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0일(금)

혼자만 알고 있기 아깝죠, 나누는 기쁨

2015 아너 소사이어티 5人 인터뷰

지난 한 해 1억원 이상 기부한 아너소사이어티(이하 아너) 회원은 총 299명이다. 더나은미래와 공동모금회가 이 회원들을 분석한 결과 ▲서민층 ▲고인(故人) 기념 ▲지인 추천 ▲3040 ▲여성 기부가 눈에 띄게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유가족이 고인의 뜻을 기리기 위해 가입한 아너 회원은 지난해에만 9명으로, 전체 고인 기부(19명)의 절반에 가까웠다. 2015 아너를 대표하는 5명을 만나 고액 기부 스토리를 들어봤다. 이들은 하나같이 “내가 느낀 나눔의 기쁨을 더 많은 이에게 나누고 싶다”고 입을 모았다. 편집자 주


미상_사진_기부_허위덕씨_2016

잘 쓸줄 알아야 진짜 부자 아니겠어요?

20년 모은 1억원 기부 허위덕씨

“아들 가족과 함께 거실에 모여 앉아 텔레비전을 보다 처음 ‘기부’ 이야기를 꺼냈어요. 혹시 반대하면 어쩌나 싶어서 얼마나 떨렸는지 몰라요. 그런데 며느리가 제 손을 꽉 쥐고 말하더군요. ‘어머니, 어떻게 그런 훌륭한 결심을 하셨어요’라고. 그 말을 듣는 순간 눈물이 핑 돌았어요.”

지난 14일, 경기도 군포시 자택에서 만난 허위덕(78) 아너는 “밤에 자려고 누우면 구름 위를 둥둥 떠다니는 기분”이라며 연신 엄지를 치켜세웠다. 허씨는 지난달 경기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77번째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으로 가입했다. 20년간 모은 돈을 쾌척한 그의 이야기는 동네에서도 단연 최고의 이슈다. 오랫동안 소식이 끊겼던 친척, 중학교 동창회 친구, 스포츠센터 아주머니들까지 연신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을 했다’며 축하의 말을 입에 올린다. 그러나 허씨는 자신을 그저 ‘평범한 할머니’ 라고 말한다. 그가 기부한 1억원도 평생을 전업주부로 살며 틈틈이 저축한 쌈짓돈이다.

“큰아들의 결혼 준비를 도우면서 엄마로서 해주고 싶은 것이 많았는데 모아둔 돈이 없어 안타까웠어요. 그때부터 한 달에 20만원씩 저금을 시작했습니다. 여유가 생길 때마다 조금씩 더 보태서 넣고요. 1년짜리 적금이 만기가 되면 이자 한 푼 쓰지 않고 다시 통장 만들기를 반복했죠.”

‘언젠가는 쓸 일이 있겠지’라고 생각해 특별한 목적도 없이 모으던 돈이었다. 그러던 그가 기부를 결심하게 된 것은 4년 전, 남편과 사별하면서부터다. 갑작스레 남편을 떠나보낸 후 인생의 허무함이 밀려왔다. 그때 병원 구석에 걸린 기부자 명단이 그의 눈을 사로잡았다.

“병원 벽에 새겨진 기부자 명단을 보니 ‘동물은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속담이 떠오르더군요. 내가 이 세상에 있었다는 흔적을 가장 아름답게 남기는 방법 같았어요. 사실 젊은 시절부터 ‘기회가 생기면 기부를 꼭 해야지’라고 생각했었는데, 남편 병 간호에 네 아들을 키우며 정신없이 살다보니 잊고 살았던 목표가 다시금 제 가슴을 두드렸습니다.”

기부를 하겠다고 마음먹으니 세상에 존경스러운 사람이 그렇게 많을 수 없었다. 더 어려운 이들을 위해 기부를 선택한 농부부터, 퇴직 후 번 돈의 전부를 내놓은 경비원 아저씨까지. 평범한 이웃들 이야기에 그의 결심이 굳어졌다. 하지만 결정적인 ‘실천’을 이끈 것은 다름 아닌 가족이었다.

“서운할 수도 있었을 텐데 ‘우리도 못한 결심을 어머니가 해주셔서 감사하다’고 하더군요. 얼마나 큰 힘이 됐는지 몰라요. 형제들이 힘을 합쳐 기부할 곳도 적극 알아봐 줬어요. 저의 아너소사이어티 가입식에 참석한 큰아들과 작은아들은 각각 유산 기부와 고액 기부에 대한 의지도 밝혔죠.”

