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14일(토)

[기차에서 일합니다] 지독하게 외롭고 찬란하게 눈부신 엄마라는 세계

정유미 포포포 대표
정유미 포포포 대표

경력보유여성의 경제적 독립과 정서적 자립이라는 미션을 정관에 기재하던 3월을 기억한다. 입춘은 지났건만 겨울을 벗어나지 못한 2019년의 어느 봄. 경력이 단절되고 경제권을 상실했을 때 마주한 건 자본주의에서 돈은 곧 인권, 결정권, 통제권이라는 서슬 퍼런 민낯이었다. 창업과 창간이라는 예상치 못한 인생의 트랙으로 급격한 U자 커브를 그렸다. 엄마의 잠재력에 주목한다는 슬로건에 정작 육아 정보 하나 없는 생경한 엄마의 서사, 사양산업이라는 잡지로 출발한 포포포 매거진이 그 시작이었다. 기적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모순덩어리의 시간이었다.

대체 누가 왜 보는 걸까. 상상으로 그리던 독자를 찾아 책 박스를 이고 지고 북페어에 나가 누군가의 딸들을 만났다. 그들이 한참 책을 들여보다 머뭇거리며 꺼낸 질문엔 대게 호기심과 두려움이 묻어있었다. “엄마가 되어도 제 삶은 망하지 않을까요?”라는 동일한 질문을 꺼내는 다른 얼굴들이 부스를 찾아왔다. 우리가 주고받은 질문은 다음 호 주제가, 존재의 이유가, 성장의 동력이 됐다. 저출산이라는 문제만 있고 여성에 대한 고민은 부재한 현실은 닭 없는 달걀과 같다. 이들에게 한시적인 지원 정책은 20년 뒤에 찾아갈 수 있는 로또 번호처럼 손에 잡히지 않는다. 

UN의 지속가능발전목표(SDGs) 5번은 성평등 달성과 여성 역량 강화를 목표로 한다. 이는 모든 국가의 여성에 대한 차별을 철폐하고 경제 및 공적 영역에서 여성의 참여와 리더십의 공평한 기회 보장을 포함한다. 유엔여성기구와 유엔글로벌콤팩트는 2010년 ‘성평등을 위한 노력은 더 좋은 기업을 만든다’는 모토로 여성역량강화원칙(WEPs)을 발족했다. 2023년 지금의 현주소는 어떠한가. 온통 타인을 돌보는 삶에서 실종된 엄마의 성장 그래프를 지켜보며 자란 세대에겐 일 인분의 삶도 숨이 가쁘다. 이들에게 부재한 양육자의 지속 가능한 삶과 성장을 포포포라는 이름으로 아카이브 한지 5년 차. 지독하게 외롭고 찬란하게 눈부신 육아의 천국과 지옥을 넘나들며 혼자가 아니라는 확신이 생겼다. 무모하고 용감하게 창업을 결심한 배경에는 로컬의 여성을 기점으로 환경, 보건, 사회 구조의 문제를 해결한 NGO ‘선다라’가 있었다. 

선다라가 만든 선순환 구조는 다음 세대의 미래와 직결됐다. 먼저 인도 빈민촌의 여성을 고용해 호텔에서 한번 쓰고 버려지는 비누를 재가공하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경제권이 생긴 엄마가 제일 먼저 행동에 옮긴 것은 아이를 학교에 보내는 일이었다. 나아가 빈민가와 학교를 거점으로 비누를 공급하는 동시에 질병의 확산을 막을 수 있는 위생 교육을 시행했다. 지금도 개발도상국에서는 비누로 손만 씻어도 예방할 수 있는 장염으로 쉽게 꺼져가는 어린 생명들이 존재한다. 단지 성별 때문에 태어나자마자 버림받았던 여성들이 주변을, 환경을, 세상을 돌보고 바꿔나갔다. 서로 다른 여성들로 이루어진 공동체와 그들 스스로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감각을 일깨워 주는 것. 이 모든 일의 시작이었다. 오랜 시간 사회가 그들의 머릿속에 박아 둔 ‘가치 없는 존재’라는 장벽에 갇혀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했을 뿐. 여성의 태도가 달라지고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며, 아이디어가 샘솟는 것을 지켜봤다.

다양성과 포용성을 기반으로 격차를 완화하기 위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우선 지금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기로 했다. 책을 짓고 사람을 모아 생태계의 균형을 맞춰 간다. 대구의 엄마들을 오프라인으로, 다른 시간대를 살아가는 엄마들을 온라인으로 모아 경력보유여성 재도전 프로젝트인 임파워링 맘 챌린지를 시작하게 된 배경이다. 저출생이 반드시 극복해야 하는 국가적 재난으로 선포된 현실엔 역설적이게도 미래의 아이만 존재한다. 여전히 관심 밖의 영역인 여성, 특히 엄마의 삶을 관통하는 동안 우리는 아이를 돌보는 사이 한 줌의 토막 시간을 모아 새로운 내일을 그리고 내 일을 만들어 갈 것이다. 모든 이들에겐 매 회차 다른 이야기가 상영되는 그들 각자의 영화관이 존재한다. 매일 각자의 선택과 삶이 존중받을 때 비로소 고유한 빛깔의 영화가 상영된다. 폭우와 폭염을 오가는 날씨처럼 매일의 균열 속에 균형점을 찾아가는 이들을 발굴하면서. 우리에겐 더 많은 엄마의 서사가 필요하다.

정유미 포포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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