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3일(금)

기부 선진국 英 비결… 정부와 NPO 협력에 있었다

 [Cover Story] 英 민관 협력 현장을 가다 (上)

 자선단체·사회적기업 등에 영국 국민 절반이 활동 중
 비영리단체 등 통합 지원하는 ‘제3섹터청’ 2006년 설립
 기부 활성화 제도 만들고 관련 법안 개선 주도 역할

한국에서 비영리단체, 사회적기업 등 ‘제3섹터’는 정부로부터 홀대받는 영역이다. 행자부·외교부·복지부 등 부처별로 허가를 받아야만 비영리단체를 설립할 수 있고, 제3섹터를 전담하는 부처가 없어 세부 업무별로 권한과 책임이 쪼개져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관련 예산과 정책도 들쭉날쭉이다. 기부 선진국으로 꼽히는 영국은 어떨까. 영국의 자선단체는 총 17만개. 19만5000개의 사회적기업까지 합하면 제3섹터에 고용된 직원 수는 2382만명으로, 영국 국민의 절반(3100만명)이 관련 분야에서 활동한다. 제3섹터 전체 자산 규모는 약 318조원으로, 올해 한국 정부 예산(387조원과) 맞먹을 정도다. 이에 영국은 2006년 내각부 안에 자선단체·사회적기업·기업의 사회공헌·공익재단·자원봉사단체 등을 통합 지원하는 ‘제3섹터청(이하 OCS·The Office of Civil Society)’을 설립해 파트너십을 강화하고 있다. 제3섹터와 금융을 연결하는 기관을 설립하거나, 각 자치구가 협력해 사회문제를 해결하기도 한다. 지난 5월 말 서울시NPO지원센터와 동행한 ‘민관협력 및 시민사회 지원시스템’ 연수 프로그램을 통해, 영국 정부와 제3섹터간 최신 동향을 전한다.   편집자  

혼자 힘으론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영국은 정부, 제3섹터, 주민들이 소통하며 함께 사회 문제를 발굴하고 해결해나간다. 런던의 가장 낙후된 지역으로 꼽히는 타워햄릿 자치구는 아홉 달 동안 모든 가구에 설문을 돌리고 심층 인터뷰를 진행해, 통합 도서관 ‘아이디어 스토어(Idea Store)’를 건립했다. 이곳은 직업 훈련, 보건 교육, 심리 상담 등 복합 공간으로 활용되며 런던 최고의 관광 명소로 자리매김했다. / 타워햄릿 자치구 제공
혼자 힘으론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영국은 정부, 제3섹터, 주민들이 소통하며 함께 사회 문제를 발굴하고 해결해나간다. 런던의 가장 낙후된 지역으로 꼽히는 타워햄릿 자치구는 아홉 달 동안 모든 가구에 설문을 돌리고 심층 인터뷰를 진행해, 통합 도서관 ‘아이디어 스토어(Idea Store)’를 건립했다. 이곳은 직업 훈련, 보건 교육, 심리 상담 등 복합 공간으로 활용되며 런던 최고의 관광 명소로 자리매김했다. / 타워햄릿 자치구 제공

 

“영국은 관대한 나라입니다. 국민의 75%가 한 달에 한 번씩 기부나 자선활동에 참여하고, 매년 ‘기부의 날’엔 1분에 60만 파운드(10억1035만원)씩 모금됩니다. 제3섹터를 지탱하는 힘이죠.”

영국 ‘제3섹터청(OCS)’은 런던시 재정경제부(HM Treasary) 빌딩에 있었다. 샘 지나두(Sam Jinadu) 제3섹터청 정부와이해관계자소통팀(Ministerial and Stakeholder Engagement Team) 담당자는 OCS를 “기부 문화 활성화를 위한 제도와 정책을 만들고 실행하는 곳”으로 소개하면서 “지역 스포츠 프로그램에 기부하면 25% 세금 감면 혜택을 주는 등 다양한 제도가 많다”고 설명했다. 비전에 맞게 부서별 역할도 나뉘어져있다. 제3섹터청은 서로 다른 성격의 기관별 지원 방안을 고민하고 정부와의 소통을 담당하는 섹터 지원(Sector Support)팀, 기업 및 자선단체의 협력을 담당하는 파트너십팀, 지역 활동가들을 양성해 주민들과 사회 문제를 발굴 및 해결하도록 지원하는 소셜액션(Social Action)팀, 사회투자팀, 유스(Youth)팀 등 5개 사업 부서로 구성돼있다. 그는 “현재까지 소셜액션팀이 양성한 6500명의 활동가를 통해 400개 마을에서 10만명의 주민들과 사회문제를 발굴했다다”면서 “정부가 직접 지원하기 보다는 중간지원조직을 통해 지자체 및 지역 단체가 협업하고 역량강화하는 것이 목표”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제3섹터청은 올해 2월, 중간지원조직을 위해 약 340억원 규모로  ‘지역 지속가능 펀드(Local Sustainability Fund)’를 조성했다. 각 기관별로 약 1억1800만원의 역량강화 교육 및 컨설팅 비용이 제공될 예정이다.

