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8일(일)

“나의 상처 드러내니 아이들과 소통 더 쉬워졌죠”

휴넷에 재능기부하는 정린 대표

“스무 살까지만 살 거라고 말하는 아이에게 눈을 맞추고 ‘6년씩이나 더 살려고? 진짜 죽으려고 해본 적은 있니?’라고 되물어요. 그러면 아이가 좀 누그러져서 제 말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하죠”

지난 11일 서울시 구로구에 있는 휴넷 사무실에서 만난 정린커뮤니케이션 정린(44) 대표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웃으면서 말했다. 정린 대표는 직장인 경영교육 전문업체인 휴넷에서 주니어성공스쿨 강의를 맡고 있다. 지금 진행 중인 강의는 휴넷 근처에 있는 ‘파랑새 지역아동센터’에 다니는 저소득층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한다.

미상_사진_사회공헌_정린_2011휴넷이 사회공헌 사업으로 매출액의 3%만큼 소외계층에게 강의를 기부하는 ‘오렌지 프로젝트’를 하는데, 정린 대표는 이 프로젝트에 동참해 ‘재능기부’를 하고 있다. 정린 대표는 “아이들의 본심은 자신을 표현하고 싶은 것이기 때문에, 내가 아이들 편에 서 있다는 것을 느끼면 아이들이 스스로 변한다”며 “강의가 끝나면 모든 아이들이 나와 포옹을 하고 가는 것이 원칙인데 내가 우리 아이들에게 관심이 있고 사랑한다는 것을 느끼고 갔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정린 대표가 아이들에게 잘 공감할 수 있는 것은 어렸을 적 받았던 상처들 덕분이다. 한국전쟁에 참전해 고문관 역할을 했던 정린 대표의 아버지는 어렸을 적부터 어머니와 세 오빠를 때렸다. 아버지가 받은 전쟁의 상처를 가족 모두가 떠안은 셈이다. 어린 정린 대표가 할 수 있는 일은 이불을 뒤집어쓰고 울면서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교회에 가서 아버지를 얼른 데려가 달라고 기도하는 일밖에 없었다.

이러한 경험들은 상처받은 아이들과 공감대를 넓힐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정린 대표는 “매주 만나서 상담을 해주던 아이가 두 달이 지나서 폭행을 당했던 이야기를 하며 눈물을 흘린 적이 있었는데 나도 내 경험을 얘기하면서 스스로를 소중히 생각하라고 위로를 해줬다”고 했다. “내 경험을 숨기기만 할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나니, 아이들과 더 잘 소통할 수 있게 됐어요. 그 이후로는 아이들과 만날 때 제 이야기부터 시작합니다.”

정린 대표는 자신의 장점으로 ‘두려움이 없다’는 것을 꼽았다. 어려운 형편에서 자란 그녀는 대학 졸업 후 무작정 서울로 와서 출장 책 장사를 시작했다. 한 달에 하나씩 구두굽을 갈 정도로 열심히 돌아다니면서 ‘타임지’를 팔았다. 돈을 많이 버는 것이 지상 최대 목표였기 때문에 책 장사 외에도 레스토랑, 약국, 식당 일, 에어로빅 강사, 성우 등 할 수 있는 일을 닥치는 대로 했다. 집도 없이 사무실에서 자면서 일해서 돈을 꽤 모았을 때 즈음, 그 돈으로 나이 서른에 외국 유학을 떠났다.

“모임에서 만난 사람들이 외국에서 본 뮤지컬 얘기를 영어로 하는 것을 보고, 돈은 기본이고 문화를 공유하고 새로운 환경을 접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6개월 영어학원비만 마련해 떠난 캐나다에서 4년간 공부하면서 그녀는 사람들과 소통하고 아버지를 용서하고 스스로를 이해하는 법을 배워서 돌아왔다. 이때 쌓은 자산은 지금 하는 강의의 기반이 됐다.

“비빌 언덕이 없다 보니 새로운 일을 할 때 두려움 없이 강해지고 작은 것에도 감사하게 됐어요. 그래서 부모교육을 할 때 아이들에게 부족한 삶을 선물하라고 항상 조언합니다.”

다양한 삶의 변곡점을 강의의 재료로 소화한 정린 대표를 만난 후 지역아동센터 아이들도 변화했다. ‘꿈 없어요, 원래 그래요, 내버려두세요’를 연발하던 아이들이 이제는 ‘가수가 되고 싶고 유치원 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말하게 됐다. 표정도 한결 밝아졌다.

정린 대표는 “이 아이들과 지내면서 내가 가진 게 많다는 것을 느끼게 되어 내가 오히려 아이들에게 고맙다”며 “아직도 집은 월세로 살지만, 시골에서 자란 내가 넓은 세상을 보고 내가 가진 재능을 다른 사람들과 나눌 수도 있게 됐다는 것이 바로 행복 아니겠느냐”며 활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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