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4일(화)

“대한민국은 아동학대 방임국가”… 보다 못한 엄마들이 나섰다

‘아동학대방지시민모임(前 하늘소풍)’

엄마 3인 인터뷰

“세 분은 자주 만나시나봐요.”

명함을 꺼내며 건넨 기자의 첫마디에 박은영(47)씨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우리는 자주 안 만나는 게 좋죠. 사건 있을 때 만나니깐. 웬만하면 수다나 떠는 카페로 만들자 그랬는데.” 박씨는 자리에 앉자마자 아동 학대 사건 이야기를 꺼냈다. “천안에서 중학생 여아를 친부가 목검으로 때려서 죽인 사건이 있어요. 집에서 도망쳤다가 경찰이 잡았는데. 경찰은 문제아가 단순 가출한 것으로 생각하고 집으로 돌려보냈대요. 근데 여자애를 목검으로 6시간 동안 팬 거예요. 남동생이 둘 있는데, 누나가 저렇게 맞다가 죽을 거라고 생각했대요. 아빠는 딸이 자기를 남자로 생각해서 훈육한 것이라고 말했대요. 자기 잘못 덮으려고 이상한 애로 만들어버린 거죠. 공판 결과가 나왔는데, 일반적인 아동 학대가 아니래요. 15세는 아동이 아니라는 거죠. 그래서 6년 형량 받았어요. 알고 보니 이 아빠가 두 번 이혼을 하고 세 번째 동거녀랑 같이 살고 있었대요. 애는 계모한테 구박받기 싫어서 집을 나간 건데, 아빠는 딸을 문제아로, 이상한 아이로 만들어버렸어요. 가슴에 콕 박힌 사건이에요.”

박씨는 입을 열 때마다 언론에 제대로 보도되지 않은 아동 학대 사건까지 줄줄 꿰고 있었다. 이어 아동학대방지시민모임의 고문인 공혜정(47)씨, 김희주(38)씨가 인터뷰에 합류했다. “공 선생님은 이 인터뷰 때문에 창원에서 올라오셨어요.” 공씨는 경남 창원, 박씨는 수원, 김씨는 인천에 거주하는 엄마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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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tty Images Bank

―아동 학대 이슈가 터질 때마다 관심은 뜨겁습니다. 하지만 2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개선된 것은 보이질 않습니다.

공혜정=14일에 ‘너는 착한 아이’라는 아동 학대 관련 영화가 개봉합니다. 시사회 참석차 다시 서울에 와야 해요. 사실 사건이 터질 때만 떠들썩할 것이 아니라 문화 속에서 일깨워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영화 ‘도가니’가 장애 시설 문제를 다룬 것처럼요. 이번에 드라마 ‘시그널’에서도 아동 학대 당한 사람이 연쇄 살인범으로 나왔죠? 작년에 방영됐던 ‘킬미힐미’도 다중인격장애의 동기를 아동 학대에서 찾았어요. 사실, 아동 학대 빈번하게 일어나요. 비하인드 스토리 들어보면 드라마보다 더 심각해요. 아동 학대 예방, 왜 중요하냐고요? 아동 학대를 당한 사람들이 다 범죄자가 되지는 않아요. 그런데 유영철이라든지, 김길태라든지, 잔인한 살인마들 보면 100% 학대를 당한 경험이 있대요. 아동 학대를 막으면 청소년 범죄도, 성인 범죄도 막을 수 있어요. 소년원 범죄자들 재판에도 참석해보고, 인터뷰도 해봤는데 소년 범죄자들의 100%가 신체나 정서적 방임을 당했대요. 청소년 범죄자의 60% 이상이 성인 범죄로 이어지고요. 우리가 아동 학대를 막지 않으면, 지불해야 하는 사회적 비용이 어마어마해요. 아동복지 예산을 삭감한 건 근시안적인 태도죠. 먼 미래를 봤을 때는, 아동 학대 예방에다 투자해야 합니다.

