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6일(목)

[박란희의 작은 이야기] 비영리 리더, 남의 식구 이전에 자기 식구부터 돌봐야

박란희의 작은 이야기

워낙 숫자 개념이 부족한 제가 회계를 좀 알아보겠다고 읽은 ‘회계천재가 된 홍대리’라는 책에서 인상 깊었던 대목이 있습니다. 흔히 신입사원들이 입사하면 사장님이 “여러분은 우리 회사 최고의 자산입니다”고 하지만, 기업 입장에서 직원들은 ‘자산’인지 ‘비용’인지 모호하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매달 직원 월급을 줘야 하니 비용이기도 하고, 직원 없이는 생산 활동을 해낼 수 없으니 자산이기도 하다는 것이지요. 자산이라고 생각하는 CEO라야 직원 교육이나 복지에 아낌없이 투자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걸 읽으면서, ‘신문사에서 기자는 자산일까, 비용일까’ 하고 혼자서 곰곰이 생각해본 일이 있습니다.

직장인들이 연봉이나 업무 강도, 기업 문화 등을 익명으로 평가하는 플랫폼 ‘잡플래닛’에 비영리단체 이야기가 이리도 많을 줄 몰랐습니다. 모금액 기준 상위 10개 비영리단체에 관한 평가만 받아보았는데, 놀라웠습니다. 상명하복, 끝없는 야근에 비해 야근수당 없음, 체계적이지 못한 업무 시스템, 직원에 대한 존중 없음, 위계 질서가 강해 군대 같음, 직원 존중도 없고 복지도 없음, 쥐꼬리 월급, 직원 헌신을 당연시하는 문화, ‘고인물’ 경영층, 주먹구구식 인사 시스템, 조직 내 소통 부재…. 경영진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읽는데 가슴이 아팠습니다. “사람이 미래다” “사람 귀한 줄 알았으면 좋겠다” “직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달라” “직원이 행복해야 돌보는 아동도 행복해진다” 등 모두 비슷합니다.

반면, 비영리단체의 사무총장이나 리더들의 이야기는 또 다릅니다. “주말 근무도 싫어하고, 야근도 싫어하고 편한 직장 생활하러 온 건지 모르겠다” “20년 넘게 헌신해서 단체를 끌고왔는데, 후배들은 이제 와서 ‘고인물’이라고 한다”고 합니다. 직원 수 1000명이 넘는 대형 비영리단체이건, 10명 안팎 소규모 단체이건 조직 내 세대 갈등과 소통 부족은 비슷비슷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진저티프로젝트’ ‘NPO스쿨’ 등과 같이 비영리 조직을 진단하고 컨설팅해주는 전문 기관도 속속 생겨나고 있습니다.

최근 만난 한 단체는 직원 전체가 2주 동안 미국 비영리단체를 탐방하는 연수를 다녀왔다고 합니다. 그동안 받은 외부 상금을 모아 비용을 충당했는데, 직원들이 “연수가 좋아서 못 그만두겠다”고 할 정도로 반응이 좋았다고 합니다.

직원에게 한 달 동안 여름휴가를 주는 비영리단체도 있습니다. 월급이라는 보상 체계가 약한 비영리단체는 무엇으로 직원들의 만족도를 높여야 할까요. ‘헌신’과 ‘사명’으로 똘똘 뭉쳐진 1세대 비영리 리더들은 이제부터라도 고민을 시작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몇 년 지나지 않아 비영리단체는 ‘파리 날리는 구멍가게’가 될지도 모릅니다. 젊은 세대가 떠나버린 그 자리는 어쩌면 영영 채워지지 못할 수도 있으니까요.

관련 기사

Copyrights ⓒ 더나은미래 & futurechosun.com

전체 댓글

제261호 2024.3.19.

저출생은 '우리 아이가 행복하지 않다'는 마지막 경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