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5일(일)

[조선일보 더나은미래·초록우산어린이재단의 ‘기쁜 기부, 해피플’ 캠페인] ④ “구두와 봉사, 내가 평생하고픈 두 가지”

조선일보 더나은미래·초록우산어린이재단의 ‘기쁜 기부, 해피플’ 캠페인 (4)
한국 최초 웨딩슈즈 디자이너 김리온씨

장애인 아티스트들의 후원자 자처해… 자신의 갤러리를 나눔의 장으로 활용
창작 활동 제한 없도록 공간·비용 지원

“2000개의 구두를 샀죠. 구두 수백만 켤레에 발을 넣고 빼면서 ‘구두가 이렇구나’를 몸으로 배웠죠. 나눔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최근 가장 ‘핫(HOT)’한 구두 디자이너로 손꼽히는 김리온(39·사진) ‘신(SYNN)’ 대표의 말이다. 지난 2005년 구두 디자인을 시작한 지 올해로 10년. 김씨의 신발 가게는 김남주·김연아 등 유명 여자 연예인들의 ‘단골집’으로 자리매김했다. 모든 신부들이 결혼식 때 두꺼운 흰색 통굽 구두를 신던 시절 그녀는 감각적인 디자인 수제화로 ‘웨딩슈즈’ 개념을 도입했고 ‘한국 최초의 웨딩슈즈 디자이너’로 이름을 날렸다.

SYNN 제공
SYNN 제공

장진 감독의 영화 ‘하이힐’, 세계적인 디자이너 베라왕 패션쇼의 구두 모두 그녀의 손을 거쳤다. 지난 10년간 늘어난 구두 매출은 10배 이상. 그녀의 구두 디자이너로서의 성공 스토리는 드라마(MBC ‘아이두 아이두’) 소재가 되기도 했다. 그런 그녀가 기부·봉사에 푹 빠졌다. 장애시설·영아원·요양원·미혼모의 집 등 곳곳을 찾아 다니며 봉사한 시간만 벌써 30년. 장애인 아티스트들의 작품 전시회를 기획·후원하고, 선천성 뇌병변을 앓는 장애 아동의 평생 후원자가 되는 등 나눔에 대한 애정이 곳곳에서 묻어나고 있다.

◇장애인 아티스트들을 무대 위로 올리다

“사업을 시작한 지 3년쯤 지났을때 정규 미대를 나오고 실력이 뛰어난데도 장애인 아티스트들에겐 전시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단 이야길 접했어요. 우리 회사 구두와 장애인 아티스트의 그림을 컬래버레이션(협업)한 전시회를 열었죠. 반응이 너무 좋았어요.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장애인 아티스트 지원 사업에 나섰습니다.”

2009년 김 대표는 장애인 아티스트들의 상품을 제작, 지원하는 강남장애인복지관의 ‘액티브 아트 컴퍼니’를 후원하기 시작했다. 장애인 아티스트들이 만든 파우치 등 소품들을 직접 구매하거나 구두 매장에 진열 판매하는 등 이들의 판로 역할을 자처했다. ‘갤러리 신(SYNN)’을 개관한 2012년부터는 이곳을 나눔의 장(場)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김 대표와 회사 직원들이 함께 머리를 맞대 장애인 아티스트들의 작품 전시회를 기획, 진행해온 것. 1주일 전시회를 위해 최소 몇 달을 준비한다. 특히 기억에 남는 전시회는 청각 장애인인 박주영 화가와의 작업이었다.

“직원들과 함께 소통하면서 ‘결혼’이란 테마를 정했죠. 박주영 화가는 그림을, 저와 직원들은 테마에 맞는 그림을 제작해 함께 전시회를 열었습니다. 박주영 화가의 첫 전시인 만큼 직원들 모두 최고의 전시를 위해 6개월간 피 말리는 작업을 했죠. 전시회가 끝난 후엔 박주영 작가님 그림으로 파우치를 만들어서 판매도 했어요. 전시회 수익금은 다른 장애인 아티스트들의 예술 창작 활동을 위해 기부했습니다.” 이렇게 올린 전시회는 3년간 총 다섯 번. 작품 판매 수익금 모두 작가에게 지급된다.

◇봉사로 시작된 인연, 장애 아동을 품다

“어릴 적 습관처럼 하던 봉사가 어느새 중독이 됐죠(웃음).” 김 대표가 처음 봉사를 시작한 것은 1986년 무렵. ‘나눌 수 있을 때 돕고 살아야 한다’며 그녀의 아버지는 초등학교에 막 입학한 딸과 함께 장애인 시설에 가서 ‘가족봉사단’을 꾸렸다. 그렇게 30년간 수많은 장애인을 만나 친구가 됐고, 마음을 나눴다. 29세에 구두가 너무 좋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무작정 열악한 수제화 사업에 뛰어들었을 때도 그녀는 ‘돈을 많이 벌어서 더 많은 장애인을 돕겠다’는 그림을 그렸다. 마음 맞는 친구 넷과 함께 구두 사업을 시작하자마자 김 대표는 동료들과 케이크를 사들고 장애인 시설에 가는 게 낙이었다. 그녀는 “당시만 해도 매출이 몇 만원에 불과해 수익을 전부 장애 아동에게 선물하는 케이크에 사용한 셈”이라며 웃었다.

그렇게 봉사와 나눔을 이어가던 김 대표는 지난해 한사랑장애영아원에서 가영이(가명·3)를 처음 만났다. 지난해 가영이는 ‘뇌에 이상이 있다’는 쪽지와 함께 한 교회 앞에서 발견됐다. 가영이의 병명은 ‘선천성 뇌병변’. 왼쪽 뇌 손상으로 평생 오른쪽 움직임이 불편한 채 살아야 한다. “깡마른 볼에 웃음기조차 없는 무표정한 아이였어요. 첫날부터 제 품에 안겨 떨어지지 않으려 했는데, 집에 와서도 계속 가영이 얼굴이 맴돌더라고요.” 그녀는 곧장 가영이의 평생 후원을 약정했다. 10월엔 가영이의 생일을 기념해 영아원에 특별 물품을 후원할 계획이다.

“평생 하고 싶은 일은 딱 두 가지예요. 구두와 봉사(기부). 제가 가진 것을 조금 나눠주는 것이지만 그 일을 통해 제 삶 전체에 활력이 생깁니다. 이러한 나눔의 기쁨을 더 많은 분들이 경험하시길 바라요.”

※조선일보 더나은미래와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은 기념일 혹은 특별한 날 기부하는 ‘기쁜 기부, 해피플’ 캠페인을 진행한다. 참여문의는 초록우산어린이재단 대표번호(1588-1940)로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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