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일(목)

[청년, 사회공헌을 만나다- ②] 소녀들의 당당한 발걸음… ‘소녀, 달리다’

경쟁이 아니라 협동심 배우는 新개념 달리기 프로그램 

 

현대해상 사회공헌 프로그램 ‘소녀, 달리다’  

 

“짹짹이 쌤, 저 남자친구랑 헤어졌어요.”, “저는 어제 친구랑 싸웠어요.”

‘짹짹이 쌤’이라는 별명을 가진 이참샘 와이즈웰니스 사회공헌팀장(29)은 자신의 곁에서 항상 재잘거리던 여학생들을 떠올렸다.

“제가 만난 여학생들은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고 싶어 했어요. 요즘 많은 부모님들이 맞벌이를 하다 보니까 학생들이 자기 이야기를 할 대상이 없어요.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제가 쓸모 있는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죠. 사막의 오아시스처럼요. 그때부터 이야기를 많이 들어주자고 다짐했습니다.”

이참샘 와이즈웰니스 사회공헌팀장이 질문에 답변을 하고 있다. 오른쪽은 '소녀, 달리다'의 총책임자인 박성완 과장.ⓒ박민영
이참샘 와이즈웰니스 사회공헌팀장이 질문에 답변을 하고 있다. 오른쪽은 ‘소녀, 달리다’의 총책임자인 박성완 과장.ⓒ박민영

이 팀장이 소녀들과 일상을 공유하는 존재가 될 수 있던 것은 ‘소녀, 달리다’ 덕분이다. 현대해상의 사회공헌 프로그램인 ‘소녀, 달리다’는 초등학교 3학년부터 6학년 여학생을 대상으로 달리기를 교육하는 프로그램이다. 단순한 뜀박질이 아니다. 24회로 구성된 활동게임을 통해 자신을 알아가고 친구들과의 협동심도 기른다. 소녀, 달리다는 0교시와 방과 후에 50분씩 진행된다. 매학기 25여개 학교에서 1000여명의 학생들이 참여하고 있다. 전문 연구진의 교육을 받은 15명의 강사들이 학생들을 지도한다.

◇ 나를 받아들이고 너와 함께하고

‘소녀, 달리다’가 소녀에 주목한 이유는 무엇일까. 박성완 와이즈웰니즈 과장(33)은 “남학생의 경우엔 스트레스를 해소할 창구가 많은데 여학생들은 그렇지 않다”면서 “인격이 형성되는 어렸을 때부터 이들의 자존감을 키우는 일을 하고 싶었다”고 이야기했다.

‘소녀, 달리다’의 커리큘럼은 자신에 대해 알아보는 것으로 시작한다. ‘나의 장점’을 발견하고 친구들에게 자신의 단점도 이야기한다. 단점을 말함으로써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 이 팀장은 “프로그램 초반에는 스스로를 표현하는 시간을 가지고 이후 그룹 활동을 하면서 서로 다른 친구들의 반응을 이해하게 된다”고 전했다.

'소녀, 달리다'의 참가자 어린이들이 사이좋게 운동장을 달리고 있다.ⓒ(주)와이즈웰니스
‘소녀, 달리다’의 참가자 어린이들이 사이좋게 운동장을 달리고 있다.ⓒ(주)와이즈웰니스

달리기는 종종 경쟁 사회에 비유된다. 누가 더 빠른지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녀, 달리다’는 다르다. 소녀들은 친구와 함께 숨이 찰 때까지 뛰고 골인점으로 들어오는 것에서 기쁨을 느낀다. 학생들이 가장 좋아하는 활동게임도 개인 대 개인의 경쟁이 아니다. 학생들과 강사 사이의 대결구도가 형성되는 게임을 할 때면 학생들은 서로 협력한다. 소녀들은 ‘또래 압박’에 효과적으로 대처하는 법도 배운다. 분명한 자신의 의사 전달을 통해서다. 각자 시나리오 작가, 배우 등의 역할을 맡아 UCC를 제작하기도 한다. 

박 과장은 “이제는 경쟁 위주의 기존 체육 교육 방식이 아닌 협동심을 중심으로 구성하는 합동 체육 수업이 주목을 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체육이 인성발달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것이 알려지면서부터라고 한다. “‘소녀, 달리다’도 체력 증진과 인성 함양을 동시에 꾀하려고 합니다. 친구들과 함께 달리고 게임을 하며 협동심은 물론 사회성, 인성까지 기를 수 있도록 말이죠.”

