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8일(수)

사회공헌 규모 3조로 늘었지만… 질적으론 10년전과 비슷

전문가 특별 좌담회

지난 10년간 국내 기업의 사회공헌은 어떻게 변화해왔을까. 아름다운재단이 국내 매출액 2000대 기업 400곳의 사회공헌 실태를 분석한 결과, 기업 10곳 중 9곳이 사회공헌을 해봤고, 사회공헌 담당자를 두고 있는 기업이 절반을 넘어섰다. 자선·봉사로 시작된 사회공헌이 3조원 규모로 성장하기까지, 지난 10년간 발견된 양적·질적 변화는 무엇일까. 조선일보 더나은미래와 아름다운재단은 ‘기업 사회공헌 10년, 이대로 괜찮은가’를 주제로, 전문가들과 함께 기업 사회공헌의 향후 10년을 그려보는 특별 좌담회를 열었다. 박란희 더나은미래 편집장의 사회로 열린 이날 좌담회에는 김기룡 플랜엠 대표, 김도영 CSR포럼 대표(SK브로드밴드 사회공헌팀장), 김종대 인하대 경영학과 교수, 김현아 아름다운재단 나눔사업국장, 한동우 강남대 사회복지대학원 교수(가나다순)가 참석했다.

지난 19일, 조선일보 더나은미래와 아름다운재단은 ‘기업 사회공헌 10년, 이대로 괜찮은가’를 주제로 전문가들과 함께 기업 사회공헌의 양적, 질적 성장을 진단하는 특별좌담회를 열었다.
지난 19일, 조선일보 더나은미래와 아름다운재단은 ‘기업 사회공헌 10년, 이대로 괜찮은가’를 주제로 전문가들과 함께 기업 사회공헌의 양적, 질적 성장을 진단하는 특별좌담회를 열었다.

사회=국내 기업 사회공헌의 지난 10년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한동우=기업 사회공헌의 10년치 통계를 분석한 결과 한국 기업의 사회공헌 평균 참여율은 90%, 그중 이듬해에도 사회공헌을 지속하는 기업이 92%로 높게 나타났다. 전반적으로 사회공헌이 늘고 있고, 많은 기업이 참여하는 건 분명하다. 그동안 ‘한국 기업 사회공헌은 대기업 12곳이 한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대기업 편중이 심했는데, 최근 중소기업으로까지 사회공헌이 확대되고 있다. 대기업의 기부금은 매출액이나 당기순이익과 관련성이 높은 반면, 중소기업은 이익과 상관없이 독립적으로 기부를 결정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김기룡=현장에서 느끼기에 사회공헌의 양적 성장은 수치상으로 나타나지만, 질적으론 10년 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사회공헌 테마와 해결하려는 사회문제는 달라졌지만, 프로그램은 비슷하다. 다만, 결식 아동을 돕기 위해 행복도시락, 도너스캠프 등 솔루션이 나왔고 그 후에 정책적으로 바우처 제도가 실시된 사례에서도 보듯, 기업 사회공헌이 다문화, 사회적기업, 교육 등 시대 변화에 맞게 대응하려는 노력은 있었다고 생각한다.

김도영=지난 10년은 기업이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 어떤 방식으로 참여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다양한 실험 과정이었다. 10년 전에는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지원자였다면, 이제는 기업가 정신의 근본 속성과 방법론을 사회문제 해결에 접목하려고 시도한다. 대표적인 게 사회적기업이다. 사회공헌 개념도 복지 영역 지원을 넘어 CSR(기업의 사회적책임)로 확대되고 있다.

김현아=비영리단체 입장에서도 기업 사회공헌을 비영리 활동의 재정적 원천으로 볼 것이냐, 사회문제를 함께 해결하는 파트너로 볼 것이냐를 두고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기업 중엔 ‘A단체는 이렇게 되는데, 너희는 왜 안 되느냐’며 비교하거나, 무리한 요구를 하는 곳도 많다. 기업과 NPO 간의 파트너십 이슈를 분석할 자료가 충분치 않았던 것도 문제다.

사회=3조원까지 증가하던 사회공헌 규모가 2012년을 기점으로 2년 연속 감소하고 있다(2012년 3조2534억, 2013년 2조7727억원, 2014년 2조6708억원). 최근 사회공헌 전담 조직 규모가 축소되거나, 사회공헌의 효과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기업도 많다. 이유가 무엇일까.

