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5일(일)

정책, 권리, 제도, “미래를 만들 우리가 목소리 내야 합니다”

靑年, 정책의 중심에 서다
서울시, 청년 의원 150명 위촉 예정…
근로 청년 자립 돕는 정책 제안해 ‘희망두배청년통장’ 등 시행 중

“올해 최저임금위원회는 노사 양측의 창끝이 더 날카로워졌어요. 최저임금의 직접적 이해관계 당사자들이 위원회 구성원으로 들어왔고, 그건 그만큼 절박해졌다는 뜻이거든요.”김민수(25) ‘청년유니온’ 위원장은 최저임금위원회 개설 30년 만에 처음으로 발탁된 청년 대표다. 김 위원장이 이끄는 청년유니온은 국내 최초의 세대별 노동조합으로, 카페 아르바이트 주휴수당 지급과 피자 배달 30분 시간제한 폐지 등을 이끌어낸 곳이다. 김 위원장을 포함한 제10대 최저임금위원회가 구성된 후 약 한 달 반. 짧은 시간이지만, 이전과는 확실히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왼쪽부터 한영섭 청년지갑트레이닝 센터장, 임경지 민달팽이유니온 위원장, 김민수 청년유니온 위원장
왼쪽부터 한영섭 청년지갑트레이닝 센터장, 임경지 민달팽이유니온 위원장, 김민수 청년유니온 위원장

“이전까지는 소득 하위 50%인 노동자의 임금(중위임금)을 지표로 삼았는데, 6월 초 회의를 통해 이제는 전체 임금 평균도 (소득분배율) 지표로 활용할 수 있게 됐어요. 더 다양한 통계를 기반으로 최저임금을 도출할 수 있게 된 거죠.” 김 위원장은 이 같은 변화의 이유를 당사자 대표성 강화에서 찾았다. “올해는 위원회를 구성하는 과정에서 ‘최저임금을 받는 당사자가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는 요구가 반영됐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소상공인연합회 역시 최초로 이번 위원회에 참여하게 됐어요.” 김 위원장은 “열정페이·무급인턴 등 우리가 겪고 있는 문제가 하루아침에 해결되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이것이 청년의, 우리 모두의 문제라고 나서서 이야기하는 단체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학자금, 병원비 등 생계형 청년부채 지원

청년이 정책의 중심이 되고 있다. 이전까지 청년 정책은 청년을 대상으로 ‘이미 만들어놓은’ 것이었다. 하지만 최근 각 지자체에 청년위원회가 설치되는 등 당사자 목소리가 적극 반영되고 있다. 서울시는 최초의 청년장기종합계획인 ‘2020 청년정책 기본계획’의 공론화를 위해 이달 서울청년의회에서 활동할 청년의원 150명(만 19~39세)을 위촉 예정이다. 부산도 지난달 청년기본조례안을 마련하고, 4년 단위의 청년기본계획을 심의·평가까지 할 수 있는 청년위원회의 근거를 마련했다. 실제 청년들의 아이디어가 정책으로 만들어진 사례도 있다. 지난달 참가자 모집을 마친 ‘희망두배청년통장’이다. 매월 일정액을 2~3년간 저축하면, 기초생활수급자와 비수급 저소득자에게 각각 저축액의 100%와 50%를 추가로 지급하는 제도다. 대상자는 소득인정액이 최저생계비의 200% 이하인 서울 거주 근로청년(만 18~34세)으로, 성실하게 일하지만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청년들의 자립을 돕는 것이 목표다. 이 정책을 제안한 사람은 한영섭(35) ‘청년지갑트레이닝센터(이하 청지트)’ 센터장. 청지트는 청년을 대상으로 재무상담과 가계부 워크숍 등을 진행하는 단체다.

