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3일(금)

춤바람 난 교실… “학교폭력이 뭐예요?”

월드비전·EBS 학교폭력 예방 캠페인 ‘교실에서 찾은 희망’
캠페인송 맞춰 플래시몹 찍어 공유
친구·선생님과 친해지는 계기로
집에서도 부모와 대화 시간 늘어나

월드비전·EBS의 학교폭력 예방 캠페인 ‘교실에서 찾은 희망’은 아이들이 함께 춤을 추며 협동심과 성취감을 느낄 수 있게 했다. 사진은 목동 서정초등학교 6학년 5반 학생들이 플래시몹 안무를 연습하는 모습. /월드비전 제공
월드비전·EBS의 학교폭력 예방 캠페인 ‘교실에서 찾은 희망’은 아이들이 함께 춤을 추며 협동심과 성취감을 느낄 수 있게 했다. 사진은 목동 서정초등학교 6학년 5반 학생들이 플래시몹 안무를 연습하는 모습. /월드비전 제공

“굉장히 내성적인 아이가 있었어요. 눈을 마주칠 때마다 일부러 ‘안녕?’ 하고 크게 인사를 건네야 겨우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죠. 그런데 춤바람이 나면서 달라지더라고요. 지금은 친구들과도 잘 어울리고 무척 밝아졌죠.”

서울시 목동 서정초등학교 김경애(31) 선생님의 말이다. 김 선생님이 맡고 있는 6학년 5반은 ‘춤추는 학급’으로 통한다. ‘행복돼지반’이라는 애칭을 가진 이 반은 매년 아이들은 바뀌어도 늘 한결같은 팀워크를 자랑한다. 교내 이어달리기 대회, 줄넘기 대회 등 학급 대항전에서도 1등을 놓치지 않는다. 국제 구호 NGO 월드비전과 EBS가 공동 주최한 ‘교실에서 찾은 희망’ 캠페인에 참여하면서 생긴 변화다.

“2013년부터 매년 제자들과 함께 캠페인에 참여하고 있어요. 지난해 아이들은 가장 협동심이 돋보이고 완성도가 높은 10개 반에 꼽혔죠. 아이들의 캠페인 영상이 교장선생님 훈화시간을 통해 상영되면서 전교생의 부러움을 사기도 했지요. 운동회와 학예회를 제외하면 반 친구들과 무엇 하나 함께할 기회가 흔치 않았던 아이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있었기에 이뤄낸 결과입니다.”

‘교실에서 찾은 희망’은 벌써 4년째 이어져온 학교폭력 예방 캠페인이다. 캠페인송에 맞춰 플래시몹(여러 사람이 특정 장소에 모여 벌이는 깜짝 공연)을 촬영하고, 이 영상을 유튜브로 공유하면 된다. 전국의 초·중·고등학교 학급 또는 15명 이상의 동아리라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졸음 오는 교육은 가라’, 함께 춤추며 협동심·성취감 키워

최준열(사진 왼쪽), 윤지훈 군은 중학교에 진학한 뒤에도 끈끈한 우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최준열(사진 왼쪽), 윤지훈 군은 중학교에 진학한 뒤에도 끈끈한 우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학기 초라 친구들이 많이 낯설 때였는데 캠페인을 하면서 금세 친해졌어요. 반 친구들이랑 춤 연습을 하려고 점심시간 축구도 포기했다니까요.” 최준열(사진 왼쪽), 윤지훈 군은 중학교에 진학한 뒤에도 끈끈한 우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수업이 모두 끝난 금요일 방과 후, 서정초등학교 6학년 5반에 신나는 음악 소리가 울려 퍼졌다. “친구의 입장에서 생각해보기, 서로가 다르다고 차별하지 말아요~.” 월드비전 아동권리위원회 아이들이 직접 개사하고 부른 캠페인 송의 가사가 마치 이야기를 하는 듯했다. 노래에 맞춰 친구들과 호흡을 맞춘 몸짓이 제법 익숙했다. 처음에는 간식으로 “피자를 준다”는 말에 솔깃했던 아이들이지만, 한 달 넘게 연습을 하는 동안 ‘더 재미있고 완성도 높은 영상을 찍고 싶다’는 목표를 갖게 됐다.

이 과정에서 김경애 선생님도 달라졌다. ‘검은 아우라’로 불릴 만큼 소문난 호랑이 선생님이었지만, 아이들과 함께 춤을 추며 사제 관계가 훨씬 돈독해진 것이다. 서정초등학교의 생활부장이기도 한 김 선생님은 “일방적인 교육이나 사후 처벌만으로는 학교폭력을 완전히 예방할 수 없다”며 “학교폭력을 근본적으로 예방하려면 친구들과 서로 협력하고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해보는 경험을 심어줘야 하는데, ‘교실에서 찾은 희망’은 아이들에게 함께하는 성취감을 맛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됐다”고 밝혔다.

