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30일(화)

‘과학의 대중화’ 기치걸고 나선 소년들…카오스재단 김남식 사무국장 인터뷰

“저랑 이기형 이사장, 그리고 카오스재단 식구 몇이 모여 공부하는 모임을 ‘과학소년단’이라고 부릅니다. 스스로를 소년이라 하는 것은 조금 부끄럽지요? (웃음) 사실 모임의 좌장인 김성근 서울대 화학부 교수(카오스재단 과학위원회 위원장)께서 ‘나이는 중년인데, 과학에 대한 호기심이 꼭 소년같다’며 지어준 이름입니다.” (김남식 카오스재단 사무국장)

불혹을 넘긴 나이가 과학에 대한 열정을 꺾지는 못했다. 지난 2014년 카오스재단을 설립한 이기형 인터파크홀딩스 회장의 이야기다. 카오스재단은 ‘과학의 대중화‘라는 독특한 목표 위에 세워졌다. 참여 인원의 면면도 화려하다. 국민의당 오세정 의원을 필두로 허원기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김성근 서울대 화학부 교수 등 과학자가 이사회로 활동 중이고 고계원 고등과학원 수학과 교수, 송호근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노정혜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 이현숙 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부 교수 등이 과학위원회에 소속돼있다.

서울대 82학번 동기들이 뭉친 설립 일화부터, 과학의 대중화를 향한 재단의 항로설정까지. 카오스재단의 숨겨진 이야기를 듣기 위해 블루스퀘어 카오스재단 사무국에서 김남식 사무국장을 만났다.


 

-재단을 설립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2012년 여름 서울대 자연2계열 출신의 82학번 4명이 김민형 교수의 한국인 최초 옥스퍼드 정교수 취임을 축하하며 뭉쳤다. 과학도들끼리 뭉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김 교수가 ‘평소 우리나라의 과학발전을 위해 대중과 만나고 싶었다’는 말을 꺼냈다. 그런데 그 주제가 나랑 이기형 이사장이 만날 때 마다 하던 이야기였다. ‘과학의 대중화’. 마음 맞는 친구들이 뭉친데다 수학계 거물인 박형주 교수까지 있으니 진짜로 일을 벌일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떻게 하면 많은 대중이 과학과 친숙하게 만날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가 과학콘서트를 해보자는 아이디어가 나왔고 바로 그해 11월에 첫 과학 콘서트를 열었다. 카오스 재단의 시작이다.”

-처음부터 재단 설립을 염두에 두진 않은 것 같은데.
“재단설립은 절차도 까다롭고, 신경 써야 할 부분도 적지 않다. ‘재미있는 일을 해보자’고 했지, 처음부터 재단설립 같은 거창한 목표를 세운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한두 번 하다 보니 지속가능성을 고민하게 됐다. 과학의 대중화를 목표로 하다 보니 박물관, 대학교, 진흥원 등 다양한 기관과의 파트너십이 중요한데, 그러려면 조직체를 갖춰야 여러모로 일하기도 편했다.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사업이 아니고, 우리들끼리 개인적으로 하는 일이다보니 비영리적 성격을 띠어야 했는데, 이 이사장의 기부금 출연 등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재단을 설립한 후, 이 회장이 평소 그리던 ‘좋은 기초과학 서적을 공유한다’는 계획도 북카페 설립으로 실현할 수 있었다. 우리끼리 술 마시며 나누던 꿈이 하나씩 이뤄져 가는 과정이 신기하다.”

-이기형 이사장은 어떤 식으로 재단 일에 참여하나?
“우선 대부분의 행사에 참석한다. 또 재단의 출연자지만, 형식적 기부에서 그치지 않고 실제로 재단의 콘텐츠에 참여하고 있다. 대학에서 기초과학을 전공한 사람으로서 ‘생명의 기원’ 강연에도 직접 선 바 있다. 과학에 대한 열의가 대단해서 한 달에 한 번, 재단 내 과학스터디 모임을 만들어 참석하고 있다. 지금 위원장인 김성근 교수가 좌장으로 우리끼리는 ‘과학소년단’이라고 부른다. 이 이사장과 나를 비롯해 자연과학에서 중도 하차한 중년들이 배움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는 모임이다. 스터디 형식은 간단하다. 이번 달 주제가 ‘엔트로피(entropy·무질서를 나타내는 물리량)’라면, 각자 관련 서적을 쭉 읽고 공부해온 뒤 2~3시간씩 질의응답을 하는 형식이다. 지금 우리하고 있는 이 스터디 모임을 향후 카오스재단의 정식 프로그램으로 확장 시키고자 하는 욕심이 있다. 대중을 상대로 한 콘텐츠 배포 의지가 강하고 아이디어도 많아서, 네이버TV캐스트나 e북처럼 새로운 시도도 많이 하고 있다.”

카오스재단_인터파크_기업오너_제7회(150826) 카오스콘서트 이기형이사장님 '샘영의 기원' 강연모습
이기형 카오스재단 이사장이 카오스콘서트에서 강연하고 있다. /카오스재단 제공

카오스재단은 기업의 회장이 설립한 재단으로서는 매우 이례적으로 개인 기부자(카오스프렌즈)를 공개 모집하고 있다. 일반적인 기업재단이 아예 공개 기부금을 받지 않거나 형식적으로 기부 창구를 열어놓는 수준에 그치는 것과 차이를 보인다. 이는 카오스재단이 목표로 하는 과학의 ‘대중화’와도 일맥상통한다. 사회의 특정계층이 아닌 대중 전체를 상대로 하는 강연을 진행하다보니, 자연스레 ‘회원’과 ‘로열티’의 개념이 생겨난 것이다.

