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9일(일)

미래학 권위자 요르겐 랜더스 교수 인터뷰 “더 나은 미래는쉽게 오지 않는다”

“인간의 이기심 활용한 환경 정책 설계해야”

1970년 ‘성장의 한계’ 지적한 책

9억부 팔리며 센세이션 일으켰지만

기후변화 막지 못해 실패

 

테슬라 ‘전기차’처럼

개인의 이익 만족시키면서 환경 살리는

장기적 정책 필요

인간의 의지와 노력만 있다면 변화를 만드는 게 가능할까. 요르겐 랜더스 교수는 “충분히 가능하다”고 확신했다. 그는 “1972년에는 ‘중국의 폭발적인 인구 증가’가 지속 가능성을 위협하는 큰 요소였는데 이후 중국 정부가 정책적으로 잘 개입했다”며 “현 중국 인구가 13억인데 출산율 관리 정책이 아니었으면 지금보다 4억은 더 많았을 것”이라고 했다. /이재희 씨영상미디어 객원기자
인간의 의지와 노력만 있다면 변화를 만드는 게 가능할까. 요르겐 랜더스 교수는 “충분히 가능하다”고 확신했다. 그는 “1972년에는 ‘중국의 폭발적인 인구 증가’가 지속 가능성을 위협하는 큰 요소였는데 이후 중국 정부가 정책적으로 잘 개입했다”며 “현 중국 인구가 13억인데 출산율 관리 정책이 아니었으면 지금보다 4억은 더 많았을 것”이라고 했다. /이재희 씨영상미디어 객원기자

“2052년, 세계는 어떤 모습일까?”

세계적인 미래학자는 질문을 던졌다. 40년 후를 내다보는 그의 예측은 썩 밝지 않다. 성장은 정체되고, 빈곤은 여전하다. 대규모 멸종이 일어나고 생물 다양성은 붕괴된다. 어장 파괴로 어획량도 감소한다. 평균기온은 2.3도 이상 오른다. 기후변화로 가뭄, 폭풍, 지진, 해일 같은 극단적인 자연재해는 훨씬 더 자주 일어난다.

어림짐작만은 아니다. 시스템 공학 분야, 기후 문제와 시나리오 분석의 대가답게 예측은 구체적이다. ‘인류는 지금보다 300㎏이나 많은 1300㎏의 식량을 연간 소비하며 엄청난 이산화탄소를 배출하게 될 것’, ‘이산화탄소 배출은 2030년에 정점을 찍지만, 이미 대기 이산화탄소 축적량은 위험한 경계에 오를 것’과 같은 식이다.

지난 8일, 미래학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이자, 2052년을 내다본 책 ‘더 나은 미래는 쉽게 오지 않는다(원제 2052:A Global Forecast for the Next Forty Years)’의 저자 요르겐 랜더스(Jorgen Randers) 노르웨이 경영대학원 기후전략 교수를 만나 ‘미래의 전망’에 대해 물었다.

요르겐 랜더스는 기업·정치·과학 등 각 분야 저명인사들이 참여해 인류와 지구의 미래를 연구하는 글로벌 비영리 연구기관 로마클럽의 핵심 멤버이자, 인류의 미래를 언급할 때 가장 많이 인용되는 책 ‘성장의 한계(Growth to Limits)’를 집필한 공동 저자다.

그는 서울에서 열린 ‘이클레이(ICLEI) 세계도시 기후환경총회'(8~12일)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했다. 전 세계 203개 도시가 함께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 방안을 논의하고 지속 가능한 미래를 모색하는 자리다.

-책에서 그리는 2052년의 모습이 무척 우울하다. ‘성장의 한계(Growth to Limits)’ 연구 보고서가 나온 지 40년이 된 시점을 기념해 발간했다고 들었다. ‘성장의 한계’는 어떤 연구였나.

“1970년, 나를 비롯한 MIT 젊은 과학자 4명은 글로벌 비영리 연구기관인 로마클럽을 통해 ‘100년 후 지구와 인류는 어떻게 될까’ 하는 연구에 착수했다. 1970년부터 2100년까지의 기간을 프로그램을 돌려, 진행 가능한 가상 시나리오를 뽑은 거다. 12개의 시나리오가 나왔다. 6개는 부정적인 결론, 6개는 그나마 지속 가능한 상태로 갈 거란 예측이었다. 분명한 건, 인류가 별다른 개입을 하지 않고 현 상태로 성장만을 지속했다간 어느 시점에서 한계를 넘어설 것이란 점이었다.

당시 기술로는 이 중 어떤 시나리오가 가장 확률이 높을지 예측하지 못했다. 연구는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책은 36개 언어로 번역되고, 세계적으로 9억부 이상이 팔렸다.

그때만 해도 ‘지구가 생각보다 작고, 자원은 유한하며, 끊임없는 성장은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이들이 없었다. 연구 결과를 두고 충격이라는 평과 더불어 ‘합리적인 인간이 지구가 그렇게 될 때까지 둘 리가 없다’, ‘부정적인 시나리오가 과장, 왜곡됐다’는 비판적인 반응도 많았다. 하지만 40년이 지난 지금 와서 평가할 때, 그 연구 보고서는 실패했다고 본다.”