요즘엔 자신이 느꼈던 ‘나눔의 기쁨’을 전하고자 주변 사람들에게 기부도 적극적으로 권하고 있다. 하지만 허씨가 기부를 권할 때마다 사람들은 고개를 내젓는다. 종종 형편 자랑을 하던 사람들도 기부 이야기가 나오면 꿀 먹은 벙어리가 된다. 그럴 때마다 허씨는 “기부를 할 때 필요한 것은 부(富)가 아닌 용기”라고 말한다.

“돈을 많이 가진 사람이 부자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걸 잘 쓸 줄 알아야 진짜 부자 아니겠어요? 제가 훌륭한 이웃들의 이야기를 접하고 기부를 결심하게 된 것처럼, 저 역시 사람들에게 ‘평범한 사람도 얼마든지 나눌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어요. 전 그저 공무원 남편, 아들 넷과 함께 평범하고 검소한 삶을 살던 이웃사람이지만 이렇게 아너소사이어티가 됐는걸요. 누구나 용기만 있다면 얼마든지 값진 것을 세상에 나눌 수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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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 디자이너였던 아버지… 기부는 내게 익숙한 일

故 앙드레김 아들 김중도씨

지난 18일, 서울 강남구 논현로에 위치한 ‘앙드레김 디자인아뜨리에’는 새하얀 옷들로 가득 차 있었다. 아버지의 뜻을 이어받아 5년째 아뜨리에를 경영하고 있는 김중도 대표는 “대단한 일이 아닌데…”라며 머리를 긁적였다. 그는 지난해 12월 24일 고(故) 앙드레김의 이름으로 아너에 가입했다. 앙드레김이 생전에 사랑의 열매에 기부했던 6200만원에 비용을 보태 1억원을 채운 것. 김 대표가 1900만원, 임세우 앙드레김 디자인아뜨리에 이사가 1900만원을 각각 모았다. 기부 계기를 묻자 자연스레 아버지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워낙 정이 많으셨어요. 어릴 때부터 아버지가 기부하는 모습을 보며 자랐습니다. 길을 걷다가도 노점상이 보이면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었어요. 그분들이 파는 물건을 모두 사서 주변에 나누곤 하셨죠. 한 번 만난 노점상 주인들을 꼭 기억해두셨다가, 정기적으로 찾아가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누시고 또 물건을 전부 사오셨죠. 매년 아버지가 진행하시는 나눔 행사를 어릴 때부터 따라다니다 보니, 저도 자연스레 나누는 삶에 익숙해진 것 같아요.”

앙드레김은 소문난 나눔 디자이너였다. 서울대병원에 10억원을 약정, 지금까지 7억5000만원을 기부했다. 시튼 수녀회·유니세프 등 매년 자선 패션쇼 및 바자를 개최해 수익금을 기부하고, 남몰래 보육원·학교 장학금 등으로 나눈 비용은 셀 수 없을 정도다. 김 대표 역시 아버지로부터 나눔 DNA를 오롯이 물려받았다. 2010년부터 서울대병원에 수익금의 일정 비율을 매년 기부하고 있는 것. 앙드레김의 기부로 어릴 때부터 인연을 맺었던 수녀회, 근육병 전문센터와도 자선 행사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가족의 반대는 없었냐”는 물음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그의 아내도 남몰래 비영리단체 여러 곳에 후원을 해온 터라, 김 대표의 아너 가입도 전적으로 동의했다는 것. 이들 부부는 나눔을 경험할 기회가 있을 때면 자녀들을 함께 데리고 간다. 작은 물건, 음식이라도 친구들과 나누려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어릴 때부터 자연스레 나눔이 스며드는 교육이 중요함을 느낀다고. 김 대표는 “생전에 이웃을 사랑하고 한국 브랜드에 자부심이 많았던 사람으로 아버지를 기억해주시면 좋겠다”고 말했다.

“사실 1만원이든 1억원이든 기부라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아요. 기부라는 건 물건이 아니라, 사람을 위해서 하는 거잖아요. 정을 나누면 내가 먼저 따뜻해지더라고요. 그래서 계속 기부를 하게 되나 봐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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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이 그러더군요 “이 좋은 기부를 왜 이제 알았을까”

이상춘 현대강업㈜ 대표

“처음엔 기부를 어떻게 권유해야 할지 걱정이 많았어요. 그런데 제 추천으로 아너에 가입한 친구들이 ‘형님, 이 좋은 걸 왜 이제야 했죠?’ ‘추천하실 때 진작 시작할 걸 괜히 고민했어요’라고 하는데, 가슴이 뭉클했죠. 그때부터 자신감이 붙었습니다.”

