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4일(토)

“프레임 속 여성 家長은 편견과 싸우는 女戰士”

한부모 여성가장 희망을 담아낸 조선희 작가
아름다운재단 희망가게 100호점 기념 홀로 아이 키우는 여성 애환 담아
“인생은 스스로 개척하라 말하던 어머니 이번 작업 시작한 계기였죠”

사진 속의 그들은 대부분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틀어 올린 머리 위에 예닐곱 개의 가위를 꽂고 짙은 눈매로 바라보고 있는 이는 미용실 사장이다. 장비들이 즐비한 세차장 한가운데 작업복 차림으로 한 손에 물 분사기를 들고 당당히 서 있는 사람은 세차장 사장, 기중기가 작동하고 있는 폐자제 더미 위에 절단기를 들고 서 있는 그는 재활용센터 사장이다. 29명의 사장이 모두 저마다의 도구를 들고 결연한 표정과 몸짓으로 카메라 건너 세상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다. 사진 속 그들은 홀로 아이들을 키우며 가게를 꾸려가고 있는 ‘어머니’사장들이다.

 왼쪽부터 조선희 작가의 작품 사진 〈정주어패럴 류영화의 가위, FILM: KODAK 4X5 T-MAX 400〉, 〈양지그린세탁소 권정희 다리미, FILM: KODAK 4X5 T-MAX 400>

왼쪽부터 조선희 작가의 작품 사진 〈정주어패럴 류영화의 가위, FILM: KODAK 4X5 T-MAX 400〉, 〈양지그린세탁소 권정희 다리미, FILM: KODAK 4X5 T-MAX 400>

“카메라 앞에 난생처음 모델로 서게 된 그분들에게 말했죠. ‘당신을 전사(戰士)라고 생각한다’고. 미용 가위, 족발용 식도, 세탁소 다리미 등은 무기인 셈이라고.”

사진작가 조선희(39·경일대 부교수)가 올 4월 중순부터 최근까지 전국을 돌며 한부모 여성 가장들의 창업 이야기를 사진으로 담아냈다. 그는 “사람의 눈은 다 보는 듯하지만 원하는 것만 보는 반면, 카메라는 있는 그대로를 보여 준다”며, 사진가인 본인의 역할은 사람들이 보지 못한 걸 잡아내는 일이라고 했다. 이번 사진 작업의 대상이었던 그네들에 대해, 조 작가는 “가족을 지키기 위해 세상과, 편견과 싸우는 사람들”이라 정의했다. 굳이 “싸운다”는 표현을 쓰는 이유는 “그 어머니들의 삶이 치열하고, 폭발하는 에너지가 싸움에 준하기 때문”이란다.

한부모 여성 가장 창업주들을 담은 작품 사진 앞에서 당시 촬영에 쓰인 카메라와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는 조선희 작가. 촬영=장덕화 작가
한부모 여성 가장 창업주들을 담은 작품 사진 앞에서 당시 촬영에 쓰인 카메라와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는 조선희 작가. 촬영=장덕화 작가

인터뷰를 시작하자마자 조 작가는 “나도 한부모가정 어머니의 딸”이라고 담담히 털어놓으며, 사진 속 희망가게 창업 여성들은 “나이고, 어머니이고, 언니”라고 했다.

조선희 작가의 이번 작업은 아름다운재단 희망가게 100호점 기념사업의 일환이다. 희망가게 사업은 한부모 여성 가장의 창업을 지원하는 무담보소액대출, 즉 마이크로 크레딧(Micro-Credit) 프로그램으로 2004년에 첫발을 내디뎠다. 당시만 해도 마이크로 크레딧은 우리나라에서 찾아볼 수 없는 새로운 방식이어서, 희망가게 운영팀은 대상자들에게 취지를 명확히 인지시키는 일부터 시작했다고 한다. 이전의 취약계층에 대한 단순 후원 방식이라 생각하고 찾아오는 사람이 많았지만, 갚아 나갈 의지 없이 출발하는 이들은 대부분 폐업이라는 결과를 얻기 때문이다.

운영팀에서는 “자영업 시장 100개 중 5개만 살아남는 현실 속에서 준비도 없이, 경쟁업체 파악도 없이 달려가는 창업은 상처와 부채만 가져올 뿐”이라고 못 박고 철저한 사전 준비와, 창업 컨설팅 전문가와 함께하는 후속관리를 체계화했다. 현재 희망가게의 창업 후 생존율은 80%이며, 2010년 12월에는 98.8%의 상환율을 기록하기에 이르렀다. 2010년 평균 상환율은 84%다.

생계와 아이들을 책임지고 있는 여성 가장들의 이야기, 그것은 조선희 작가에게는 특별하다. 그의 어머니는 경북 왜관 시장에서 ‘대구만물상회’를 운영하면서 홀로 다섯 남매를 키웠다. 남들이 가게 문을 닫고 난 후에도 어머니는 좌판 앞에서 꾸벅꾸벅 졸면서도 가게 문을 닫지 않았다고 한다.

