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8일(일)

[기업과 사회] 사회공헌을 넘어 지역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기업

임성택 법무법인 지평 대표변호사
임성택 법무법인 지평 대표변호사

시스코는 지난 25년 동안 180여 나라에서 1만개 넘는 IT교육 아카데미를 운영했다. 무려 170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무료로 교육받았다. 특히 저개발국가에 폭넓은 IT 기술교육의 기회를 제공했다. 사람들은 일자리를 얻고 삶의 질을 높일 수 있었다. 궁극적으로 이 활동은 시스코가 진출하는 지역의 전문인력을 키워 회사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도 기여했다.

영국의 유통업체 테스코는 미국 시장에 진출하면서 의외의 선택을 했다. 빈민가에 신선한 야채와 음식을 파는 매장을 연 것이다. 그동안 빈민가에는 패스트푸드 매장은 많지만 신선식품을 파는 마트는 없었다. ‘음식사막의 오아시스’라고 불린 이 매장들을 통해 테스코는 빈민 지역의 사회문제 해결에 기여하면서 비즈니스의 기회도 만들었다. 신선한 과일로 빈곤과 폭력을 몰아낸다는 평가를 받았다.

우리는 기업의 사회공헌을 이야기하지만 외국에서는 지역사회 참여(Community Engagement)를 이야기한다. 번역하면 기업과 지역사회의 ‘관계 맺기’다. 지역사회는 기업과 어떤 관계일까? 기업이 지역사회에 유익한 존재가 될 수 있을까? 기업이 지역사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기업은 지역사회와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할까?

‘사회공헌론’은 전통적이고 오래된 개념이다. 기업도 사회 안에 있으니 사회에 공헌해야 한다는 자선적이며 윤리적인 접근법이다. 솔직하게는 사회적 영향보다는 사업적 이익이 우선이다. 홍보나 마케팅의 목적이 크다. 기부금을 전달하거나 연탄을 나른 뒤 찍는 사진이 더 중요하다. 당연히 사회나 경제가 어려워지면 사회공헌은 축소된다.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다.

사회공헌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이 ‘기업시민’(Corporate citizen)이다. 기업도 시민으로의 권리와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기업의 사회적 책무를 ‘의무’로 인식한다는 점에서 사회공헌보다 한 걸음 나아간 것이다. 그러나 기업시민도 여전히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이라는 맥락에 머물고 있다.

‘지역사회 참여’는 지역사회는 소비자, 근로자 등과 함께 기업의 중요한 이해관계자라는 것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지역사회라는 이해관계자와의 어떻게 관계를 맺을지를 고민한다. 지역사회를 구성하는 정부, 시민사회, 기업의 파트너십이 중요하다. 지역사회의 문제를 기업의 문제로 인식한다. 기업과 사회의 ‘지속가능성’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한다.

지방에 공장을 세운 기업이 있는데 여러 이유로 해당 지역의 청년들이 떠나고 인구감소가 커진다면 어떻게 될까? 근로자는 부족해지고 인프라는 열악해지며 기업도 함께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다. 예를 들어 작년에 ‘포스코도 있는데 인구 50만 무너진 포항’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나왔다. 포항의 인구감소율은 도내 2위라고 한다. 포항시는 포스코가 서울에 지주사를 설립한 것을 탓했으나 그것은 문제의 원인도 아니며 해결책도 아니다. 포스코를 포함한 기업과 포항시, 시민단체가 협력해 포항시의 인구감소, 출산율, 청년유입과 창업 등 전반적 문제를 개선해 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포스코는 출산율 문제 해결을 중요한 과제로 삼고 있으니, 포항시의 출산율과 인구감소 문제를 매달려 볼 수 있을 것이다.

미국 씨티그룹의 지역 살리기 프로젝트는 좋은 귀감이다. 씨티그룹은 2016년부터 지역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Community Progress Makers’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저렴한 주택 공급, 지역사회 경제발전, 도시 인프라, 환경적 지속가능성 등 전반적인 도시문제 해결을 목적으로 했다. 이를 위해 관련 문제를 다루는 지역 비영리단체 40개 기관에 지원금 및 전문가 기술 지원을 제공했다. 기업과 시민단체의 파트너십으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지역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는 체인지메이커(Change Makers)를 양성하고 지원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2018년까지만 해도 1억3500달러 규모의 에너지 비용 절감, 2400개 소기업의 역량 강화, 3만6000명에게 저렴한 주택 공급, 4500명의 청년에게 일자리 제공, 4만5000명의 금융자산 확보 지원 등의 성과를 이뤘다고 한다.

시스코가 가난한 나라에서 IT 무료교육을 한 것은 단순한 사회공헌이 아니다. IT는 삶과 일상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고, 저개발국의 발전을 위한 필수적 인프라다. IT인력의 양성은 사회문제 해결의 지름길이기도 하다. 시스코는 이 교육을 통해 다양성과 포용성도 추구했다. 많은 여성과 소수 인종, 장애인이 교육받았다. IT인력의 양성은 시스코에 경제적으로도 유용한 결과를 가져왔다. IT인력이 늘어나고 해당 인프라가 확장되면서 시스코는 전문인력을 채용할 기회가 커졌고, 해당 국가에 진출해서 다양한 업무를 수주하고 다양한 제품을 판매할 시장도 만들어진 것이다.

SK그룹 주도로 만들어진 행복 얼라이언스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결식아동에게 도시락을 제공하는 사업이다. 결식아동에게 한 끼의 도시락을 주는 것도 중요하다. 그런데 그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결식아동의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왜 아이들이 밥을 굶게 되었는지 근본적 접근이 필요하다. 행복 얼라이언스는 최근 기업, 정부, 시민의 협력으로 복지 사각지대에 있는 아동들의 사회안전망을 만드는 것으로 목표를 바꿨다. 주거환경 개선, 교육 및 정서 지원 등으로 프로그램을 확장했다. 사회공헌에서 사회문제 해결로 관점을 조금씩 바꿔 나가는 대표적 사례다.

사회공헌은 낡은 개념이다. 기부와 자선, 자원봉사도 좋지만, 기업은 지역사회와 어떤 관계를 가져야 하는지 고민해야 한다. 무엇보다 지역사회는 기업의 중요한 이해관계자라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지역사회의 문제는 기업의 문제로 이어진다. 지역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는 역할을 기업이 맡아야 한다. 그래야 기업도 지속가능할 수 있다.

임성택 법무법인 지평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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