박은영= 부천에서 가스 배관 타고 내려온 아이 있죠? 신고한 수퍼 주인이 ‘의인’이라고 생각해요. 이 아이가 두 번째 집을 탈출했잖아요. 첫 번째 만난 어른은 집으로 보냈고, 두 번째 만난 수퍼 주인이 신고하면서 살아남은 거죠. 이 사건으로 정부가 장기 결석자들 행방을 다 알아보고 있잖아요. 이러면서 숨겨져 있던 사건이 드러나게 된 거잖아요. 112 전화 한 통화로 많은 아이를 구한 거예요. 신고하는 거, 귀찮을 수 있어요. 그래도 이런 분들 덕분에 사회가 점점 좋아지는 거죠. 사회 인식 자체가 바뀌었으면 하는 바람이 제일 커요.

김희주=아동 학대에는 가해자, 모르는 척하는 방임자, 그리고 외면자가 있어요. 아이를 죽인 사람이나, 아이를 찾지 않은 부모들을 합쳐서 가해자라고 볼 수 있죠. 방임자는 아동을 구할 수 있어요. 관심만 가지면 말이죠. 예산을 움켜쥐고 있는 기재부, 국회가 방임자라고 생각해요. 너희 상황 아는데, 딴 곳이 더 급하다고 말하잖아요. 대한민국 자체가 아동 학대 방임자예요. 외면자는 우리 국민이죠. ‘자기 자식 자기가 때리는데 뭐라고 그러냐’면서 외면하고 신고하지 않아요. 예산도 올려줘야 하고, 아동 학대 예방을 위한 교육도 해야 하고, 언론에서는 적극적으로 알려야 해요. 애들이 1년에 1만5000명씩 신고되고 있어요. 그중 절반은 다시 집으로 돌아갑니다. 저도 나라를 사랑하지만, 이건 아니잖아요.

아동학대방지모임 카페에 들어가보면 회원들의 활동이 아주 활발합니다.

공혜정=전국에 조직된 서명팀이 있습니다. 아동학대특례법 통과, 어린이집 CCTV 설치 등 각종 현안이 있을 때마다 우리의 ‘의병’들이 출동합니다. 신고 번호가 112로 통합됐다는 것도 알려요. 아동 학대 공판에 참석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죠. 동원하지 않아도 알아서들 옵니다. 전북 전주부터 강원도 원주까지 돌아다녀요. 기본적으로 5~10명은 참석하고, 울산 서현이 사건 공판 때는 200명의 회원이 재판장을 가득 채웠습니다. 아마 차비만 몇백만원 썼을 거예요.

근데, 우리가 지원받는 단체가 아니잖아요. 회원 51명은 한 달에 1만원씩 자발적으로 회비를 냅니다. 이렇게 모은 돈으로 이벤트가 있으면 피켓, 이젤을 사죠. 작년에는 텀블러도 만들어서 국회의원실을 방문해 법안 바꿔달라고 로비도 했습니다. 어린이집 CCTV 설치 이끌어내는 것도 대단했어요. 어린이집연합회 권력이 어마어마하게 세다고 하더라고요. 장하나 의원이 ‘어린이집은 노동 현장이라서 인권의 이유로 CCTV 설치는 안 된다’고 했는데, 한마디했죠. 어린이집은 노동 현장이기도 하지만 보육 현장이라고요. 설치 반대한 의원들 명단을 뽑아서 SNS에 공유하면서 여론을 만들었어요. 엄마들이 일궈낸 결과예요.

김희주=재판 관련 탄원서와 진정서도 씁니다. 아동보호 전문기관이랑 연합해서 서명운동을 하기도 해요. 이때도 피켓이랑 현수막은 저희가 다 준비했어요. 학대 피해 아동들 사진도 준비하죠. 너무 참혹한 사진들이라 외면하는 분 많거든요. 그래도 알려야 해요. 사건을 설명하면서 아동 학대의 실상을 알리는 거죠. 우리나라에서는 부모들이 아이들한테 ‘보지 말라’고 하고 애들 데리고 가요. 이렇게 외면하기 시작하면 답이 없어요. 미국이나 일본은 신고율이 60%가 넘어요. 이기적인 이유로 외면한다면, 친구가 놀이터에서 학대를 당하고 있으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모를 거 아닙니까. 서명운동 하면서 한 명 한 명에게 알려요. 이 사건은 왜 일어났고, 예방책도 있다는 걸 말해줘요. 제주도부터 동해까지, 지역 곳곳에서 자발적으로 활동이 진행됩니다.

