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7일(화)

[Cover Story] 기자, 자원봉사자가 되다

[Cover Story] 더나은미래 기자 5人5色 봉사현장

2015년 한 해가 저물고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1년 365일 중 기억에 남는 ‘하루’는 언제인가요. 더나은미래는 연말을 맞이해 기자 5인방이 봉사활동 현장을 방문했습니다. 기자가 아니라 자원봉사자로 말입니다. 얼마 남지 않은 올해, ‘남을 위한 하루’를 만들어보는 것은 어떨까요. 남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도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선물이 될 것입니다. 편집자 주


 

#1 정유진 기자, 독거노인 돕기 현장을 가다 “한우도 뽁뽁이도 좋지만… 이렇게 찾아와서 말벗 돼주는 게 제일 좋아”

비닐하우스에 사는 독거 어르신을 위해 전기배선 시공하는 봉사자의 모습 /도촌종합사회복지관 제공
비닐하우스에 사는 독거 어르신을 위해 전기배선 시공하는 봉사자의 모습 /도촌종합사회복지관 제공

“지난 10월 31일 개최한 자선 바자회로 수익금 650만원이 모였습니다. 시니어스쿨 ‘동고동락’ 기금으로도 350만원이 모였고요. 이렇게 모인 1000만원을 어떻게 쓸까 고민하다가, 기초생활수급자 및 차상위계층 100가구에 한우 사골세트를 드리기로 했어요. 최고 등급인 투플러스(1++)로만 준비했습니다. 여러분 오늘 봉사하고 나면 며칠 잠 못 잘 거예요. 엄청 무겁습니다(웃음).” 이종민 도촌종합사회복지관장의 말에 봉사자들의 시선이 스티로폼 상자에 쏠렸다. 사골 국물이 담긴 1.5ℓ 페트병 5개, 어른 머리통만 한 한우 살코기, 양념용 파가 가득 담겨 있었다. 지난 15일, 경기도 성남시 도촌종합사회복지관에서 진행하는 ‘독거노인 따뜻한 겨울나기’ 현장. 홀로 사는 지역 어르신 가정을 방문해 쌀·한우 사골세트·온수매트 등 겨울나기 물품을 전달하고, 외풍이 심한 창문에 ‘뽁뽁이’를 붙이는 자원봉사 일일체험을 했다. 오리엔테이션은 오전 10시부터 시작됐다. 세미나실은 벌써부터 시끌벅적했다. 결혼이주여성으로만 구성된 봉사동아리 ‘다모’, 5년 차 성남시 봉사단체 ‘천사의 손’, 성남시 야탑동에 위치한 특수학교 ‘성은학교’ 교사 및 학생 등 20여 명의 자원봉사자가 한자리에 모였다. 파란색 봉사 조끼를 걸치고 쭈뼛쭈뼛 빈자리에 앉았다. 낑낑대며 스티로폼 상자를 하나씩 자리로 옮겨오자, 테이블 위에 놓인 크리스마스카드가 눈에 들어왔다. 독거노인분들께 직접 편지를 쓰는 시간이라고 했다. “뭐라고 적어요?” 맞은편에 앉은 정희선(가명·20·발달장애3급)씨가 기자에게 기습 질문을 던졌다. “항상 건강하세요, 한우 사골로 따뜻한 겨울 보내세요, 어때요?” 기자의 말에 희선씨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재미없어요.” 그러곤 선물 상자 그림을 정성껏 그려넣었다. 희선씨는 10월 바자회 때 특수학교 친구들과 직접 만든 빵, 에코백, 커피 등을 판매했다고 했다. 5시간 동안 10㎏짜리 한우 사골세트와 단열 에어캡을 들고 도촌동 임대아파트를 돌았다. 기자에게 할당된 독거노인 가구는 총 5곳. 급한 대로 노끈을 빌려 창문 크기를 재고, 뽁뽁이를 재단했다. “설거지할 때 쓰는 퐁퐁 있죠? 