-9억부 이상이 팔린 연구 보고서가 실패했다니, 무슨 의미인가.

“사회적 임팩트(impact)가 없었다. 인기는 많았지만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했다. 책이 나온 이후 지난 40년간 분명해졌다. 경제성장은 지속됐고, 자원 소비도 계속 늘었다. 기후변화도 진행되고 있다. 현 지구 생태계가 흡수할 있는 이산화탄소의 두 배 이상을 인류가 내뿜고 있다. 산호초가 죽어가고 사막이 늘어나고 토양은 침식됐다. 우리는 미래의 시나리오들을 제시하고 경고만 했을 뿐, 행동을 바꾸고 국제사회의 협력을 촉구하는 데는 실패했다.”

-사람들을 바꾸지 못한 이유는 뭘까.

“인간은 이기적인 동물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미래의 ‘대의(大義)’ 대신 당장 손에 잡히는 구체적인 이익을 원한다. ‘100년 후 지구의 지속 가능성’을 아무리 얘기해도, 미래는 멀고 오늘은 가깝다.

가령, 석탄을 예로 들어보자. 석탄을 쓰면 어마어마한 양의 온실가스가 배출된다. 당장이라도 지속 가능한 대체 에너지로 전환하는 게 먼 미래를 보면 옳다. 그러나 탄광을 소유한 사람, 여기서 일하며 돈을 버는 사람, 이걸 가공해 유통하는 사람, 관련 제품을 만드는 사람 등 ‘석탄 산업의 성장’을 통해 이득을 얻던 이들은 결사반대할 거다.

산업만이 아니다. 오염을 줄이는 효과적인 방법은 정부가 세금을 더 걷는 것이다. 그 돈으로 오염 방지 기계를 사거나, 기본 인프라를 더 환경 친화적으로 교체할 수 있다. 사람들이 세금 더 내는 것을 좋아할까? 절대 아니다. 민주주의하에서 정치인들은 사람들이 원하지 않을 얘기는 하지 않는다. 당선돼야 하는 게 정치인들의 가장 큰 이해관계다. 자본주의 아래서 비즈니스의 최대 목표는 이윤 창출이다. 많이 팔려야 하고, 계속 성장해야 한다. 다들 이대로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됐다고 해도, 단기적인 이익을 희생할 마음도, 그걸 장려하는 방향으로 체제가 돌아가는 것도 아니다.”

-2052년에 대한 책을 낸 이유는 무엇이었나.

“지난 40여년 동안 ‘지속 가능한 개발’을 연구했다. 한평생을 바친 셈이다. 지금까지의 결과는 실패다. 처음 책을 쓸 당시에 비해 지구는 훨씬 더 지속 가능하지 못한 상태가 됐다. 전략을 바꿨다. 제도 변화를 촉구하는 대신, 지금의 시스템이 유지될 경우 2052년에 ‘가장 가능성이 큰 미래의 모습’을 상세하게 예측해 보여주기로 했다. ‘우리 미래가 이렇게 흘러갈 가능성이 가장 높으니 이제는 현실적인 행동이 필요하다’라는 생각에서 행동이 촉구되길 바랐다.”

지난 9일 서울 동대문 DDP에서 열린 이클레이 세계 도시 기후환경총회에서 기조 연설을 하는 요르겐 랜더스 교수. /서울시 제공
지난 9일 서울 동대문 DDP에서 열린 이클레이 세계 도시 기후환경총회에서 기조 연설을 하는 요르겐 랜더스 교수. /서울시 제공

미래 예측을 위해, 시간에 따른 일반적인 추세에 사회과학적인 수치들이 활용됐다. 다양한 시각을 담기 위해 세계적인 전문가 41명에게도 ‘2052년까지 틀림없이 일어날 거라고 생각하는 일들’에 대해 글을 받았다.

세계적인 CSR 전문가 웨인 비서, 옥스퍼드대 행동생태학 석학인 스테판 하딩, 런던 동물학회 동물학자인 조너 선 등의 예측도 하나로 반영됐다. 그는 책에서 “그 모든 전문가가 독자적으로 미래의 모습을 그려 적어 준 글이 놀라울 정도로 어긋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예측한 2052년 미래 모습을 요약해 달라.

“복합적인 그림이다. 앞으로 40년간 경제성장은 계속되지만 정체될 것이다. 인구 수는 2040년에 약 80억명으로 정점을 찍고 조금씩 줄어들 것이다.

2050년에도 빈곤은 여전할 것으로 예측된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기후 변화다. 탄소 배출로 인한 기후 변화로 홍수나 가뭄, 해수면 상승, 생물 다양성 붕괴, 자원 고갈, 충격적인 자연 파괴, 그로 인한 불평등 문제는 계속 심화될 것이다.

