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7일(화)

[Cover Story] 탈북자의 진짜 ‘홀로서기’ 저희가 힘껏 돕겠습니다

탈북 청년, 최초로 사회혁신기업을 만들다

탈북자 사회혁신기업 ‘요벨’ 박요셉 대표

 

박요셉(33)씨는 탈북 청년이다. 열여덟 살의 나이에 고향인 함경북도를 떠나 스물세 살에야 남한 땅에 첫발을 디뎠다. 5년여 동안 혈혈단신으로 중국을 떠돌며 양치기, 호텔 매니저, 공사판 노동자 등 어지간한 일을 다 겪었다. 20대 청년이 생각하기에 ‘남쪽 동네’에 정착하는 건 크게 어려워 보이지 않았다. 같은 문화권이고, 같은 언어를 쓰는 나라인데 뭐가 힘들까 싶었다.

탈북 청년들의 자립을 돕기 위해 만들어진 사회적기업 ‘요벨’을 꾸려가는 청년들. 이들은 “남한 청년, 북한 청년, 외국인이 어우러진 ‘제3의 공간’을 만들어가고 있다”고 했다. 오른쪽부터 박요셉(33) 대표, 김민준(26) 매니저, 박소명(23) 인턴, 최서현(27)씨 및 엄에스더(31) 사외이사. ⓒ나종민 사진작가

“아니었어요. 막상 와보니 너무 힘들었어요. 외래어가 많이 섞여 말이 안 통해요. 정서적으로나 경제적으로도 전혀 다른 문화였어요. 마음의 상처도 크고, 가족도 그리웠어요.”

상상하지도 못한 복병이 기다리고 있었다. 탈북민을 보는 시선이었다. 얼마나 배고팠는지, 얼마나 가난했는지, 국경은 어떻게 넘었는지, 죽을 뻔한 고비는 없었는지…. 어딜 가나 23년 인생, 가장 끔찍한 순간의 기억들만 후벼 파는 질문들이 쏟아졌다. ‘불쌍한 사람’으로 쳐다보는 연민의 눈빛들도 불편했다.

“5년 가까이 유학생들이랑만 소통하고 지냈어요. 대학에서도 외국인 친구들 하고만 어울리고, 교회도 외국인 교회로 다니고요. 영어는 입도 뻥긋 못하고 A. B. C 배워나갈 때였는데, 외국 친구들이랑은 사전 찾아 단어 하나만 보여줘도 서로 말이 통해 낄낄거렸어요. 그 안에선 저를 ‘탈북자’가 아닌 그냥 제 자신으로 봐주더라고요. 어릴 적 놀던 얘기, 소소한 일상, 보고 싶은 가족들 얘기 같은 걸 하면서요. 한국 사회 내에서 제 나름의 ‘제3의 공간’을 만든 거죠. 안 그랬으면 자존감이 많이 꺾였을 텐데, 다행이었죠.”

◇그가 남한 땅에서 살아남은 법

남한 땅을 밟은 지 올해로 11년, 그는 지난해 사회혁신기업 ‘요벨(Yovel)’을 창업했다. ‘탈북 청년을 위한, 탈북 청년에 의한’ 사회혁신기업으로서는 첫 번째다. 탈북 청년들의 정착을 돕고, 스스로 일어설 수 있는 여러 비즈니스 성공 모델을 만드는 게 목표다. 지난 기간 남한에서의 힘겨운 정착 시기를 거치며, ‘탈북 청년들의 자립을 지원하는 플랫폼이 되겠다’고 한 결심을 실행에 옮겼다.

“고(故) 정주영 회장이 북한에 소를 보낼 때 그 모든 소를 수의사가 검진했다는 얘기를 듣고 수의학을 선택했어요. 그런데 영어도 못하고 화학이나 생물은 배워본 적도 없어서, 따라가기도 벅차고 적성에도 안 맞더라고요. 또 제가 명색이 국경 넘나들던 사람인데(웃음), 6년 공부 마치고 동물병원에 앉아서 애완견을 돌보거나 돼지. 소들만 만나고 다니는 건 너무 재미없을 것 같더라고요. 사람들을 만나면서 살고 싶었어요.”

