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3일(금)

말린 망고로 세상의 빈곤과 싸우다…아시아공정무역네트워크

정수연(가명)씨는 먹거리에 민감한 편이다. 아이가 심한 아토피 피부염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간식으로는 오로지 생채소와 과일만 고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수연씨가 잠시 한 눈을 판 사이 아이가 선물받은 말린 망고 한 움큼을 집어먹었다. 수연씨의 머릿속에는 오만가지 생각이 스쳤다. ‘색소, 방부제, 산화방지제, 표백제…’ 아토피에 해로운 합성첨가물이 가득할지도 몰랐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발진은 일어나지 않았다. 놀랍고 기쁜 마음에 제품 뒤에 붙은 회사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아시아공정무역네트워크‘. 처음 보는 이름이었지만, 아이에게 마음 놓고 먹일 수 있는 제품을 만들어주었다는 것에 꼭 감사를 표하고 싶었다.

“전화를 받고, 직원들이 얼마나 좋아했는지 몰라요. 이렇게 종종 ‘직접 먹어보니 차이를 알겠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우리가 하고 있는 일에 큰 뿌듯함을 느끼죠. 공정하게 만들고 유통한 제품이 생산자뿐만 아니라 소비자의 삶도 바꿔놓을 수 있다는 데서 힘을 얻습니다.” (이승희 생산지파트너십 부문 간사)

아시아공정무역네트워크는 초콜릿, 말린 망고, 계피, 홍차, 캐슈넛 등을 취급하는 사회적기업이다. 제품 목록만 봐서는 평범한 수입식품처럼 보이지만 성분표를 조금만 자세히 읽어보면 그 차이를 명확히 알 수 있다. 그 흔한 색소, 방부제 하나 들어있지 않고 초콜릿처럼 성분이 다양한 식품도 주재료와 부재료의 원산지가 일치한다. 품질 뿐만이 아니다. 그 안에 녹아있는 가치를 더하면 차이는 더욱 커진다. 농부가 친환경 농법으로 재배한 작물을 가장 신선할 때 제 값에 사서, 공정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소비자는 제품을 사는 것 만으로도 가난을 극복하는 데 기여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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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무역, 빈곤과 싸우는 시민의 힘

“세상은 말만 해서는 안 바뀝니다. 우리의 행동과 습관, 나아가서는 삶의 태도가 바뀌어야죠. 저는 그 중 가장 강력한 행동이 ‘소비’라고 생각합니다. ‘내 돈’이라고 하는 주권을 행사하는 활동이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어떤 분은 ‘소비가 투표보다 강하다’고도 하더군요. 그만큼 소비가 경제·사회 시스템에 미치는 영향력이 큰 겁니다. 우리의 소비를 바꾸는 일, 그로 하여금 세상을 바꾸는 일이 제가 생각하는 공정무역의 초점입니다.“ (이강백 아시아공정무역네트워크 대표·사진)

전 세계 빈곤 인구는 약 8억명 이상(2014 세계 식량불안 상황 보고서). 유엔은 ‘지속가능발전목표(SDGs)’를 통해 ’빈곤 종식‘을 국제사회의 첫 번째 과제로 삼았다. 빈곤과의 긴 싸움을 끝내는 데 좀 더 효과적인 방법은 없을까? 좀 더 많은 사람이 빈곤과의 싸움에 참여하도록 이끌 수 있는 방법은? ’세계 빈곤 퇴치‘를 목표로 설립된 사회적기업 아시아공정무역네트워크는 이 같은 질문에서 출발했다.

