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5일(일)

‘엄마’ 를 떼고 ‘나’로 시작합니다

‘스스로부모학교’ 나눔클래스

“어휴, 걱정이야. 어제 우리 지민이가 빗을 사달래. 불량아가 되려나?”

박경미(40·경기도 일산)씨가 한숨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순간 동료 엄마들이 술렁인다. “왜?” “뭐가 문제야?” “빗이 불량한 거랑 무슨 상관이야?” 박씨가 의외라는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내가 중학교 때는 항상 불량한 친구들이 머리에 꼬챙이 빗을 꽂고 다녔거든.”

박씨의 고민은 엄마들의 중학교 시절 이야기로 이어졌다.

“나는 아이가 카톡으로 ‘ㅇㅇ’이라고 보내면 참 불쾌하더라고. 엄마를 무시하는 것처럼 느껴져.”

“우리 애는 꼭 제일 더울 때 밖에 나가자고 해. ‘엄마를 이겨 먹으려 드나’ 싶어서 괜히 짜증이 나.”

5명의 엄마가 하나 둘 고민을 풀어놓자 무거웠던 분위기가 금세 수다스럽게 바뀌었다. 엄마들은 이 과정에서 서로를 이해하고, ‘다름’을 인정해나갔다. 지난달 24일 경기도 일산의 한 아파트에서 진행됐던 ‘스스로부모학교’ 나눔클래스 현장이다.

지난 12일 성수동 디웰에서 진행된 스스로부모학교. /오민아 더나은미래 인턴기자
지난 12일 성수동 디웰에서 진행된 스스로부모학교. /오민아 더나은미래 인턴기자

이날 수업에 참여했던 한임경(41·경기도 일산)씨는 “좋다는 부모 교육은 죄다 쫓아다녔는데, 항상 들을 때만 고개를 끄덕이곤 행동으로 옮겨지는 게 없었다”면서 “여기서 비슷한 처지의 엄마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스스로 깨치면서 실제로 달라지는 부분이 많다”고 했다. 교육 2주 만에 생긴 변화다.

지난 5월부터 시작된 ‘스스로부모학교’는 강사에 의한 일방적인 전달이나 주입식 교육이 아닌 부모 간의 나눔과 멘토링으로 이뤄지는 새로운 부모 교육 모델이다. 이지웰가족복지재단이 지원하고, 자람가족학교가 진행을 맡았다. 이성아 자람가족학교 대표는 “최근 부모 교육 프로그램이 봇물 터지듯 나오고 있는데, 대부분 부모는 얼마나 부족한지만을 강조하는 교육”이라며 “완벽한 부모가 되는 법을 가르치는 교육은 결국 부모에게 죄책감만 쌓을 뿐”이라고 강조했다.

스스로부모학교는 ‘모든 부모는 충분하며, 훌륭하다’는 전제에서 시작됐다. 부모라면 누구나 아이를 잘 양육하고 싶은 건강한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엄마들이 스스로 이를 찾으면 부모 자체가 최고의 전문가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수업의 형태에도 이런 자발성이 잘 녹아 있다. 먼저 부모들이 스스로 팀을 꾸린다. 산후조리원 동기, 유치원 학부모, 운동이나 취미 클래스 등 엄마들의 네트워크가 총동원된다. 이성아 대표는 “놀이터에서 아이들과 함께 놀다 즉석으로 ‘헌팅’돼 결성한 팀도 있다”고 했다.

한 팀이 이뤄지기 위해선 필요한 인원은 5~9명 정도. 최소 5명 이상이 되어야 신청이 가능하다. 현재 107명의 부모가 모여 총 16개 팀이 꾸려졌다. 각 팀에선 팀장을 뽑고, 팀장은 서울 성동구 성수동에 있는 ‘디웰’에서 열리는 ‘돋움클래스'(매주 수요일 3시간, 총 12회차)에 참여한다. 돋움클래스에선 부모 교육 전문가 교육이 진행되는데, 교육을 마친 팀장들은 해당 수업 내용을 자신의 팀원들과 나누는 ‘나눔클래스’를 진행한다. 나눔클래스는 좀 더 자율성이 강조된다. 한 기수에서 5회 이상만 진행하면 된다. 하지만 ‘스스로’의 힘은 놀랍다. 이성아 대표는 “16개 중 (돋움클래스를 들은 후) 나눔클래스를 걸렀던 적이 단 한 팀도 없었다”고 귀띔했다. 실제로 나눔클래스의 결석률 역시 0%다.

스스로부모학교(2기)는 이제 일정의 절반 정도를 소화했다. 이미 굳은 라포르(Rapport·공감대)가 생겨 어떤 교육장에서도 수다와 웃음이 끊이질 않는다.엄마들이 모여 만드는 엄마들을 위한 ‘스스로’ 학습법은 어떤 시너지를 만들었을까?

유란지(43·경기도 일산)씨는 “외부에서 양육과 관련된 교육을 받고 오면 항상 자책감에 만신창이가 됐는데, 여기서 마음을 터놓으면서 ‘나만의 문제는 아니구나’라는 생각에 경직됐던 아이와의 관계에도 안정감이 생겼다”고 했다.

한임경씨는 ‘자기의 삶을 되찾은 게 가장 큰 성과’라고 했다.

“우리 조에는 ‘스칼렛맘’도 있고 ‘무지개맘’도 있어요. 각자 바라는 엄마의 삶을 별칭으로 지었죠. 우린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찾아가고 있어요. 그러면서 자연히 자신감도 되찾았죠. 이제 부모 교육에 대한 질문이 ‘엄마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가 아니라, ‘나는 어떻게 하고 싶나요?’로 바뀌었습니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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