그는 한때 북한을 돕겠다는 생각에, 휴학계를 내고 중국에 들어갔다 잡혀선 북송 직전에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다. 이후 남한에 돌아와, 이곳에서 할 수 있는 뭔가를 찾는 데 절실히 매달렸다. “뭘 해야 할지 한 치 앞도 안 보였다”던 깜깜한 시간이 지나, 조금씩 주변 탈북 청년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대학까지 나와서는 전공을 살리는 탈북 청년이 거의 없더라고요. 이런 친구들이 더 큰 미션을 가지고 전문성을 쌓아나가야 통일이 됐을 때도 곳곳에서 여러 역할을 해줄 수 있을 텐데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죠.”    

현재 우리나라에 정착한 탈북민은 2만7000명. 이들은 잘 정착했을까? 답은 ‘글쎄요’다. OECD 자살률 1위인 대한민국, 그중 탈북민의 자살률은 일반 국민보다 3배 이상 높다. 전체 탈북 인구의 고용률은 50% 남짓, 나머지 40%가 기초생활수급자로 살아간다. 그나마 이뤄지는 고용조차도 일용직. 노무직이 대부분이다.더 큰 문제는 전체 탈북자의 75% 이상이 20~40대의 청년층이라는 것. 가장 활발하게 경제활동을 해야 할 시기에, 탈북 청년 대부분이 변변한 일자리 없이 정부 지원금에 의지하고 있는 셈이다. “이렇다 하게 자립해서 홀로 선 경우보단, 정부 지원금이나 아르바이트 전전하는 모습들이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이런 친구들이 자립할 수 있는 기반을 닦는 게 내가 남한으로 오게 된 이유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탈북자 대부분 대학 나와도 전공 못 살려…

정부지원 받거나 아르바이트로 생계

탈북민 취업 지원하는 ‘남북하나재단’,

한 해 예산만 233억원…

현장 변화는 미미

남한·북한 넘어선 새 생태계 만들고파

◇남한 땅에서, 탈북 청년으로 살아간다는 것

고등교육을 받은 청년들이 기업에서 일할 수 있도록 기회를 연결시켜주면 어떨까. 유명 패션 브랜드 S사의 회장님이 인터뷰에서 “죽고 난 뒤 모든 유산은 북한을 위해 써달라”고 했던 기사를 보고 그는 바로 편지를 썼다. “‘제가 탈북 대학생이고 이런 목표를 가지고 수의학을 공부하고 있는데, 주변에 경영이나 패션 디자인 같은 전공을 공부하고도 이런 분야를 경험하지 못하는 탈북 청년들이 너무 많다, S그룹도 통일에 비전이 있으니, 이런 친구들이 단계를 밟아 나갈 수 있게 기회를 열어주면 감사하겠다’고요.” 젊은 청년의 끓는 열정에 회사도 마음이 동했다. 그 해 하반기, 6개월간의 인턴 교육과정을 거쳐 2명의 탈북 청년이 이 기업에 인턴으로 들어갔다. 결과는? 그 한 회로 끝이었다. “오너가 관심이 있어도, 회사 내부 직원들까지 관심 있는 건 아니더라고요.” 취직 기회를 얻는 것도, 조직 내부에 적응하는 것도, 출발점이 다른 이들과 경쟁해야 하는 것도 난관이었다. 남한에서 탈북 청년으로 산다는 건 쉬운 일은 아니었다.

올 한 해, 탈북민의 취업 역량 강화나 자립 지원을 위해 설립된 ‘남북하나재단'(북한이탈주민지원재단)으로 책정된 예산은 233억원. 연간 수백억원의 국가 예산과 인력이 ‘탈북민 자립’에 들어간 셈이지만, 그간 현장에서 느껴지는 변화는 미미했다. 그 이유는 왜일까.