그걸 물에 일정 비율 희석시켜서 분무기로 뿌리면, 뽁뽁이가 창문에 단단하게 달라붙어 여름까지도 거뜬해요.” 성남시 봉사단체 ‘천사의 손’ 회원 양봉희(56)씨가 팁(tip)을 알려줬다. 봉사 구력(球歷)만 10년이 넘다 보니, 단열 에어캡 시공은 그야말로 식은 죽 먹기란다. 의자를 딛고 올라가 분무기를 뿌리고, 뽁뽁이를 창문에 덧대었다. 쉽게 보였는데 자꾸만 미끄러진다. 보다 못한 양씨가 서툰 기자를 위해 스파르타식 교육에 들어갔다. “밑으로 흘러내릴 정도로 충분히 뿌려야지. 그 정도로는 안 돼. 아니 아니~모서리에 조금 공간을 두고 붙여요. 좀 더 왼쪽으로, 양쪽 비율 맞춰서!” 등줄기로 식은땀이 흘렀다. 몇 차례 혼나면서 배운 덕분일까. 시간이 지날수록 손놀림에 제법 자신이 붙었다. 네 번째로 만난 임희은(가명·80) 할머니는 “창문을 막아도 벽으로도 바람이 들어온다”면서 안방 벽면에도 뽁뽁이 시공을 부탁했다. 압정을 꺼내 벽면에 에어캡을 붙이고 나니 팔이 후들거렸다. 임 할머니는 “한우도 좋고, 뽁뽁이도 좋지만 이렇게 젊은이들이 와서 말벗 돼주는 게 제일 좋다”고 했다. “얼마 전부터 망막에 이상이 생겨서 앞이 선명하게 보이질 않아. 이혼해서 남편도 없고, 아들은 서울에서 택배 기사로 일하는데 바빠서 얼굴 보기도 힘들고. 가족도 아닌 늙은이를 이렇게 챙겨주는 게 여간 고마운 일이 아니야.” 맞잡은 임 할머니의 손은 투박하지만 따뜻했다. 앙상한 나무들 사이로 시골 풍경이 들어섰다. 개천 너머로 검은색 비닐하우스가 눈에 들어왔다. 안천희(가명·79) 할아버지 댁이었다. 4평 남짓한 방 한 칸의 공기는 냉랭했다. “안 와도 된다니깐 번거롭게 왜 또 왔어.” 안 할아버지는 타박하듯 사회복지사와 봉사자를 맞았다. 5년 전 교통사고를 당한 안 할아버지는 20일간 깨어나질 못했다. 대수술 끝에 생사를 오고가다 겨우 눈을 떴지만, 남은 건 지체장애와 어마어마한 병원비뿐이었다. 아내와 이혼한 뒤 갈 곳 없이 떠돌다가 지인의 도움으로 이곳 비닐하우스에서 생활을 시작했다. 전기 배급이 불안정해 난방은 물론 물조차 나오질 않는다. “오른쪽으로 전기가 공급될 수 있게 선을 바꿔볼게요.” 자원봉사자로 동행한 고태영 하나전력㈜ 대리가 얽혀 있는 전기선을 가리키며 말했다. 도촌종합사회복지관이 지역의 전기시공 업체에 도움을 요청한 것. 공사가 끝날 때까지 기자는 1시간가량 할아버지의 말벗 역할을 했다. 안 할아버지는 “죽지 못해 산다”고 했다. 누군가에게 짐이 되는 것이 싫어 자녀와도 연락을 끊은 지 4년이 넘었다. 폐질환 때문에 그는 말하는 동안에도 숨을 가쁘게 내쉬었다. “여기 누워 있으면 마음이 우울해져. 누구에게도 폐 끼치지 않고 조용히 눈감는 게 소원이야.” 경계심이 가득하던 안 할아버지도 시간이 지나자 차츰 속 이야기를 꺼냈다. 웃는 횟수도 잦아졌다. 한우 사골 조리법을 상세히 설명드리자 “이번 겨울은 배부르겠네”라며 손을 꼭 잡아주셨다. 돌아오는 길. 웃을 때마다 생기던 안 할아버지의 눈가 주름이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았다. 올해 집계된 독거노인은 총 138만명. 홀로 사는 어르신 2만명 중 73.4%가 혹한기 지원을 필요로 하고 있다(2014 독거노인종합지원센터 실태조사). 누군가의 벗이 되어주는 것. 이는 ‘무엇을’ ‘어떻게’ 봉사하는지를 떠나, 더불어 사는 세상을 위해 우리 모두에게 꼭 필요한 덕목이란 생각이 들었다. ‘독거노인의 따뜻한 겨울나기’를 위한 봉사는 전국의 모든 종합사회복지관 및 노인복지관을 통해 참여할 수 있다.