무엇보다 인류는 오염을 제어하고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전보다 훨씬 큰 비용을 들여야 한다. 전통적으로 GDP의 24% 정도였지만 대략 36%, 그 이상 비용을 들여야 변화한 환경에 계속 적응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상황은 똑같지 않은가. 여전히 미래는 멀고 사람들의 이기심은 변하지 않는데, 우리는 과연 무엇을 해야 하는가.

“단기적인 이익을 줄 수 있으면서도, 장기적으로 기후변화에 도움이 되는 것들을 정교하게 구상하는 게 필요하다. 가령 테슬라(Tesla)의 전기자동차가 단순한 예다. 기존 차량에 비해 가격이 두 배 이상인데도 사람들은 이 차를 산다. 왜? 환경을 위한 전기자동차라서가 아니라, 좋아 보이고 이웃 차량보다 두 배 이상 빠르게 달릴 수 있기 때문이다. 개인의 단기적인 이해에 부합하면서도, 장기적으로는 환경에 좋은 예다.”

그는 이 대목에서 “테슬라의 사례가 장단기 이익을 잘 부합한 사례에 적합하다는 것이지, 기업의 CSR로 이 엄청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며 선을 그었다.

“정책이나 캠페인도 정교하게 고민해야 한다. 미국의 열렬한 환경운동가이자 정치인이었던 앨 고어(Al Gore)는 미국 내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는 안을 짰다. 계획은 원대하고도 단순했다. 동북부 지역 모든 농부가 풍차를 짓도록 하고, 차량 생산 공장들이 있는 디트로이트에선 휘발유차 대신 전기차를 생산하도록 만들자는 것이었다. 그럼 풍력으로 만들어진 전기로 차량들이 움직일 수 있다는 원리였다.

현실에선? 물론 안 됐다. 당장 농부들이 풍차를 설치할 이유도, 차량 회사들이 전기차를 만들 유인도 없지 않나. 그런데 누군가 아이디어를 냈다. ‘기후변화, 환경오염을 막기 위해’라고 말하는 대신 ‘우리의 단기 목표는 미국이 세계 최고의 강대국으로 남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선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중동 국가들로부터 석유 독립이 목표’ 라고 얘기했다면 상황이 달라졌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것 역시 개인에게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있는 건 아니지만, 심리적으로는 환경보다 거리가 가깝다. 개인에게 단기적 이득을 주면서, 장기적인 면에서 기후 변화에 좋은 영향을 주는 제도를 잘 설계해야 한다.”

그는 “현실에선 아직 이런 사례가 많지도 않고, 쉽지도 않다는 게 문제”라며 “가장 이상적이고 효율적인 건 정부에서 법적으로 제도화시키고 세금을 거둬 투자하는 방식이지만, 얽힌 이해관계가 복잡하니 지금껏 안 됐던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도시가 할 수 있는 역할이 따로 있을까.

“오늘 저녁에 박원순 서울시장과 면담을 한다. 같은 질문을 한다고 하더라. 우선 도시에서 배출하는 이산화탄소의 실질적인 감축이 시급하다. 도시 내 인프라를 에너지 효율성이 높은 것들로 바꿔나가고, 쓰레기 재활용도 책임지고 확인해야 한다. 이런 전통적인 역할에 더해, 시민들에게 환경을 위해 더 많은 세금을 내도록 설득하는 것도 도시가 해야 할 중요한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세금을 올리면, 그 돈으로 환경에 관한 더 많은 일을 해낼 수 있다. 도시로 오려던 사람들을 억제하는 부가적인 효과도 낳을 것이다.”

-특별히 한국에 해 줄 만한 조언이 있다면.

“한국은 전쟁 이후, 굉장히 빠른 성장 속도로 여기까지 왔다. 모두가 ‘성장의 컨베이어벨트’에 타고 있는 셈이다. 그 시각에서 벗어나는 것부터가 시작이다. 모든 성장이 좋은 것도 아니고, 지속적인 성장은 때로 해결책이 아닌 그 반대다. 개인도 ‘소득’이 아닌 ‘만족도’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가령, 회사에 내년도 소득을 3% 인상하는 대신, 같은 비용으로 근무 시간을 3% 단축해달라는 운동을 시작해보라. 개인이 할 수 있는 가장 실질적이면서도 우아한 ‘지속 가능성 운동’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한국 GDP가 느는 속도는 더뎌질 것이다. 소비도 줄 것이다. 하지만 성장은 결국 한계가 있다. 성장이 도를 넘으면 돌이킬 수 없게 된다. 개인도, 사회도 지속 가능한 삶을 꾸려나가는 방향으로 초점을 새롭게 맞춰야만 할 때다.”

2052년, 밝지 않은 미래 예측으로 채워진 그의 책 가장 뒤편, 그는 이런 맺음말과 함께 책을 끝낸다.

“할 말이 딱 하나 더 있다. 내 예측이 틀리도록 도와주길 바란다. 우리가 함께 힘을 모으면 훨씬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

관련 기사

Copyrights ⓒ 더나은미래 & futurechosun.com

전체 댓글

제261호 2024.3.19.

저출생은 '우리 아이가 행복하지 않다'는 마지막 경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