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7일(화)

투병생활로 가려진 꿈… 마음과 손길 모여 이루다

메이크어위시 콘서트_신곡 쇼케이스 연 신민지양

지난달 말, 열다섯 살의 신민지양은 평소 꿈인 ‘가수’가 되어 무대에 올랐다. 첫무대인데 긴장한 기색도, 아픈 기색도 없이 총 3곡의 신곡을 선보였다. 민지는 꿈을 이룬 흥분으로 잔뜩 상기되어 있었다. 민지의 특별한 무대를 축하하기 위해 멀리서 달려온 가족과 친척, 친구들 역시 함께 설레는 모습이었다.

이날의 특별한 무대는 한국메이크어위시재단(www.wish.or.kr)이 마련했다. 첫 번째 소원성취의 주인공, 크리스가 경찰관 체험으로 소원을 이룬 날을 기념하는 월드위시데이(World Wish Day·매년 4월 29일)를 맞아 난소생식세포종양으로 투병 중인 민지의 신곡 발표 쇼케이스를 열어준 것이다. 메이크어위시재단은 소아암, 백혈병, 근이영양증 등 난치병으로 생명의 위협을 받으며 장기간 투병하는 아이들의 소원을 이루어 주는 소원성취기관이다. 국내에는 2002년 설립되어 현재까지 약 1600여명 아이들의 소원을 이루어주며 희망과 용기를 전하고 있다.

난소생식세포종양으로 투병 중인 신민지양이 자신의 소원성취를 도와준 작곡가들, SES의 슈 언니, 봉사자들과 활짝 웃고 있다. /한국메이크어위시재단 제공
난소생식세포종양으로 투병 중인 신민지양이 자신의 소원성취를 도와준 작곡가들, SES의 슈 언니, 봉사자들과 활짝 웃고 있다. /한국메이크어위시재단 제공

무대에서 내려온 민지는 “오늘 하루가 너무 짧다”며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공연 전에 청심환을 먹었다”고 고백한 민지는 “재미있고 좋았다”며 내내 웃는 얼굴이다. 2009년 발병 이래 대전과 서울을 오가며 종양제거수술, 집중항암치료를 끊임없이 받느라 몸도 마음도 지쳤을 법한데 여전히 밝다. 투병생활로 빨리 철이 들었는지 감사인사도 빠뜨리지 않는다.

“저 하나를 위해서 참 많은 분들이 긴 시간 동안 함께했거든요. 저를 보러 이렇게 와주신 분들, 다 너무너무 감사드려요.” 고마운 사람들 이야기를 꺼내니 목이 메는지 민지는 잠시 말을 멈췄다.

자신의 첫 번째 무대에서 민지는 아픈 것도 모두 잊고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한국메이크어위시재단 제공
자신의 첫 번째 무대에서 민지는 아픈 것도 모두 잊고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한국메이크어위시재단 제공

민지의 꿈을 이뤄주기 위해 성기영(40)·이규원(37)·유태환(33)씨 등 작곡가 3명이 한 곡씩을 무료로 선물했고, 그룹 SES의 슈(30·본명 유수영)와 신예 가수들도 출연료 없이 이날 무대에 섰다. 유명 사진작가 권영호(43)씨는 앨범 사진 재킷을 맡았다. 이날 무대를 위해 음향, 조명 등을 담당하는 여러 전문가도 나섰으며, 객석을 채우기 위해 가족, 친척, 친구들과 메이크어위시재단 봉사자와 후원자들도 나섰다. 푸르덴셜생명, 삼성전자 반도체사업부 등도 지난 1년간의 모든 준비 과정을 도왔다.

난치병 어린이의 소원은 이렇게 여러 마음과 손길이 모여 이루어진다. 놀이공원에 가보고 싶은 소원, 동화책을 만들어 보고 싶은 소원, 인순이 이모와 노래를 부르고 싶은 소원 등 각양각색의 소원들을 이뤄주는 것이 간단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메이크어위시재단에 불가능은 없다. 하늘을 날고 싶은 소원은 패러글라이딩 체험으로, 시트콤 ‘거침 없이 하이킥’에 출연하고 싶은 소원 역시 병원 엘리베이터 안 어린이 환자 배역을 맡아 이루어졌다. 유명인을 만나고 싶은 소원 또한 반기문 UN사무총장을 비롯해 앙드레 김, 김태희, 강호동 등 많은 이들의 적극적인 협조로 이루어졌다.