#2 김경하 기자, 집 고치기 현장서 삽질하다 잿더미 얼어붙은 화재 현장… 오전 작업 동안 치운 쓰레기만 40㎏ 마대자루 100개를 채웠다

기자(오른쪽 위)가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화재 전소물을 처리하는 현장 /해비타트경기북부지회 제공
기자(오른쪽 위)가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화재 전소물을 처리하는 현장 /해비타트경기북부지회 제공

화재 현장은 처참했다. 방이 4개 딸린 집이 있었다고는 상상할 수가 없었다. 까맣게 쌓인 잿더미만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 집터의 양옆으로 설치된 비닐하우스 8동도 뼈대만 얼기설기 남아 있었다. 운반용 화물차 1대와 중고로 구매한 차도 모두 불타버렸다. 화재 피해자는 화훼농장을 운영하던 김상헌(45)씨. 네 아이의 아빠이자 여섯 식구의 가장인 김씨는 생업(生業)이 순식간에 무너져버려 막노동판을 전전해야만 했다. 천재지변으로 인한 피해가 아니기 때문에 보험 보상도 받을 수 없다. “불 잡을 시간이 없었어요. 불과 5분 사이에 다 탔으니까. 다행히 낮이라 애가 안 다쳐서 다행이에요. 원래는 불나고 나서 지낼 곳이 마땅치 않아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 있었는데 지금은 인근 마을회관에서 생활하고 있어요. 솔직히 막막하긴 하지만 그래도 힘을 내야죠.” 지난 12일, 기자는 해비타트의 ‘희망의 집 고치기’ 개인 봉사자로 참여했다. 봉사 장소는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의 김씨네 농가. 이날 자원봉사자의 임무는 집터에 수북하게 쌓인 화재 전소물을 다 치우는 것. 집을 짓기 전, 필수 작업이다. “군인들이 도와줘서 이만큼 남은 거예요. 처음엔 진짜 엄두도 안 났어요.” 이기준 해비타트 경기북부지회 건축팀장이 목공용 장갑을 건네주며 말했다. 화재 분진 때문에 우비와 분진 마스크도 착용했다. “탕! 탕!” 첫 삽을 뜨는데, 소리가 달랐다. 이미 잿더미가 얼어붙어 버린 것. “어, 이거 장난 아닌데요.” 삽으로 힘껏 내려쳤지만 소용없었다. 김상헌씨가 곡괭이와 50㎝ 길이의 망치를 들고 왔다. 곡괭이질을 두어 번 하자 ‘쩍’하며 잿더미가 조각이 났다. 기자도 삽으로, 혹은 손으로 쓰레기를 퍼담았다. “여긴 아기 방인가 봐요.” 잿더미 속에서 반이 타버린 초등학교 역사 교과서가 한 권 나왔다. 이날 개인 자원봉사자로 참여한 사람은 총 11명. 이 중 9명이 모두 ‘건장한 남자’였기 때문일까. 열혈 자원봉사자들의 ‘삽질’에 잿더미와 쓰레기를 퍼담은 노란색 마대자루가 순식간에 쌓여갔다. 오전 작업만으로 40㎏짜리 마대자루 100개가 쓰레기로 가득 찼다. 이동준(30·가명)씨는 “연말이기도 하고, 자원봉사 활동을 해보고 싶어 신청했다”면서 “개인적으로 복잡한 일이 있어 ‘몸 쓰는 일’을 하고 싶었는데 잘 온 거 같다”고 했다. 경기도 평촌에서 아들과 함께 자원봉사 현장을 찾은 안방환(49)씨는 “아들과 같이 할 수 있는 봉사활동을 찾다가 집 고치기 봉사를 알게 됐다”면서 “아들이 건축학과를 지망하고 있어 더 의미가 크다”고 했다. 안씨는 올해 초에 이어 이날이 두 번째 집 고치기 봉사다. 오후에는 땅에 눌어붙은 장판, 내장 바닥 파이프 등 고난도의 정리 작업이 남아 있었다. 가장 큰 난관은 거대한 검은색 괴암(怪巖)처럼 보이는 전소물. “이건 대형 화분 모종판이 불에 녹아서 눌어붙어버린 거예요.” 김상헌씨의 말에 남자 자원봉사자들이 일제히 모여들었다. 성인 남자 5명이 힘을 써도 끄떡하지 않았다. 두 고등학생 자원봉사자가 빈 공간에 돌을 하나, 둘 괴면서 지렛대 원리로 화분 모종판을 들어올렸다. 안재영(17·평촌고2)군은 “오늘 작업은 힘들었지만 하고 싶은 일도 간접적으로 경험해보고, 새로운 사람들도 만나서 좋다”면서 “이번 겨울 방학에도 꾸준히 봉사활동에 참여할 것”이라고 했다. 오후 2시 30분, 쓰레기로 쌓여 있던 집터에 평평한 바닥이 드러났다. 한상국 해비타트 경기북부지회 행정팀장은 “지난주 봉사에는 4명이서 정화조 작업을 하느라 5시까지 꼬박 일을 하며 고생했다”면서 “오늘은 이제 더 이상 자원봉사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고 했다. 이날 기자와 짝을 이뤄 자원봉사 활동을 했던 김동희(31)씨는 “첫 삽을 뜨는데 땅이 딱딱하게 얼어 있어 손이 얼얼했다”면서 “봉사자들과 함께 작은 도움을 보태 한 가족에게 희망을 줄 수 있어 보람된 하루였다”고 말했다. 해비타트의 ‘희망의 집 고치기’는 연중 매주 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진행되며, 일요일부터 월요일 현장은 없다. 개인 자원봉사자는 홈페이지 내 봉사달력(www.habitat.or.kr)에서 지회별 모집 현황을 확인한 후 신청하면 되고, 단체 참가자는 참가 희망일 1개월 전 본부나 해당 지회의 담당자와 일정을 조율해야 한다. 참가비는 식비와 간식비, 보험 등이 포함된 2만원. 또한 미성년자는 만 16세 이상 고등학생부터 건축 봉사에 참여 가능하나, 성인이 현장에 동반해야 한다.

