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8일(토)

시민들이 짓는 태양광발전소… “오염도시 꼬리표 뗄 거예요”

국내 최초 협동조합 태양광 발전소… ‘안산시민햇빛발전협동조합’

주민 140명, 10만~3000만원씩 출자
2013년 공공도서관에 1호 발전소 설립
공사비 7900만원, 누적 수익 7000만원

소액이라도 참여하면 관심 높아져
조합원 538명으로… 곧 3호 발전소 가동

“최근 경기도 광주·여주·이천 등 지역에 송전탑을 세운다고 주민들이 난리잖아요. 우린 지역 옥상이나 유휴 부지에서 태양광으로 에너지를 만들어 바로 쓰니까 송전선로가 필요 없죠. 사회적 갈등 비용이 그만큼 절약되는 거예요. 무공해·무원료인 데다, 더운 여름에 효율이 더 좋으니 에너지 피크(peak) 시간을 버틸 힘도 생기죠.”

지난 12일 찾은 안산 중앙도서관(경기도 안산시 고잔동) 옥상을 둘러보던 이창수 안산시민햇빛발전협동조합(이하 안산햇빛협동조합) 이사장의 말이다.

안산 중앙도서관 옥상에 설치된 50㎾급 태양광 발전기 전경. 150평 옥상부지의 절반 정도를 차지하는 소형 발전기에서 작년 한 해 동안 4만㎾ 이상의 전기를 만들어냈다. /안산시민햇빛발전협동조합 제공
안산 중앙도서관 옥상에 설치된 50㎾급 태양광 발전기 전경. 150평 옥상부지의 절반 정도를 차지하는 소형 발전기에서 작년 한 해 동안 4만㎾ 이상의 전기를 만들어냈다. /안산시민햇빛발전협동조합 제공

옥상 문이 열리자 복잡한 철골 구조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어른 키보다 높은 철기둥이 떠받들고 있는 건 네모난 판때기. 1㎡짜리 태양광 패널 192장이 정오의 태양을 정면으로 막고 서있다. 덕분에 사방이 뻥 뚫린 옥상 바닥엔 깊고 넓은 그늘이 드리워진다. 건물 옥상 280㎡(84.7평)에 설치된 태양광발전소다. 안산 주민 140명이 힘을 모아 세운 안산햇빛협동조합 작품으로, 국내 최초로 협동조합이 만든 시민 주도형 발전소다. 이창수 이사장은 “이 일 시작하고 나서 날씨에 민감해졌어요(웃음). 겨울엔 햇빛이 귀한데, 오늘은 볕이 참 좋네요”라며 미소를 지었다.

발전 계량기처럼 보이는 화면엔 ’26’이란 숫자가 찍혀 있다. “현재 전기 26㎾가 만들어지고 있네요. 총 30㎾를 만들 수 있는 발전기니 굉장히 열심히 일하고 있는 거죠.” 이창수 이사장의 설명은 계속됐다. “그 옆에 ‘67438’은 발전기가 세워진 이후 만든 전기의 총량(㎾)인데, 이 양이면 230가구가 한 달을 쓸 수 있어요. 공해도, 소음도 없이 오직 햇살로 만든 깨끗한 에너지죠.”

햇빛발전협동조합의 재생에너지 홍보활동 풍경. 조합 측은 “올해 좀 더 적극적인 홍보와 조합원 모집에 나설 것”이라고 했다. /안산시민햇빛발전협동조합 제공
햇빛발전협동조합의 재생에너지 홍보활동 풍경. 조합 측은 “올해 좀 더 적극적인 홍보와 조합원 모집에 나설 것”이라고 했다. /안산시민햇빛발전협동조합 제공

경기도 안산시에는 ‘오염’이라는 꼬리표가 붙어있었다. 1980년대 초 조성된 반월공단의 배후도시 격으로 탄생해 경기도에서 가장 많은 에너지를 소비했고, 시화호 방조제 건설(1994년)로 수질·대기 오염 문제를 겪기도 했다. 안산환경운동연합, YMCA, 소비자시민모임 등 시민단체의 활동이 활발해진 것도 그래서다. 이창수 이사장은 “신도시이다 보니 시민단체가 잘 생기고 잘 뭉쳤는데, 환경에 대한 논의도 주된 이슈였다”고 했다.

햇빛발전협동조합 추진 역시 그 연장선상에서 이뤄진 것이다. 시민단체의 환경 개선 의지와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국제적인 흐름이 만난 결과다. 안병옥 기후변화행동연구소 소장은 “독일에서는 사용하는 에너지의 25%가 신재생에너지인데, 이 중 절반은 일반 시민들이 출자한 발전소에서 만들어진다”며 “에너지 소비자들이 직접 생산자로 나서는 활동은 이미 국제적인 추세”라고 설명했다.