◇부처 설립 과정부터 제3섹터와 논의···기부 확산 위한 법제도 개선까지  

영국의 모든 법은 이곳에서 제정된다. 런던 국회의사당 '빅벤'의 모습.
영국의 모든 법은 이곳에서 제정된다. 런던 국회의사당 ‘빅벤’의 모습.

영국의 제3섹터청은 설립 과정부터 화제였다. 영국 노동당 정부가 350개 지자체, 2만5000개의 제3섹터 조직들과 정책 방향성을 함께 논의하면서 시작됐기 때문. 그 결과 영국은 1998년 세계 최초로 정부와 제3섹터간 파트너십 협약인 ‘콤팩트(Compact)’를 체결했고, 2006년엔 자선단체·사회적기업·공동체이익회사(CIC·Community Interest Company)·자원봉사단체 등을 총괄하는 제3섹터청(The Office of Third Sector, OCS의 전신)이 설립됐다. 정부가 시민단체에 4년간 2200억원을 직접 투자할 만큼 적극적이어서, 제3섹터청은 한국 비영리단체들 사이에서 선망의 대상이었다. 2010년 보수당이 집권하면서 예산이 감축되긴 했지만, 제3섹터청은 비영리 생태계 확장을 위한 다양한 지원을 지속해왔다. 대표적인 제도가 바로 ‘사회성과연계채권(이하 SIB)’이다. SIB란 민간투자로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사업을 수행한 후, 성과 목표에 따라 정부가 사업비에 이자를 더해 민간 투자자에게 지급하는 제도다. 이는 2010년 영국을 시작으로 5년 만에 미국·호주·네덜란드 등 11개국 45개 프로젝트로 확대됐고, 지난해 4월 서울시도 그룹홈 내 경계선지능 아동 100명을 대상으로 3년간 교육 사업을 진행한 뒤 대상자의 34% 이상이 정상 범주로 올라오면 투자자에게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SIB를 시작한 바 있다. 영국에선 이를 통해 약 1조원의 투자금이 자선단체와 사회적기업에 지원되면서, SIB가 제3섹터 영역을 확장하는 새로운 사회적 금융 모델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샘 지나두씨는 “교육 환경이 열악한 아동 1300명에게 자존감과 성취감을 주는 교육 SIB를 위해 3년간 325만 파운드를 투자했는데, 그의 5배인 1550만 파운드의 사회적비용을 절감한 성과가 나타났다”면서 “현재 이렇게 제3섹터청에서 진행하는 SIB는 총 32개”라고 설명했다. 

이뿐만 아니다. 제3섹터청의 규제팀(Regulation)은 캐머론 총리에게 직접 조언하며, 자선단체 관련 법안 및 제도를 개선하고 있다. 2006년 기부 및 비영리단체 보호를 위한 2006년 비영리조사위원회(Charity Tribunal)를 설립한 것이 대표 사례다. 세제 혜택이나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얽혀있는 자선 분야의 특성상, 의회의 법 개정을 기다리기엔 해결이 시급한 사안들이 많았기 때문. 비영리조사위원회는 비영리단체 자산 보호나 기부 관련 소송들이 빠르게 조정 및 처리될 수 있는 역할을 10년째 해오고 있다. 자선단체가 미처 파악하지 못한 법규정으로 인해 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관련 가이드라인을 배포해 스스로 보호할 역량을 키워주기도 했다. 특히 올해는 제3섹터청을 중심으로 영국 비영리 관련 법안에 큰 변화가 엿보였다. 2016년부터 비영리 투명성과 윤리를 강조하는 ‘제3섹터 보호와 사회투자법’이 시행됐기 때문. 이는 자선단체 이사의 불법행위가 발견되면 정부가 개입해 인사권을 발동하고, 자선단체가 사회적 투자를 할 수 있도록 법적 권한을 부여한다는 내용의 법률이다. 앞으로 영국의 자선단체 이사들은 지위를 남용해 사익을 추구하거나, 해당 단체를 범죄나 테러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이 엄격히 금지된다. 벤 헤리슨(Ben Harrison) 제3섹터청 규제팀 관계자는 “지난해 기부를 요청하는 단체들로부터 한 달에 수백개의 메일을 받은 한 여성이 압박을 못이겨 자살한 사례가 있었다”고 전했다. 기부자 개인정보를 공유하거나, 훈련받지 못한 모금가들이 대중을 상대로 기부를 강요하는 사례가 꾸준히 발생하고 있는 것. 그는 “자선단체를 악용해 테러자금을 확보하거나 1억7000만 파운드에 달하는 조세를 회피한 이사들도 있었다”면서 “제3섹터의 생태계 조성과 윤리의식을 함께 높이는 제도를 항상 고민 중이다”고 덧붙였다.  

