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3일(금)

[공익, 직업의 세계] “‘과학 선생님’ 대신 선택한 길… 매일 생명 구하는 보람 느끼며 바이러스와 싸워”①

국제백신연구소(IVI) 연구원
 

‘더나은미래’는 공익 분야 직업의 세계를 취재하는 연재를 시작합니다. 첫회는 국제기구인 ‘국제백신연구소(IVI)’ 연구원입니다. 편집자


국제백신연구소_사진_개발_최정아_20160510
최정아 연구원./IVI 제공

“우리는 하나의 바이러스와 싸우기 위해 10년을 바칩니다.”

지난달 14일, 서울대학교 내에 위치한 ‘국제백신연구소(이하 IVI)’에서 만난 최정아(35·사진) 연구원의 말이다. 1997년 설립된 IVI는 대한민국에 본부를 둔 최초의 국제기구로, 개발도상국을 위해 백신을 개발 및 보급하는 일을 한다. IVI에는 현재 15개국에서 온 130여명의 직원이 근무 중이다. 최정아 연구원도 성균관대에서 유전공학을 전공하고, 동대학원에서 석·박사 과정을 마친 후 2011년 IVI에 입사했다. 당시 3곳의 대기업 연구소 스카우트 제의가 있었지만, 연봉이 절반가량인 ‘IVI행’을 택했다. 그녀만뿐이 아니다. IVI에는 1명 모집에 평균 80여명이 지원할 정도로, 청년들의 관심은 뜨겁다.

-왜 절반 연봉을 받는 IVI를 택했나.

“‘과학 선생님’이 되라는 주위 권유 대신 ‘연구자’의 길을 택한 건, ‘인류가 살아가는 데 도움 되는 일을 할 기회가 더 많지 않을까’라는 큰 꿈에서였다. 하지만 여러 사기업 연구소 면접에 가보니, 기업 이윤과 공익의 절충조차 찾기 어렵다는 게 분명해지더라. 콜레라, 장티푸스 등 개발도상국에서 발병해 ‘돈이 안 된다’는 경제 논리에 밀려난 개발의 사각지대를 위해 일하는 IVI의 보람이 정말 커보였다. 지금은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부터 메르스, 지카 바이러스를 막는 백신 개발에 참여하고 있다.”

-IVI 지원 당시 어떤 준비를 했나.

“IVI는 ‘전문성을 가진 인재’ 선발에 초점을 둔다. 특히 프로젝트팀별로 인원을 채용해, 비교적 어떤 사람들과 어떤 일을 할지 분명하다. 당시 팀 리더였던 박사님의 논문부터 최신 학회 발표까지 살피며 팀이 어떤 방향으로 무슨 연구를 하는지 꼼꼼히 파악해 전문가로서의 자질을 보여주는 데 주력했다.”

IVI_사진_개발_IVI전경_20160510
IVI전경,/IVI 제공

-IVI에서 가장 중요한 역량은 무엇인가.

“단연 ‘커뮤니케이션 능력’이다. 백신 개발, 보급, 현장 역학 조사, 통계 등 연구의 여러 역할들이 모두 유기적으로 연결돼야 백신 하나를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에, 수시로 커뮤니케이션이 이뤄진다. 매달 있는 ‘과학적 토론(Scientific discussion)’도 마찬가지다. 연구원 모두가 모여 각 팀별로 어떤 연구를 진행하는지 이야기 하고 다른 사람이 의견을 낸다. 학부에서부터 석박사 과정까지, 11년 동안 학교에서 실험과 연구를 할 땐 업무 대부분이 ‘상명하달’이었다. 그래서 회의 참석 첫날, 정말 ‘신선한 충격’이었다. ‘이야기를 해도 될까’ ‘틀리면 어쩌나’ 걱정하며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떼자, 회의를 이끌던분의 첫 마디가 ‘웰컴(Welcome)’이었다. 모두 내 이야기를 반갑게 받아줬다. 

회의실에는 화상회의 시스템을 갖춰, 실시간으로 연구실과 현장이 소통을 하기도 한다. 한 번은 개발 연구 중인 백신이 인도에서 어떤 반응인지 듣고, 그 자리에서 연구팀 회의를 해 수정 보완 작업을 진행했다. 현장과 언제든 맞닿아 있다는 건 연구자에게는 ‘꿈’과 같다. 우리의 노력이 어떻게 도움이 되는지 직접 확인할 수 있으니 동기 부여는 물론, 다음번 연구 진행에도 유용하다.“

-일의 가장 큰 보람은 무엇인가.