“얼마 전 청년 한 명이 청지트를 찾았습니다. 취직은 멀었고 모아놓은 돈은 없는데 부채만 3000만원이더군요. ‘대학을 안 가면 사회에서 제 구실을 못할 것 같다’는 두려움에 진학을 했고, 학자금 대출을 받은 겁니다. 소득도 담보도 없는 젊은이가 기존 금융제도를 이용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죠. 개인의 노력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한 센터장은 2013년 서울시 주최 ‘청년이 꿈꾸는 2014 청년정책마련 토론회’에서 ‘희망두배청년통장’과 ‘위기탈출론’을 제안했다. 이 중 위기탈출론은 2014년부터 시행됐다. 신용회복 지원이 확정된 후, 채무조정에서 제외된 서울 거주 청년(만 40세 미만)의 고금리 채무(연금리 20%)를 서울시 정책자금으로 대환(1인 500만원 이내, 연금리 4%)대출 해주는 제도다. 한 센터장의 제언이 정책으로 받아들여지기까지 수많은 곡절이 있었다. 숨어 있던 청년부채 문제를 외부에서 반영하기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 센터장은 “청년이 반영된 정책을 통해 사회의 시선이 ‘어린 친구들’에서 하나의 주체로 바뀌어 간다는 것을 느낀다”고 말했다. “청년들이 ‘이번 인생은 망했다’며 자포자기하게 해선 안 됩니다. ‘나도 미래를 설계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도록 돕는 관계금융이 필요하죠. (정책적 지원이) 이들의 마음을 할퀴지 않도록 문구 하나라도 더 배려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청년이 만드는 임대주택, 관리비 가이드라인

청년 주거 문제 해결을 위해 설립된 협동조합 ‘민달팽이유니온’은 LH공사의 정책 파트너로, 대학생 전세임대주택 제도 개선에 앞장서고 있다. “대학생 전세임대주택이 좋은 제도이긴 하지만, 당첨자 발표가 늦어 개강 후에도 집을 구하지 못하는 학생들이 생기는 등 문제점이 많았어요. 최소 11월에는 모집을 시작해 12월에는 당첨자가 발표되도록 일정 조정을 요구했죠. 그 결과 입주 대상자 발표 시일이 2개월 정도 앞당겨졌어요. 작은 변화지만 차근차근 이뤄가야죠.”(임경지 위원장) 민달팽이유니온은 청년들이 많이 사는 원룸의 관리비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데도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실제 원룸에 거주하는 청년들과 실태조사를 벌였어요. 입수한 400여개 사례를 들고 국토부, 서울시 등에 민원을 제기했지만 다들 ‘제도가 없으니까 아무것도 못하겠다’는 응답뿐이었죠. 이 응답을 모아서 다시 서울시에 ‘제도 공백을 메우라’고 요구했어요. 결국 건축기획과에서 구체적인 개선안 및 원룸 관리비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달라는 요청을 받았죠. 이를 토대로 올해 안에 원룸 관리비 기준표가 배포될 예정이에요.”

이뿐만이 아니다. 서울 홍은동에 위치한 SH공사의 ‘청년협동조합형 공공주택’인 ‘이웃기웃’도 청년들의 아이디어에서 시작됐다. 민달팽이유니온과 협동조합 ‘소통이 있어 행복한 주택만들기’, 사단법인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이 공동 아이디어를 냈다고 한다. 이웃기웃은 본인 소득이 가구원 수별 월평균 소득의 70%(331만4220원) 이하인 무주택 세대주 청년 및 대학졸업 예정자(만 19~35세)를 대상으로, 월 13만원에 공급되는 주택이다.

“거주 청년들이 주변 청소도 하고 먼저 인사도 건네면서 주민 분들과 가깝게 지내고 있어요. 협동조합형 공공주택이라고 하니 ‘거기 똑똑한 사람들이 사는 데 아냐?’ 하면서 물어보시기도 하고요.” 임 위원장은 “청년이 불쌍해서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시민의 일원으로 당연한 권리를 보장받는다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가끔 ‘너희가 노인보다 더 힘드냐’고 묻는 분들이 있어요. 저희는 노인이건 청년이건 주거권을 지켜주는 것이 당연하지 않으냐고 거꾸로 묻고 싶어요. 청년들은 파이의 더 큰 몫을 차지하려 다른 세대와 다투는 것이 아니에요. 단지 자신의 당연한 권리를 주장하는 거죠.”

김남리·김한별·오현우·정채윤·최보람·황영찬 더나은미래 청년기자(청세담 3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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