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8일(수)

[필리핀 컴패션 취재_백이선 후원자] “故 스완슨 목사님이 그랬던 것처럼 후원 아이들 모두 손자·손녀처럼”

한국전쟁으로 부모·형제 잃었지만 스완슨 목사 도움으로 대학까지 마쳐
후원금 외에 생일잔치·건강검진 등 “내가 받은 사랑만큼 갚아나갈 것”

세부시 남쪽 ‘로레가 성 미구엘 공동묘지’에 자리 잡은 무덤마을. 이곳에는 1만3000여명의 도시 빈민이 살고 있다. 1970년대, 집도 돈도 없는 가난한 사람들이 공동묘지 내 비석과 비석 사이에 판자를 대고 함석을 얹어 집을 지은 것이 마을의 시작이다.

우리에게 리조트로 유명한 세부지만, 리조트에서 불과 20~30분 너머의 현실은 처참했다. 집들과 비석들이 한데 뒤엉킨 곳. 마약과 범죄, 매춘, 아동학대가 들끓는 무덤마을. 지난 11일 백이선(70) 후원자는 필리핀 ‘손자’ 리오넬(10)을 만나기 위해 그곳을 찾았다. 덥고 습한 날씨지만, 손자를 위한 선물로 가득한 여행가방을 손에 꼭 쥔 채 말이다.

컴컴한 골목을 들어서자마자, 불쾌한 냄새와 탁한 공기 탓에 저절로 기자의 손이 코로 갔다. 하지만 백 후원자는 가슴을 꾹 눌렀다. 60년 전 어린 시절이 불쑥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한국전쟁 중, 한국을 방문했던 에버랫 스완슨 목사는 밤새 굶주림과 추위로 죽어가는 전쟁고아들을 보고 미국에 돌아가 컴패션을 세웠다. 보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행동한 사랑, 그 사랑이 이제는‘돕는 나라’한국의 후원자들을 통해 세계로 흘러가고 있다.
한국전쟁 중, 한국을 방문했던 에버랫 스완슨 목사는 밤새 굶주림과 추위로 죽어가는 전쟁고아들을 보고 미국에 돌아가 컴패션을 세웠다. 보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행동한 사랑, 그 사랑이 이제는‘돕는 나라’한국의 후원자들을 통해 세계로 흘러가고 있다.

한국전쟁 당시 그는 부모와 형제·자매를 모두 잃었다. “부모님과 형제를 어떻게 잃었는지도 기억이 잘 안 나요. 얼굴도 전혀 기억나지 않죠. 가족도 없고 집도 없으니, 하수구로 흘러내려 가는 수제비나 밥풀 찌꺼기를 주워 먹고, 길에서 잠자고…. 그렇게 살았죠.” 전쟁은 그에게서 모든 것을 앗아갔다.

거리를 배회하던 그는 마산애육원에 가서야 몸을 뉠 곳을 찾았다. 강냉이 죽일지언정 먹을 것도 생겼다. 낮에는 고아원 옆 작은 밭에서 일하고 밤에는 야간학교를 다니며 공부를 했다. 가냘픈 희망의 빛이 보이기 시작하던 즈음, 그에게 꿈 같은 기회가 찾아왔다. 1952년 한국의 전쟁고아들을 돕기 위해 ‘컴패션’을 설립한 고(故) 에버랫 스완슨 목사를 만난 것이다. 컴패션은 전 세계 26개국 가난한 가정의 어린이를 후원자와 1대1로 결연해 영적, 지적, 사회정서적, 신체적 양육을 통해 ‘전인적 어린이 양육’을 꾀하는 국제 어린이 양육기구다.

“고아원 원장님 추천으로 후원어린이가 되었죠. 너무 감사하고 좋았습니다. 아버지가 생겼으니까요. 처음 만난 스완슨 목사님은 머리에 갓을 쓰고 흰색 도포 차림이었어요. 저를 보자마자 달려와 ‘너는 내 아들’이라고 말씀하시면서 꼭 안아주셨어요.” 후원을 받지 않았다면 이미 세상을 떠났거나 교도소에 있었을 거라는 백 후원자의 눈이 촉촉해졌다.

후원자 스완슨 목사의 도움으로 대학 공부까지 마칠 수 있었던 그는 졸업 후 컴패션에서 어린이 양육 사업에, 컴패션 철수 후에는 노인양로사업에 몸을 담았다. 항상 누군가를 돕는 일을 했건만, 사랑의 빚을 갚고 싶은 마음은 여전했다. 그러던 지난 2006년, 한국컴패션을 통해 어린이 후원을 시작했다. 더이상 도움받을 것이 없어 철수했던 컴패션이, ‘도움을 주는’한국컴패션으로 변신해 한국에 다시 만들어진 후 재회한 셈이다. “아직도 갚을 빚이 많다”는 백 후원자는 현재 필리핀과 케냐 어린이 1명씩을 후원한다.