#3 권보람 기자, 밥퍼 배식 봉사에 나서다 “평생 다듬은 것보다 더 많은 시금치를 오늘 다듬은 것 같아요”

기자(사진 오른쪽 검은색 옷)가 배식에 쓰일 시금치를 다듬는 모습 /밥퍼나눔운동본부 제공
기자(사진 오른쪽 검은색 옷)가 배식에 쓰일 시금치를 다듬는 모습 /밥퍼나눔운동본부 제공

지난 11일 아침 9시, 봉사자 집합시간에 맞춰 ‘밥퍼나눔운동본부(이하 밥퍼)’에 들어서자 쌀 익는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2층 강당으로 올라가자 이지현(40) 밥퍼나눔운동본부장이 30여명의 봉사자를 반갑게 맞았다. “밥퍼 봉사 소문은 들어보셨죠? 하지만 긴장하지 마세요. 오늘의 식재료는 그렇게 어렵지 않습니다. 지난 토요일에 배추 100포기가 들어왔는데 그날 오신 봉사자 분들이 김장을 다 해주고 가셨거든요(웃음). 자, ‘내가 칼질은 자신 있다!’ 하시는 분은 바로바로 손을 들어주십시오. 먼저 시금치 다듬기 3명! 감자 깎기 2명!” 기자와 함께 서툰 칼질로 재료를 다듬던 신수영(가명·35)씨는 “오늘 평생 다듬어본 시금치보다 더 많은 시금치를 다듬은 것 같아요”라고 미소를 지었다. 내일 식단을 책임질 재료 다듬기가 끝난 오전 11시, 본격적인 배식이 시작됐다. 이날의 식단은 소고기 미역국과 오징어 야채볶음, 숙주미나리깨장무침, 김치. ‘담기’를 맡은 봉사자들이 밥과 국·반찬을 식판에 옮겨 담으면,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을 위해 나머지 봉사자들이 완성된 식판을 차례차례 식탁 위로 나르는 ‘분업 시스템’으로 배식이 진행됐다. 하루 800여명이 이곳에서 밥을 먹는다. 식사가 끝나고 반납되는 식기를 바로 씻어서 다시 밥과 국을 담아야 다음 사람을 대접할 수 있다. 배식이 진행되는 1시간 30분 동안 끊임없이 같은 일을 반복하는 이유다. 기자가 맡은 구역은 식사를 나눠주는 배식구. 완성된 식판을 받아 나르다보니 어느새 시계바늘이 12시 30분을 가리켰다. 마지막 어르신까지 배식을 마무리 한 뒤 봉사자들에게도 꿀맛 같은 점심식사가 주어졌다. 밥퍼 봉사활동의 대미는 대청소. 빗자루와 마포걸레, 청소용 와이퍼를 총동원해 부엌부터 식당까지 쓸고 닦으니 어느새 이마가 땀으로 흥건해졌다. 배식하는 내내 노숙인들의 얼굴을 살피며 술은 마시지 않았는지, 건강에 이상은 없는지 묻던 이영순(가명·74)씨는 “처음 온 것 같은데 고생이 많았다”며 기자의 어깨를 두드렸다. “나도 여기 봉사 12년째 다니는데 여간 힘든 게 아냐. 