸린 것이다. 이 과정에서 KT 기가 스토리 담당자들은 수차례 방글라데시로 날아가 이해관계자 수십 명을 만났다. 지난해 방글라데시로 간 사업 담당자들은 난관에 부딪혔다. 방글라데시의 어떻게든 되겠지 식의 ‘인샬라’ 문화로 사업 속도가 더뎌진 것. 현지 관계자들은 어떤 요청을 받으면 “알았다”고 답할 뿐, 행동은 하지 않았다. 약 1년간 사업이 지연될 위기에 직면한 KT 관계자들은 현지인들을 설득하고 심지어 공사에 직접 나서기도 했다.

 

방글라데시 기가 아일랜드 프로젝트 매니저였던 하이나 대리가 지난 4월 섬 방문 때 모헤시칼리섬 아이들과 함께 태블릿 PC로 원격 교육을 체험하고 있다. ⓒKT

“수혜국 사람들과 협업하다 보면 문화 차이 문제가 종종 발생해요. 예를 들어 방글라데시는 한국처럼 ‘빨리 빨리’ 문화가 아니에요. 여기서 ‘한국식대로 해달라’고 요구하는 건 무례한 일이더라고요. 그래서 기획 단계에서부터 이런 돌발 상황들을 대비하는 게 중요하죠.”(하이나·KT 지속가능경영기획팀 대리)

덧붙여 정 팀장은 “프로젝트에 필요한 적절한 관계자들을 선별하고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목소리를 냈다. 방글라데시 기가 아일랜드의 성공 요인은 교육, 의료, 농업 등 여러 솔루션별로 다양한 전문기관과의 협업이 꼽힌다. 현재 방글라데시 정부와 현지 국영 통신사인 BTCL은 프로젝트 관련 정책 지원 및 인프라를 제공하고 있다. IOM과 한국국제협력단(KOICA)은 프로젝트 운영 및 현지와의 의견 조율을 담당한다. KT 협력사인 헬세리온은 모바일 초음파기를 제공, 의료 인프라 개선에 힘을 보탰다. 올 하반기에는 연세의료원과 협력해 한국에서 원격 진료가 가능하게 만들 예정이다. 원격 교육은 현지 교육 NGO인 자고(Jaggo)재단이 돕는다. 현지 전자상거래 사회적기업인 ADAG는 농업 전자상거래 교육을 담당한다.

 

◇사회공헌에 기업 핵심 역량 활용해야

 

그동안 KT의 사회공헌은 기업의 핵심 역량과 연계하는 특징을 보여왔다. KT의 ICT를 이용한 기가 스토리, 자사 화상회의 시스템을 활용한 멘토링 사회공헌인 드림스쿨 등이 대표적이다. ‘기가(GiGA)’ 인프라와 ICT 등 핵심 역량을 활용해 사회의 정보 격차를 해소하는 데 초점이 맞춰진 것이다. 이번 방글라데시 기가 아일랜드도 핵심 역량 기반의 사회공헌이다.

왜 핵심 역량 연계일까. 이선주 KT 지속가능경영센터장은 “글로벌 사회공헌의 경우 현지 사정을 잘 모르기 때문에 실패 확률이 높은데, 기업의 핵심 역량을 활용하면 완성도 높은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다”며 “기업이 잘 아는 분야로 사업을 수행해 사업 효과도 크다”고 말했다.

핵심 역량을 기반으로 한 사회공헌은 사업 만족도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100대 기업의 지속가능경영보고서·금감원 전자공시시스템·전경련 사회공헌백서·각 기업 홈페이지 공시자료 5년치를 분석한 신진욱 전경련 자문위원에 따르면, 기업의 역량을 연계한 프로그램의 경우 만족도와 성과가 높게 나타났다.

지난 2월 모헤시칼리섬에 가서 벽화 봉사 등을 한 KT그룹 임직원 봉사단이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KT

당장의 성과보다 장기적인 비전을 목표로 세우는 것도 중요하다. 방글라데시 정부는 2021년까지 중진국으로 진입하기 위해 ICT를 통해 사회문제를 해결하고 국가 경제 발전의 2%를 ICT 분야에서 기여하겠다는 ‘디지털 방글라데시’ 전략을 세웠다. KT는 기가 스토리를 통해 ‘ICT 주도의 발전’이라는 방글라데시 정책 방향성에 발맞췄다. 수혜 지역과 수혜국 수요를 정확히 파악하고 자립 모델을 세운 것이다. 더불어 UN의 ‘SDGs'(지속가능개발목표)에 맞춰 사업 방향을 정해 지속 가능성도 높였다. SDGs는 UN이 2015년 채택한 17개 과제로, 환경 위기, 경제 위기, 양극화 위기 등을 극복하고 지속 가능한 삶을 누리도록 하는 이념을 담고 있다.

덕분에 주민의 높은 만족도는 물론 부가 가치 창출도 기대하고 있다. 현재 방글라데시 정부는 KT가 구축한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ICT 활성화를 계획 중이다. 이에 KT는 올해 초 모헤시칼리섬 항구 근방에 전자상거래 물류센터와 교육 공간인 ‘IT 스페이스’를 조성했다. 이곳에서는 KT와 KOICA, ADAG가 정부 관계자 및 현지 농민들을 대상으로 전자상거래 교육을 실시하는 등, 자립 모델 수립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이 올 하반기 진행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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