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30일(화)

공 차는 게 축구의 전부? 진정한 스포츠 정신은 함께 나눠야

사회적기업 프로 축구단 ‘고양 HIFC’
주민·동호회 등 600명서 시작… 개개인이 주주되는 국내 첫 구단
지역아동 위한 축구교실·재능기부… 홈경기 땐 사회적기업 장터 후원… “축구팀답게 승리 기쁨도 전할 것”

“축구팀이 왜 이런 걸 해요?”

모금함을 향해 고사리 손을 내밀던 아이가 신기한 듯 물었다. 자원봉사자로 참여한 김도련(65·경기 고양시)씨가 “우리 축구팀은 세상에서 가장 멋진 팀이기 때문이란다”면서 빙그레 웃었다.

지난해 10월 고양종합운동장에서 펼쳐졌던‘아빠와 함께 하는 축구캠프’의 한 장면. 고양 HIFC는 지역사회와 주민들을 위한 여러 사회공헌 활동들을 진행하고 있으며, 다양한 홍보, 마케팅, 캠페인 활동으로 고양시민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고양HIFC 제공
지난해 10월 고양종합운동장에서 펼쳐졌던‘아빠와 함께 하는 축구캠프’의 한 장면. 고양 HIFC는 지역사회와 주민들을 위한 여러 사회공헌 활동들을 진행하고 있으며, 다양한 홍보, 마케팅, 캠페인 활동으로 고양시민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고양HIFC 제공

지난 13일 저녁 8시, 경기 고양시 대화동에 위치한 고양종합운동장에선 ‘2015 현대오일뱅크 K리그’의 챌린지(2부) 리그 경기가 펼쳐졌다. 이 경기장을 홈구장으로 쓰는 ‘고양HIFC’가 ‘상주 상무’팀을 불러 펼치는 올 시즌 9번째 경기. 그런데 경기 시간 2시간 전부터 경기장 동측 통로가 북적였다. 지난달 발생한 네팔 대지진 구호모금 행사가 진행됐던 것. 구단 관계자는 “여기서 모인 돈은 국제개발NGO ‘굿피플’을 통해 네팔 돕기에 사용될 예정”이라고 했다. ‘네팔 주민들의 안전과 빠른 복구를 응원합니다’라고 쓰인 대형 현수막 앞에 마련된 부스엔 관객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았다. 작년부터 이 팀의 팬이 됐다는 하영민(가명·44)씨는 “고양HIFC를 잘 아는 팬이라면 전혀 이상할 것 없는 이벤트”라며 반겼다.

경기가 시작되자, 녹색 그라운드 위에 빨간색 유니폼을 입은 선수들이 뛰쳐나왔다. 가슴에 새겨진 로고는 ‘굿피플(Good People)’. 고양 HIFC는 지난 3월 굿피플과 유니폼 메인 스폰서 계약을 체결했다. “보통 메인 스폰서에 10억원 정도 받는데, 유니폼을 입는다는 건 10억원을 후원한다는 의미입니다. 스페인의 축구팀 ‘FC바르셀로나’가 ‘유니세프(Unicef)’를 달고 뛰는 것과 비슷한 거죠.” 서희철 고양HIFC 사무국장의 설명이다. 경기에 앞서 기부·모금행사를 펼치고, 대기업 대신 NGO의 로고를 달고 뛰는 축구팀 ‘고양HIFC’의 정체는 뭘까.

◇국내 최초 사회적기업 프로 구단 ‘고양 HIFC’

고양HIFC의 전신은 실업팀 ‘안산 할렐루야 축구단’이다. 1980년 기독교의 선교축구단 성격으로 탄생해 30여년간 지역의 고아원·양로원·교도소 등을 돌며 축구를 지역사회 공헌에 활용했던 구단. 2013년 프로 2부 리그(현 챌린지 리그)에 참여하고, 연고지를 경기 고양시로 옮기면서 이 축구단이 개혁의 시기를 맞았다.

“새로운 연고지를 위해 뭘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사회적기업’이란 걸 알게 됐어요. 우리가 늘 추구해왔던 것과 다를 게 없더라고요. ‘FC바르셀로나’도 비슷한 형태란 걸 알았고요.”(스페인 프로축구 리그의 명문팀 FC바르셀로나는 사회적기업이자 협동조합구단으로, 15만 시민주주가 주인이 되어 운영한다. 시민들이 구단 행정과 관련해 1인 1표를 행사하기 때문에 입장료가 타 리그의 10% 수준에 불과하다.)

