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8일(토)

“싸우는 친구 바로 혼낸다고요? 공감 받지 못하면 분노만 쌓입니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인성 교육 프로그램

“안녕 연비야? 우리 반에 전학 온 걸 환영해. 학교 구경시켜 줄까?”

“여긴 코딱지만 해서 볼 것도 없을 것 같은데….”

“그래도 곳곳에 예쁜 장소가 많아! 다음 시간 미술인데 준비물 없지? 내 것 같이 쓰자.”

“알겠어. 그런데 여긴 청소해주는 아주머니도 안 계시니? 수준 안 맞아서 못 놀겠다.”

지난 9일, 천안 쌍용초등학교 6학년 4반에서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의 인성 교육 특강이 진행됐다. 김초롱(27)·박연비(26)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천안성정종합사회복지관 사회복지사의 역할극을 감상한 아이들은 잠시 고민에 빠졌다. ‘내가 저 상황이라면 과연 전학생과 친하게 지낼 수 있을까.’ 전학생의 날카로운 태도를 본 아이들에게 잠시 생각할 시간이 주어지고, 이번에는 반 학생인 이재혁(12)군이 직접 참여한 역할극이 재개됐다.

사진은 지난 9일 인성 교육을 마친 쌍용초등학교 6학년 4반 학생들의 모습.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사진은 지난 9일 인성 교육을 마친 쌍용초등학교 6학년 4반 학생들의 모습.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얘들아, 이번 시간은 조별 수업이래. 누구 전학생이랑 같은 조 할 사람?”

“난 싫어. 걔는 입만 열면 친구들을 무시하고 잘난 척하잖아. 우리가 같은 조를 하자고 해도 좋아하지 않을걸!”

이군의 실감 나는 연기에 박연비 사회복지사의 표정이 더욱 시무룩해졌다.

“아무도 나랑 같이 놀고 싶지 않은가 봐…. 얘들아, 상처 줘서 미안해. 이제부턴 너희를 존중할 테니까 나랑 다시 놀아주지 않을래?”

박연비 복지사의 물음이 끝나자 아이들에게 ‘이름 막대’ 추첨 통이 주어졌다. 반 친구들의 이름이 적힌 추첨 막대는 평소 수업 시간에 소극적인 아이도 자연스레 의견을 말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장치다. 연기를 마친 이군이 빨간색 막대를 하나 뽑아 들자 김환희군이 벌떡 일어섰다.

“걱정하지 마! 서로 존중하면 우리도 사이좋게 지낼 수 있어!”

◇역할극으로 흥미 돋우고 생애 첫 ‘나눔 계획’ 세워

지난해 1월 개발한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의 인성 교육은 존중·협동·배려·나눔 네 가지 중점 가치를 역할극, 만화 그리기, 시청각 자료 등 다양한 방법으로 체험할 수 있게 구성됐다. 이날 4반 학생들은 시청각 자료를 통해 ‘나눔’의 의미를 접했다. 강사가 재생한 영상 속 청년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말라가는 화분에 물을 주고, 가난한 아이에게 돈을 건넸다. 시간이 지나자 화분에 꽃이 피고, 아이는 교복을 입게 됐다. 지난해 ‘스파이크 아시아(Spike ASIA) 광고제’에서 동상을 받은 태국생명보험 광고 ‘이름 없는 영웅(Unsung hero)’이다.

짧은 영상을 감상한 후 아이들은 직접 나눔 계획을 세웠다. ‘선생님에게 미소 나눠주기’ ‘친구에게 칭찬 나눠주기’ ‘엄마에게 응원 나눠주기’ 등 생애 첫 나눔 계획을 몇 번씩 썼다 지우면서도 아이들은 빈칸 채우기를 멈추지 않았다.

김서현(12)양은 “전에도 나눔이나 봉사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긴 했지만 먼 이야기처럼 느껴졌다”면서 “이번 수업을 통해 친구, 엄마, 선생님에게 내가 무엇을 나눌 수 있을지 생각하며 조금이나마 뿌듯한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고 소감을 전했다.

시험을 마친 아이들에게 뜻깊은 시간을 선물해주고 싶어 인성 교육 특강을 신청했다는 임배뫼(32) 담임 교사에게도 이번 프로그램은 소중한 경험이 됐다.

“지난 한 학기 동안 아이들을 가르쳤지만, 한 번도 나눔과 관련된 이야기를 해본 적이 없었어요. 그런데도 ‘내가 할 수 있는 것부터 친구, 부모님, 선생님과 나눠보겠다’는 아이들의 나눔 계획서가 무척 감동적이었습니다.”

◇’아이 교육’ 전에 ‘강사 교육’ 먼저… 11가지 매뉴얼로 돌발 상황 대처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인성 교육의 가장 큰 특징은 강사에 있다. 자원봉사자 대신 강사 교육을 거친 소속 직원을 수업의 주 진행자와 보조 진행자로 두기 때문이다. 이들은 아동 권리 전문가이자 재단 내부 직원으로서 ‘아동 민감성향상 교육’ 등 아동 관련 교육을 꾸준히 받고 있다. 이들이 숙지하는 강사 매뉴얼에는 인성 교육 진행 중 발생할 수 있는 돌발 상황에 대비한 11가지 대처법도 마련돼 있다. 강사는 해당 매뉴얼을 바탕으로 아동의 특성과 현장 상황에 맞게 대응하도록 사전 훈련을 받는다.

“수업 중 기분이 안 좋았던 아이 하나가 친구 필통을 손으로 쳐서 바닥에 떨어뜨린 적이 있습니다. 큰 소리가 나면서 수업이 순간 중단됐죠. 이때 매뉴얼의 힘이 발휘됩니다. 주 진행자는 침착하게 강의를 계속하고, 보조 진행자가 조용히 다가서 상황을 수습하고 어깨를 토닥여주며 아이가 진정할 수 있는 시간을 준 거죠. 만약 선생님이 친구와 싸우고 소란을 일으킨 잘못에만 집중해 아이를 추궁하면 ‘낙인’이 찍혀버리게 됩니다. 친구들이 선생님을 따라 돌발 행동을 한 아이를 함께 비난할 여지가 생기는 거죠. 문제가 해결되기는커녕 해당 아동이 더욱 궁지에 몰릴 수 있습니다.”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의 인성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한 이정영 아동복지연구소 사업개발팀장은 “아이가 잘못된 행동을 보일 때, 바로 혼내지 않으면 바로잡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그것은 오해”라면서 “공감받지 못한 분노가 해소되지 않으면 스트레스는 계속 유지된다”고 조언했다.

“인성 교육 프로그램은 강사와 아이들이 교감하며 즐기는 것이 중요합니다. 존중과 배려를 직접 실천하는 선생님을 보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은 간접 교육 효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한편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인성 교육은 현재 1회 특강과 4회 정기 교육으로 진행되고 있으며, 기쁨·감사·성실·약속·어울림·용기·정직·사랑 등 8가지 핵심 가치를 더한 12회 인성 교육 콘텐츠를 추가로 실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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