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7일(화)

선생님은 거들 뿐… 수업 대신 토론하며 답 찾는 아이들

[교육이 바뀐다] 교육 혁신 현장을 가다

인공지능(AI) 시대, 미래의 학교는 어떤모습일까. 100점을 목표로 하는 ‘공장식’ 찍어내기 교육은 사라지고, 아이들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수업이 중심이 되진 않을까. 교육 혁신이 벌어지는 교실을 찾아갔다.

①지난 16일 신일중 거꾸로 교실 현장.교실의 주인공이 된 아이들은 수업시간이 기대된다며 입을 모았다. ②아쇼카의 ‘청소년 체인지 메이커’워크숍 현장. ③지난 12일 창덕여중의 ‘체인지메이커’ 동아리 활동 현장. 20여명의 학생들은 자신이 찾은 문제에 3시간 넘게 토론을 이어갔다. /오민아 기자·아쇼카 한국·박창현 사진작가
①지난 16일 신일중 거꾸로 교실 현장.교실의 주인공이 된 아이들은 수업시간이 기대된다며 입을 모았다. ②아쇼카의 ‘청소년 체인지 메이커’워크숍 현장. ③지난 12일 창덕여중의 ‘체인지메이커’ 동아리 활동 현장. 20여명의 학생들은 자신이 찾은 문제에 3시간 넘게 토론을 이어갔다. /오민아 기자·아쇼카 한국·박창현 사진작가

◇강의 없는 ‘서울 신일중’ 교실… 공교육 혁신의 시발점

지난 16일, 서울 신일중의 과학실 풍경은 생소했다. 이날의 수업 주제는 ‘다양한 운동과 힘의 관계’. 6개 모둠별로 4~5명씩 동그랗게 앉은 학생들은 끊임없이 움직였다. 책장 앞에 서서 참고서를 열심히 뒤적이는가 하면, 태블릿 PC로 동영상을 반복 재생하는 학생도 보였다. 자신이 이해한 내용을 10분마다 조를 바꿔가며 토론을 나누기도 했다. 교단 앞에 선 교사도, 별도의 강의도 없다. 학생들은 전날 과학 담당 서정욱(35) 선생님이 올린 6분짜리 동영상 강의를 미리 듣고 와서, 스스로 수업을 꾸려 나간다. 교재와 참고서를 참고하면서 빈칸이 뚫려 있는 학습지를 채운다. 일정 수준의 실력을 인정받으면 교사는 ‘어벤져스’ 목걸이를 준다. 어벤져스가 된 학생들은 다른 친구들을 직접 가르치는 보조 교사가 된다.

“선생님은 절대로 답을 알려주시지 않아요. 힌트만 주시죠. 궁금한 내용이 있을 땐 포스트잇에 적어서 칠판에 붙여요. 수업이 끝나면 이를 정리해 네이버 밴드에 올리고, 온라인으로 서로 아는 것에 대해 실시간 댓글을 답니다. 수업이 끝나도 계속 논의가 이뤄져요. 질문지에 채우지 못한 답은 한 달 뒤에 채워도 되고, 일 년 뒤에 채워도 돼요. 단, 우리가 직접 답을 찾아갑니다.”(이찬종·14·서울 신일중1)

토론 중에 관련 프로젝트가 논의되기도 한다. 송현석(14·서울 신일중1)군은 ‘중력보다 공기저항이 더 커지면 물체의 운동 방향이 어떻게 달라질까’ 고민하다가, 수업이 끝난 뒤 조원들과 선풍기를 이용한 실험을 하기로 했다. 주입식 교육 대신 자기 주도형 학습이 이뤄지자 학생들은 눈빛부터 달라졌다. 서 선생님은 “지난해 맡은 중3 아이는 학기 초 바뀐 수업 방식이 ‘귀찮다’고 싫어하더니, 1년 뒤 후배들에게 ‘동영상 꼭 보라’며 수업 홍보 영상을 찍어 학교 홈페이지에 올릴 정도로 변했다”고 했다.

수업 방식을 과감히 바꾼 건 지난해 4월. 2014년 KBS 다큐 ‘거꾸로 교실’ 프로그램을 보고 자신의 수업에 적용한 것이 시발점이 됐다. 하지만 변화는 쉽지 않았다. ‘수업 안 한다’는 소식에 학부모들의 반발도 거셌다. 수업 전 영상 촬영부터 강의를 대체할 활동 개발까지, 업무도 두 배로 늘었다. 그러나 아이들의 학업 열정이 커지는 모습을 보자, 학부모들도 적극 응원을 보내왔다. 이 모습을 목격한 신일중의 다른 교사들도 서선생님에게 노하우를 전수받아 수업 방식을 바꿨다. 현재 신일중 1학년 전교생 130명은 국어·영어·수학·과학 과목을 ‘거꾸로 수업’으로 진행 중이다.