그해 11월, 고양HIFC는 경기도의 (예비)사회적기업 인증을 따냈다. 국내 프로스포츠 구단을 통틀어 첫번째 사례로, 프로구단 중 유일한 지정기부금단체(사단법인)이기도 하다. ‘축구, 그 이상의 가치를 통해 세상을 바꿔보자’는 미션에 공감한 지역민, 축구동호인 등 600여명이 모여 시민후원회를 결성했는데 이 역시 국내에선 처음 시도된 것이다. 현재 고양HIFC의 후원자는 3000여명까지 늘었는데, 이들의 후원금(약 10억원)은 연간 구단 운영비의 3분의 1에 달한다.

고양HIFC는 연 2회 중남미 전지훈련을 통해 해외 자선 활동을 펼친다. /고양HIFC 제공
고양HIFC는 연 2회 중남미 전지훈련을 통해 해외 자선 활동을 펼친다. /고양HIFC 제공

◇축구, 그 이상의 가치를 추구하다

“자, 이건 민첩성을 재는 거니까, 저 표시를 최대한 빨리 찍고 돌아오는 거야~.”

지난달 6일 오후, 경기 고양시 행주내동에 위치한 충장공원 축구장에 36명의 학생이 모였다. 고양시에 위치한 6개 지역아동센터에서 모인 아이들이다. 고양HIFC가 진행하는 ‘2015 하이드림’ 프로그램의 첫날. 삼성꿈장학재단의 후원과 고양시의 협조로 이뤄지는 하이드림은 축구를 통해 인성을 배우는 유소년 축구교실로 올해로 벌써 3년째다. 서현철 하이드림 축구단 감독은 “축구를 큰 틀로 그 안에서 멘토 프로그램이나 특강, 진로 탐색 등이 이뤄지는 8개월(35회차)간의 대장정”이라며 “축구 기술을 통해 자연스럽게 인성교육을 할 수 있는 게 가장 큰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벌써 3년째 이 프로그램에 참여한다는 임종우(가명·12)군은 “툭하면 싸워서 혼이 많이 났었는데, 여기서 축구를 배우며 화를 다스리고 상대를 이해하는 법을 배웠다”면서 “여기 오면 마음껏 뛰어놀 수 있어서 매우 좋다”고 했다.

사회적기업 구단답게 고양HIFC의 활동은 남다르다. 서희철 사무국장은 “다른 구단들도 유소년 축구교실을 열고 있지만, 모두 단발성이며 축구 기술 전수에 그친다”고 했다. 하이드림 외에도 선수단이 지역의 일반학교나 특수학교 등을 찾아다니며 재능기부·배식봉사 등을 펼치는 ‘즐거운 학교! 건강한 스포츠!’ 프로젝트를 2년째 진행하고 있으며, 전 선수단이 월급 1% 나눔에 참가한다. 연 2회 전지훈련을 가는 중남미에서도 축구교실과 자선 축구대회를 여는 게 주요 스케줄 중 하나다. 지역의 사회적경제 지원도 활발하다. 연 20회가량 열리는 홈경기 때는 경기장 로비나 광장을 오픈해 사회적기업의 장터를 열어준다.

고양HIFC가 한국의 FC바르셀로나가 될 수 있을까.

“우리나라 환경에서 프로 구단이 기업이나 지자체의 도움 없이 자생하는 건 불가능해요. 하지만 우린 시민과 함께 조금씩 이뤄가고 있죠. 아직 갈 길은 멉니다. 시급한 과제는 축구팀답게 최고의 경기력으로 감동을 선사하는 것이죠. FC바르셀로나처럼요. 잘해서 1부 리그에 올라가면 더 많은 사람에게 우리의 가치를 알릴 수 있지 않을까요.”(서희철 사무국장)

국내 축구 프로리그는 챌린지 리그 상위팀이 플레이오프를 거쳐 클래식(1부) 리그에 진입할 수 있다. 올 시즌 고양HIFC는 현재 5위(4승1무4패·총 10개팀)를 기록 중이다.

고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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