“탈북 청년들에게 필요한 건 단순한 지원이나 돈이 아니라, 스스로 일어서서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거든요. 그런데 취직은 어렵고, 탈북자들은 ‘수혜자’로만 여겨지고, 그들은 다시 정부 지원에 의존하게 되고. 또 정서적 고립이나 트라우마, 탈북자 차별 요소 등 자립을 어렵게 하는 요소가 곳곳에 많습니다.”

박요셉 대표는 “탈북 청소년들이 받는 교육이나, 자아 존중감 문제, 사회 인식 등 탈북 청년들의 자립을 위해 풀어가야 할 숙제들이 아직 많이 있다”며 “함께 머리를 맞대고 디자인적 사고를 통해 아이디어를 모아간다”고 했다. /요벨 제공
박요셉 대표는 “탈북 청소년들이 받는 교육이나, 자아 존중감 문제, 사회 인식 등 탈북 청년들의 자립을 위해 풀어가야 할 숙제들이 아직 많이 있다”며 “함께 머리를 맞대고 디자인적 사고를 통해 아이디어를 모아간다”고 했다. /요벨 제공

그가 찾은 답은 ‘비즈니스’. 2013년, 수의학 전공으로 대학을 졸업하고 동유럽 체제변환국에서부터, 필리핀, 미얀마 등 훗날 북한의 모델이 되어 줄 동남아시아 곳곳을 돌아다니던 중 무하마드 유누스의 ‘그라민 은행’을 처음으로 접하게 됐다. 700만명의 빈민에게 7조원이나 소액 대출을 해준 사례는, 그가 평소 생각하던 ‘자립’과도 맞아떨어졌다. ‘사회적기업가가 되어, 탈북 청년 사회적기업가 100명을 양성하고 탈북 청년들이 자립 과정에서 마주하는 다양한 문제도 해결해야겠다.’10여 년간 켜켜이 쌓여온 생각에 결심과 준비가 더해지면서, 지난해 탈북 청년 최초의 사회적기업 ‘요벨’이 만들어졌다.

뜻에 공감한 ‘정예멤버’들도 하나둘 모였다. 캐나다 교포로서, 로드아일랜드 디자인학교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한 이현주(27) 요벨 이노베이션 팀장도 그중 하나다. ‘어떻게 하면 디자인으로 사회에 좋은 일을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던 차에, 지인을 통해 박요셉 대표와 연이 닿았다. 한동대에서 국제개발과 경제학을 전공하고 현재 대학 4학년 휴학 중인 박소명(23)씨는 이노베이션 팀의 인턴이다. 고향 평안도를 떠나 2004년 남한에 들어온 김민준(26) 매니저와 함경도가 고향인 최서현(27)씨 모두 한국에서 조리학과를 전공한 인재들. 카페에서 일했던 바리스타 경험을 바탕으로 기업 사내카페를 만드는 일을 도맡았다. 올해부터는 함경도 출신으로, 바리스타학과를 정식 졸업한 강다혜(29)씨도 새롭게 합류한다.

◇남한-북한 넘어선 ‘제3의 공간’

이제 막 첫 걸음마를 내딛은 요벨. 그 시작은 ‘기업 사내카페’다. 지난해 12월 22일, 경기 용인 수지센터에 있는 IBK기업은행 1층에 들어선 ‘레드체리 1호점’은 인테리어에서부터 커피 교육, 서울시내 유명 커피집 탐방에 이르기까지, 수개월에 걸쳐 모두가 주인이 되어 참여한 요벨의 첫 걸음이다. “다섯 친구들이 500만원씩 출자하고, 다른 지인들이 100만원, 50만원씩 보태주셔서, 총 18명이 자금을 모았어요. 탈북민이고 신용이 없다보니 일반 은행에선 당연히 대출이 안됐는데, 다행히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 카리타스사회적기업지원센터에서 탈북민 창업자금을 지원해 주셔서, 운영자금으로 3000만원을 투자받았죠. 빨리 대출 갚고 자립하는 게 목표입니다(웃음).”