◇학생과 함께 교사·학부모도 달라져

함께 모여 춤추고 동영상을 찍어 올리는 게 학교폭력 예방에 도움이 될까. 지난해 캠페인에 참여한 최준열(13·목동중 1년)군의 대답은 “예스”다.

“학교폭력 예방이라고 하면 외부에서 온 선생님이 강의하는 게 대부분이었는데, 지루하다고 조는 애들도 많았어요. ‘교실에서 찾은 희망’ 플래시몹은 절대 하루 안에 끝낼 수 없잖아요. 연습하는 내내 노래를 따라 불렀는데, ‘조금의 관심이면 모두가 행복해져요’라는 가사가 지금도 잊히질 않아요. 학생회장이 된 후에는 다른 반 반장들과 학교폭력을 막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해 토론도 하고, 점심시간을 쪼개 신관 건물 등 학교 안의 으슥한 장소를 살펴보러 다니기도 했어요.”

아이들에게 흥미를 끌기 위한 요소도 캠페인 곳곳에 숨어 있다. 캠페인송 원곡은 가수 브라운아이드걸스의 ‘오아시스’로 작곡가 윤일상씨가 재능 기부했다. 춤은 가수 쥬얼리의 안무를 담당한 최정호씨가 직접 구성했다.

변화시킨 건 아이들뿐만이 아니다. 지난해 졸업생 윤지훈(13·목운중 1년)군의 어머니 정현이(45)씨는 “캠페인 덕분에 아이의 학교생활에 대해 더 잘 알게 됐다”고 말했다.

“아이가 고학년이 되면서 학교생활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부분도 늘어났어요. 그런데 교실에서 찾은 희망 캠페인에 참여하면서 오늘은 얼마만큼 연습을 했고, 어떤 일이 있었다는 걸 말해 주니까 이야기하는 시간이 자연스레 늘었죠. 이전에는 함께 축구하는 아이들이나 같이 임원을 맡은 친구들 정도만 알고 있었는데, 영상을 보면서 여자아이들도 하나씩 눈에 익더라고요. 학부모들끼리도 대화할 거리가 늘어서 다들 친하게 지낼 수 있었어요.”

◇동영상 공유로 참여 학급 급증… 올해는 ‘짝’ 미션 추가돼

미상_그래픽_아동청소년_캠페인관련조사결과_2015

교실에서 찾은 희망 캠페인에 참여한 학급들의 플래시몹 영상이 유튜브에 공유되면서 참여율도 점점 높아지고 있다. 캠페인 첫해에는 287개 학급이 참여했지만 지난해에는 816개 학급으로 증가했으며, 유튜브 조회 수도 2만5000건에서 17만건으로 급상승했다. 올해 ‘행복돼지반’ 친구들 역시 지난해 선배들의 영상을 미리 찾아보고 댓글까지 다는 등 선의의 경쟁에 열을 올리고 있는 중이다.

윤지훈군은 “안무를 외우고 촬영까지 해야 하지만, 막상 해보면 정말 재미있고 소중한 추억이 된다. 기회가 된다면 지금 같은 반인 중학교 친구들과 함께 다시 한 번 도전하겠다”며 의지를 불태웠다.

올해는 캠페인 영상에 행복한 학교와 교실을 함께 만들어가는 ‘짝’을 함께 담는 미션이 생겼다. 지난해 동영상에 부모님과 친구들이 응원의 댓글을 달면 우수 학급 선정 시 가산점을 부여하던 것보다 한층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한다. 김지혜 월드비전 국내사업전략팀 과장은 “교실에서의 짝꿍뿐만 아니라 부모님, 선생님, 학교 전담 경찰관, 동네 어르신까지 누구나 학교 폭력으로부터 아이들을 지키는 ‘짝’이라는 뜻에서 해당 미션을 추가했다”고 말했다.

올해 교실에서 찾은 희망 캠페인 참가 동영상 접수는 이달 27일부터 7월 5일까지 10주간 계속되며, 5월 14일부터 매주 목요일 희망상과 나눔상 각 30개 팀을 선정해 후원사인 오리온의 스낵박스와 미스터피자의 피자 쿠폰을 부상으로 발송한다. 모든 캠페인이 종료된 후에는 우수 학교와 교사를 선정해 시상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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