박은영=’장터 기부’도 있어요. 미얀마에 사시는 분은 특산물을 저희한테 보내줘요. 한국에서 같이 활동을 못하지만, 재정에 도움이 되라는 의미에서요. 회원들은 좋은 물건을 저렴한 값에 사면서, 저희 모임을 위해 기부할 수 있는 거죠. 쓸 만한데 버리기 아까운 것도 내놔요. 회비 대신 물건을 내놓는다고 보면 됩니다. 저도 십몇만원짜리 어린이용 의자를 1만원에 팔았어요. 사는 사람은 1만원을 후원 계좌로 입금합니다.

―왜 시간을 내고, 돈을 써가며, 가해자에게 협박을 받아가면서까지 이런 활동을 하시는지요.

공혜정, 김희주, 박은영=(다 같이) 엄마니깐요.

공혜정=처음부터 이야기하자면, 울산 서현이 사건이 계기가 됐어요. 제가 친모랑 친분이 있어서 숨겨진 이야기들을 다 알게 됐거든요. TV에서만 보던 사건이 내 주위에서 일어난 거예요. 어떻게 인간이 아이한테 그런 짓을 할 수 있나. 분노가 치밀었습니다. 서현이가 밝게 웃던 생전 사진을 보니 미치겠더군요. 아동 학대 사건을 알아보니 지금까지는 법에 의해서 아이를 죽여도, 통상 5년 정도만 감옥에 있는다는 거예요.

계모 박상복(서현이 사건 가해자)이 변호사에게 보낸 편지를 입수했어요. 자기는 감옥 안에서 공인중개사를 준비하겠다는 거예요. 아이를 참혹하게 죽인 그런 여자가 자기 미래 계획을 맘 편하게 세울 수 있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근데 지금까지 아동 학대로 5년 이상 형량을 준 판례가 없다는데, 거기서 뺑 돌았어요. 1시간 30분을 때려서 죽었는데 어떻게 살인죄가 아닌가요? 인터넷 카페에 과감하게 가해자 실명도 올리고, 피해 아동의 화상 입은 사진, 생전 모습 다 올렸어요.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하면 벌금 내고 말자는 생각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움직이기 시작했어요.

김희주=울산 성민이 사건(어린이집 원장 부부가 2세 성민이의 복부를 발로 때려 죽인 사건) 때문에 충격에 빠져 있던 시기였어요. 잠자기가 힘들 정도였어요. 그러면서 아동 학대 사건에 관심을 가졌는데, 근래 사건 중에 서현이 사건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카페에 가입해 처음엔 눈팅만 했어요. 한두 달 사건 내용을 보다보니,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공부를 했든, 안 했든 상관없고. 아이를 위한 마음만 있으면 뭐든 할 수 있구나 생각했어요. 집이 인천인데, 강원도 원주에 공판 참석하러 갔어요. 처음 만나는 회원들도 이야기하다 보면 안 지 몇 년 된 사람들 같더라고요.

박은영=저도 서현이 사건을 뉴스로 접하고, 서현이를 위한 카페가 있다고 해서 들어왔어요. 실상을 보고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가입해서 활동도 하기 시작했고요. 근데 갈수록 사건이 더 악랄해지네요. 2014년에는 계모와 관련된 사건들이 빵빵 터지더니, 작년에는 어린이집 사건, 작년 말부터 올해까지는 친부, 친모가 관련된 아동 학대 사건이 잇따라 터져요. ‘친부와 친모가 저러는데, 내가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는 회한도 들었지만, ‘아이만 보자’는 마음이에요. 아이는 이미 죽었고, 관련된 친척이나 친부모도 증인으로 출석해야할 때 빼고는 재판장에 오지 않아요. 아무도 그 아이들을 기억하고 싶어 하지 않아요. 나라도 기억해줘야죠. 당장 내 아이는 다 키워놔서 아동 학대에 관심을 가질 이유도 없지만, 내가 이 세상 떠나고 없을 때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놔야 하지 않겠습니까.

