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6일(목)

[박란희의 작은 이야기] “우리 기업 점수는 왜 이렇게 낮은 겁니까?”

“우리가 자료를 제공하지도 않았는데, 무슨 기준으로 이런 평가를 하는 겁니까.”

지난 1일 ‘제1회 아시아 CSR랭킹 컨퍼런스’를 위해 30개 기업들에 랭킹 순위를 알렸을 때, 가장 많이 들은 반응이었습니다. 그다음은 “다른 기업 순위는 몇 위냐”라는 것이었습니다. 30개 기업과 일일이 통화를 한 담당 기자는 “우리나라 기업의 CSR 커뮤니케이션 점수가 왜 낮은지 알 것 같다”고 했습니다.

흔히 기업의 CSR을 평가하는 기준은 환경(E), 사회(S), 지배구조(G) 등 세 부분으로 나뉩니다. 하지만 우리 기업은 CSR팀이 기업 전체의 CSR을 제대로 커버하지도 못한 채 어정쩡하게 사회공헌과 홍보까지 맡고 있다 보니, 외부와 커뮤니케이션할 때 홍보팀, 사회공헌팀, 환경경영팀, CSR팀 등을 오가며 핑퐁이 됩니다. 조직 내부끼리 잘 소통되지도 않는 것 같았습니다.

그룹사의 눈치를 보고, 그룹 내 신경전도 있었습니다. 그룹 내 맏형 격인 H기업은 “왜 우리 기업이 계열사보다 더 순위가 낮은지 이해할 수 없다”며 “순위가 공개되면 콘퍼런스에 참석도 하지 않고 기업 사례도 제공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한편 S기업 관계자는 “우리도 좋은 일을 많이 하지만, 알리는 걸 사장님이 좋아하지 않는다”며 “우리 랭킹 점수에 대해 임원들한테 어떻게 보고를 하라는 거냐”며 화를 냈습니다.

아예 대놓고 협박을 하는 기업도 있었습니다. N사 관계자는 “가뜩이나 사회공헌 활동이 내부적으로 호응받지도 못하는데, 이렇게 기업 순위를 발표해버리면 줄 세우기 시키는 것이냐. 하위 기업과 힘을 모아서 대응하겠다”고 했습니다.

이번 평가 대상 기업은 국내 시가총액 30대 기업 중 아시아 지역에 1개 이상의 자회사를 둔 글로벌 기업이었습니다. 우리나라를 대표해 해외에 나가 있는,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대표 기업’입니다. 하지만 외부 이해관계자를 대상으로 한 커뮤니케이션, 내부 소통, CSR에 관한 인식 등에선 아직 소싯적 골목대장에서 벗어나지 못한 모습입니다. 몸만 컸지, 그에 걸맞은 옷을 입지 못한 겁니다.

이번 CSR랭킹 평가는 기업이 외부에 공시한 데이터를 갖고 한 정량적인 평가였습니다. 랭킹의 궁극적인 목적은 1등이 아니라 자신의 현 위치를 알고 부족한 부분을 개선하는 데 있습니다. 콘퍼런스에서 이재혁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가 한 말이 생각납니다.

“If you can’t measure it, you can’t improve it(측정할 수 없으면, 개선할 수 없다).”― 피터 드러커

관련 기사

Copyrights ⓒ 더나은미래 & futurechosun.com

전체 댓글

제261호 2024.3.19.

저출생은 '우리 아이가 행복하지 않다'는 마지막 경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