“대학 갈 때까지 공부하란 말 한 번 하지 않으셨어요. 덕분에 독립적으로 자랄 수 있었죠. 지금 돌이켜 보면 그때의 시간들이 지금 사진을 하게끔 하는 힘이고 밑바탕입니다.”

연세대 의생활학과에 다니던 딸이 사진가의 길을 가겠노라고 했을 때도 어머니는 “너의 인생이니 스스로 결정하라”고 단호히 말했다고 한다. 강한 여성이었다. 셋째 딸인 조선희 작가는 그런 어머니를 닮았다. 조 작가의 어머니가 혼자가 됐을 때는 마흔둘, 지금의 그와 두 살 차이다. 이번 작업을 함께한 여성들도 대부분 비슷한 또래들이다. 조 작가는 “한명 한명을 담아내는 과정이 결국은 자화상을 찍는 작업이었다”고 밝혔다.

처음부터 흔쾌히 작업을 맡은 건 아니었다. 80여일간의 작업 일정을 내는 일도 거의 불가능했지만, 그보다도 현장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찍는 일은 다큐멘터리 작가가 해야 할 일이라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조선희 작가가 유명인이 아닌 일반인들을 모델로 세우고 몇 달 동안 몰입해서 작업을 진행한 경우는 드물었다. 이런 조 작가의 마음을 움직인 건 서울시 가회동으로 출사를 나갔다가 우연히 만난 희망가게 담당자 배현주(33) 팀장과의 대화였다. 설명을 듣고 조 작가는 이번 작업은 어머니로서 공감할 수 있는 여성이 카메라를 잡아야 한다 생각했고, 다시 생각해 보니 딸이기도 하고 엄마이기도 한 자신이 바로 적임자였다.

작업은 쉽지 않았다. 100명의 대상자를 모두 찍고 싶었지만, 대상자들의 허락을 받아내는 일부터 난관이었다. 자리를 잡았다고는 하지만 한부모 가장 여성들이 세상에 자신을 드러내는 일은 역시나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성공한 사람으로서가 아니라 비슷한 상황에 놓인 다른 여성들에게 희망의 증거가 되어 달라”는 말로 설득하면서 대상자들을 물색했다. 처음에는 실명을 드러내는 데 난색을 보이던 이가, 촬영 후 마음을 바꿔 가명을 쓰지 않고 본인을 그대로 드러내겠다고 하는 경우도 있었다. 조선희 작가는 “그 하나의 변화만으로도 난 만족한다”고 말했다.

조선희 작가의 작품 사진〈미용실-라윤희, FILM : KODAK 4X5 T-MAX 400〉
조선희 작가의 작품 사진〈미용실-라윤희, FILM : KODAK 4X5 T-MAX 400〉

사진 작업에는 가로 4인치(10.16㎝), 세로 5인치(12.7㎝)의 필름이 들어가는 대형 카메라를 사용했다. 피사체가 자세를 잡고 고정한 채로 있으면 사진가가 필름을 끼운 뒤 검은 막을 뒤집어쓰고 찍어야 하는, 흔히 옛날 사진관에서나 볼 수 있는 그런 카메라다. 이유가 있었다.

첫 작업은 대구 밸리댄스 학원 사장이었는데, 디지털 카메라로 진행했다가 모두 엎고 재촬영을 감행했다. 너무 예쁘게 나와서였다. 전문 모델과는 다른, 일반적으로는 갤러리에 걸리기 힘든 생활 속의 사람들을 작품으로 재창조해내기 위해 찾아낸 방법은 꾸미지 않고 있는 그대로 접근하는 전통적인 방식이었다. 고전적 촬영 방식을 택하다 보니 갖고 다녀야 하는 장비도 만만치 않아 비행기를 타지 못하고 부산, 광주 등지를 하루 7시간 이상 차로 달려가야 하는 일도 흔했다. 모델이 된 여성들의 생업에 지장을 주지 않기 위해 가게 문을 여는 9시 이전에 촬영을 진행해야 했고, 이를 위해 전날 밤 출발해 현지에서 대기하는 일도 여러 번이었다.

기름때 묻은 절단기, 날이 선 칼, 8년 넘게 써온재봉가위 등 희망가게 창업주들이 일하는 데 쓰고 있는 도구들도 일일이 받아 오거나 전국에서 우편으로 전달받아 스튜디오 촬영을 진행했다. 그네들의 생계를 책임져 주는 가장 소중한 수단이면서 동시에 아이들의 꿈이 담겨 있는 물건이기에, 실물 그대로를 오롯이 사진으로 담아내고자 하는 의도였다.

희망가게 창업주들과 함께한 조선희 작가의 작품은 ‘두 개의 상像’이라는 이름으로 오는 6월 29일부터 일주일 동안 인사동 노암 갤러리에서 전시될 예정이다. ‘두 개의 상像’은 희망가게를 시작하기 전과 후의 두 가지 시선을 내포하고 있다는 뜻에서 붙인 제목이며, 관람비는 무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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