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5일(수)

[박란희의 작은 이야기] 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주’ 찾습니다

‘수송보국(輸送報國·수송업을 통해 나라에 보답한다).’

대한항공 창업주인 고(故) 조중훈 회장이 가졌던 신념입니다. 칼럼을 쓰려고 책상에 앉아 있는데, 문득 딸에게 읽어보라고 선물한 ‘대한민국을 바꾼 경제거인 시리즈'(FKI미디어) 책이 눈에 띄었습니다. 지금은 재벌이 된 대한민국의 대표 기업 창업주들 이야기를 엮은 청소년 도서입니다. 9권(조중훈처럼)을 열어보니, 1945년 11월 인천시 해안동에서 트럭 한 대를 가진 청년이 ‘한진상사’라는 간판을 내걸고 장사를 시작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8남매의 둘째로 태어난 후 가세가 기울어, 열일곱 나이에 혈혈단신 일본으로 건너가 선박 기술을 배운 식민지 청년이 바로 조중훈이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당장 필요한 물품을 들여오는 무역업에만 신경 쓸 때, 그는 물자를 원하는 곳까지 가져다줄 ‘수송’에 눈을 돌렸습니다.

책의 감수를 맡은 유재천 전 서강대 사회과학대학장은 “(당시 경영이 어려워 아무도 인수를 원치 않던) 대한항공공사, 대한선주, 인하공대 등을 인수한 조중훈 회장님은 기업의 이윤에 앞서 나라의 부름에 응하는 선공후사(先公後私)를 보여준 기업인”이라며 “가정 형편 때문에 중학교를 중퇴한 뼈아픈 경험에 대한 회한으로 직원들의 자녀가 학비 때문에 공부를 못하는 일이 없도록 세심하게 배려했고, 사재를 쏟아부어 인하대와 항공대를 있게 했다”고 적었습니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으로 사내 대학까지 만들어 대학 교육을 받지 못한 직원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주었다고 합니다.

조중훈 회장이 살아 있었다면, ‘조현아 전 부사장의 땅콩 회항 사건’을 지켜보면서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요. 나눔이나 배려, 사회에 대한 기여 등과 같은 ‘가치 있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실은 아무나 하지 못합니다. 자신이 직접 어려움을 겪어보았기에 뼈저리게 느끼거나, 부모로부터 어렸을 때부터 그 중요성을 보고 배웠거나, 아니면 책·영화·강연·또래 집단과의 교제 등을 통한 간접 경험을 해봐야 합니다. 그 과정을 거치지 않은 사람은 ‘왜 무시당한 아파트 경비원이 자살하는지’ ‘왜 내 회사를 내 맘대로 못 하는지’ 등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아마 조현아 전 부사장은 지금까지 이런 배움의 기회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추측건대, 대대로 부를 물려받은 재벌 3~4세 중에는 이런 케이스가 많을 것입니다. 지금부터라도 오너 기업에선 자녀를 위한 ‘특별한 공익 나눔스쿨-진정한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되는 법’ 커리큘럼을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요. 만일 조현아 전 부사장이 직원들에게 “얼마나 수고가 많으냐”며 흔한 초콜릿이라도 한 봉지 사서 나누고 먼저 대접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다사다난했던 2014년이 저물고 있습니다. ‘더나은미래’는 내년에도 우리 사회 공익의 등불을 자처하며 달려갑니다. 독자 여러분, 올 한 해 정말 감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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