김종대=기업 사회공헌의 효과성과 접목되는 심리학적 개념이 바로 ‘귀인이론(歸因理論)’이다. 사람들은 누군가의 행동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단 그렇게 행동한 이유를 찾는다. 많은 기업이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후 대대적으로 기부나 사회공헌을 하는데, 전 세계 학자들 연구에 의하면 이런 경우 오히려 부정적인 결과를 나타내고 있다. 기업이 본래 해야 하는 것은 윤리적, 도덕적인 방법으로 이익을 창출하고, 그 과정에서 소셜밸류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기업의 사회적책임(CSR)은 미뤄두고 사회공헌으로 이미지 개선 효과를 바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고, 지속 가능하지도 않다. CSR로 전략적 혁신을 만들어내려면, 듀폰, GE처럼 기업에 CSR을 전담하는 ‘C레벨(최고경영진)’ 전략가를 두어야 한다.

미상_사진_기업사회공헌_특별좌담회참석자2_2015

한동우=협력업체와의 동반성장, 윤리경영, 환경친화경영 등 CSR을 이행하기 어렵다 보니 손쉬운 출구로 기부금을 찾는 기업이 많다. 기업의 책임과 기업가의 책임을 혼동하는 것도 큰 문제다. 상당수 기업 담당자가 록펠러, 카네기, 빌 앤드 멀린다 게이츠 재단 등 미국 유명 재단을 기업 재단으로 오해한다. 그렇지 않다. 모두 기업가가 개인적으로 세운 재단이다. 최근 벌어진 몇몇 대기업 사태 모두 소비자들은 기업의 비윤리성이 아니라 기업가의 도덕성을 꾸짖고 있다. 기업가 개인의 이슈를 기업 돈으로 해결하려 하니 주주, 종업원, 소비자 모두에게 외면받는 것이다.

김도영=모든 책임을 기업에만 돌리는 것은 극단적인 것 같다. 사실 기업이 기부금을 내고 사회공헌을 하는 것은 주요 이해관계자의 요청이나 사회적 압력에 의한 경우도 많다. 기업 역시 사회공헌 예산 범위를 정해두고, 이를 효과적으로 사용할 방법을 끊임없이 고민해왔다. 그렇게 찾은 해답이 소셜임팩트 창출이고, ‘체인지메이커(Change Maker)’ 양성인 것 같다. 최근 CSV(Creating Shared Value, 공유 가치 창출)가 회자되는 이유도 예전에 없던 사회적 가치와 시장 메커니즘을 접목시킬 방법을 찾는 고민에서 비롯됐다고 본다.

김종대=CSV는 전략적 CSR의 한 사례에 불과하다. 정확히 말하면 네슬레와 마이클 포터가 만나서 만들어낸 하나의 성공 사례에 CSV란 이름을 붙인 것이다. 한동안 CSR과 CSV의 개념에 대한 논쟁이 많았지만, 이젠 CSV에 환상을 갖는 기업은 거의 없는 것 같다. 물론 네슬레의 CSV 모델은 정말 훌륭하다. 우리도 사회적가치를 만들어내는 성공 사례가 많아지길 바란다. 다만 ‘CSR=사회공헌’이란 잘못된 인식이 지속돼온 것은 큰 문제다. 외국엔 사회공헌이란 용어가 없다. 사회공헌은 CSR에 포함된 아주 작은 개념이다. 기업이 진짜 할 일은 CSR인데, 그동안 사회공헌이란 좁은 울타리에 가두고 있었다. (CSR은 지배구조·공정거래·인권·환경·노동관행·소비자·지역사회 등 기업을 둘러싼 다양한 이해관계자를 고려해 기업이 지켜야 하는 사회적책임을 일컫는 반면, 사회공헌은 기업이 벌어들인 수익의 일부를 지역사회를 위해 되돌려주는 활동이다.)

