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5일(수)

태국의 사회 혁신 현장을 가다

사회적경제는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현재 한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인증 사회적기업은 1500개. 협동조합은 9000개가 넘는다. 2007년 사회적기업육성법이 실시된지 올해로 10년차. 19대 국회에서는 ‘사회적경제기본법’ 제정에 대한 움직임도 여야를 막론하고 활발하게 진행됐다. 사회적기업은 물론 마을기업, 자활기업, 비영리단체(NPO) 등 다양한 영역을 ‘사회적경제’라 지칭하며 경제의 한 주체로 보기 시작한 것이다.

아시아도 예외는 아니다. 글로벌 경제는 이미 ‘저성장’ 시대로 접어들었고, 개발도상국에선 더이상 ‘선진국의 일방적 원조’에 기댄 경제 부흥을 기대할 순 없다. 국내총생산(GDP)이 4097억 달러(2015년 기준)로, 동남아에서 인도네시아 다음으로 두 번째로 큰 규모를 가진 태국. 수출이 GDP의 70%를 차지하는 대표적인 중진개도국인 이곳에서도 ‘사회적 경제’의 파릇파릇한 싹이 피어나고 있었다.  

◇ 태국의 LPN, “이주노동자 인권문제, 우리가 해결합니다.”  

“당신이 먹는 태국산 새우, 납치, 고문, 살해로 얼룩진 노예노동의 대가입니다”

2014년 영국 일간지 가디언지는 노예 노동으로 생산한 새우가 미국과 유럽의 대형 유통업체를 통해 전 세계 식탁에 오른다는 사실을 보도했다.  태국에는 미얀마, 캄보디아, 라오스 등 주변 국가에서 건너온 노동자들이 많다. 인근 국가에 비해 부유한 편에 속하는 나라이기 때문. 이들은 태국의 주요 산업인 해산물(SEA FOOD) 및 수산업에 종사한다.  동시에 불법체류 및 인신매매 등의 사회적 문제까지 발생하고 있다. 미국무부의 인신매매 보고서(2014년)에 따르면 태국은 인신매매 관련 입법 준수 상황이 최저 단계(3단계)로 드러났다. 일부 이주노동자들은 바다에서 몇 년 동안 머물며 제대로 된 임금도 받지 못한 채 주7일 18~20시간이 넘는 장시간의 노동을 하고 있다.

사진_한양대_태국 탐방_LPN
LPN의 대표인 ‘쏨 풍 싸게오’는 아쇼카펠로우 중 한명이다. LPN 사무실에서 브리핑 중인 쏨 풍 싸게오씨.

태국의 LPN(Labour Rights Promotion Network)은 이주노동자의 인권 문제를 개선하고자 설립된 비영리단체다. LPN은 노예어업에 대한 피해자 상담, 현장 구조 등과 함께 인권 관련 현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연구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주노동자 자녀의 교육권을 보장하는 것이 주요 사업. 이들은 이주노동자 자녀를 위한 학교를 4개소 운영하며, 현재 2000명의 아이들이 공교육에 준하는 교육을 받고 있다. LPN의 주요 펀딩 기관은 국제기구 및 비영리단체로 후원금액의 99%를 차지한다. 태국 건강 진흥 재단(Thai health Promotion Foundation), ILO(국제노동기구), 세이브더칠드런 UK(SAVE THE CHILDREN UK), 일본 외무성 등이 대표적인 후원자다. 

◇ 마약 재배로 점철된 지역, 성공한 도시 재생 프로젝트로 세계로 수출까지 

지역 재생 이슈 또한 태국에서 주요 사회 문제다. 특히 태국 북부의 미얀마, 라오스와의 접경지대에 위치한 도이퉁(Doi-Tung) 지역이 대표적이다. 도이퉁 지역은 아편의 원료인 양귀비 재배지인 골든 트라이앵글 내에 위치해 있어, 마약으로 인한 중독, 범죄, 가난 등의 사회 문제를 가지고 있다. 사실 이 지역은 농사를 짓기에 척박한 환경 탓에, 지역 주민들은 생계를 위해 양귀비 재배를 해왔다. 그러나 각종 사회 문제도 발생함과 동시에, 양귀비 재배로 산림은 더욱 황폐해졌다. 이에 태국, 미얀마, 라오스 3개국은 80년대부터 골든트라이앵글 지역 내 마약 단속을 시작했다.

사진_한양대_태국 탐방_매팔루앙
방콕에 위치한 매팔루앙 재단 건물은 왕실의 지원속에서 설립된 만큼 큰 규모를 자랑한다.