‘거꾸로 교실’의 열기는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다. KBS ‘거꾸로 교실’ 다큐에 참여한 교사 7명을 주축으로 2014년 10월 비영리단체 ‘미래교실네트워크’가 설립됐고, 현재 전국의 교사 1만5246명이 ‘거꾸로 교실’에 참여하고 있다. 장혁 미래교실네트워크 대표는 “앞으로 교사는 백점짜리 답안을 가르치는 ‘전달자’가 아니라, 아이들이 스스로 답을 찾아갈 수 있도록 조언하는 ‘길잡이’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교실 안, 학교 밖 문제 해결하는 ‘체인지메이커’

서랍 없는 책상. 지난 2월 서울 창덕여중은 모든 책상을 이렇게 바꿨다. 교내 자율동아리 ‘체인지메이커’ 학생 여덟 명이 시작한 프로젝트에서 비롯된 변화다. 사소한 문제의식이 단초가 됐다. ‘교과 교실제’로 학생들이 수업마다 반을 이동하면서, 서랍 속 쓰레기가 쌓여갔던 것. 전교생의 82%가 ‘서랍 속 쓰레기가 불편하다’고 답할 정도였다. 그때부터 동아리 학생들은 일명 ‘책속무쓰(책상 속 쓰레기를 無, 없앤다)’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한 달간 불시 점검해 쓰레기가 가장 적은 반에 상품을 주기도 해봤지만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고 한다. “점점 시행착오를 겪으니 무서울 게 없더라고요. 아예 학교에 ‘서랍을 없애달라’고 건의하고 설득했습니다. 서랍이 없어지니 불편함도 있지만 학생들의 만족감은 더 커졌습니다.”(최지혜·창덕여중2)

‘체인지 메이커’ 동아리는 두 교사의 실험으로 시작됐다. 사회혁신가 지원단체인 ‘아쇼카한국’에서 진행하는 청소년 체인지 메이커(사회혁신가) 양성 활동 ‘유스벤처’에 참여한 이후 동아리를 창설한 것. ‘유스벤처’는 12~20세 학생들이 사회문제를 해결할 방안을 찾는 과정에서 공감능력, 리더십, 팀워크 등을 키우는 프로그램이다. 현재 50개 학교, 500여명의 학생이 체인지 메이커로 활동하고 있다.

학생들은 사회문제를 발견해 자신만의 해결책을 찾아나간다. 길거리 흡연 문제가 심각해지자, 학생들은 학교 인근 농협중앙회 지점을 찾아가 ‘등교 시간인 오전 8시부터 30분, 하교 시간인 오후 4시부터 30분간만 흡연을 삼가달라’고 요청했다. 농협은 이들의 의견을 수용해 금연 포스터를 자체 제작해 부착했다. 1년간 체인지 메이커 활동을 이어온 손혜원(16·창덕여중3)양은 “예전엔 불편하면 ‘누군가 하겠지, 내가 뭘 해’ 하며 방관했었는데, 이젠 사소한 문제에도 ‘내가 어떻게 해야 할까’부터 떠오른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이런 변화들을 교내에 전파하기 위해 1년에 두 번 공유회를 마련한다.

교내 동아리의 혁신 활동은 학교 밖으로도 확산되고 있다. 홍서예(20·명지대 경영학과1)씨는 경기 이천 양정여고에서 함께 동아리 활동을 하던 친구 3명과 함께 학교 앞 분식집 살리기에 나섰다. 주인 할머니 인터뷰는 물론 소비자 설문까지 진행했다. 분식집 외관을 페인트칠하고, 학생들의 의견을 적용하자 매출은 물론 등하굣길 분위기까지 달라졌다. 특수 교실이 없는 고등학교를 위해 ‘장애인 교육 매뉴얼’을 만들기도 하고, ‘체인지 메이커 육성사업’을 조성해 10개의 혁신 프로젝트를 발굴, 지원도 했다.

◇교사-비영리-기업 등 다양한 주체 협력해 교육 혁신 추진 활발

철옹성 같던 교사와 학교도 열리고 있다. 교육 문제를 더 이상 ‘우리만의 리그’에 가둬두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계층과 적극 협력해 ‘집단지성’으로 해결을 모색하는 흐름이 두드러지고 있는 것. 미래교실네트워크는 교사 외에도 미디어·기업 등 각계각층의 사람이 비정기적으로 캠프를 진행하며 협력하고 있다. 아쇼카의 유스벤처 프로그램도 IT기업 SAP코리아와 협업해 체인지 메이커 역량을 키우고 있다. ‘미래교실네트워크’에서 활동하는 최우석(32) 서울 미양초 교사는 “선생님들끼리 머리를 맞대는 데서 벗어나, 외부 시선으로 교육을 바라봐야 문제가 보인다는 것을 깨달았다”면서 달라질 미래 교실에 대한 기대를 나타냈다.

강미애·오민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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