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9일(월)

“발달장애 자녀를 둔 모든 부모의 마음으로”…사회적기업 지드림 김희경 대표

지통제조업체 ‘지드림(G-DREAM)’ 김희경 대표 인터뷰

“혹시 제가 죽더라도 우리 아들이 혼자서 할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들어주고 싶었어요. 장애가 있는 아이를 가진 모든 부모의 마음이죠.”

2011년 남양주에 세워진 사회적기업 지드림(G-DREAM). 창업자인 김희경(59) 대표는 10년 넘게 운영하던 보청기 판매업체를 정리하고, 난생처음 지통(紙筒∙원통 모양의 종이상자)공장을 인수해 사회적기업을 세웠다. 10명의 직원 중 2명은 중증 발달장애인, 6명은 55세 이상의 고령자로 구성됐다. 주요상품은 건강식품과 화장품을 담는 종이상자로 근로자의 80%이상이 취약계층이지만 사업을 시작한지 4년 만에 12억원의 매출을 달성했다.

지드림_김희경대표_장애인고용_사회적기업_발달장애_대표왼쪽_2016
 대표가 50을 훌쩍 넘긴 나이에 완전히 새로운 사업을 시작한 이유는 큰아들 정우(가명∙36)씨 때문이다. 1급 발달장애를 갖고 있는 정우씨는 일어나서 잠이 들 때까지 엄마의 손길을 요구했다. 정우씨가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상황은 더욱 악화됐다. 가정을 제외하고는 더 이상 갈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원래라면 정우씨가 학교에 있었을 시간까지 포함해, 김 대표는 하루 24시간을 꼼짝없이 큰아들에게 쏟아야만 했다. 사회성을 기를만한 창구가 완전히 막혀버린 정우씨의 상태는 점점 심각해져갔고, 가족 구성원 모두가 과도한 스트레스로 괴로워했다. 견디기 힘든 고통의 시간이었다.

“아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성인이 됐는데,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었어요. 정우가 하루종일 집에 있게 되면서 제 모든 생활에 브레이크가 걸렸죠. 발달장애 자녀를 돌보는 것은 엄청난 체력과 인내가 필요해요. 나이가 들면서 점점 아들이 ‘버겁다’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부모인 저도 돌볼 수 없는 아이를, 둘째에게 맡길 수는 없잖아요. 제가 책임지지 못하면 결국 거주시설로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죠. 그건 원치 않았어요.”

‘정우가 홀로설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김 대표는 큰아들의 고등학교 졸업 이후 무려 10년 동안이나 발달장애인을 위한 평생 교육 프로그램을 찾아다녔다. 하지만 그 어느 곳도 시름을 덜어주지는 못했다. 성인이 된 장애인들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은 워낙 수가 적은데다, 등록하기 위한 기준도 높았기 때문. 1급의 중증 발달장애를 갖고 있는 정우씨가 넘기에는 너무 높은 문턱이었다.

대표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준 건 정우씨를 초등학교 때부터 지켜봐온 선생님이었다. 남양주 시내 장애인 특수학교의 교장으로 부임한 선생님과 머리를 맞대고 고민한 끝에 ‘사회적 기업’이라는 키워드를 찾은 것이다. 때마침 교장선생님의 지인이 지통 공장을 내놨다는 소식을 듣고 ‘혹시’ 하는 마음으로 견학에 나섰다. 작업 과정을 지켜보며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우리 아들도 이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희망이었다. 8시간 동안 앉아서 똑같은 일을 반복하는 기존 장애인보호작업장과 달리, 제조 과정이 활동적이라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김 대표는 그 길로 가족들에게 ‘창업선언’을 했다.

지드림_김희경대표_장애인고용_사회적기업_발달장애_산학협력2016

“지통 공장을 사서 사회적기업을 만들겠다고 하니까 남편은 ‘생각도 하지 말라’며 극구 반대했어요. 하지만 밀어붙였죠. ‘내가 (우리 아들을 위해) 이 정도는 투자했다 실패해도 후회하지 않는다’는 마음가짐이 있었거든요. 둘째아들한테도 ‘엄마는 이제 형(정우)만을 위한 삶을 살겠다’고 말했죠. 제가 지드림을 시작하고, 아무리 힘들어도 ‘힘들다’ 소리를 안 하는 이유예요(웃음).”