안산환경운동연합과 ‘에버그린21’ 등에서 환경운동가로 활동하던 이창수 이사장은 2011년 말 안산의료생협, 화랑신협, 아이쿱 생협 등 지역 내 열다섯 단체에 시민 발전소 건립을 제안했고, 이듬해 시민 토론회 등을 개최하며 주민의 뜻도 모았다. 안산에서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조합원 윤영중(54)씨는 “동네가 생긴 지 10년밖에 안 된 곳이라 주인의식이 부족한 면이 있었는데, 주민 스스로 지역의 브랜드 가치를 높일 수 있겠다는 마음에 동참하게 됐다”고 했다. 첫 결실이 나타난 건 2013년 5월. 주민들이 십시일반 출자한 돈으로 지역 공공 도서관 옥상에 30㎾ 규모의 햇빛발전소 1호기가 설립됐다. 총공사비는 7900만원. 김세영 햇빛발전협동조합 사무국장은 “출자금액은 10만원부터 3000만원까지 다양하다”며 “처음에 10만원을 냈다가 설립 과정을 지켜보며 몇백만원씩 더 출자하는 조합원도 있다”고 했다. 1년간의 운영은 가능성을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첫해 4만㎾ 이상을 생산해 한국전력과 발전 회사에 판매했고, 2500만원 정도 매출을 올렸다. 이 중 발전소 터 임차료, 시설 감가상각비(20년), 일부 운영비 등을 제한 수익은 모두 조합원에게 5% 배당금으로 돌아갔다. 에너지 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공익 사업에도 일부 사용됐다. 작년 매출은 배가량 증가한 5000만원 정도다.

협동조합이 만들어 낸 최초의 태양광 발전소인 만큼 시민단체, 지자체 공무원, 학생 등이 직접 견학에 나서기도 한다. /안산시민햇빛발전협동조합 제공
협동조합이 만들어 낸 최초의 태양광 발전소인 만큼 시민단체, 지자체 공무원, 학생 등이 직접 견학에 나서기도 한다. /안산시민햇빛발전협동조합 제공

“대기업에서도 태양광발전소를 많이 짓잖아요. 그런데 협동조합이 하면 조금 달라요. 10만원이라도 참여하면 관심을 갖게 되거든요. 그러면 인식이 바뀌죠. 환경과 재생에너지에 대한 공감대가 넓어지는 겁니다.” 이창수 이사장의 설명처럼, 초기 단순 투자로 생각했던 조합원들의 시야도 서서히 넓어졌다. 조합원 이승철(43)씨는 “주변에 적극적으로 참여를 권유하는 편인데, 처음에 별 관심이 없던 사람들이 동참의 뜻을 밝혀올 때 큰 보람을 느낀다”며 “최근에는 자녀 교육 차원에서 ‘소액이라도 자녀들 이름으로 출자하라’고 권한다”고 했다.

첫 발전소가 들어선 이듬해 1호기 바로 옆에 2호 발전소(20㎾·2014년 10월 완공)가 나란히 세워졌고, 현재는 안산 종합운동장 ‘와스타디움'(안산시 단원구 초지동 위치)에 300㎾짜리 발전소 건축도 초읽기에 들어갔다. ‘지역에 공헌하면서, 은행 이자 이상의 배당을 안정적으로 받을 수 있다’는 소문이 돌며 140명이었던 조합원은 3년 새 538명으로 늘었다.

재생에너지 강국 독일은 정부 차원에서 2050년까지 전력 비중의 80% 정도를 재생에너지로 대체하는 계획을 수립했다. 이 분야 고용 인원만 해도 38만명에 이른다(국내는 1만명). 이웃 나라 일본 역시 지난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계기로 태양광이나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 인프라를 급격히 확산하는 추세로, 규모만 따지면 우리나라의 20배 이상이다.

우리나라는 이제 막 걸음마를 뗐다는 평가다. 이창수 이사장은 “1호 발전소를 설립하는 과정에서 처음 예정된 장소의 인허가가 갑자기 취소되고, 공무원마다 법 해석을 다르게 하는 등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다”며 “정부가 신재생에너지 촉진법까지 만들어 녹색 성장을 추진하려고 하는 만큼, 누구나 쉽게 태양광발전소에 도전할 수 있도록 법·제도의 정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안병옥 소장은 “우리나라는 기본적으로 전기요금이 저렴한 데다, 이조차 시기에 따라 들쑥날쑥해 소규모 협동조합 방식의 발전소가 버텨내기 쉽지 않은 구조”라며 “앞으로 ‘고정 가격 매입 제도(정부가 태양광발전 사업자들로부터 전기를 사들이는 제도)’등 수익을 확실하게 보장해주는 방향으로 제도를 개선·보완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숨 가쁘게 달려온 3년. 이창수 이사장은 “올해 할 일이 정말 많다”고 한다.

“후년까지 3000㎾를 목표로 뛰고 있습니다. 안산 하수처리장 부지나 학교 등과 활발히 논의 중입니다.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한 체계적 교육도 계획 중이고요. 몇 년 뒤엔 안산의 건물 옥상이 태양광 패널로 꽉 들어차게 해야죠. 그만큼 지역 주민들의 소중한 자산도 쌓일 겁니다.”

안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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