그래도 어떡하겠어? 내가 39세에 혼자되고 자식 셋 키우는 동안 배곯는 설움을 겪어봤는데…. 어차피 죽으면 사라질 몸이니 나와서 이거라도 해야지. 그러니까 딸내미도 자주 와서 좀 도와줘 알았지?(웃음)” 서울에서 가장 많은 인원에게 점심을 먹이는 밥퍼가 지금껏 탈 없이 운영될 수 있었던 것은 자원봉사자의 힘이다. 결혼기념일마다 기부금 365만원을 들고 찾아오는 션·정혜영 부부,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으로 가마솥 25개를 홀로 닦고 간 배우 차인표, 직접 웍(중식 프라이팬)을 가져와 1000인분의 자장면 ‘특식’을 선사하는 중화요리사, 친언니와 함께 봉사활동을 왔다가 1000만원의 기부금까지 내고 간 국제변호사, 서울로 신혼여행을 와서 밥퍼 봉사만 하다 간 군산 출신 신혼부부까지. 27년 동안 거쳐간 봉사자 30만명의 사연도 각양각색이다. “밥퍼에는 두 가지 기적이 있습니다. 식중독 사고가 한 번도 없었다는 것, 식재료가 없어서 급식을 멈춘 적이 한 번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하루 평균 37명의 봉사자와 이름 없는 이웃들이 약속해준 내일이 만든 기적이죠.”(이지현 본부장) 하지만 고정적으로 밥퍼를 찾는 봉사자는 하루 평균 4~5인에 불과하다. 1개월 단위로 봉사 스케줄을 미리 짜두고 있지만, 고정 인원이 아니다보니 불안하다고 한다. 갑자기 약속을 취소하는 ‘노 쇼(No Show)’ 봉사자들도 밥퍼의 운영을 불안하게 하는 요소다. 반면 “필요할 때면 언제든 SOS 치라”는 봉사자도 있다. 올해로 8년째, 매일같이 밥퍼에 출석 도장을 찍고 있는 김동열(53)씨도 그중 한사람이다. “서울메트로 직원 봉사로 처음 밥퍼에 왔는데, 이제는 아들과 딸까지 온 가족이 밥퍼에서 봉사하고 있습니다. 직업이 기관사다보니 야간근무를 할 때는 새벽 5시에 가서 오전까지만 하는 날도 있어요. 처음에는 피곤하기도 했는데 어르신들을 뵙고 나니 부모님 생각이 나서 안 나갈 수가 없더라고요. 밥 한 주걱 퍼 드리고 어르신들이랑 눈 마주치며 웃을 때면 하루가 그렇게 보람찰 수 없어요.” 밥퍼 식당봉사를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공식 홈페이지(www.baffor.org)를 통해 신청할 수 있다. 5인 이상 단체 봉사를 하고 싶은 경우 홈페이지에서 ‘단체봉사신청서’를 내려받아 담당자 이메일(babfor@dail.org)로 보내면 된다.

