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8일(토)

높은 연봉 받던 셰로다 반군지역 교사 자처한 이유는…

한국컴패션, 필리핀 비전트립 현장
국제어린이양육기구 ‘컴패션’후원자와 1:1 결연 통해
가난한 환경의 아이들을 바르게 자립할 수 있도록 도와

셰로다 몬타네즈(Shero da S. Montanez·22)씨는 필리핀 남부 민다나오섬에 위치한 부투안(butuan)지역 공립 중고등학교 교사다. 올해 초, 높은 연봉의 사립학교를 떠나 자신의 고향으로 자리를 옮겼다. 부투안은 이슬람 반군이 주둔하고 있어, 저녁에는 밖을 나서기 어려울 만큼 치안이 열악한 곳이다. 한 시간 넘게 오토바이를 타고 학교에 가도 학생들의 웃는 얼굴을 보기란 쉽지 않다. 부모님을 따라 반군에 가입하거나, 생계를 위해 농장 일에 동원된 아이들이 부지기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어려움도 “나와 같은 환경에서 자란 아이들을 가르치겠다”는 셰로다의 의지를 꺾을 수 없었다.

“목수인 아버지의 수입으로는 끼니를 해결하는 것조차 어려웠습니다. 나중에서야 알게 됐지만 어머니는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저를 낙태할 생각까지 하셨다고 해요. 가난이란 절망에 빠져 있던 여섯 살 소녀의 삶에 어느 날 기적이 찾아왔습니다. 교회 근처에서 목공 작업을 하던 아버지에게 누군가 ‘셰로다를 컴패션 어린이센터에 등록하라’고 추천해준 거죠. 이름도, 얼굴도 모르지만 저는 그분을 하나님께서 보내신 천사라고 생각합니다.”

1999년 국제어린이양육기구 ‘컴패션’의 어린이센터(PH620)에 등록된 셰로다는 어느덧 지역사회의 리더로 성장했다. 셰로다뿐만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전 세계 146만여 명의 아이들이 컴패션을 통해 자라고 있다. 지난달 21일, 컴패션 후원자 25명이 5박6일 동안 직접 필리핀 어린이센터를 방문해 1:1 양육과정을 확인하는 ‘비전 트립(Vision Trip)’에 나섰다.

필리핀 카가얀데오로에 위치한 컴패션어린이센터(PH501) 어린이들과 비전트립 참가자들 /한국컴패션 제공
필리핀 카가얀데오로에 위치한 컴패션어린이센터(PH501) 어린이들과 비전트립 참가자들 /한국컴패션 제공

◇엄마 뱃속 태아에서 지역사회 리더까지… 1:1 양육의 열매

“여기가 너희 집이니?” 마일 도솔(Myl Dosol·10)양이 김현정(39·영어강사)씨의 손을 이끌고 흙산을 올랐다. 첫날 25명의 후원자들이 방문한 곳은 무덤마을로 통하는 볼론소리(Bolonsori)다. 마일의 어머니가 묘지를 관리하며 벌어들이는 한 달 수입은 약 500페소(한화 약 1만2000원). 마약중독에 걸린 마일의 아버지는 가정폭력을 일삼았고, 환각증세가 심해지면 가족에게 흉기를 휘두르기도 했다.

하지만 마일의 표정은 힘겨운 가정환경을 짐작할 수 없을 만큼 밝고 건강했다. 2008년 컴패션 어린이센터 PH501에 등록되면서 자신이 ‘사랑받아 마땅한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항상 너를 위해 기도할게.’ 마일이 자랑스럽게 꺼내놓은 한국인 후원자의 편지는 구김 한 줄 없이 보관돼 있었다. 마일의 어머니 에밀리(Emily·39)는 “감사함을 이루 말할 수 없다”며 눈물을 보였다.

“많은 사람들의 기도로 마일의 아버지는 반년 전부터 약을 끊고 마닐라에서 건축업을 하고 있습니다. 매달 돈도 조금씩 부쳐오고 있어요. 마일에게는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는 변호사가 되겠다는 꿈이 생겼습니다. 이 모든 것이 딸이 어린이센터에 등록되면서 생긴 변화입니다.”