◇ 끝까지 함께할 때, 우리는 친구가 된다

4.2195km. 소수점을 잘못 찍은 것이 아니다. 소녀들은 마라톤의 실제 거리인 42.195km의 10분의 1을 달렸다. 서울 상암동 월드컵공원에서 개최되는 ‘소녀, 달리다 – 달리기 축제’에는 어린이들과 가족, 친구들까지 1500여명이 참여한다.

‘소녀, 달리다 달리기 축제’에서 결승선을 향해 달리는 참가자 어린이.ⓒ(주)와이즈웰니스
‘소녀, 달리다 달리기 축제’에서 결승선을 향해 달리는 참가자 어린이.ⓒ(주)와이즈웰니스

17차에 진행되는 이 달리기 축제에서 학생들은 그동안 학습한 달리기 주법을 활용한다. 완주의 기쁨을 맛보면서 자기 신체에 대한 자신감을 향상시키고 성취감을 얻는다. 달리기 축제는 ‘승리’가 아닌 ‘완주’에 방점을 찍는다. 박 과장은 “학생들이 상을 받은 친구들을 질투한다”면서 “이번부터는 ‘완주’라는 달리기 축제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 수상하는 행사를 없앨 계획”이라고 말했다.

축제는 강사와 학생들이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된다. 강사들은 수업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학생들에게 다가간다. 그동안 힘든 점은 무엇이었는지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것. 이들은 수업시간에는 할 수 없었던 이야기를 나누며 친밀한 사이로 발전한다. 강사와 학생들 사이뿐만이 아니다. 학생들끼리도 더욱 가까워지는 계기가 된다.

참가자 어린들이 달리기 축제의 포토존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주)와이즈웰니스
참가자 어린들이 달리기 축제의 포토존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주)와이즈웰니스

“왕따를 주도하는 친구와 왕따를 당하는 친구가 같은 수업을 들었어요. 아마 선생님이 일부러 같은 반에 배정한 것 같아요. 친해지라고요. 실제로 이 둘은 달리기 축제에서 함께 뛰면서 친해질 수 있었어요. 뛰는 동안 대화도 나누고, 힘든 시간을 거쳐 골인점에 통과하는 순간까지 함께 했으니까요.”(박성완)

비가 내렸던 지난해 달리기 축제때는 참가자들이 우비를 입었다. 알록달록한 우비를 입고 달린 아이들을 떠올리는 성완씨의 눈빛이 소녀 못지않게 순수했다. 6회차를 맞이하는 올해 달리기 축제는 6월 10일 토요일에 열린다.

◇ 변화의 시작, 소녀들이여 달리자

3개월간의 프로그램이 끝난 뒤, 소녀들은 달라진 자신의 모습을 마주한다. 프로그램 시작 전과 후에 평가되는 신체발달 지표와 인성발달 지표의 비교를 통해서다. 소녀들은 청소년용 통합적 인성, 아동정서, 운동 지속수행, 신제적 자기개념이라는 4가지 평가항목에서 모두 10% 이상 향상됐다.

‘소녀, 달리기’에 참여한 학생들 중 성적이 오르는 경우도 있다. 어린이들은 0교시 수업을 위해 일찍 일어나 달리기로 하루를 상쾌하게 시작한다. 자연히 수업에 대한 집중력이 높아지게 되는 것이다. 소녀들의 변화를 누구보다 반기는 이들은 학부모다. “아이의 자존감이 높아졌어요”, “친구들과 더 잘 지내네요”, “긍정적인 생각을 하게 됐어요”라는 피드백을 받은 강사들 역시 변화된 아이들을 발견하게 된다. 

이참샘 팀장은 “프로그램을 통해 나, 타인, 자신이 속한 집단에 대한 자존감이 높아지기 때문에 남과 비교하지 않고 자기답고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을 거란 기대를 한다”며 “특히 사회성을 기르고 싶은 학생들이 꼭 참여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성완 과장은 “아이들이 남을 위해 배려할 줄 아는 사람으로 자라길 바란다”면서 “선한 영향력을 만들어내는 사회의 일원으로 성장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마지막으로 박성완 과장은 ‘소녀, 달리다’의 목표를 어린이들의 체력은 물론 인성발달에도 도움을 주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소녀, 달리다는 ‘여정’이에요. 소녀들이 인생을 달려 나가는 여정이요. 이 여정에 혼자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함께 한다는 것을 배울 수 있는 곳이 바로 ‘소녀, 달리다’입니다. 아직은 수도권에 머무르고 있지만 향후 지방까지도 프로그램이 운영될 수 있도록 진행할 계획입니다.”

허세민 더나은미래 청년기자(청세담 7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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