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5일(수)

[박란희의 작은 이야기] ‘새로운 변화’는 현장에 있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이 되는 딸아이는 요즘 미니어처를 만드는 데 푹 빠져있습니다. 손가락 한 마디만 한 크기로 떡볶이, 오므라이스, 스파게티 등 온갖 음식을 만듭니다. 친구들한테 쇼핑몰 정보를 알아와서 각종 재료를 산 후, 유튜브를 통해 만드는 방법을 하나씩 배웁니다. 수학 문제를 풀라고 하면 30분만 지나도 피곤해하는데, 미니어처를 만들 땐 2시간이 넘도록 꼼짝도 하지 않습니다. 유튜브가 딸아이한테는 교과서요, 선생님입니다. 자신도 떡볶이 만드는 방법을 공유하기 위해 유튜브에 올리겠다며, 한 시간 넘게 제 휴대폰을 갖고 낑낑댔습니다.

그 모습이 저한테는 새로운 문화 충격입니다. ‘배움’이 더 이상 학교에만 있지 않다는 걸 어렴풋이 알았지만, 아이의 행동을 통해 실제로 목격하니 더 생생합니다. 기존의 방식, 즉 위에서 아래로 정보나 지식이 하달되는 틀은 언제까지 유지될 수 있을까요?

최근의 사회 흐름을 지켜봐도 그렇습니다. 땅콩 회항, 디자이너 이상봉씨 열정 페이, 연말정산 세금 폭탄 등 모든 이슈가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는 구조입니다. 그 이슈가 유통되는 과정에는 페이스북의 공유, 그리고 유튜브 동영상 등 SNS가 반드시 존재합니다. 5년 전쯤 한 NGO 사무총장이 “아~ 이제 NGO의 운명이 바람 앞의 촛불이야. 시민들을 광장으로 불러모으던 NGO의 역할을 이제 SNS가 다 하게 될 텐데”라고 한 말이 떠오릅니다.

새로운 것과 낡은 것, 그 사이에는 반드시 격차(갭)가 존재할 수밖에 없습니다. 국가든, 기업이든, 개인이든 그 격차가 작아야 불행하지 않습니다. 모든 시민이 새로운 것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있는데, ‘부시맨 정부’ ‘부시맨 학교’ ‘부시맨 기업’만 홀로 존재하는 모습을 상상해보십시오. 새로운 것을 빨리 받아들이고 혁신을 이끄는 것은 작고 효율적인 조직이 잘합니다. 현장과 가장 맞닿아있기 때문이지요. 25년 동안 아이쿱생협을 이끌며 조합원 22만명, 연매출 4000억원 규모로 키워온 신성식 대표는 “법과 제도는 늘 현장보다 뒤떨어지기 마련이라, 법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 야메로(!) 계속 새로운 시도를 해왔다”고 말하더군요. 이번 호에 인터뷰한 청소년폭력예방재단 김종기 명예이사장 또한 정부가 학교 폭력이라는 현상을 받아들이고 법을 만들기까지 10년이 걸렸다고 했습니다. 장관부터 위아래 공무원이 계속 바뀌니, 20년을 꾸준히 현장을 지켜온 민간 NGO보다 훨씬 정책 이해력이나 통찰력이 부족한 것입니다.

현장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심상치 않은데, ‘높은 담 안에 갇혀 있는’ 정부와 기업이 얼마나 바뀌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언론인인 저 또한 다시 한 번 성찰해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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