사회=사회공헌의 장애 요인을 묻는 설문마다 ‘법 제도 미흡’과 ‘정부 및 지자체 지원 부족’이 1위로 꼽힌다. 정부 및 지자체의 역할이 사회공헌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김기룡=사회공헌 지출 비용이 3조원이라고 하지만, 정부 및 지자체에서 요구하는 ‘준조세’ 형태의 기부를 제외하면 남는 예산은 얼마 안 된다. 실제로 100억원 단위 사회공헌 프로젝트를 컨설팅하는 중에 정부, 지자체에 배정된 돈이 계속 빠져나가다 보니 10%도 안 남더라. 그럼 중장기 전략과 임팩트를 어떻게 만들겠나. 앞에선 기업에 자율성을 주고 법인세를 높이지 않는다고 하고, 뒤로 뜯어가니 기업 입장에선 경영도 힘들고 사회공헌도 힘든 것이다.

한동우=실제로 담당자들 만나보면 사회공헌과 관련한 법제도를 아예 모르는 경우가 많다. 정부에 우호적인 제도를 만들어달라는 답변은 기업으로부터 학습된 답변인 것 같다. 기업 기부금의 대부분이 정부, 지자체로 들어가다보니 실제 사회공헌 예산은 5% 내외인 경우가 많다. 그만큼 우리나라는 시민들의 요구보다 정부의 압력이 훨씬 강하다. 전체의 불과 5%의 사회공헌 예산으로 기업의 이미지와 명성을 높이려는 것은 난센스다.

김도영=기업의 자율성을 높여야 사회적 가치를 만들어낼 가능성도 높아진다. 미리 길을 만들어놓고 압력을 넣는 게 아니라, 기업 스스로 기업가 정신을 발휘해 일정 규모의 예산과 자원을 활용해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낼 수 있도록 지지해주는 분위기 조성이 필요하다.

사회=향후 사회공헌 10년을 어떻게 예상하는가. 바람직한 사회공헌을 위해, 정부 기업 시민사회 언론 등이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

김종대=우리나라가 ‘웰빙’이란 단어를 사용하기 시작한 시점에 1인당 국민소득(GNI)이 1만달러를 달성했고, ‘힐링’이란 단어가 대두될 시점에 정확히 2만달러 시대가 열렸다. 올해 3만달러 시대를 눈앞에 두고, ‘셰어(Share, 공유)’, ‘페어(Fair, 공정한· 공평한)’, ‘케어(Care, 돌봄)’가 핵심 키워드가 될 것이라 예상한다. 소득수준과 소비패턴이 변하면 의식수준이 바뀐다. 셰어, 페어, 케어를 중시하는 소비자들은 기업의 지속 가능 경영과 CSR을 모니터링하게 될 것이다.

한동우=기업 사회공헌 분야 중에서 70% 이상이 사회복지에 쏠려 있다. 기업 사회공헌의 질적 성장을 위해서는 전통적인 사회복지뿐만 아니라 문화예술, 보건의료, 국제개발 등 다양한 영역으로 관심을 확장해야 한다. 또한 파트너인 비영리단체의 역량 강화를 지원해야 사회공헌 역시 지속 가능할 수 있다. NPO의 역량이 커질수록 기업도 사회공헌으로 어떤 사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해답을 찾을 수 있다.

김도영=최근 정부, 기업, 시민사회가 함께 CSR 협력 모델을 만들어가는 특성을 보이고 있는데, 매우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본다. 예전에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과 보스턴칼리지에 모델 사례로 실린 SK텔레콤의 사회공헌 사업도 협력 모델을 근간으로 한 것이었다. NPO와 기업이 동반 성장하면서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생태계를 조성하길 기대한다.

김현아=NPO 입장에서도 사업을 통해 임팩트를 내려는 과제들이 있다. 사회공헌 담당자가 성과에 대한 조직 내 압박으로 인해, NPO를 파트너가 아닌 하도급업체로 여길 때가 많다. 갑을관계에서 벗어나 진정한 파트너로서 기업도 NPO도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생태계 조성이 시급하다.

김기룡=사회공헌은 기업 문화의 총체다. CEO가 어떤 인식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기업 문화와 사회공헌이 달라진다. 기업가 정신이 보편화·선진화돼야 사회공헌 수준도 자연스레 높아진다. 사회적으로 사회공헌은 너그럽게, CSR은 타이트(tight)하게 지켜봐주면 좋겠다.

진행=박란희 편집장

정리=정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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