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5일(수)

[박란희의 작은 이야기] ‘기부왕’ 보도가 한국엔 없는 이유

특정 이슈로 인해 사안의 본질이 왜곡되는 걸 보면 답답할 때가 있습니다. 이번 황교안 국무총리 후보자의 1억4000만원 기부금 공방이 그중 하나입니다. 2013년 법무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 시절 고액 수임료를 기부하겠다는 약속을 지켰는지 아닌지에 대한 논란이지요. 고액 수임료 문제를 무마하기 위해 기부금으로 ‘물타기’를 했던 황교안 후보자도 문제고, 그걸 청문회용 ‘타격 건수’로 잡은 정치권도 문제입니다. 순수하고 고귀한 ‘기부’의 본질을 흐리는 사회적 범죄 행위이기 때문이지요.

이런 사례는 한두 번이 아닙니다. 삼성 이건희 회장과 현대차 정몽구 회장은 각각 재산 은닉과 비자금 조성 혐의가 드러나자 ‘사회 환원’을 약속하며, 삼성꿈장학재단(전신 삼성이건희장학재단)과 현대차정몽구재단을 만들었습니다. 8000억원이라는 엄청난 기부가 이뤄졌음에도 박수받고 환영받기는커녕 ‘기부가 면피용인가’라는 비판을 낳았습니다. 이런 뒤틀린 ‘면피용 기부’ 역사는 이후 줄을 잇는데, 안대희 전 국무총리 후보자 또한 대법관 퇴임 후 5개월간 번 16억원의 고액 수임료가 문제가 되자 “11억원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최근에는 30대 그룹이 설립한 35개 공익 재단이 핵심 계열사 지분을 다량 보유한 것을 두고, ‘공익 재단이 지주회사냐’라는 비판도 일고 있습니다. 공익 재단을 두고 ‘기부를 통해 사회문제 해결을 하는 자본주의의 꽃’이라고 부르며 존중하는 선진국과 판이한 모습입니다.

반면, 다른 쪽에서는 ‘기부의 신화화’가 이뤄집니다. 김밥 장사 할머니가 평생 모은 한 맺힌 ‘큰손 기부’가 대서특필되고, 기부와 나눔을 통해 행복을 찾은 ‘개미 기부자’들의 사례가 심심치 않게 언론에 보도됩니다. 하지만 이런 특별한 기부 사례가 등장할수록, ‘기부는 아무나 하나’라는 정서가 차곡차곡 쌓입니다.

매년 미국에서 ‘기부왕’ 순위가 보도되는 걸 보면서, 왜 우리나라는 기부왕을 보도할 수 없을까 생각해본 적이 있습니다. 국세청에서 개인 정보라며 알려주지 않을 텐데, 왜 미국은 가능하고 우리는 불가능할까도 생각해봤습니다. 고액 기부자들 인터뷰를 하려고 하면, 신분 노출을 꺼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언론보도 이후에 ‘너는 얼마나 돈이 많아서 기부하느냐’ ‘그렇게 돈이 많으면 나도 좀 도와달라’는 부정적인 피드백이 훨씬 많기 때문이라는데요.

초록우산어린이재단과 함께 ‘기쁜 기부, 해피플’ 캠페인도 시작하는 이유도, 우리 사회에 기부와 기부자에 대한 존중이 많아졌으면 하기 때문입니다. 기부자들은 존경받아야 하고, 윗물부터 좋은 모델 사례가 많이 나와야 합니다. 기부에 대한 이중적 시각도 버려야 합니다. 금액의 크고 작음에 상관없이 기부는 아무나 할 수 있습니다. 더 이상 고위층의 기부에 대한 물타기는 없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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