리오넬은 모처럼 한국 할아버지가 사준 점심인데도 가족 생각에 절반도 채 먹지 못했 다. 남은 음식을 싸들고 집에 가는 아이 때문에 백이선 후원자는 이날 몇 번을 울었다. 자신도 못 챙기는 아이를 대신 챙겨주는 후원자가 고마워 엄마 마리추(27)씨도 울었다.
리오넬은 모처럼 한국 할아버지가 사준 점심인데도 가족 생각에 절반도 채 먹지 못했 다. 남은 음식을 싸들고 집에 가는 아이 때문에 백이선 후원자는 이날 몇 번을 울었다. 자신도 못 챙기는 아이를 대신 챙겨주는 후원자가 고마워 엄마 마리추(27)씨도 울었다.

“저는 제 후원 아이들을 손자 손녀라고 생각해요. 아이들도 저를 할아버지라고 부르고요. 이번에 손자를 만날 생각을 하니 얼마나 흥분되는지 모릅니다. 이것저것 선물을 챙기다 보니 이렇게 가방 하나가 됐지 뭡니까. 학용품이랑 옷가지랑 스케치북이랑 챙겼는데, 노인네가 고른 거라 좋아할지 걱정이네요. 허허.”

드디어 리오넬의 집에 다다랐다. 리오넬은 할아버지, 남동생과 함께 산다. 마약 중독인 어머니의 학대 때문에 할아버지가 데려왔다. 예전엔 거리에 나가 구걸하거나 쓰레기를 주워와야 했지만, 지금은 할아버지의 보호, 그리고 한국 할아버지의 후원으로 삶이 달라졌다. 컴패션 어린이양육센터가 후원금을 통해 학비를 내 줄 뿐만 아니라, 학용품, 교복, 신발 등도 마련해줬기 때문이다. 건강 검진도 처음 받아보고, 생일 케이크와 잔치도 처음 받아보았다. 이처럼 컴패션을 통해 기쁨을 되찾고 희망을 품게 된 아이들은 필리핀에만 5만명이 넘는다. 필리핀 전역의 320개 어린이양육센터에서 매일 꿈을 키워나간다.

처음 만난 한국 할아버지가 아직은 낯설고 어색한 리오넬이 아무 말 없이 사진을 하나 꺼내 전했다. 여자아이 둘이 밝게 웃는 사진을 받아 든 백 후원자가 입을 열었다. “이게 미국에 있는 내 손녀들 사진이에요. 가족사진 보내달라고 해서, 손녀들 사진을 보내줬거든요. 그러면서 너도 내 손자라고 얘기해 줬고요. 그런데 이걸 이렇게 간직하고 있었네.”

촉촉한 눈으로 좋아하는 할아버지를 보더니, 리오넬이 씨익 웃으면서 봉투를 꺼내 편지들을 늘어놓았다. 너무 작아서 어른 몇 명이 채 들어가지도 못하고 허리도 펴고 설 수 없는 그 작은 집, 더러운 옷가지들과 부엌살림이 뒤섞여서 구석구석 쌓여 있는 집 한켠에서 깨끗한 봉투 안에 보관한 편지와 사진들이었다. 소년에겐 꽤 소중한 보물이었나 보다.

범죄와 마약이 들끓는 ‘로레가 무덤마을’. 필리핀 컴패션은 이곳에서 350명의 어린이를 양육하며 새로운 희망을 싹틔우고 있다.
범죄와 마약이 들끓는 ‘로레가 무덤마을’. 필리핀 컴패션은 이곳에서 350명의 어린이를 양육하며 새로운 희망을 싹틔우고 있다.

헤어져야 하는 시간, 한 품에 쏙 들어오는 작은 리오넬을 품에 안고 “내 아들이고 손자”라며 몇 번을 말하던 백 후원자는 이제야 자신의 후원자의 마음을 좀 더 알 거 같다고 고백했다. “제 아버지, 스완슨 목사님이 이런 마음이었겠죠? 제가 이런 사랑을 받았네요. 이제는 받은 사랑을 갚아 나가야죠.”

자신처럼 후원아동이었지만 이제는 다른 사람을 돕는 사람으로 성장한 한국 할아버지에게서 희망을 발견한 리오넬은 “의사가 되어 다른 사람들을 돕고 싶다”며 수줍게 고백했다. 리오넬이 훌륭한 의사 선생님이 되어, 또 누군가에게 사랑의 빚을 갚는 그날이 어서 오기를 함께 꿈꿔 본다.

※착한카드 캠페인 참여(good.chosun.com) 및 한국컴패션 1:1 결연(www.compassion.or.kr, 02-3668-3400)을 통해 가난으로 고통받는 어린이들에게 꿈을 선물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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