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2월 22일(목)

[기업과 사회] 한국 기업은 왜 문제 해결을 위해 연대하지 않을까?

임성택 법무법인 지평 대표변호사
임성택 법무법인 지평 대표변호사

한국 기업들은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 공동행동을 하는데 소극적이다. 각자 움직인다. 경쟁 관계이므로 공익을 위한 협력도 어려운 것일까? 문제 해결보다는 기업의 성과나 홍보가 중심이기 때문일까? 집합적 임팩트(Collective impact)라는 개념이 들어왔지만, 스타트업이나 지방자치단체와 협력을 모색하는 정도이다. 산업 내부의 협력이나 기업간 연대는 찾아보기 어렵다. 해외의 ESG 이니셔티브에는 가입하면서 정작 우리 문제를 해결하는 이니셔티브는 거의 없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플라스틱과 일회용품은 심각한 환경문제 중 하나다. 관련된 한국 기업들도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유통업, 음료업, 식품업, 화학산업 등 업종별 공동행동은 보이지 않는다. 기업간 공동행동을 하지 않으면 해결하기 어려운 과제인데 말이다.

사회성과 인센티브(SPC) 사업은 SK그룹이 2015년부터 시작했다. 사회적 기업 또는 소셜벤처가 창출한 사회적 가치를 화폐가치로 측정한 뒤 보상한다. 사회성과를 ‘측정’하고 그에 기반해 ‘보상’하므로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다. 사회적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는데 큰 힘이 된다. SK그룹은 다른 기업들의 참여를 요청하고 있지만 별다른 호응이 없다.

한국의 많은 대기업들은 보호종료아동을 지원하는 일을 한다. 삼성전자, 포스코, 현대자동차, LG전자, 국민은행, 신한은행 등 수많은 기업들이 참여한다. 그런데 보호종료아동 문제 해결을 위해, 근본적으로 분리된 위기아동의 문제를 풀기 위해 기업들이 머리를 맞대고 협력하거나 공동행동을 하는 것은 찾아볼 수 없다.

유니레버는 2008년 오랑우탄 때문에 곤욕을 치렀다. 유니레버가 사용하는 팜유 생산과정에서 열대우림과 오랑우탄 서식지가 파괴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팜유는 비누와 샴푸, 초콜릿과 빵 등에 널리 사용되는 기름이다. 팜유 소비가 늘자 열대우림이나 산림에 불을 질러 팜유 농장으로 개간하는 일이 많아졌다. 유니레버는 환경이나 인권을 침해하지 않는 팜유(이른바 ‘지속가능한 팜유’)만 이용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유니레버 혼자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다. 팜유를 쓰는 동종업체들이 이 문제를 외면하는 이상, 환경을 파괴하는 팜유 농장은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유니레버는 업계의 모든 기업과 연대하는 길을 모색했다. 이 과정에서 네슬레, P&G, 코카콜라, 월마트 등이 동참했고 ‘지속가능한 팜유협의체’(Roundtable for Sustainable Palm Oil)가 만들어졌다. 이 협의체에는 이제 전 세계 5000개 이상의 기업과 단체가 참여하고 있다.

아동노동 이슈로 문제가 된 나이키도 같은 길을 선택했다. 단독으로는 글로벌 공급망의 노동조건을 개선하는 일은 불가능했다. ‘지속가능의류연합’(Sustainable Apparel Coalition)과 ‘공정노동협회’(Fair Labor Association)가 만들어졌다. 이 단체들은 문제해결을 위한 기준과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해당 활동을 촉진하기 위한 인증이나 검증활동을 전개했다.

기업의 협력과 연대를 통한 문제해결이 물론 쉬운 것은 아니다. 참여하지 않는 기업들도 많고 오히려 그 기회에 무임승차나 이익을 얻으려는 기업도 있다. 기업간의 자율규제이고 강행법이 아니므로 한계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협력은 일정한 변화를 만들어냈고 세상을 바꾸는 계기가 됐다. 대표적인 이니셔티브 ‘RE100’은 재생가능 에너지를 확산하는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투자자들의 이니셔티브인 ‘기후행동 100+’(Climate Action 100+)는 세계 100대 탄소배출기업을 압박해 산업을 바꾸고 있다.

유엔 지속가능발전목표(SDGs)의 17번째 목표는 ‘파트너십’이다. 다른 목표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제시됐다. 구체적으로는 집합적 행동(collective action)과 여러 이해관계자의 파트너십(multi-stakeholder partnerships)을 요구한다. 한국에서도 집합적 임팩트(Collective impact)가 유행이다. 각자 도생이 아니라 협력과 연대를 통해 사회문제를 해결하자는 것이다. 이른바 ‘이니셔티브’도 협력과 연대의 수단이다. 해외에서는 기업이 참여하는 다양한 이니셔티브들이 있다.

기업의 장애인 포용이라는 이슈만 해도 그렇다. ‘Valuable 500’은 장애인 배제를 종식시키기 위해 협력하는 글로벌 500개 기업의 파트너십이다. 국제노동기구(ILO)가 주도해서 만든 ‘ILO Global Business Disability Network’도 있다. 영국의 ‘Business Disability Forum’을 비롯하여 미국, 중국, 호주, 인도, 필리핀 등 많은 나라에 장애문제를 다루는 기업 네트워크가 있다. 우리나라에는 이런 이니셔티브가 없고 글로벌 이니셔티브에 가입한 기업도 찾기 어렵다.

그러나 최근 희망적인 변화도 보인다. 대한화장품협회와 주요 화장품 회사는 ‘2030 화장품 플라스틱 이니셔티브’를 선언했다.  4대 목표로 ①재활용이 어려운 제품 100% 제거(RECYCLE) ②석유기반 플라스틱 사용 30% 감소(REDUCE) ③리필 활성화(REUSE) ④판매용기의 자체 회수(REVERSE COLLECT)를 제시하고, 이를 위한 10대 액션플랜을 약속했다. 기업 재생에너지 이니셔티브(Corporate Renewable Energy Initiative, CoREi)도 시민사회 주도로 만들어졌다. 유엔글로벌콤팩트 한국협회, 세계자연기금 한국본부,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이 주도하는 재생에너지 확산기구다. 결식아동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만들어진 ‘행복 얼라이언스’는 처음에는 SK그룹만 참여했는데, 이제는 포스코, 하나은행, 코오롱, 현대해상 등 116개의 회사와 74개의 지방자치단체가 참여하고 있다.

집합적 임팩트, 파트너쉽, 이니셔티브, 오픈 이노베이션과 같은 용어만 난무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서 기업이 공익을 위해 연대하는 일이 많아지면 좋겠다. 연대와 협력은 문제를 해결하는 지름길이다.

임성택 법무법인 지평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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