◇자치구가 함께 사각지대 해소···주민과 직접 지역 도서관 문제 해결도

영국 런던엔 32개 자치구 대표(구청장)들이 모여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기관이 있다. 자치구들이 함께 비용을 모아 노숙인, 성학대, 실업자 빈곤 등 사각지대를 발굴한다. 그리곤 각 지역 자원을 연계해 4년 단위로 해당 문제를 해결해나간다. 필요시 지원 기간을 연장하기도 한다. 1995년 설립된 런던협의회(London Council) 이야기다. 5층 높이의 건물엔 런던협의회 외에도 소방협의회, 경찰연합회, 기업협의체 등 다양한 조직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닉 레스터 데이비스(Nick Lester Davis) 런던협의회 대표는 “이곳은 정치, 종교, 성별을 떠난 중립적·독립적 기구로 정부로부터 간섭받지 않는다”면서 “실제로  런던협의회에 속한 자치구들은 노동당 21개, 보수당 10개, 자유당 1개로 소속 정당도 다양하다”고 설명했다.

런던협의회는 자치구 의견을 대변하는 조직이자, 지역 문제 해결을 위해 인식개선(어드보커시) 활동을 하는 씽크탱크 기관이다. 1년 예산은 5억 파운드(약 8398억원). 그 중 95%가 각 자치구가 자발적으로 낸 멤버십 비용이다. 32개 자치구 대표들은 매달 만나 기존 사업에 대한 피드백을 나누고 방향성을 논의한다. 각 지역마다 이슈도 많을텐데, 이들이 부지런히 모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닉 데이비스 대표는 “협력하지 않으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많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노숙인의 경우 타지에서 왔거나 교도소에서 막 출소해 연고 없는 이들이 대부분입니다. 여러 지역을 떠돌기 때문에 자치구 한 곳에서만 담당해선 해결할 수 없어요. 성학대나 가정폭력 문제의 경우도 피해 여성의 긴급구호처를 마련하기 위해선 인근 자치구가 협력해야해요. 런던협의회 가입이나 멤버십 비용이 의무가 아닌데도 32개 자치구가 자발적으로 모이는 이유죠.” 런던협의회의 직원 120명이 자치구 멤버들이 확정한 프로젝트들을 서포트한다.

최근엔 자원봉사단체들을 대상으로 마케팅, 재무, 회계 등 맞춤형 컨설팅도 지원하고 있다. 안정적인 재정 운영을 위해 부동산을 제공하기도 한다. 각 자치구는 해당 지역 자선단체들과 소통하면서 함께 주거, 실업자 빈곤 등 문제를 해결해가고 필요시 정부를 대상으로 관련 정책의 개선을 요구하기도 한다. 닉 데이비스 대표는 “영국엔 각 시별로 자치구들이 함께 협의회를 구성하고 있는데, 런던협의회처럼 인구가 많고 예산 규모가 큰 곳은 없다”고 덧붙였다.  

런던 타워햄릿 자치구에 있는 통합도서관 '아이디어스토어' 내부 모습. /타워햄릿 제공
런던 타워햄릿 자치구에 있는 통합도서관 ‘아이디어스토어’ 내부 모습. /타워햄릿 제공

이날 오후엔 런던시 외곽에 위치한 타워햄릿(Towerhamlets) 자치구로 이동했다. 런던에서 가장 낙후된 지역으로 꼽히던 타워햄릿이 최근 주민참여형 모델로 주목받고 있기 때문. 타워햄릿의 인구는 28만4000명. 75% 이상이 다인종이고, 방글라데시 인구가 33%에 달한다. 2013년 타워햄릿 자치구는 9개월간 모든 가구를 상대로 설문조사와 심층인터뷰(FGI)를 진행했다. 다양한 언어와 문화가 결합된 지역인 만큼, 주민들이 원하는 콘텐츠와 프로젝트를 수렴해 정책에 반영하고 싶었던 것. 그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통합형 도서관 ‘아이디어 스토어(Idea Store)’다. 기존에 있던 도서관 12곳을 허물고, 직업 훈련·보건 교육·심리 상담 등 통합형 서비스가 이뤄지는 도서관으로 개관한 것. 총 5개의 아이디어스토어는 현재 영국 영대 왕들의 대관식 거행장소인 웨스트민스터 사원, 국회의사당 북쪽 끝에 달린 대형 종(鐘) ‘빅벤’ 등 런던의 유명 관광지보다 더 많은 관광객을 유치할 정도로 명소가 됐다. 타워햄릿은 1200개 비영리단체들과 협력해 지역 발전 방안을 논의하기도 한다. 매년 4억 파운드(약 6718억원) 예산이 제3섹터를 위해 사용된다. 로빈 배티(Robin Beattie) 전략기획 총괄은 “대다수 자선단체들에게 사무실을 제공해 임대료 걱정 없이 효과적인 서비스를 유지할 수 있도록 돕는다”면서 “자선단체 대표자와 실무자별 워킹그룹을 따로 구성해 지역 문제를 발굴하는 등 파트너십을 강화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런던=정유진 더나은미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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