“꿈꿔오던 일들을 맘껏 벌이고 있는 것이다. IVI에서는 연구 발상의 폭이 넓다. 새로운 백신만이 아니라, 기존 백신이라도 어떻게 하면 더 빨리, 더 많이, 더 쉽게 공급할 수 있는지 보완해 내놓기도 한다. 최근엔 개발도상국을 대상으로 한 콜레라 백신을 혀 밑에 패치만 붙여도 효과가 나도록 개발한 것도 있다. 덕분에 의사 없이도 백신을 사용할 수 있는데다, 소독이 제대로 되지 않은 주사기 접종으로 인한 부작용 등도 훨씬 적게 됐다. 현재도 기존 독감 백신에 달걀 성분이 들어 있어 달걀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이 맞지 못했던 점을 타개하고자 여러 방법을 연구 중이다. 여러 아이디어들이 실현돼 저개발국의 생명을 구한다는 게 정말 뿌듯하다.”

IVI_사진_나눔_20160510
IVI에서 개발한 먹는 백신을 투약하는 모습,/IVI제공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

“일반적으로 연구직이라고 하면 앉아서 시험관을 쳐다보는 드라마 속 모습을 많이 상상하더라. 현실은 ‘3D 업종’이라고 할 만큼 고강도 체력을 요한다. 20리터(L) 물통도 거뜬히 들어 올릴 정도로. 실험쥐가 사는 밀폐용기가 한 개가 대략 1kg 정도인데, 이걸 20여개 정도 수레에 싣고 다니는 게 예삿일이다. 한여름에 실험복, 고글, 장갑까지 모두 입고서 일하면 서너 시간 후에 땀이 비 오듯이 쏟아지기도 한다. 

‘끈기’도 ‘생명’이다. 기계가 발전했지만, 여전히 연구 과정 대부분 사람의 손이 필요하다. 어떤 물질과 방법이 가장 효과적인지 일일이 실험하고 결과를 얻기 위해 5~6개월의 관찰도 끊임없이 해야한다. 일 년이 두세 번 실험하면 지나가, 보통 백신 개발에 10여년 정도 걸린다. 그러다보니 올해 입사 5년 차인데, 여전히 같은 연구에 매진 중이다. 지루하지 않다. 과정마다 새로운 발견과 작은 발전들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곧 백신 완성이라는 ‘완주’도 기대된다.”

-어떤 점에서 여성에게 최고의 직장으로 꼽나.

“대표적으로 IVI는 ‘탄력적 근무제’ 이용이 사내 문화처럼 정착돼 있다. 일정 시간 내 자신의 업무량을 마칠 수 있으면 근로시간을 유연하게 운영할 수 있다. 덕분에 자택근무가 불가피한 경우나 조기 퇴근이 필요한 경우 업무 지장을 주지만 않으면 할 수 있다. 워킹맘인 나에겐 꼭 필요하다. 첫째 아이가 유치원에 일이 생길 때도 걱정 없이 일과 양육을 병행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제도만이 아니다. 수평적인 조직 관계가 자연스러운 회사 분위기다. 연말 송년회에는 직원 전 가족을 초청, 이날을 위해 직원들은 몇 달 동안 공연 등 송년회 순서를 직접 준비하고 사무총장은 직원 개개인과 가족들에게 이야기를 건넨다. 이런 평등하고 특별한 조직문화가 있어 회사와 동료를 좀 더 사랑하게 되는 것 같다. 사기업 다니는 남편도 매년 회사에 올 때마다 부러워하더라.“

-앞으로 백신 연구의 전망은 어떤가.

“매우 긍정적이다. 전 세계적으로 투자와 관심도가 높은 시장이 ‘바이오산업’인데 그 핵심이 백신이다. 우리나라에도 최근 처음 발견되는 질병들이 많아져 채용이 빠르게 늘고 있는데, 그에 비해 아직 연구 등 종사자 숫자는 적어 직업 전망은 좋다고 본다. IVI에는 연구 직종만이 아니라 의사, 간호사부터 통계 등 다양한 인력이 필요하다. 더 많은 인재가 들어오길 기대한다.”

관련 기사

Copyrights ⓒ 더나은미래 & futurechosun.com

전체 댓글

제261호 2024.3.19.

저출생은 '우리 아이가 행복하지 않다'는 마지막 경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