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3일(금)

[비영리활동가의 일과 삶의 균형] 진정으로 행복한 삶은 하루하루 균형 잡힌 삶을 사는 것②

기업의 한 이사님께 질문을 드린 적이 있다. “일과 삶의 균형을 어떻게 맞추세요?” 이사님은 말씀하셨다. “저는 워크(work)밸런스만 맞춥니다.” 그렇다. 수많은 자기계발 서적들은 일과 삶의 균형을 통해 성공한 케이스들을 장황하게 늘어놓으나 현실은 우리에게 이야기한다. 조직에서 일과 삶의 균형 찾으려거든 승진할 생각 하지 말라고.

해외 유명 만화 사이트 ‘도그하우스 다이어리’가 나라별 특징을 담은 세계지도(What Each Country Leads the World in)에서 한국은 일 중독자를 의미하는 ‘워커홀릭’이라고 표기하였다. 워커홀릭이 다 성공하는 것은 아니지만 성공한 사람들은 거의 워커홀릭이다. 명망 있는 공익활동가들 중에 기업임원 못지않은 워커홀릭들도 많이 봤다.

2013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36개 회원국을 조사한 결과, 한국인의 연평균 근무시간은 2,090시간으로 OECD 평균 1,776시간을 크게 웃돌았으며, ‘일과 삶의 균형’ 부문에서는 조사 대상 36개국 가운데 34위를 차지했다(Business Watch, 2014.07.25.). 열심히 일하는데 근무시간은 길고 수면시간은 짧아 노동생산성은 현저히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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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과 직접적 연관 없음. /픽사베이

인간은 누구나 다 잘 먹고 잘 살고 싶어 한다. 고진감래(苦盡甘來). 힘든 걸 참으며 하루 종일 공부하고 일하는 이유도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다. 한국사회에서 유독 먹방이 먹히는 이유는 삼시세끼 먹고 살려고 일하는데, 정작 일하느라 한 끼도 제대로 챙겨먹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보상심리라고 할 수 있다. 유발하라리는 그의 저서 <사피엔스>에서 기원전 9000년경 채집이 아닌 정착을 통한 농경사회가 인간의 삶의 방식을 크게 개선시켰으나 더 나은 삶을 위한 일련의 개선은 농부들에게 더 많은 노동과 불안을 안겨 주었다고 말한다. 수확량이 증가하자 출생률이 증가하고 더 많은 식량이 필요해지자 더 많은 노동을 하게 된 것이다. “더 나은 삶을 위해 더 열심히 일하면 되겠지”라고 생각하며 밭을 갈던 근심어린 농부의 악순환을 현대를 사는 우리도 여전히 반복하고 있다.

잘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참 잘 산다는 것, 즉 참살이(well-being)란 주요한 삶의 영역에서 개인이 얼마나 만족하며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가를 의미한다. 주요한 삶의 영역은 크게 일과 일 이외의 영역으로 구분할 수 있으며, 두 영역은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고 상호 긴밀한 연관관계를 가진다. 두 영역의 상호침투성으로 인해 만족하며 행복한 삶을 위해서는 영역 간 균형이 필요해진다. 일과 삶의 균형(Work and Life Balance)은 ‘일’과 ‘일’이외의 영역 등에 시간과 심리적・신체적 에너지를 적절히 분배함으로써 삶을 스스로 통제・조절할 수 있으며 삶에 대해 만족스러워하는 상태를 의미한다(일생활균형재단). 현대인들은 하루의 대부분을 직장에서 보내기 때문에 일과 삶의 균형에서 일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만 일과 삶의 균형은 개인의 건강과 안전, 가족과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 자기개발, 여가, 기부 및 자원봉사활동 등 다양한 차원으로 구성된다.

일과 삶의 균형은 기혼여성에게만 국한된 이슈가 아니라 남녀노소 누구나, 영리와 비영리를 넘어 개인의 삶을 영위함에 있어 필요한 보편적 이슈이다. 장시간 근로를 당연시했던 기존의 ‘일’중심적 가치에서 점차 가족과 여가를 중시하며 개인 생활과 삶의 질을 중시하는 가치로 변화하면서 일과 삶의 균형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다. 비영리조직에서도 1,2세대에서 보여준 무조건적인 헌신과 희생을 3세대 활동가들에게 강요하기는 어려워졌다. 노동운동과 학생운동을 경험하지 않았고 조직의 창립맴버가 아닌 이들은 조직의 미션과 비전을 굳이 설명 해줘야 알 수 있으며, 사회적 가치도 중요하지만 개인의 가치도 중요한 신세대이다. 비영리조직들에서는 WLB 이슈 접근에 있어 리더들이 세대 간의 가치 차이를 이해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자신들의 산전수전 공중전 무용담을 앞세우는 리더가 있다면 분명 꼰대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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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과 직접적 연관 없음. /픽사베이