#4 강미애 기자, 구세군 자선냄비 일일 봉사자 된 날 동전 몇 개 기부하는 게 부끄러워 뛰어가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적은 액수도 소중하고 힘이 됐다

수많은 사람이 오고 갔지만, 구세군 냄비 참여 수는 일부에 불과했다. /강미애 더나은미래 기자
수많은 사람이 오고 갔지만, 구세군 냄비 참여 수는 일부에 불과했다. /강미애 더나은미래 기자

“며칠 동안 온몸이 아프실 거예요. 구세군 사관학생들은 하루도 쉬지 않고 한 달 내내 뛰어서, 아플 틈이 없습니다(웃음).” 지난 11일 오후, 박연영 구세군 사관학생과 한 조가 돼 자리를 잡은 곳은 명동 우리은행 지점 앞 사거리. 1928년 구세군 자선냄비가 처음 시작된 곳이다. 때로 익명의 고액 기부자들이 일부러 찾아와 하얀 봉투를 넣고 가기도 하는 ‘자선냄비의 메카’이기도 하다. 이상근 구세군 자선냄비 명동팀장은 “명동은 구세군의 ‘상징’과도 같다”며 “이제 한글 간판을 찾기 힘들 정도로 외국인 관광객 수가 더 많아 모금이 과거에 비해 쉽지 않지만, 활발한 활동을 해 달라”고 당부했다. 뚝딱뚝딱 모금함을 설치하고 오후 1시, 기자도 빨간 구세군 점퍼를 입고 종을 손에 들었다. 종소리를 내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반동을 크게 줘야 종소리가 짧게 끈기지 않고 멀리까지 퍼져요.” 박연영 사관생이 노하우를 알려줬다. 종을 어깨 위까지 높이 올렸다 팔을 뒤쪽까지 쭉 뻗고 다시 들어 올리니, 그제야 종소리에 깊은 울림이 실렸다. 하지만 1㎏ 가까이 되는 종으로 수십 번 동작을 반복하자 팔에 고통이 심했다. 맨손으로 했다가 반나절 만에 손에 물집도 잡혔다. 인파 속에서 마이크를 잡고 이야기를 하려니, 목소리는 모기만 해지고 외운 스크립트도 잘 떠오르지 않았다. 자신감이 점점 줄어들 때쯤, 30여분 만에 한두 사람이 자선냄비에 돈을 넣었고 이내 여러 기부 손길이 이어졌다. 대전에서 온 고봉섭(43)·고석민(12) 부자는 나란히 모금에 참여했다. 고씨는 “삼대(三代)가 구세군 자선냄비에 참여하고 있다”며 “부모님이 적은 돈이라도 항상 기부를 하시며 ‘나눔’을 가르쳐주셨는데, 자식이 생기니 나도 자연스럽게 알려주게 되더라”고 말했다. 인천에 사는 윤진영(47)씨는 구세군 종소리가 들려 일부러 찾아왔다고 했다. 윤씨는 20대 때부터 한 해도 자선냄비 참여를 거른 적이 없다. “통장에서 기부금이 자동으로 빠져나갈 때와 달리, ‘내가 돕고 있다’는 느낌이 확실히 듭니다. 그 ‘맛’에 계속할 수밖에 없어요(웃음).” 동전 몇 개만 기부하는 것이 부끄러워 돈을 넣자마자 뛰어가는 이들도 있었지만, 추위와 피로 속에서는 100원도 소중하고 힘이 됐다. 직접 참여하는 외국인 관광객들도 있었다. 히로시마에서 왔다는 쓰네시 신스케(53)씨에게 기부 이유를 묻자, “어려운 사람을 돕는 데 어느 나라 사람이든 돕는 것이 당연하다”고 했다. 응원의 뜻으로 악수를 해주기도 했다. 저녁이 되자 찬바람이 거세져, 체감 온도가 영하로 떨어졌다. 박연영 사관생은 “지난해에는 한파가 계속돼 핫팩으로 온몸을 도배하기도 했다”고 웃으며 따뜻한 음료를 건넸다. 나머지 음료를 들고 주위 노점 상인과 노숙인들을 찾아다녔다. “할아버지, 오늘은 딸기 많이 파셨네요.” 익숙한 인사였다. 매일 모금을 나오다 보니 어느새 모두 이웃이 됐다며, 거리의 사람들을 한 사람씩 소개했다. “저기 장난감 파는 아저씨 보이죠. 많이 못 파시는데도 꼭 첫 수익은 자선냄비에 넣으세요. 그 옆에 계신 뽑기 장사하시는 할머니는 집에 갈 때 먹으라며 꼭 봉지에 뽑기를 챙겨주시죠. 모두 얼마나 따뜻하신지 몰라요.” 노숙인들의 안부를 묻고 말벗이 돼주는 것도 구세군의 몫이다. 이상근 팀장은 “100여년 전 구세군이 한국에서 시작된 게 노숙자와 부랑아들을 돕기 위해서였으니, 그냥 지나칠 수 없다”며 “이야기를 옆에서 들어주기만 해도 좋아하신다”고 했다. 저녁 8시까지 이어진 명동 우리은행 앞에서의 모금활동에 참여한 시민은 약 100여명, 총 모금액은 80여만원이었다. 이날 하루 서울 지역에 설치된 95개의 자선냄비에 십시일반 모인 돈은 2700여만원에 달했다.(서울 지역 모금액은 광화문우체국에 모두 모아진 후, 전담자의 입회하에서만 개봉되고, 모금액은 다음 날 공시된다.) 연말연시 반짝 기부이면 어떤가. 시민들은 그렇게 나눔을 처음 시작하기도 하고, 몇 십년간 이어가고도 있었다. 12월 24일에는 자정까지 구세군의 자선냄비 모금활동이 펼쳐진다. 자선냄비 자원봉사 신청은 전화 (02)6364-4281로 하면 된다. 크리스마스 이브, 기자는 또 한 번 명동에서 종소리를 울릴 예정이다.