이상춘 현대강업㈜ 대표는 지역의 소문난 펀드레이저(모금가)다. 8명에 불과했던 경북 지역 아너 회원을 3년 새 45명까지 늘렸다. 이 대표가 경북 아너 클럽 회장을 맡은 후 벌어진 일이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얼마 전엔 ‘2015 올해의 아너 소사이어티 추천 분야 대상’을 수상했다.

이 대표의 첫 기부는 200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3평짜리 사무실에 전화 한 대를 두고 막 사업을 시작하던 때였다. 자동차부품용 특수소재를 공급하는 철강기업을 세운 그는 녹록지 않은 상황에서도 매년 기부를 그치지 않았다.

장애인 시설·학교 등 도움이 필요한 곳은 어디든 찾아갔다. 경북의 한 학교엔 매년 2000만원씩 장학금을 지원한다. 기부한 금액만 약 7억원에 달한다. 매출액 800억원 규모의 건실한 회사로 성장하면서 그의 나눔 씀씀이는 함께 커져갔다. 2013년부턴 직장인 월급 나눔도 시작했다. 80명 직원 중 30명 이상 월급의 일부를 공동모금회에 정기 기부한다.

“대대로 논농사를 짓고, 14명의 대가족이 함께 살았어요. 넉넉지 않은 형편이다 보니 누구 한 명이 음식을 독차지하면 못 먹는 사람이 생겼어요. 항상 나눠 먹고 상대방을 생각해야 한다는 것을 몸소 배웠죠. 우리 회사가 잘되는 것도 주변 이웃들이 도와주기 때문입니다. 버는 만큼 나누자고 다짐했죠. 그 감사함을 전하고 싶어서요.”

그의 모습을 본 지인들도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이명수 스카이스포렉스 대표, 황태욱 영양숯불갈비 대표 등 경주고 동문 5명과 부친 이충우씨까지 신규 아너로 가입 약정을 한 것. 이들은 또 다른 지인들에게 기부의 ‘맛’을 전파하기 시작했다. 아너 클럽 모임도 활성화시켰다. 분기별로 모여 낮에는 무료 배식 등 봉사활동을 하고, 밤에는 고액기부 활성화를 위한 토론을 한다. 그 과정에서 모금 전략도 자연스레 업그레이드된다.

그는 “아너로 추천하고 싶은 지인을 아는 여러 명이 함께 찾아가기도 하고 각자 만날 때마다 기부 스토리를 공유하는 전략을 세웠다”면서 “더 많은 사람을 도울 수 있는 기회를 함께 열자고 설득하면 대부분은 마음을 열고 동참해준다”고 덧붙였다.

함께 할수록 커지는 기쁨 때문일까. 최근 아너 클럽 모임에선 “1억만 하고 끝낼게 아니라 1억씩 더 기부하면 어떠냐”며 ‘1+1 나눔’을 이야기하고 있단다. 경북 지역을 위한 다양한 사업들도 함께 논의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이 대표는 주변의 시선 때문에 기부를 망설이는 이들에게 조심스레 한 마디를 던졌다.

“아너 1000호가 나올 정도로 이젠 기부에 대한 인식이 많이 달라졌어요. 기부자를 박수치는 문화가 될 때까지 기다릴 게 아니라, 우리가 박수칠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가야 하지 않을까요? 진심은 통하기 마련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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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처럼 가난 때문에 어려움 겪는 사람 없길

박창호 서울아스콘 대표

지난 18일 인천시 서구 석남동 사무실에서 만난 박창호(44) 서울아스콘 대표는 ‘불도저’ 같았다. 28세 이른 나이에 단돈 1000만원, 장비 한 대로 시작한 아스콘(아스팔트와 콘크리의 혼합물) 사업은 지난해 매출 1000억원대를 돌파했고 내년 초 상장을 앞두고 있다. 그는 건설 분야에서 보기 드문 ‘자수성가 사업가’로 통하는 동시에 ‘고액 기부자’이자 ‘나눔 전도사’로도 유명하다. 모두 지독한 가난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였다.
“가난하지 않을 때가 없었던 것 같아요.”

학창 시절 대부분을 판자촌에서 보낸 박 대표는 군대 제대 후 곧장 공사판에 뛰어들었다. 다니던 회사가 부도 위기에 놓인 2000년, 겁 없이 회사를 인수했지만 6년 동안 고전의 연속이었다. 도로 포장, 건설업 등 조금씩 사업을 늘려가며 안정될 무렵, 보증을 선 동업자가 부도를 내고 해외로 도주하며 2010년 최대의 위기를 맞기도 했다. 2년 가까이 거래처도, 은행도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다. “지금은 아무리 힘들어도 ‘그때보다 어려울까’ 싶은 생각에 버틸 정도예요. ‘사업’만이 아니라 ‘인생’을 배웠죠.”

