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5일(일)

“아직 사회적 경제가 낯설어… 공공기관 구매담당자 공감대 필요하다”

사회적기업 공공구매 극심한 불균형…
“어떻게 바로잡나” 민·관 대담

지난 3월, 서울시 사회적경제지원센터(이하 사경센터) 시장조성지원단이 2014년 서울시의 사회적경제 기업 공공구매 실적을 발표했다. 정인수 서울시 사경센터 공공구매영업지원단 연구위원은 “서울시 구매에서 물품이 차지하는 비중이 79%나 됐는데, 사회적기업 10곳 중 8곳이 서비스·용역 업체였다”고 설명했다. 수요와 공급의 극심한 불균형이다.’더나은미래’는 ‘미스매치’의 원인을 분석하고, 향후 발전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민·관의 속내를 들어봤다. 이번 대담에는 송기호 서울시 사경센터 시장조성지원단장, 이철종 사회적기업 ‘함께일하는세상’ 대표, 정진우 서울시 경제진흥실 사회적경제과장(이상 ‘가나다’ 순)이 참여했다. 편집자 주


사회적경제 공공조달에 대한 현재와 개선 방향을 논의하는 민·관 대표 패널들. 왼쪽부터 송기호 단장, 정진우 과장, 이철종 대표.
사회적경제 공공조달에 대한 현재와 개선 방향을 논의하는 민·관 대표 패널들. 왼쪽부터 송기호 단장, 정진우 과장, 이철종 대표.

사회=’미스매치’ 얘기부터 해보자. 물품을 구매하는 관(官)의 사정이 궁금한데.

정진우 과장(이하 정)=지난해 서울시가 가장 많이 사들인 사회적경제 기업 물품은 인쇄물이었다. 복사지, 화장지 등 일상용품은 카드 결제로 이뤄지는 등 행정 부담이 적다. 하지만 서비스 영역은 얘기가 달라진다. 웬만한 계약이 2000만원을 넘어 입찰을 거쳐야 한다.입찰을 하려면 평가방식이나 가점 등을 고려해 입찰 설계를 해야 하고, 승인을 얻어야 한다. 행정담당자 입장에서는 사회적경제를 고려하기에는 업무 부담이 커지는 것이다.

이철종 대표(이하 이)=일선 구매업무 담당관들은 아직 사회적경제가 낯설고 왜 적극적으로 구매해야 하는지 잘 모른다. 공감대가 공공기관 내의 모세혈관까지 퍼져 있지 못하다.

송기호 단장(이하 송)=공공구매 담당자는 늘 선례를 원한다. 첫 사례가 되는 것에 부담을 느끼는 것 같다. 공공에서 이전부터 장애인 시설 생산품이나 자활기업 제품을 우선구매했던 전력이 있다 보니 사회적경제의 물품에 대해선 어느 정도 신뢰와 이해도가 있는 상태인데, 서비스의 경우는 아직 탐색기다. 이 과정을 넘어서면 서비스 구매도 올라갈 것이라고 본다.

사회=사회적경제 제품에 대한 공감이나 인식을 늘려야 한다는 말인가.

=제품이나 서비스에 대한 정보가 굉장히 부족하다. 2012년에 서울시에서 사회적경제 기업 온라인 쇼핑몰 ‘함께누리몰’ (www.hknuri.co.kr)을 만들고 작년에는 대대적으로 리뉴얼도 했는데, 입점이 저조하고, 규격화도 잘 안 돼 있어서 바로바로 조달로 이어지지 못한다. 개인적으론 제품 품질도 중요하지만, 거기에 담긴 가치와 스토리텔링도 중요하다고 본다. 이런 정보까지 공유돼야 공공영역이 구매에 참여하는 당위성이 생긴다.

=만약 ‘함께누리몰’에 공연기획 전문기업이 들어와 있다면, 쿠키를 파는 회사보다는 기업을 소개하는 게 훨씬 어려울 것이다. 서울시 사경센터에서는 작년부터 서비스를 물품처럼 쉽게 고를 수 있도록 하는 협동화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영리 섹터의 ‘종합상사’ 같은 회사는 여러 공급자들을 끌어들여 납품계약을 진행하고 판매 과정에서 이윤을 발생시키는 구조인데, 향후 사회적경제 분야에도 이런 종합상사 비즈니스가 필요해질 것이다. 사회적기업은 생산을 중심으로 활동한다. 당연히 상품 자체는 괜찮다. 그런데 이걸 가지고 고객에게 접근하는 부분이나, 갖고 있는 장점을 어필하는 것에 상당히 취약하다.