#5 오민아 기자의 ‘뜨거운’ 연탄 나눔 봉사 현장 “주민들에겐 연탄 한 장이 소중한 난방 에너지‐ 책임감이 가장 중요한 이유죠”

기자(오른쪽)가 집 안으로 연탄을 전달하는 모습 /㈔따뜻한 한반도 사랑의 연탄나눔운동본부 제공
기자(오른쪽)가 집 안으로 연탄을 전달하는 모습 /㈔따뜻한 한반도 사랑의 연탄나눔운동본부 제공

부슬비 내리는 신설동역 1번 출구. 위아래 까만색 운동복을 갖춰 입은 사람들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비바람을 헤치고 온 수상한 ‘까만 츄리닝’ 군단의 정체는 바로 연탄 배달 자원봉사자들. 지난 10일, 시험을 마친 중학생 아들과 엄마, 반차를 내고 온 직장인, 경기도 평택에서 달려온 취업준비생 등 기자를 포함해 21명의 자원봉사자가 이웃들의 따뜻한 겨울을 위해 뭉쳤다. “모두 준비물 챙겨 오셨죠?” 김희진 ㈔따뜻한 한반도 사랑의 연탄나눔운동본부(이하 사랑의 연탄나눔운동본부) 사업팀 차장의 말에 봉사자들이 부스럭거리며 물품을 꺼내 보였다. 연탄 봉사에 앞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복장 갖추기’다. 연탄재가 묻으면 잘 지워지지 않기 때문에 어두운 색의 옷과 연탄재가 손톱에 끼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위생 장갑, 연탄이 미끄러지지 않도록 빨간 목장갑이 필수다. 역 출구에서 큰길을 따라 5분 정도 걸었을까. 골목으로 꺾자 비에 젖지 않도록 비닐에 쌓인 연탄이 모습을 드러냈다. 총 1200장을 5가구에 배달해야 한다. “연탄 봉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책임감’입니다. 연탄 한 장 한 장이 후원금이고 주민분들에게는 소중한 난방 에너지입니다. 연탄을 쌓을 때도 요령이 필요합니다. 피라미드를 쌓듯이 위로 갈수록 좁게, 벽에서 약간 떼어내고 뒤로 쏠리도록 쌓아주세요.” 연탄 두 개를 품에 안자 ‘헉’ 소리가 터져 나왔다. 연탄 1개의 무게는 3.6㎏, 보통 2개씩 옮기니 한 번에 7㎏ 정도다. 생각보다 무거워서 한 번, 무른 재질에 한 번 더 놀랐다. 아기 엉덩이를 받치듯 두 손을 깍지 껴서 받쳐야 하고, 안정감을 위해 몸에 최대한 밀착해 이동한다. 첫 번째 배달할 집까지는 약 50걸음. 채 열 번을 배달하기도 전에 팔에 통증이 시작됐다. 연탄 봉사활동이 세 번째라는 임은비(32·직장인)씨는 “보통은 언덕을 오르는데 오늘은 평지라서 양호한 편”이라고 귀띔했다. 강도가 높기로 유명한 연탄 봉사,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연탄 1장의 가격은 보통 500원에서 550원 선이에요. 하지만 차가 들어올 수 있는지, 나르는 거리가 얼마나 되는지 등 집의 위치와 배달 거리에 따라 가격은 천지차이죠. 계단 하나에 10원씩 추가된다는 말도 있어요. 정릉동의 경우에는 워낙 경사가 심해서 1장에 1000원씩도 해요. 