“좁은 농경지에서 온 가족이 매달려 농사를 지어야 하는 빈농들은 ‘박리다매(薄利多賣)’를 추구하는 글로벌 식품회사들의 거래처가 되기 어렵습니다. 설령 거래를 하게 되더라도 언제든 매수가 끊길 수 있다는 불안에 떨어야하죠. 농지와 인력이 있어도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공정무역은 이런 소농들에게 기회를 제공합니다. 개발도상국의 가난한 가족을 ‘도움 받는 존재’로 만드는 단순 원조와 달리, 공정무역은 이들을 거래의 주체로서 대합니다. 빈농들에게 농사짓고 거래할 기회를 안정적으로 제공하기 때문에 장기적으로는 자립을 도울 수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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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색깔’ ‘짧은 유통기한’ ‘높은 가격’…위기를 기회로

아시아공정무역네트워크의 경쟁력은 품질이다. 대표 상품인 건망고의 제조과정을 살펴보면 공정무역 제품만이 가질 수 있는 강점이 그대로 드러난다. 프레다공정무역은 농가로부터 1kg당 44페소(1040원)에 망고를 구입한다(2016년 하반기 기준). 중간거래상을 낀 글로벌 식품기업의 망고 매입가(8~20페소)에 비하면 최대 5배가 넘는 금액이다. 목표한 품질에 부합하는 망고를 생산했을 때 지급하는 공정무역프리미엄(1kg당 2페소)는 별도다. 망고를 고가에 구매하는 만큼 품질 조건이 까다롭기 때문에 농가에서는 망고 하나하나에 더욱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이렇게 구입한 망고는 프레다공정무역과 20년 이상 파트너십을 유지하고 있는 현지 식품제조사 ‘프로푸드’로 옮겨진다. 색소 등 첨가물이 전혀 묻지 않은 전용 생산라인에서 말린 망고가 제조되면, 아시아공정무역네트워크에서 이를 한국 소비자에게 전달한다.

“말린 망고는 우리가 흔히 아는 노란색이나 주황색이 아닙니다. 오히려 말린 고구마색에 가깝죠. 색소와 보존제가 들어가지 않으니까요. 첨가물이 없으니 유통기한도 상대적으로 짧습니다. 중량대비 망고도 더 많이 들어가고요. 70g짜리 말린 망고 한 봉지를 만들려면 생망고 3개는 필요합니다. 가격도 상대적으로 비쌀 수 밖에 없었죠. 시장 진입 초기에는 이런 특징이 약점으로 작용했습니다. ‘제품 색이 이상하다’며 전화를 걸어오는 소비자도 있었고요. 하지만 요즘에는 직접 제품을 경험해 본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특성이 잘 받아들여지는 것 같아요. 그 동안의 약점이 제품의 질을 증명하는 강점이 된 셈이죠.” (조기수 영업마케팅국장)

초콜릿은 베트남의 ‘마루(MAROU) 초콜릿’에서 공수하고 있다. 프랑스의 유명 쇼콜라티에 사무엘 마루타와 빈센트 머러우가 만든 싱글 오리진(Single Origin·단일지역, 단일품종으로 만든 제품) 초콜릿 브랜드로 조과정이 투명할 뿐만 아니라 뛰어난 맛과 깊은 향을 자랑해 ‘국제초콜릿어워드’에서 금메달(2014)과 은메달(2015)을 수상하기도 했다.

조기수 국장은 “일반 식품제조 기업에서는 상처난 카카오 원두라도 최대한 많이 활용하려고 알칼리(방부)처리를 하는데, 마루 초콜릿은 방부처리를 하지 않은 최고급 카카오 원두를 사용하고 있다”면서 “특정 농가에서 제조한 와인이 고유 브랜드를 갖고 높은 가격에 거래되듯 마루 초콜릿 역시 싱글 오리진 초콜릿으로 세계시장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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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를 통해 변화하는 세상

공정무역의 진정한 장점은 그 열매가 소비자와 생산자 모두에게 돌아간다는 데 있다. 한국의 소비자가 안전하고 믿을 수 있는 제품을 구매하는 동안, 생산지에서는 영세 가족농들이 자립의 기회를 얻게 된다.

