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6일(월)

좋은 부모 되는 방법, 어디서 배울 수 있을까요? [

[더나은미래·이지웰가족복지재단 공동기획] ‘대한민국 부모 교육이 부족하다’
기술처럼 배우는 심리상담·대화법 등 불안감 커지는 부작용 낳을 수도
“美 패밀리석세스센터같이 방문 쉽고 가족 회복 도와주는 공간 많아져야”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아이에 대한 ‘솔루션’ 찾기에 급급했어요. 그런데 좋아지는 건 잠깐뿐이고 보면 볼수록 마음이 답답하더라고요. 현실에선 아이가 책처럼 크는 것도 아니니까요. 제가 점점 부족하고 못난 부모같이 느껴졌어요.”

여섯 살 아들을 둔 신지혜(35·부천시 원미구)씨는 “EBS나 SBS 다큐멘터리, 교양 프로그램 등 아동 양육이나 부모 교육에 관한 프로그램이라면 빼놓지 않고 챙겨봤다”고 했다. 책장 한 면엔 아이 교육에 관련한 책으로 가득 채워졌다. 아이를 낳기 전, 교육 콘텐츠 관련 회사에서 일했던 까닭에 아이 교육에 유달리 관심이 많기도 했지만, 처음 하는 엄마 역할을 잘 해내고 싶은 욕심도 컸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스스로 “부족하고 못난 부모가 된 느낌이었다”고 했다.

김정숙(40)씨 역시 무수한 부모 교육을 찾아다녔다. 그러나 늘 답답했다. 서울 신도림 ‘디큐브 아카데미’에서 교육 강좌 전반을 관리하는 일을 하는 워킹맘 김씨는 “회사에서 일할 때면 하는 대로 마음이 미안하고, 집에서 아이와 시간을 보낼 때에도 죄책감에 시달렸다”고 했다. “창의적으로 키우려면 이렇게 해야 하고, 이렇게 해야 좋은 학교에 갈 수 있고…. 주말에 짬이라도 나면 어디 책에서 보고 밑줄 쳐놨던 것처럼, 숲이 있는 도서관 같은 데 아이를 데려가기도 했는 데, 정작 아이는 시큰둥해했어요. 그럼 또 ‘아니 내가 이렇게까지 하는데’ 싶기도 하고, 또 ‘일하는 내가 죄인이지’ 싶고 그래서 힘들더라고요.”

지난달 30일, 신도림 디큐브시티에서 진행된 자람가족학교의 부모 교육 전문가과정 워크숍 현장.
지난달 30일, 신도림 디큐브시티에서 진행된 자람가족학교의 부모 교육 전문가과정 워크숍 현장.

◇부모 교육 난립하지만, 들을 곳 없어… ‘부모’ 자신에 초점 맞춰져야

부모로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토로하는 이가 많다. 처음 맞이하는 역할과 관계 속에서, 잘 모르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 문제는 이 초보 부모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수많은 ‘부모 교육’이 난립하고 있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제대로 된 부모 교육은 흔치 않은 것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대부분의 부모 교육이 입시 성공사례를 공유하는 식이거나, 심리상담, 대화법, 코치법 등 아동 양육을 위해 단기간에 습득해야 할 기술처럼 접근하고 있기 때문이다.