지난해 방영된 MBC 드라마 ‘킬미힐미’ 캡처 장면. 이 드라마는 아동 학대를 모티브로 구성됐다. / MBC 방송화면 캡처
지난해 방영된 MBC 드라마 ‘킬미힐미’ 캡처 장면. 이 드라마는 아동 학대를 모티브로 구성됐다. / MBC 방송화면 캡처

―날이 갈수록 심각해지는 아동 학대, 예방 방법은 없습니까.

공혜정=아동 학대 80%가 친부모에게서 비롯된다고 하죠. 대부분 아동을 훈육하는 방법을 몰라서 그래요. 때리면 쉽게 말을 듣거든요. 한 대, 두 대, 점점 때리는 사람도, 맞는 사람도 내성이 생겨요. 아이가 나중에는 반발심도 생기고요. 대가족일 때는 갈등이 생기면 할머니나 삼촌이 나서기도 하는 등 완충 장치가 있었는데, 지금은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 배워본 적이 없어요. 부모 교육이 필요해요. 또 아동 학대 예방 수업을 들어야 해요. 신고 의무자 24개 직군은 반드시 들어야 합니다. 성희롱 예방 강의도 요즘엔 의무적으로 듣잖아요? 예전에는 성희롱에 대해 쉬쉬하는 분위기였는데, 지금은 달라졌잖아요.

예비 신고 의무자가 될 수 있는 교대, 교원대, 간호대, 의대 학생들도 필수 교양 과목으로 아동 학대 관련 수업을 수강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이전에 공주대 유아교육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한 적이 있거든요. 애들이 내용을 듣고 충격을 받았대요. 이렇게 미리 알게 되면 유치원 교사가 됐을 때, 면밀하게 볼 수 있잖아요. 마지막으로 아동 학대 관련해서는 특수한 기준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아이를 때렸을 때나 성인을 때렸을 때 양형 기준은 똑같아요. 근데 성인은 서로 싸울 수 있지만, 아동은 방어율 0%잖아요. 그런데 어떻게 같을 수가 있을까요?

박은영=친할머니한테 죽임을 당한 아동 학대 사건의 한 공판에서는 판사님이 친모한테 ‘왜 아이가 죽기 전에 한 번이라도 안 찾아가봤냐’고 물었어요. 이사를 자주 가서 어린이집이 자주 바뀌니 찾을 수가 없었대요. 판사님이 한마디했어요. 세상이 바뀌고, 법이 바뀌었다고요. 면접 교섭권이 있어, 얼마든지 아이를 찾을 수가 있다고요. 못 찾은 게 아니라 안 찾은 거라고 하셨어요. 친모의 솔직한 마음을 묻자, ‘남편과 헤어지고 왜 나 혼자 아이를 맡아야 하는지 억울한 마음이 있었는데 아빠한테 보내고 나니 속이 후련했다’고 하더라고요. 이 판사님은 짚어내는 포인트가 달랐어요. 방관자인 친모에게도 책임을 물었어요. 법조계에 계신 분들이 좀 더 피해자 입장에서 생각을 해주셨으면 해요. 법을 만들고, 집행하는 사람들의 관심과 인식이 너무나도 중요해요.

김희주=내 아이만 보살핀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에요. 우리 아이들이 간접적인 2차 피해자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이웃들이, 선생님들이 아이에게 요만큼이라도 관심이 있었으면 어땠을까요. ‘왜 이렇게 아이가 깡말랐을까, 급식 시간에 허겁지겁 밥을 먹을까, 왜 여름에도 긴팔만 입을까’ 하고 관심을 가져야 해요. 그리고 아이들에게도 신고 교육을 시켜야 해요. 일곱 살만 되면 애들 글 다 읽잖아요. 본인들이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선생님에게 이야기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해요. 저 자신이 아동 학대 방지 운동 하면서 많이 바뀌었어요. 아이가 어린이집에서 넘어져서 멍이 들었을지라도, CCTV 보고 싶다고 이야기해요. 현실을 보면 갑갑하지만, 활동을 지속하면서 아동 학대에 대한 사회 인식이 제대로 정립될 수 있도록 열심히 할 생각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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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 학대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은밀하게 자행되는 ‘범죄’다. 아이가 스스로 이야기하기는 쉽지 않지만, 주변에서 관심을 가지면 표가 난다. ‘울산 서현이 사건’도, ‘칠곡 계모 사건’도 모두 막을 수 있는 ‘죽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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