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6일(목)

[박란희의 작은 이야기] 가장 조심해야 하는 건 약자에 대한 교만

“세상 모든 사람이 누구나 할 것 없이 다 갖고 있는 대표적인 성격 장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지난 일요일, 목사님 설교 말씀에 눈을 동그랗게 떴습니다. 그것은 바로 ‘교만’입니다. 무릎을 쳤습니다. 남을 비판하는 습관이 있는 사람은 신앙이 자라기 어렵다고 합니다. 그것은 곧 자신을 의롭게 여기기 때문이지요. 언론사 기자 생활을 오래 하면 자신도 모르게 남을 평하고 잣대를 매기는 습관이 몸에 배기 마련입니다. 일간지 기자는 매일, 주간지 기자는 일주일마다, ‘더나은미래’는 2주에 한 번씩 교만의 벽을 쌓아가는 셈입니다.

일상생활에도 은근슬쩍 그게 드러납니다. 지난주 지하철역에서 파는 6000원짜리 휴대폰 케이스 때문에 아르바이트 점원과 엄청 다퉜습니다. 그 청년은 제 휴대폰을 보면서 “아줌마. 이거 사가면 딱 맞아요”라고 건네줬고, 저는 확인도 하지 않고 사왔습니다. 하지만 간발의 차이로 제 휴대폰보다 더 작은 케이스였고, 며칠 후 저는 “교환해달라”고 했습니다. 청년은 “영수증도 없는데, 이 가게에서 사 갔다는 증거가 어디 있느냐. 하루에 손님이 100명도 넘는데 당신 같은 사람 많다. 뭘 믿고 바꿔주느냐”고 했습니다. 화가 나서 “내가 거짓말할 사람으로 보이느냐. 왜 사람을 못 믿느냐”고 다그쳤습니다. 결국 감정 싸움이 심해져 경찰서 문턱까지 갔다 왔습니다. 누구의 잘잘못인지를 따지기에 앞서, 그날 밤 이성이 되돌아오니 제 안의 교만을 들킨 것 같아 참 부끄러웠습니다. 그 청년의 눈에 저는 그저 지나가는 평범한 아줌마일 뿐이고, 제가 바라본 저는 남다른 조선일보 더나은미래 편집장님이었으니까요.

‘내가 너보다는 낫지’라는 이 은근한 마음속의 알력은 곳곳에 있습니다. 겉으로는 서로 웃는 얼굴로 인사하고 악수를 나누고 있어도 말이지요. 또 ‘(같은 그룹에 속한) 우리만 옳다’는 태도도 교만의 또 다른 모습입니다. 이번 주 커버 스토리인 ‘다행이’ 이야기를 읽으면서도 교만에 대해 생각해보았습니다. 다행이의 오른쪽 앞발을 자른 사람은 누구일까요. 우리 사회의 다행이는 참 많습니다.

스스로 자립하기 힘든 어린 아이들, 몸이나 정신이 불편한 장애인들, 언어나 정서가 달라 어려움을 겪는 다문화나 탈북민…. 우리 집에도 있고, 우리 회사에도 다행이들은 존재합니다. 다행이의 또 다른 이름은 ‘약자’입니다.

한편 가장 조심해야 하는 것이 ‘약자에 대한 교만’입니다. 많은 사람이 약자에 대한 불쌍한 이미지를 그리고, 그들을 돕는 자신을 의인화시키기 때문입니다. 이번 호에 실린 ‘NPO의 새로운 모금 트렌드’는 그래서 더 반갑습니다. ‘돕는 사람은 잘나서, 도움받는 사람은 못나서’라는 콘셉트가 아니라 ‘다 같은 사람으로서, 사랑을 나누기 위해’라는 콘셉트이기 때문입니다.

다행이를 죽음에서 살려낸 것은 바로 ‘사랑’이었습니다. 김행균 역장님의 돌봄, 역곡역 직원들의 배려, 시민들의 응원까지 모두 ‘사랑’의 또 다른 얼굴입니다. 이 사랑의 물결만 세상에 흘러넘친다면, 이슬람 무장테러 조직 IS도 없고 도심 한복판 총기 난사도 사라질 텐데 말입니다. 또 수십년째 우리 사회를 덫에 가두고 있는 좌우 논란, 보수·진보 논란을 넘어 좀 더 따뜻한 공동체를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을 텐데 말입니다.

관련 기사

Copyrights ⓒ 더나은미래 & futurechosun.com

전체 댓글

제261호 2024.3.19.

저출생은 '우리 아이가 행복하지 않다'는 마지막 경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