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5일(수)

[박란희의 작은 이야기] 삼성서울병원이 모금을 한다면?

[박란희의 작은 이야기]

메르스 사태를 겪으면서 하도 ‘한국식 병원 문화’를 꼬집는 기사가 많다 보니 자연스레 미국 병원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저는 첫째딸을 한국에서, 둘째딸을 미국에서 낳았습니다. 한국 산부인과에선 9개월 내내 사람 많은 병원 복도에서 진료 대기를 해야 했고, 출산 당일이 공휴일인 바람에 주치의 대신 낯선 당직 의사가 제왕절개 수술을 맡았습니다. 마취가 되기 전 의사와 간호사들이 “수술 후 김치찌개를 먹을까”라며 메뉴를 이야기하는 소리를 듣고 너무 불쾌해 병실 문을 박차고 나가고 싶었습니다. 9개월 동안 저와 배 속의 아이를 진료해준 의사와는 아무런 ‘정서적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했지요. 병원비가 싼 대신 ‘사람 대접 못 받는’ 서비스에 화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물론 산후조리원 비용이 비싸서 그리 싸다는 생각도 못했습니다).

반면 미국은 병원 가기 겁이 날 정도로 보험료가 비쌌습니다. 학생보험이었음에도 아이 낳는 데 500만원 넘게 들었습니다. ‘아~ 한국 의료보험이 최고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났습니다. 하지만 서비스 하나는 최고였습니다. 의학 용어가 서툰 저를 위해 통역사가 늘 대기해 있었고, “낯선 미국 땅에서 혼자 출산하기 겁난다”는 한마디에 심리상담가가 따로 한 시간 넘게 우는 저를 달래주더군요. 산모 대기실도 1인용, 분만실도 1인용, 입원실도 모두 1인용이었습니다. 한국인 딸을 입양했다는 제 주치의와는 9개월이 지나자 친구가 되었습니다. “첫째는 제왕절개 했지만, 둘째는 자연 분만하고 싶다”는 제 말을 듣더니, 한국 병원의 진료 기록까지 받아보고 “한번 해보자”고 격려하면서 결국 해냈습니다.

저는 병원이나 의학 전문가가 아닙니다. 한국식, 미국식 의료 서비스의 장단점을 몸소 체험했을 뿐입니다. 메르스 사태는 우리나라 병원과 의료 체계가 애써 덮어두었던 문제를 한꺼번에 폭발시킨 것 같습니다. 껍데기는 공공성을 갖춘 비영리 의료법인인데, 속은 (미국식) 영리병원과 다를 바 없는 ‘지킬과 하이드’ 말이지요.

2년 전쯤 서울대병원이 한 모금 세미나에 참석한 적이 있습니다. 병원의 수익 구조를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진료 수익률은 1~4%로 낮고, 기본 재산도 이자율이 낮고, 정부 지원금으로 의료 연구를 하려니 제한이 많고, 결국 주차·장례식장·식당 등 수익 사업을 할 수밖에 없으며, 외부 후원금은 거의 없다는 것입니다. 서울대병원의 운영비 5000억원 중 기부금이 1.1% 수준이었습니다. 반면 MD앤더슨이나 존스홉킨스 등 미국의 유수 병원들은 예산의 20~30%를 기부금이 차지합니다. 특히 치료에 만족한 중동의 부호들이 병원 발전 기금을 기부한 MD앤더슨 암센터의 경우, 최근에도 아랍에미리트 자히드 왕자가 1500억원가량을 기부했지요.

국내 병원들도 모금 전문가를 채용해 기부금 유치를 위해 뛰고 있지만, 상황은 그리 쉽지 않아 보입니다. “삼성서울병원이 왜 모금을 해?”라는 기부자들의 질문에 답할 수 있는 명분이 많지 않기 때문이지요. 이제부터라도 정부와 병원, 시민들은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합의하는 의료 서비스’의 꼭짓점을 찾아나가야 합니다. ‘비지떡이어도 싼 게 좋다’는 결론이든 ‘값싼 비지떡 대신 비싸도 맛있는 꿀떡이 좋다’는 결론이든 논의를 시작해야 합니다. 메르스로 놀란 가슴을 쓸어내린 이 경험은 분명 좋은 논의의 출발점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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