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7일(토)

[기업과 사회] 대기업은 왜 사회문제 해결하는 비즈니스를 하지 않을까?

임성택 법무법인 지평 대표변호사
임성택 법무법인 지평 대표변호사

전국 24만대 넘는 택시 중 전동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는 택시는 단 2대뿐이다. 대신 승합차를 개조해 리프트를 단 장애인 콜택시를 타야 한다.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특별교통수단이다. 휠체어 이용자인 친구와 저녁을 먹고 택시를 부르면 일반 택시는 금방 오지만, 장애인 콜택시는 몇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사회적 기업인 코액터스는 영국의 블랙캡(Black cab) 택시를 2대 수입했다. 블랙 캡은 휠체어를 탄 채 옆문으로 들어갈 수 있게 설계돼 있다. 외관도 예쁘지만 이러한 유니버설 디자인 덕분에 런던의 명물이 됐다. 코액터스는 청각장애인이 운전하는 ‘고요한M’이라는 모빌리티 서비스를 하는 사회적 기업이다. 코액터스의 이러한 도전은 장애인 콜택시를 늘리는 방향으로만 달려온 한국에 “아예 택시의 모델 자체를 바꾸면 되지 않을까”라는 메시지를 던져줬다.

왜 현대자동차 등은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는 택시 모델을 개발하지 않는 것일까? 세계적으로 보면 고령화로 인해 휠체어 이용자가 늘고 있는데 말이다. GM은 접근성센터(Accessibility Centre of Excellence)를 설치한 뒤 장애물 제로(zero barriers)를 위한 차량 개발을 하고 있다. 의수나 의족, 휠체어를 사용하는 사람, 청력이나 시력이 제한된 사람을 위한 자동차를 개발한다. GM은 자동차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바꾸자고 한다. 포용적인 비즈니스 모델이기도 하지만 미래의 먹거리라는 판단이 깔려 있다. 일본의 토요타도 휠체어 탑승이 가능한 이른바 ‘Japan Taxi’를 상용화했다.

청각 또는 시각장애인도 영화를 볼 수 있도록 자막과 화면해설을 제공하라는 소송에서는 일본 엡손(Epson)이 개발한 스마트 안경으로 시연했다. 이 안경을 쓰면 한국어뿐 아니라 다양한 언어 자막과 수어 영상을 선택해 볼 수 있다. 원고들은 이 안경이 영화관에도 좋은 비즈니스 모델이라고 주장했다. 장애인뿐 아니라 외국인도 한국의 극장에서 자신의 언어를 선택해 영화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CGV 등은 스마트 안경이 비싸고 무거워 불편하다는 주장도 했다. 나는 한국의 대형 전자회사에 이러한 안경을 개발할 용의가 없는지 타진했다. 스마트 안경에 관한 많은 특허를 가진 그 회사가 이 안경을 개발해 판매한다면 수익도 올리고 세상에도 좋은 일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사회문제를 해결하면서 수익을 올리는 비즈니스를 ‘임팩트 비즈니스’(Impact Business)라고 한다. 소셜 임팩트를 추구하는 비즈니스, 경제적 가치와 사회적 가치를 함께 추구하는 비즈니스, 돈도 벌고 세상의 문제도 해결하는 비즈니스를 말한다. 흔히 소셜 벤처 또는 사회적 기업이 그런 일을 한다. ESG가 강조되는 시대인데 왜 한국의 대기업은 임팩트 비즈니스를 하지 않을까? 예를 들어 경제적 가치 못지않게 사회적 가치 창출을 기업의 목표로 삼는 SK그룹도 본격적인 임팩트 비즈니스를 하고 있지는 않다. 우리 대기업은 사회문제가 기업에 비즈니스의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사회에 해를 끼치지 않는 비즈니스를 하려고 노력할 뿐이다.

사회에의 영향을 기준으로 비즈니스를 분류하면 네 단계로 나눌 수 있다. ① 사회에 ‘유해’한 비즈니스, ② 사회에 ‘무해’한 비즈니스, ③ 사회에 ‘유익’한 비즈니스, ④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비즈니스. 비즈니스는 대부분 사회에 유익하다. 일자리를 만들고 사회가 필요로 하는 상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한다. 그러나 더 나아가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비즈니스가 활성화될 필요가 있다.

임팩트 비즈니스가 필요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지속가능성. 사회문제를 해결하면서도 수익을 올릴 수 있다면 해당 활동은 지속가능하다. 비영리단체는 헌신과 희생으로 사회문제와 맞서지만 기부금이 줄고 재정이 어려워지면 활동을 계속하기 어렵다. 돈이 들어와야 선순환이 가능하다. 둘째, 자본의 유입은 사회문제 해결에 필수적이다.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 투자와 자본은 반드시 필요하다.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프로젝트에 투자하는 사람이 늘어야 한다(임팩트 투자). 이를 위해서는 해당 비즈니스가 수익을 올려야 한다(임팩트 비즈니스). 셋째, 사회문제를 규모 있게 풀 수 있다. 작은 소셜 벤처는 자금과 인력의 한계로 큰 이슈를 전면적으로 다룰 수 없다. 예를 들어 코액터스는 영국의 블랙 캡을 수입할 수 있지만, 접근가능한 택시를 만들어 팔 수는 없다. 대기업이 규모의 경제로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비즈니스를 할 때 성공 가능성이 커진다. 마지막으로 사회문제 해결은 정부와 NGO의 역할이라 생각하지만 그 한계는 자명하다. 역사가 이를 보여준다. 기업은 자원과 인력, 비즈니스 역량을 가지고 있다. 기업이 사회문제 해결에 뛰어든다면 사회문제는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글로벌 기업의 임팩트 비즈니스 사례는 매우 많다. 그중 다우케미칼(DOW)의 플라스틱 도로사업은 흥미롭다. 세계 최대의 플라스틱 생산업체인 다우는 ‘플라스틱으로 인한 환경 오염’이라는 엄청난 숙제를 안게 됐다. 플라스틱 중 9%만이 재활용되고 대부분 바다에 버려지기 때문이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다우는 2017년 인도네시아 지방정부와 협력해 플라스틱 재활용 도로를 설치하는 사업을 진행했다. 플라스틱을 수거해 분해한 뒤 아스팔트 재료에 혼합한 도로이다. 폐플라스틱 도로는 폐기물을 줄일 뿐만 아니라 기존 아스팔트보다 내구성이 강하고 탄소배출도 줄여준다. 다우는 세계에서 2번째로 많은 해양 플라스틱 투기가 이루어지는 인도네시아에서 해당 사업을 시작했고, 지금은 미국, 태국, 인도 등 전 세계로 확대하고 있다.

영리기업이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서고, 비영리단체가 소셜벤처와 같은 영리활동을 하면서 영리와 비영리의 구분이 모호해지고 있다. 일반 기업과 사회적 기업의 경계도 점점 없어지고 있다. 올해의 SOVAC(Social Value Connect) 행사에서는 사회적 대기업이라는 표현도 등장했다. 대기업이 자원과 역량을 바탕으로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비즈니스에 나서는 것을 보고 싶다.

임성택 법무법인 지평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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