◇더 많은 기회 줄 수 있도록… 보호작업장 만드는 것이 꿈

지드림을 설립한 후, 김 대표는 가장 먼저 지역의 공립 장애인 특수학교인 경은학교와 산학협력을 맺었다. 직업 재활 교육을 받아도 실습처를 구하지 못해 발을 구르는 장애인 아이들을 위해서다. 지드림은 2011년부터 매년 최소 4명 이상의 학생들에게 현장 실습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지난해부터는 인근 장애인 표준작업장의 유휴 인력을 불러다 단기 채용하는 파견 근무도 받기 시작했다.

아들 정우씨를 제외하고, 중증 발달장애인 장애인 직원도 두 명 채용했다. 발달장애인의 특성을 누구보다 깊이 이해하고 있기에, 분업 공정 하나까지 직접 조율에 나섰다. 장애인 직원이 분업 과정에 적응 하지 못하면 기계를 따로 제공해 혼자 일할 수 있는 환경까지 만들어줬다. 종이를 자르는 수동식 기계에 손이 다칠까봐, 자동기계를 들이기도 했다. 대신 근무 태도에 있어서만큼은 엄격한 자세를 유지했다.

“장애인이니까 게으름을 피우거나 투정을 부려도 봐줘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발달장애인에게 직장생활은 사회성을 기르는 교육 과정이에요. 다른 사람과 어울려 살고, 혹시 직장을 옮기게 됐을 때 다른 사업장에서도 인정을 받으려면 지켜야 하는 원칙이 있다는 걸 배워야 하는 거죠. 예전에 저희 공장에 있던 친구가 맡은 일을 계속 미룬 적이 있었어요. 제가 직접 옆에서 일하는 과정을 지켜봤죠. 투정을 부리면 ‘집에 가라’고 단호하게 이야기 했어요. 처음엔 느슨하게 굴다가 점점 ‘안 가겠다’며 버티고, 나중에는 태도도 점점 좋아졌죠.”

지드림_김희경대표_장애인고용_사회적기업_발달장애_2016

장애인 직원과 비장애인 직원이 함께 일을 하다 보니 갈등상황도 발생했다. “일의 효율이 다른데, 어째서 장애인 직원이 우리와 같은 시간동안 일하고 같은 임금을 받느냐”며 항의를 하는 직원도 있었다. 김 대표가 선택한 해결방법은 ‘교육’이다. 나머지 8명의 비장애인 직원이 장애인 직원의 특성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한 달에 한 번, 경기북부장애인가족지원센터의 선생님들을 초청해 장애이해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현재는 모든 직원의 근속년수가 2년 이상으로 유지되면서, 어느 정도 안정기에 접어든 상태다.

“엄마가 아니었다면 못 했을 일이죠. 엄마라서 시작했고, 지금은 책임감으로 이어가고 있어요. 아무리 장애 정도가 심한 아이더라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하나라도 있구나’ 라는 걸 깨닫게 해주는 게 엄마의 도리라고 생각해요.”

김 대표의 다음 목표는 장애인보호작업장을 만드는 것이다. 장애인보호작업장은 전체 근로자의 70% 이상을 장애인으로 고용하는 직업훈련기관이다. 이 중 80% 이상은 중증장애인으로 고용해야 한다. 장애인의 직업 훈련과 자활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에 장애인에게 더 많은 일자리를 제공할 수 있다. 현재 남양주 내에 있는 장애인보호작업장은 4개뿐. 학교를 마치고 오갈 데 없는 장애인들을 위해 마음 편히 일할 곳을 더 많이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김 대표의 생각이다.

“지드림의 매출이 어느 정도 안정되면, 장애인 보호작업장을 만들고 싶어요. 최근 지통 사업이 잘 되고 있으니 머지않아 꿈을 이룰 수 있을 것 같아요. 장애 아이를 둔 모든 가정의 목표는 자녀의 독립에 있어요. 지드림이 그를 도와주는 하나의 발판이 되고 싶어요. 부모들의 걱정을 조금이라도 덜 수 있다면 좋겠어요.”

김진희 더나은미래 청년기자 (청세담 5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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