강서교육청에 있는 ‘강서위(Wee)센터’에서 올 초부터 매월 한 회씩 부모 교육을 개설해온 김소영(29)씨는 “매달 새로운 분들을 초빙해오다 보니 콘텐츠가 보이는데, 대부분이 ‘긍정 심리학’이나 ‘대화법’, ‘마음을 살피는 미술 기법’ 등 어떻게 아이를 다뤄야 할지 스킬에 대해서만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며 “기술을 가르치고 이런 사람이 되라고 지시하는 교육으로는 외려 불안감을 증폭시키고 자신을 자책하는 결과를 낳더라”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사회 안에서 ‘좋은 부모’란 어떤 것이라고 기준을 정해주고 그것에 필요한 기술을 가르치는 식으로 교육이 이뤄지다 보니, 대부분의 부모가 지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남동우 한국상담센터 상담소장은 “상담 오는 분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사회에서 ‘너는 이런 사람이 돼야 한다’고 하다 보니 내가 ‘나’가 되지 못하고 나를 싫어하게 돼 행복하지 않은 것”이라며 “부모 역시 사회적 역할이 규정된 ‘어떤 누군가’가 아닌 본인 자신이 돼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본인의 내면을 잘 들여다보고 성장할 수 있게 도와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취약가정 부모 또한 다르지 않다. 강미경 사회복지연구소 ‘마실’ 소장은 “아동 방임 등이 일어나는 취약가정 부모들은 고치고 계도해야 하는 대상으로만 보고 교육을 강요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분들이 당장 먹고사는 급한 문제가 해결 안 된 상태에서 교육만 받게 하는 걸로는 설령 (부모가) 변한다 해도 유지되기 어렵다”며 “부모 당사자가 원하는 방식을 묻고 장을 열어주는 정도에서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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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과 부모 위한 ‘랜드마크’ 필요해

부모 교육을 위한 ‘랜드마크’가 없다는 것도 문제로 지적됐다. 가족에 어려움이 있거나 ‘부모’로서 불안감이 있을 때, 많은 이가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른다는 것. 임진이(44·서울시 서초구)씨는 “아이와의 관계가 힘들어도 딱히 물어볼 곳도 마땅치 않다 보니 그냥 엄마들끼리 모여서 차 마시며 서로 답답하다고 이야기하는 식”이라며 “그러다 보면 결론은 ‘애를 어디 미술학원이나 운동하는 곳에 보내면 그림이라도 그리면서 마음이 나아지지 않겠느냐’는 식으로 얘기가 끝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해외의 경우는 어떨까. 미국 뉴저지주에서는 주 관할구역 내 21개 자치구마다 최소 1개씩 총 51곳의 ‘패밀리 석세스 센터(Family Success Center)’가 있고, 약 6600명의 직원이 근무한다. 이곳에 배치되는 직원들 훈련을 위한 ‘아동복지훈련센터’도 따로 갖춰져 있어, 역할극 등을 통해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체험하고 전문 훈련을 받은 후에야 센터 근무가 가능하다. 아동학대 위험군이거나 가족 내 위험 요소가 많은 경우 ‘패밀리 석세스 센터’에서의 의무 상담을 권고받고, 일반 가정에서도 어려움이 있을 때 스스로 찾아오는 식이다. 남동우 한국상담센터 상담소장은 “패밀리 석세스 센터에서는 ‘잘못’에 초점을 두는 게 아니라, 힘들었던 마음을 위로하고 가족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가족 회복과 트레이닝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며 “우리나라의 경우 부모 교육 상담 문턱이 높고 이름부터 부정적인 인상을 주는 경우가 많아 찾기를 꺼리는데, 채널을 좀 더 단순화시켜 접근이 쉽고 찾았을 때 성공의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장이 마련돼야 한다”고 했다.

부모 교육 콘텐츠 개발 및 운영, 컨설팅 전문 ‘자람가족학교’를 운영 중인 이성아 대표는 “올해 초 SBS에서 ‘부모 vs. 학부모’ 다큐멘터리를 찍으면서, 매주 특정 요일 일반 카페를 몇 시간 동안 빌린 후 전문 상담사를 배치해 아무 부모나 쉽게 찾아와 고민도 나누고 궁금한 것도 묻는 부모카페를 6개월쯤 운영했었는데, 엄마들 사이에서 ‘저게 꼭 있었으면 좋겠다’는 반응이 상당했다”며 “우리나라에서도 부모들이 삶에서 힘든 순간이 있을 때 바로 찾아갈 수 있는 문턱 낮은 공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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