카오스프렌즈 대부분이 재단에서 열리는 과학 강연을 직접 듣고 간 수강생들이다. 강의를 수강한 적이 없는 젊은 엄마가 ‘내 아이가 사회인이 되어서도, 질 높은 과학 강연을 계속해서 접할 수 있길 바란다’며 카오스프렌즈로 가입한 경우도 있다. 기부금은 대부분 일시 후원 형태로 1~5만원 사이에서 모금된다. 아직 많은 수는 아니지만, 카오스재단에는 그 무엇보다 값진 원동력이 되고 있다.

-특이하게 개인 기부를 받고 있다. ‘카오스프렌즈’는 어떻게 시작된 아이디어인가.
“9월 현재 약 40여명의 카오스프렌즈가 활동 중이다. 소액이지만, 모두 우리의 뜻에 동참하는 순수기부자로 구성돼있다. 우리 역시 돈보다는 기부를 하려는 그 마음을 받고자 했다. 카오스 재단은 대중을 상대로 오픈 강연과 콘서트를 진행하기 때문에 사석(死席)이 많이 생기면 안 된다. 로열티(충성도) 높은 회원이 필요한 이유다. 이기형 회장을 필두로 재단에서 보유한 사회적 자원(핵심 네트워킹 인물)도 염두에 두고 있다. 사회 전반에 메시지를 줄 수 있는 오피니언 리더가 과학의 대중화라는 우리의 미션에 공감하면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을까라는 기대다.”

카오스재단_이기형_인터파크_제9회 카오스콘서트 강극(LECTURE DRAMA)  뇌안에 너 2
카오스콘서트는 과학 강연을 연극으로 풀어내는 ‘강극’으로 재미와 정보를 동시에 추구했다. /카오스재단 제공

-카오스 재단 강연의 특징은 무엇인가.
“대중에게 재미있고 친숙하게 메시지를 전달하지 못하는 석학들이 많지 않다. 그래서 우리는 강연과 연극이 섞인 강극 형태를 도입했다. 윌터 르윈 교수에게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르윈 교수의 진자운동 강연을 보면, 머리만한 진자추를 이용해 그네를 타고, 얼굴에 덮은 보호막을 깨는 등 재미있는 과학실험을 동반한다. 영상을 보다말고 기립박수를 쳤다. 과학의 대중화를 지향하는 우리에게 갈급한 강연이다. 하지만 본업이 학자인 사람들에게 그런 퍼포먼스를 요청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우리가 만들었다고 보면 된다. 강의지만 대본 만들고 리허설도 한다. 관객 만족도는 매우 높다. 강연 내용 자체는 수준 높은데, 재미있다고들 한다. 강의를 80% 이상 수료하면 서울대 자연과학대학 시민과학센터와 카오스재단에서 발행하는 수료증을 받을 수 있다.”

-재미에 집중하는 이유는 뭔가.
“삶 속에서 과학에 흥미를 갖고, 과학을 쉽게 접할 수 있는 기회는 13살 전에 끝난다. 그 이후에는 사실상 전문가 교육이다. 생각해보라. 유아와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아이들이 즐길 수 있는 과학 뮤지컬이나 전시장은 꽤 있다. 어른이 되고나면 과학에 대한 욕구는 풀 곳이 없는 셈이다. 그래서 우리는 성인을 대상으로 좀 더 재미있고, 쉽게 과학에 대한 접점을 늘리는 데 주목하고 있다. 실제로 카오스재단 강연은 우리나라에선 얼마 없는, 어쩌면 거의 유일한 성인대상 과학 강연일 것이다.”

카오스재단_이기형_인터파크_2016 봄 뇌 수료식 사진- 10회 중 8회 이상 참석자 114명

-국내외 주요 파트너십이 궁금하다. 그리고 있는 방향이 있는지?
“올해로 2년째, 서울대 시민과학센터 자연과학대학과 MOU를 맺고 서울대에서 진행하는 대중과학 강연을 기획하고 있다. 네이버와 YTN은 강연을 좀 더 널리 퍼뜨리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 향후에는 중국과의 파트너십을 강화할 계획이다. 현재 청화대학과 함께 중국에서 진행하는 과학강연을 긍정적으로 논의 중이다. 오세정 전 과학위원회위원장이 일본의 관련 포럼에서 카오스재단 사례를 발표했는데, 그 때 보고 인상 깊었다며 먼저 제안을 해온 상태다. 과학이야 말로 국경의 한계 극복할 수 있는 콘텐츠라고 생각한다. 중국의 석학들과 국제적 공조가 이뤄지길 바란다.”

-최근 카오스재단의 가장 큰 변화는 무엇인가.
“그 동안은 인터파크홀딩스 안의 공간을 빌려 사무실로 썼는데, 최근 강의가 열리는 블루스퀘어로 사무국을 아예 이전했다. 2~3층에는 과학 도서를 집중적으로 구비한 북카페 ‘북파크’를 개장했다. 도서관이나 서점의 과학 관련 서적 코너를 제외하면, 이 정도 수준의 과학 도서를 집중 구비한 공간으로는 아마 국내 최초가 아닐까 싶다. 북카페 한 켠에는 보다 소규모의 과학 강연을 열 수 있는 공간도 마련했다. 국내외 유명 석학들과 아주 가깝게 만나는 자리가 자주 열릴 예정이다.”

카오스재단_이기형_인터파크_임시오픈 당시 북파크 전경1
카오스재단에서 운영 중인 과학도서 전문 공간 ‘북파크’의 모습. /카오스재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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