2004년 남한에 첫발을 디딘 뒤, 카페에서 바리스타로도 일한 경험이 있는 김민준(26) 요벨 매니저는 “시키는 일을 하던 입장에서, 내 카페라는 생각이 되니 하나부터 열까지 직접 챙기고 책임감도 부쩍 드는 것 같다”며 “보통 탈북민은 남한 사회에 ‘적응’을 해야 한다고들 말하고 적응을 위한 지원을 해주다보니 나만 해도 처음에는 ‘자립’이란 개념이 낯설었는데, 이제는 많은 탈북청년들이 적응을 넘어 스스로 일어설 수 있는 준비를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 1호점을 넘어, 올해 말엔 기업은행 한남동 PB센터에도 ‘레드체리 2호점’이 들어설 예정이다.

그래픽_조선일보사내 카페 점포 확장 외에도, 올 한 해 요벨의 목표는 ‘코하우징(cohousing·공동 주거)’ 모델을 실현하는 것. 탈북 청년들의 적응과 자립을 위해‘누구와 어디에 사는가’가 가장 필수적인 부분이라고 보는 까닭이다. “작년에 정착 초창기 탈북자부터 10여년도 더 된 탈북자까지 열댓명을 심층 인터뷰했어요.공통적으로 가장 힘들 때 그 순간을 극복할 수 있었던 건, 주변의 ‘좋은 사람’때문이더라고요. 그런데 지금 탈북민들은 좋은 이웃을 만나기 어려운 여건이에요. 서울 임대아파트는 다 차서 지방 임대아파트로 배치되는데, 그곳에 계신 한국분들은자기 삶도 힘든 사람들이기도 하고요. 또 아파트란 공간이 개인을 완전히 단절시키거든요. 남한 사람들이야 가족도 있고, 지연이나 학연도 있어서 괜찮다지만, 무연고 탈북민에겐 다른 문제입니다. 절반 가까운 탈북민들은 지방에 집을 받고 2년 안에 모두 서울로 올라와요.”

박 대표는 “요벨 회사 구성도 그렇고 코하우징을 비롯한 모든 공간을 북한 청년과 남한 청년, 외국인까지 모두가 어우러지는 ‘제3의 공간’으로 구성해가고 있다”면서 “서울 내 주거문제는 남한 청년들이나 외국인 유학생들에게도 사회적인 문제이니만큼, 이것으로 어떻게 자립 모델을 만들 수 있을지 연구 중에 있다”고 했다.

오는 3월부터 서강대학교 산학협력단과 함께 ‘탈북민 커뮤니티 자립을 위한 프로젝트’도 진행한다. 4개월에 걸쳐, 대학생 여러 명과 탈북 학생들이 프로젝트 팀을 이뤄, 탈북민들이 겪는 사회 문제들을 창의적으로 풀어나가며, 자립 가능한 모델 아이디어를 나누게 된다. 소셜임팩트 투자기관 미스크(MYSC)와 파트너십을 맺고, ‘자존감’, ‘정체성’, ‘외상 후 증후군’, ‘하나원’ 등 탈북민들이 겪는 문제를 중심으로 한 ‘공감 툴킷’도 개발 중에 있다.

탈북민이 경험하는 문제들을 중심으로 한 ‘공감 툴킷’ 개발 과정./요벨 제공

“저는 한국에 와있는 탈북자들은 기본적으로 ‘기업가정신’이 뛰어난 사람들이라고 생각해요. 내 앞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지만, 한번 도전해보기로 결정했던 사람들이니까요. 그 모든 과정들을 거쳐가며 여기까지 온 것이고요. 그런 작은 불씨에다 바람만 불어넣어 주면, 다양한 혁신이 일어나고 자립 모델들이 만들어질 거라고 확신합니다. 이미 2만7000명이나 온 거잖아요. 창업도 해보고, 취업도 해보고, 북한과 비슷한 상황에 있는 개발도상국 국제개발에도 참여해보면서 다양한 모델을 만들어야, 통일 이후에도 그것들이 곳곳에서 쓰이지 않겠어요? 정부 지원도, 이제는 단순 적응을 위한 ‘지원’이 아닌, 자립을 장려하고 가능한 생태계를 만들어주는 방향으로 이뤄지면 좋겠습니다.”

박요셉 대표의 야무진 꿈이 이제 막 달궈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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