도이퉁 지역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고 있는 곳은 1972년 만들어진 ‘매팔루앙 재단(Mae Fah Luang Foundation Under Royal Patronage)’이다. 이 재단은 태국 국왕의 어머니인 스리나가 린드라(Srinagarindra) 대비가 설립한 곳으로, 현재 태국 왕실의 후원 하에 운영되고 있다. 지역 주민들의 생존을 위한 식량 제공 및 전염병 예방 백신 접종, 도로, 학교 병원 등 각종 사회 기반 시설도 재단의 도움으로 마련됐다. 재단은 일시적인 문제 해결이 아닌 지역의 지속적인 변화와 성장을 위한 장기플랜에 따라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양귀비를 대신할 수 있는 대체작물을 재배하는 것도 이 이유에서다. 재단에서는 커피와 마카다미아 등 다양한 작물을 브랜드화하는데 성공했고, 현재 방콕을 비롯한 태국의 20여개 도시에 브랜드 매장을 설립해 각종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는 인도네시아, 아프가니스탄, 미얀마 등 다른 나라로 퍼져나가 현지화된 방식으로 실행되고 있다.

◇ 태국의 청년들이여 IT기술을 활용해 사회를 혁신하라!

IT 기술을 활용해 사회 혁신을 일으키는 젊은 청년들도 있다. ‘오픈드림(Opendream)’은 나이 28~29세의 20명의 젊은이들이 모인 태국의 IT 기업이다. 이 기업의 목표는 ‘IT기술을 활용한 사회혁신’. 이들이 만들어내는 게임들은 이름만 들어봐도 흥미롭다. 디지털중독 진단프로그램, 재난대비 게임(Flood Preparedness Game), 부정부패방지게임(Anti Corruption Game), 안전한 성관계를 위한 게임(Safe Sex Game). 태국 내 사회 문제를 고스란히 반영한 게임들이다. 이들은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에 기반들 둔 쇼핑 플랫폼도 개발중이다. 지난 2013년에는 국제기구인 유네스코, 일본의 도시들과 협력하는 등 글로벌 무대로 진출하고 있다. 2008년 설립된 오픈드림은 현재 매년 5~10%씩 성장하고 있다.  

사진_한양대_태국 탐방_오픈드림
오픈드림의 대표 ‘빠띠팟 수삼파오’ 역시 스물아홉의 젊은 청년이다.

젊은 기업이니만큼 거버넌스도 수평적이다. 업무는 프로젝트에 따라 팀으로 진행된다. 사업에 있어서 대표의 의견보다 팀의 의사 결정이 더 힘을 가진다. 대표는 주주라고 해서 수익에 대한 배당은 없고, 더 많은 급여를 받지도 않는다. 일한만큼 팀원들에게 인센티브를 준다. 실제 대표보다 더 많은 급여를 받는 직원들도 있다. 최소 급여 또한 일정 수준의 생활이 가능한 급여로 책정하며, 수평적인 조직 구조를 마련하는데 주력한다. 

 

◇ 다양한 영역에서 솟아나는 사회 혁신의 물결

태국은 서양의 문물을 일찍 개방한 국가로서,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융합된 국가다. 태국의 사회 혁신의 현장도 그 다양성을 반영하고 있었다. 실제 1989년에 태국에 아쇼카재단이 설립된 이후 26년간 105명의 아쇼카 펠로우가 선정될 정도로 많은 영역에서 사회혁신 모델이 만들어지고 있다. 2013년 아쇼카 태국 펠로우로 선정된 ‘쏨퐁 스라케우(Sompong Srakaew)’씨는 이주노동자 인권 활동가로서, 이주노동자 자녀들이 학교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데 활동해왔고, 같은해 태국 펠로우인 ‘슈파 야이무앙(Supa Yaimuang)’씨는 방콕에서 도시 빈민들의 영양 불균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시농업(City Farming)을 가르친 인물이다. 또한 한국과 같이 법적인 지원제도가 없는 상황에서도 사회혁신을 이끌어내는 기업가들이 성장하고 있다는 점도 눈여겨볼만하다. 

사실 태국에 비해 풍부한 법적 제도와 지원이 갖춰져 있는 국내에서 사회 혁신의 가능성은 더 클 수 있다. 한국에서도 사회 문제에 대한 고민과, 해결 방법을 모색하는 과정 속에서 사회적 공감대를 이끌어 낸다면 긍정적인 사회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사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다양한 사회 혁신이 국내에서도 더욱 촉발되길 기대한다. 

글 │황명연 쿱비즈협동조합 이사(한양대 사회적기업 리더과정 2기 태국탐방단 조장)

※ 한양대 사회적기업 리더과정 2기 수강생은 지난 1월 25일부터 31일까지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과 우리은행의 후원을 받아 태국의 사회혁신 현장을 방문했습니다. 한양대 사회적기업 리더과정은 사회적 경제 종사자, 지원 조직 등 다양한 영역의 활동가를 대상으로 하는 심화 교육 과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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