그나마 100장 주문처럼 적은 단위로는 배달 자체도 안 되고요. 그렇다고 몇 백장씩 주문하기에는 주민들의 부담이 너무 크죠.” 김희진 실장이 설명을 덧붙였다. 팔의 통증이 점점 심해질 때쯤, 활짝 열린 대문 사이로 김이 모락모락 나는 주전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봉사자들을 위해 유남식(78), 김연자(55) 부부가 준비한 작은 선물이다.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요. 특별히 줄 수 있는 건 없지만 따끈한 커피 한 잔에 몸 녹이고 마음 녹이고 그랬으면 싶지.” 신설동에 15년째 거주하는 부부는 봉사자들이 올 때마다 손수 커피를 대접한다고 했다. “전기장판은 외풍이 너무 심해. 자다가 화장실 한 번 갈라치면 덜덜 떨면서 가야지. 그런데 연탄을 쓰면 방 안에 온기가 돌아요.” 이날 부부의 집에 배달된 연탄은 총 200장. 앞으로 두 달은 거뜬히 사용할 수 있다. 연탄 봉사가 갖는 매력은 무엇일까. 올해만 6번, 지금까지 20회 이상 연탄 봉사에 참여했다는 ‘연탄 봉사 마니아’ 정종관(46·동작소방서 지방소방장)씨는 “작은 행동으로 인해 이웃들이 따뜻한 겨울을 날 수 있다는 점”을 꼽았다. 시험 기간임에도 봉사에 참여한 강동윤·이우진·민경택(17·노원고 1학년)군은 “많은 시간이 들지도 않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며 “꼭 다시 참여하겠다”고 했다. 김희진 차장은 “연탄을 나르는 것뿐 아니라 식사는 하셨는지, 방은 차지 않은지 이웃의 삶을 들여다보고 끈끈한 정을 나눌 수 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전했다. 봉사활동을 마친 후에는 금액에 상관없이 후원이 이루어진다. 후원금은 다시 이웃들을 위한 연탄 구매에 쓰인다. 한편 연탄봉사는 10월부터 2월까지 이어진다. 팀 단위(15명 이상)일 경우 ㈔사랑의 연탄나눔운동본부 홈페이지에서 봉사 일정표를 참고해 월요일과 마감된 날을 제외하고 원하는 날을 골라 신청할 수 있다. 개인일 경우에는 ‘개인 자원봉사자의 날’ 사전 등록을 해야 한다. 봉사 날짜가 정해지면 신청한 사람들 중 선착순으로 일정이 전달되고, 해당 날짜에 참여할 수 있다. 1월, 2월에는 개인 자원봉사자의 날이 매주 2회씩 진행될 예정이다.

도촌종합사회복지관외_사진_봉사_자원봉사자들_2015 정유진·김경하·권보람·강미애·오민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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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1호 2024.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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