아시아공정무역네트워크의 망고 상품 파트너인 프레다공정무역은 필리핀 잠발레스 섬의 아에타 원주민 농가, 민다나오 지역 소농 등 50그루 이하 규모의 농가로 거래 대상을 한정하고 있다. 카카오 관련 상품 파트너사인 마루 초콜릿은 거래 농가에 개미를 활용해 해충을 억제하는 방법과 카카오 발효·건조기술 등을 전수한다. 새로운 농법과 작물가공법을 익힌 농가는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게 된다. 새로운 농법과 작물가공법을 익힌 생산자는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게 되고, 안정적인 매수를 보장하는 파트너는 내일을 그릴 수 있는 밑거름이 된다.

거래 과정에서 발생하는 수익은 사회적 가치로 환원되고 있다. 프레다공정무역의 수익은 어려운 사정으로 인해 성매매, 인신매매, 마약거래 등 범죄에 노출된 미성년자들을 위한 시설 운영비로 사용된다. 계피 파트너인 베트남의 ‘반쩐바이오파머스클럽(짜오족으로 구성된 영농조합)’은 공정무역 프리미엄을 축적해 2015년, 계피밭이 있는 산에서 마을까지 이어지는 오토바이 도로를 닦기도 했다.

아시아공정무역네트워크_생산자_농부_가족농_필리핀_망고

◇남겨진 과제와 새로운 도전

영국의 경우, 공정무역 인증 제품의 시장 규모만 15억 파운드(2조 1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한국공정무역단체협의회가 발표한 회원단체 전체 매출은 약 114억원(2014년 기준). 국내 공정무역시장 규모는 약 200억원 규모로 추산된다. 해외와 다르게 공정무역 상품이 시장에서 주 소비 품목으로 자리 잡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문제는 유통채널 확보다. 소비자들의 선택범위 안에 들어가려면 넓은 오프라인 매장 확보가 필수적이지만, 국내에서는 아직 일부 생협과 온라인쇼핑을 중심으로 판매되고 있다.

해외 농가와 교류하기 때문에 즉각적인 소통이 어렵다는 점도 과제로 남아있다. 태풍이나 가뭄 등 천재지변으로 생산량에 문제가 생길 경우 제품을 공수하는 데도 어려움을 겪는다. 조기수 국장은 “일반 식품기업의 경우 원료가 수배되지 않을 때 농가를 교체하면 그만이지만, 농가와의 파트너십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공정무역의 경우 갑자기 상품이 품절되는 경우도 생긴다”면서 “상생이라는 고유 가치가 우리에게는 늘 가장 큰 도전”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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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무역이 커피 등에 한정됐다는 인식을 깨기 위해 제품군도 확대할 예정이다. 지난해 국내 최초로 카카오닙스(로스팅한 카카오 빈을 잘게 부숴 만든 건강식품)를 출시한 데 이어, 소비자 반응과 시장 상황을 고려해 우선 스테디셀러인 건과일 제품을 추가 준비 중이다. 생활 속에서 공정무역제품을 자주 사용할 수 있도록 내년 쯤 향신료 부문에서도 신규 라인을 론칭한다.

“스타벅스 영국에서 판매되는 커피는 100% 공정무역 제품입니다. 소비자들이 ‘공정무역 제품이 아니면 사지 않겠다’는 의지를 시장에 확고히 전달했기 때문이죠. 일각에서는 ‘유럽이니까 가능한 일’이라고 하지만, 저는 그 이유를 ‘리에종(연결자)’에서 찾았습니다. ‘공정무역 제품만 사겠다’는 시민의식이 있어도, 그 의지를 엮어서 실체화 하는 주체가 없었다면 그렇게 큰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한국 사회에서 아시아공정무역네트워크가 그런 역할을 하길 바랍니다. 공정무역을 지지하는 개인들이 모여 하나의 소비문화가 형성될 때, 더 나은 세상이 만들어질 거라 봅니다.” (이강백 대표)

*본 기사는 서울시 사회적경제지원센터 디지털마케팅지원사업의 일환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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