민지가 ‘가수’의 소원성취를 위해 음원 녹음을 하고 있다. 야후코리아와 벅스에서 음원을 구입할 수 있으며, 음원 수익금은 한국메이크어위시재단에 전액 기부된다. /한국메이크어위시재단 제공
민지가 ‘가수’의 소원성취를 위해 음원 녹음을 하고 있다. 야후코리아와 벅스에서 음원을 구입할 수 있으며, 음원 수익금은 한국메이크어위시재단에 전액 기부된다. /한국메이크어위시재단 제공

특히 어린이를 만나 함께 소원을 구체화하는 것부터 성취방안 기획, 유명인 섭외 등 모든 과정을 돕는 자원봉사자들의 땀과 열정이 가장 큰 역할을 한다. 우연히 메이크어위시재단을 알게 된 후 국내 재단설립을 기다려 설립과 동시에 자원봉사를 시작한 남동완(39)씨는 이번 소원성취의 일등공신이다.

“스튜디오를 운영하는 선배에게 스튜디오를 빌려달라고 부탁드렸는데, 그분이 모든 인맥을 총동원해 작곡가, 기타리스트 등 음악·공연계 사람들을 모아주셨어요. 다들 쟁쟁한 분들인데, 얘기를 듣더니 흔쾌히 도와주셨죠. 이렇게 여러 사람들의 힘과 마음이 모여 소원이 이루어지는 것 같아요.”

“전 그냥 몸 쓰는 일만 했다”며 부끄러워하는 마유미(26)씨는 녹음, 재킷 촬영 등 민지의 중요한 날들에 항상 함께했다. 공연 당일에도 이른 시간부터 밴을 빌리고 민지의 의상과 헤어·메이크업을 챙기는 등, 보이지 않는 수고가 컸다. 결코 적지 않아 보이는 수고에 “힘들지 않았느냐”고 물으니 오히려 “기적을 만드는 일인데 이 정도쯤은 별거 아니라”며 밝게 웃는다. 준비 기간 내내 연습실도 제공하고 보컬 트레이닝도 도맡은 작곡가 성씨 역시 “피곤하기는커녕, 음악 인생 중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고 고백하면서 “녹음 작업에 참여한 10여명의 스태프, 세션들에 대한 고마움”도 잊지 않았다.

지난 한 해, 이처럼 아이들의 소원성취를 도우며 오히려 기쁨과 보람을 얻은 자원봉사자들은 1320명. 이들의 땀과 헌신으로 소원을 이룬 아이들은 306명에 이른다. 한국메이크어위시재단의 이광재(39) 팀장은 “소원성취는 아이들에게 깊은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친구가 되어주는 한편, 인생의 전환점을 제공하는 것”이라며 소원성취의 의의를 설명했다.

“아이들을 만나보면 대부분 장기 투병생활에 지쳐 있는데다 특히 ‘가족의 경제적 어려움 등이 자신의 병 때문’이라는 죄책감을 갖고 있는 경우도 많아서 안타까울 때가 많습니다. 그런 아이들의 친구가 되어 마음속 깊은 이야기들을 나누고 간절한 소원을 이루어주는 것에는, 소원성취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환아 및 가족에게 실질적으로 병과 싸워 이겨낼 수 있는 용기와 희망을 선물함으로써 인생의 전환점을 선물하는 것이죠.”

민지의 쇼케이스에 함께하지 못했다고 속상할 필요는 없다. 인터넷 음원 사이트인 벅스와 야후코리아를 통해 이달 말, 민지의 신곡을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음원 수익금은 전액 한국메이크어위시재단에 기부되니, 난치병 어린이들의 소원성취에 작게나마 힘을 보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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