“가난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김율(15·학생)
“가난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김율(15·학생)
“후원 어린이들의 양육 과정을 투명하게 볼 수 있어 좋았어요.” 이미향(37·교사)
“후원 어린이들의 양육 과정을 투명하게 볼 수 있어 좋았어요.” 이미향(37·교사)

마일이 참여하고 있는 컴패션의 ‘1:1 어린이 양육 프로그램’은 어린이가 3세부터 자립 가능한 성인으로 성장할 때까지 후원자와의 1:1 결연을 통해 양육 받을 수 있도록 설계됐다. 후원자가 아이 한 명에게 매달 보내는 후원금 4만5000원은 국제컴패션으로 일괄 송금돼 수혜국에 보내진다. 어린이는 이 후원금을 통해 지적·사회정서적·신체적·영적부문에 걸쳐 전인적 양육을 받게 된다. 26개 수혜국 전체에 6500여 개, 필리핀에만 347개의 컴패션 어린이센터가 운영 중이다.

컴패션의 양육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태아·영아 생존 프로그램’을 통해 엄마와 아기(0~3세)를 함께 지원하고, 1:1 양육 프로그램 대상자 중 지역사회의 리더로 성장할 만한 인재는 ‘1:1 리더십 결연 프로그램’에 선발해 학자금과 함께 리더십 훈련, 멘토링을 지원한다. 셰로다 역시 리더십 결연을 통해 대학에 진학한 사례다. 1996년 필리핀에서 최초로 시작된 리더십 결연 프로그램은 현지에서만 396명의 졸업생을 배출했으며 올해 120명을 지원하고 있다. 리더십 결연프로그램을 통해 대학에서 농경제학을 공부 중인 마이키 구즈만(Mikee Guz man·20)은 “후원자의 도움으로 나의 꿈이 현실이 됐듯, 나 역시 다른 이들을 섬기는 리더가 되겠다”고 했다.

“‘너는 왜 아버지가 없니?’라는 사람들의 무심한 질문은 제 가슴에 큰 상처를 냈습니다. 저는 가난한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생부를 본 적도 없습니다. 하지만 저는 컴패션을 통해 가족을 돌볼 수 있는 어른으로 성장했습니다. 도움을 주신 분들과 저의 사명을 생각하면 공부를 게을리할 수 없습니다.”

“후원자의 편지가 아이들에게 큰 힘이 된다는 걸 알았어요.” 이근희(32·건축디자이너)
“후원자의 편지가 아이들에게 큰 힘이 된다는 걸 알았어요.” 이근희(32·건축디자이너)

◇’헌신’과 ‘탁월함’으로 후원 효과 극대화

“아이 발달과정부터 가정방문까지 정말 자세히 기록돼 있어요. 정기 후원금 외의 선물금 사용 명세도 영수증 한 장, 한 장 다 붙어 있고요. 저 역시 아동복지계에서 일했던 만큼 이 폴더에 담긴 센터 선생님들의 노고와 사랑이 눈에 선하네요.” (장지영·31·사회복지사)

컴패션이 양육하는 어린이의 모든 정보는 한 권의 폴더에 기록된다. 각 어린이센터에 소속된 사례담당자(Case Worker)가 한 달에 한 번, 직접 가정을 방문하고 항목별로 수십 가지에 달하는 체크리스트를 작성하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런 꼼꼼함 덕분에 컴패션은 미국 ‘채러티 내비게이터(Charity Navigator)’ 선정 자선단체 재정투명성 상위 1%를 차지했다. 한편 컴패션은 올해 말 필리핀 일부 어린이센터를 대상으로 ‘TCPT(Transforming Core Processes with Technology) 프로젝트’를 시범 운영할 예정이다. 양육과 관련된 모든 자료가 컴퓨터 시스템을 통해 축적·유통되기 때문에 후원자가 보다 빠르게 어린이에 대한 양질의 정보를 받아볼 수 있다.

어린이센터 소속 직원과 자원봉사자가 현장에서 아이들을 섬기는 실핏줄이라면, 어린이센터를 국가사무소로 이어주는 대동맥 역할은 PF(Partnership Facilitator)가 담당한다. 카가얀데오로의 PF를 맡고 있는 조제트 아비스(Georgette B. abis·46) 역시 10여 개 어린이센터의 운영을 관리·감독하고 있다. 공무원으로 부족함 없는 삶을 살던 조제트는 2008년 컴패션에서 근무하던 남편이 세상을 뜬 후, 남편의 뜻을 이어 컴패션에 합류했다.

“제가 이 일을 시작하고 ‘엄마를 빼앗겼다’며 슬퍼하던 작은딸에게 어린이센터 현장을 보여준 적이 있어요. 그 이후 제 일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저를 응원해 주고 있지요. 연봉은 줄었고 두 딸의 얼굴을 본지도 반년이 넘었지만, 단 한 번도 컴패션에서 일한 것을 후회한 적 없습니다. 저는 세계에서 가장 좋은 직업을 가졌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어요.”

카다얀데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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