사회=사회적경제 기업 제품 구매에 대해선 서울시가 굉장히 선도적이다.

=시에서 어떤 시설을 지으려고 A건설업체를 선정했는데, 이 회사가 최소 고용에, 근무요건까지 열악한 구조라면 아무리 건물을 근사하게 지어도 잘못한 거래다. 공공의 목적은 사회서비스를 제공하며 사회적 안정을 도모하는 것 아닌가. 사회적경제 활성화는 결국 민간의 역량을 활용해 이를 해내겠다는 것이다. 서울시에서 ‘함께 누리는 사회적기업 장터’를 여는데 거기에 ‘새터협동조합’이 참여했다. 새터민들로 구성된 조직이다. 이를 통해 이 조합의 매출이 성장했다. 영업력이 높아지고, 제품도 다양해진다. 그러면서 자립할 수 있는 역량이 생긴다. 자연히 새터민에 대한 복지재정이 절약된다. 이런 모습이 우리가 사회적경제 구매를 촉진하며 기대하는 부분이다.

=서울시 본청 건물을 새로 지을 때 공간기획을 사회적기업 ‘티팟’이 맡았다. 티팟은 이를 계기로 경기도청 리뉴얼까지 참여했다. 원래 경기도청은 고층건물로 세우려고 했는데 티팟은 이를 저층으로 널찍하게 설계해서 도민들의 참여와 공감을 높였다. 소통하는 공간을 만드는 미션이 이렇게 확장되는 것이다.

사회=실제 구매를 진행하는 과정에선 안타까운 부분도 있을 것 같다.

=공기관의 ‘관행’이라는 게 참 바뀌기 어렵다. 사회적 약자를 배려한 구매 파트너를 찾는 건 사고의 전환이 필요한 일이다. 충돌하는 부분도 많다. 최저가를 맞추려고 하는 계약심사과와 싸워야 하고, 감사과에도 걸린다. 기존과 조금 다른 계약이 생기면 ‘안 된다’, ‘이상하다’라고 여긴다.

=구매 제도는 그나마 조금씩 개선되고 있는데, 평가·성과 부문에선 아쉬운 게 많다. 사회적기업과의 파트너십이 공기관 평가에 반영이 안 되거나 아예 저평가 되는 사례가 많다. 모 공공기관에서 공원 내 유휴공간을 사회적기업에 저렴하게 임대해주는 제도를 만들었는데, “왜 수익사업을 그렇게 하냐”고 감사 지적이 들어온 적이 있었다. 그 사례를 보고 다른 공공기관에선 사회적경제와의 파트너십을 주저하기도 했다. 앞으로 풀어야 할 과제다.

=사회적기업 역량도 문제다. 서울에 2000개가 넘는 사회적경제 기업이 있지만, 사실 공공조달에 대한 경험을 갖고 있는 기업은 10%도 안 된다.

사회=공공과 사회적경제 간의 파트너십, 향후 어떻게 발전시켜야 할까.

=기업을 평가하는 요소는 여러 가지다. 상품력도 필요하지만, 우리의 존재가치가 무엇이고, 그게 왜 중요한지 증명해 낼 수 있어야 한다.”사회적경제 기업에 100만원을 투자했는데 120만원의 가치를 만들어 내더라”, “장애인·기초생활수급자들에 대한 복지 재정을 줄여주더라”라는 말을 계속 들으면, 공공기관이 먼저 나서서 손을 내밀게 될 것이다.

=지금은 민·관 협력을 만들어가는 과도기다. 학교협동조합의 예를 들면, 착한 먹거리가 제공된다는 게 확연히 드러나니까, 교육청이 조례를 바꾸고, 민간은 협의체를 만들어 공급 방법을 고민한다. 아직은 시행착오를 겪는 단계지만 이런 경험들을 꾸준히 쌓아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최태욱 기자

권보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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