어려운 시절, 그의 멘토이자 버팀목이 돼준 홍순탁 금강산업㈜ 회장의 영향으로 기부를 시작했단다. 홍 회장은 1960년대 인천에서 운수업을 시작한 1세대 지역 사업가이자, 지난해엔 장학재단까지 설립한 나눔의 ‘큰손’이다.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을 보면 ‘자신 같다’며 도우셨죠. 자연스레 저도 다신 돌아가고 싶지 않은 내 가난한 시절을 누군가가 겪게 해선 안 된다는 생각에 나눔을 시작했어요.”

이후 지역 병원과 장학재단에 꾸준히 소액 기부를 해온 그는 지난해 ‘터닝포인트’를 맞았다. 동국대 최고경영자 과정을 듣는 동기들과 함께 아너에 가입하면서다. 최근엔 ‘나눔의 맛’을 전하고자 지인들에게 기부를 권유하고 있다. “나누고자 하는 마음은 있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거나 주저하는 사람들이 있을 거예요. 나눔이 뭔지 몰랐던 제게 멘토가 알려줬듯, 이젠 제가 가르쳐줘야죠.” 벌써 그의 회사 임원 한 명도 올해 아너 가입을 약정했다.

고액 기부 사실이 알려지면서 요즘 본의 아니게 ‘유명세’를 치른다는 그는 “집에서 ‘멋진 아빠’로 통한다”면서 멋쩍은 웃음을 보였다.”아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걸 느끼게 해준 것 같아요. 열심히 사업해서 회사를 키우고, 더 많이 기부를 해야겠다는 목표가 생겼습니다. 이미 앞서 기부해오신 ‘나눔 선배’들의 바통을 이어받아 이젠 저희 3040이 우리 사회의 큰 보탬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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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많은 사람’이라는 선입견에 처음엔 망설였죠

채규희 365mc 비만클리닉 원장

두 아이를 둔 엄마이자 비만치료 전문가인 채규희(42) 365mc 비만클리닉 노원점 대표원장은 지난 11년간 일에만 몰두하며 살았다. 자신을 위해 쏟은 시간은 출산 휴가 6개월이 전부. 열한 살 된 큰 딸은 그녀 얼굴만 보면 ‘엄마, 오늘은 언제 와?’라고 묻는다. 채 원장이 지금까지 지켜본 환자 숫자는 총 1만6000명. 그녀는 지난해 10월, 시어머님이 돌아가신 후 아너 회원이 되기로 마음을 먹었다고 했다.

“시어머님 돌아가시고 나서 남편도, 저도 너무 아프더라고요. 지병으로 병원에 오래 계시다가 돌아가셨는데, 남편이 보여준 어머님에 대한 헌신과 사랑이 자연스레 저에게도 물들었나 봐요. 제가 주변 분들에게 받은 사랑을 다시 돌려 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마음먹은 것을 행동으로 옮기기까지 고민도 많았다. ‘고액기부자는 모두 경제적으로 넉넉한 사람’ ‘가진 것을 과시하려는 사람’이라는 선입견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이런 시선은 기부자뿐만 아니라 자녀 등 다른 가족들에게도 옮겨간다. 실제로 주변에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으로 가입하려다 이 같은 이유로 가입하지 않은 지인도 있다고 한다. 채규희 원장이 고민하고 있을 때, 그를 적극적으로 지지한 것은 남편이었다.

“선뜻 기부할 용기가 나지 않았을 때 남편이 이런 말을 해준 적이 있어요. ‘우리가 매일 기부한다고 생각하고 그 돈을 하루치로 나눠보면 그리 많은 돈도 아니니 할 수 있다.’ 남편의 말에 용기를 냈고,기부를 조금 쉽게 생각하게 됐어요.”

기부를 실행에 옮긴 지금, 채 원장은 고액기부자에 대한 주변의 잘못된 시선이 단지 오해일 뿐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오히려 그녀의 모습을 보고 고액기부를 결심하게 된 동료도 있다.

“실제로 주변에 기부자가 생기니까 평소에 기부를 생각만 하고 계시던 분들도 좀 더 구체적으로 관심을 갖게 된 것 같아요.”

채규희 원장이 내놓은 기부금은 1년 365일 기초체온 36.5도를 유지할 수 있게 하자는 취지에서 이름 붙은 ‘365일 36.5℃’ 프로젝트에 사용됐다. 서울 지역아동센터 173곳과 444가정에 전달돼, 약 1500명의 이웃이 따뜻한 겨울을 선물 받았다.

권보람·정유진·강미애·오민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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