그렇다면 일과 삶이 균형 잡힌 이상적인 상태라는 것은 과연 어떠한 것일까. 나이젤 마쉬는 “일과 삶의 균형을 어떻게 이루는가”라는 주제의 TED강연(May 2010)에서 자신의 예를 통해 균형 잡힌 이상적인 하루를 제시한다. 밤에 잘 자고 충분한 휴식을 취한 후 일어나기, 섹스하기, 아침 식사하기, 아내와 아이들과 산책하기, 개 산책시키기, 그리고 섹스하기. 출근길에 아이들 데려다주기, 3시간 일하기, 점심시간에 친구와 운동하기, 그리고 3시간 일하기. 이른 저녁 친구들을 만나 한잔하기,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저녁 식사를 위해 집에 가기, 30분 동안 명상하기, 그리고 섹스하기. 저녁 식사하기, 개 산책시키기, 그리고 섹스하기. 마지막으로 잠자리 들기. 어찌 보면 단순하고 엉뚱하지만 누구나 꿈꾸는 하루가 아닐 수 없다. 노트를 꺼내 잠시 자신이 생각하는 균형 잡힌 이상적인 하루를 적어 보라. 잠잠잠…

아무 일도 하지 않을 때 일과 삶의 균형을 맞추는 것은 쉽다. 하지만 우리들은 마쉬의 표현처럼 각자의 일터인“영혼의 도살장”에서 먹고 살기 위해 오래 일해야 하고, 몸과 맘이 지칠대로 지친 후 나머지 시간을 이용해 삶의 균형을 맞춰야 한다. 균형은 일과 삶의 비율이 “50대 50”을 의미하는 것만은 아니다. 개중에는 일도 삶도 어느 하나 꿀리지 않는 독종들이 있다. 새벽같이 일어나 명상을 한 뒤 조찬모임에 가고, 점심시간을 이용해 러넝머신을 뛰고, 저녁시간에 가족들과 식사를 하며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 말이다. 이런 사람들은 너무 비인간적이다. 우리의 동기를 더 저하시킬 뿐 도움이 안 된다. 참고하지 마라. 인간은 한계를 가진 유한한 생명체이며, 몸과 맘과 영혼의 조화를 통해 균형을 이룰 수 있다. 한국적 현실에서 균형은 일과 삶이 “70대 30”에서 “60대 40”쯤으로 가는 어느 지점이면 충분히 이상적이다. 그 이상을 꿈꾼다면 당신은 욕심쟁이다.

중요한 것은 균형의 비율이 아니라 바로 질(quality)이다. 적당한 시기와 장소에서 최소한의 투자로 관계의 질과 삶의 질을 얼마든지 바꿔 균형에 다가설 수 있다. 최소한의 자원으로 최대의 효과를 만드는 거 비영리활동가들이 제일 잘하는 거다. 아들의 학교 대체휴일로 휴가를 낼 수 없는 엄마대신 아빠가 아들을 돌보기 위해 휴가를 냈다. 아빠는 베이컨을 굽고 달걀프라이를 하고 식빵에 잼을 발라 아들과 같이 아침을 먹었다. 아침 후 아빠는 아들과 동네 공원에 가서 베드민턴을 치고, 아들에게 자전거 타는 법을 가르쳐줬다. 점심은 평소에 엄마라면 사주지 않을 햄버거세트로 간단히 때웠다. 오후에는 아들과 애니메이션을 보고, 목욕을 시켜주었다. 저녁으로는 10년 만에 가위남(가족을 위해 요리하는 남자)이 되어 김치볶음밥을 만들어줬다. 그리고 책을 읽어주고 아이를 재웠다. 그날 밤 아빠는 다이어리에 적었다. 정말 힘든 하루였다고. 그날 밤 아들은 일기장에 적었다. 아빠와 함께한 오늘은 내 삶에서 최고의 하루였다고.

많은 사람들은 모든 것을 다 잃고 난 뒤 그제서야 후회하며 자신의 삶을 찾으려 한다. 진정으로 행복한 삶은 “하루하루 균형 잡힌 삶을 사는 것”이다. 긍정심리학의 대가 마틴 샐리그먼은 행복한 삶의 세 가지 측면을 즐거운 삶, 관여하는 삶, 의미 있는 삶으로 구분한다. 인간은 즐거움을 경험할수록, 몰입의 경험을 풍부하고 다양하게 할수록, 그리고 더 큰 가치에 봉사하고 기여할수록 행복하다는 것이다. 소득이 증가할수록 행복도가 증가하는 것은 아니라는 이스털린의 역설처럼 소득이 아니라 경험, 몰입, 의미를 통해 삶을 더욱 충만하게 만들 수 있다. 더욱이 일이 의미 자체인 활동가들은 삶의 모든 순간들 속에서 즐거움과 몰입의 경험을 더불어 쌓아간다면 다른 직장인들보다 훨씬 더 균형 잡을 여유가 생길 것이다. 기관의 자원봉사자들과 후원자들이 활동가들의 삶을 보며 나도 저렇게 살고 싶다며 이직하는 사례가 사회적으로 확산되기를 바란다.

* 본 칼럼은 서울시NPO지원센터 아카이브에 동시 기재되고 있습니다.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 열망 넘치는 조직과 사람들을 지원하는 것”이 삶의 미션이다. CSR, CSV, 섹터 간 파트너십, 민관협력(거버넌스), 리더십, 전략경영, 성과평가, 소셜임팩트, 일가정양립 등의 주제에 관심을 가지고 영리와 비영리를 넘나들며 강의, 교육, 컨설팅, 연구 등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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