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10일(목)

시민들, 안성천 생태계를 기록하다

풀씨아카데미 6기 현장 체험

반도체 공장 들어설
안성천 일대에서
새·물속생물 탐사

지난달 13일 경기 용인 안성천 일대에서 진행된 풀씨아카데미 현장 체험에서 수강생들이 쌍안경으로 참새 등 안성천에 서식하는 새를 관찰하고 있다. /용인=이건송 C영상미디어 기자
지난달 13일 경기 용인 안성천 일대에서 진행된 풀씨아카데미 현장 체험에서 수강생들이 쌍안경으로 참새 등 안성천에 서식하는 새를 관찰하고 있다. /용인=이건송 C영상미디어 기자

지난달 13일 낮 12시. 경기 용인 안성천 일대에서 국내 최대 규모 반도체 산업 단지를 조성하기 위한 대규모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오는 2027년 SK하이닉스를 비롯한 50여 개의 반도체 관련 공장이 이곳에 들어서게 된다. 작업자들은 주변 산의 나무를 베고 땅을 고르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소음과 먼지가 가득한 공사 현장 바로 옆에 안성천이 흘렀다.

숲과나눔 풀씨행동연구소는 시민이 직접 안성천 주변 생태계를 탐사해 앱에 기록하는 ‘에코씨(ECOSEE)’ 프로그램을 2년째 운영 중이다. 에코씨는 환경을 뜻하는 ‘에코(ECO)’와 보다를 뜻하는 ‘씨(SEE)’의 합성어로 ‘시민의 눈으로 환경을 직접 관찰한다’는 의미다. SK하이닉스가 숲과나눔에 먼저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공장들이 들어서기 전에 시민들이 안성천 주변의 생태계를 기록해달라는 요청이었다. 최준호 숲과나눔 풀씨행동연구소장은 “시민 주도로 공사 전부터 생태계 데이터를 모아 클라우드에 저장하고, 전문가들과 인공지능(AI)을 활용해 생물종 연구를 할 계획”이라며 “수집된 데이터는 일반 대중에게 공개해서 반도체 산업 단지 조성 이후 생태계 변화를 투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국내 환경영향평가는 공사를 주도하는 개발사가 평가사를 선정해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투명하지 않고, 부실하다는 지적을 받곤 한다. 최준호 소장은 “기업과 시민이 공동으로 환경영향평가를 하는 셈”이라며 “숲과나눔, SK하이닉스, 마이크로소프트가 공동으로 참여해 작년부터 진행하고 있다”고 했다. 지금까지 프로그램에 참여한 시민은 200명이 넘는다.

풀씨아카데미 6기 강민정(22)씨가 뜰채를 이용해 안성천에 서식하는 물속생물을 수집하고 있다. /용인=이건송 C영상미디어 기자
풀씨아카데미 6기 강민정(22)씨가 뜰채를 이용해 안성천에 서식하는 물속생물을 수집하고 있다. /용인=이건송 C영상미디어 기자

기업과 시민이 함께하는 생태 기록

이날 ‘풀씨아카데미’ 6기 수강생 20여 명이 안성천 생태계를 조사하는 에코씨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위해 현장을 찾았다. 풀씨아카데미는 조선일보 더나은미래와 재단법인 숲과나눔이 공동 운영하는 환경 분야 공익 활동가 양성 프로그램이다. 수강생들은 4시간에 걸쳐 ▲식물 탐사 ▲새 탐사 ▲물속생물 탐사 ▲수질 탐사 등에 참여한 뒤 에코씨 클라우드에 데이터를 기록했다.

“에코씨는 반도체 산업 단지가 생길 ‘안성천’과 지류(支流)인 ‘한천’의 생태계 변화를 기록하는 활동입니다. 특히 한천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사람의 손을 거의 타지 않은 보기 드문 하천입니다. 덕분에 식물 400여 종과 조류 30여 종, 포유류 9종, 양서파충류 14종, 어류 18종이 서식하는 생태의 보고로 알려졌어요. 천연기념물인 원앙과 황조롱이부터 멸종위기종인 흰목물떼새 등이 매년 이곳을 찾습니다.”

현장에 동행한 이윤주 풀씨행동연구소 캠페이너가 안성천에 대한 소개를 마치고, 수강생들은 ▲새 탐사 ▲물속생물 탐사 ▲수질 탐사 등 세 팀으로 나뉘어 현장으로 이동했다.

새 탐사 그룹은 안성천에 서식하는 참새, 청둥오리, 도요새, 큰부리까마귀, 쇠백로, 왜가리 등 새의 종류와 특징을 먼저 익혔다. 이후 하천을 따라 걸으며 쌍안경으로 새들의 특징을 자세히 관찰했다. 수강생 정다경(27)씨는 “눈으로 직접 봤을 땐 자연과 어우러져 새를 찾지 못했는데 쌍안경을 통해 수풀과 하천 등을 자세히 살펴보니 참새부터 청둥오리, 도요새와 큰부리까마귀 등을 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새는 서식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면 다시 그 장소에 찾아오게 된다는 설명이 인상깊었다”며 “반도체 공장 설립으로 몇몇 새는 이곳을 떠나겠지만, 기업과 지자체, 시민들이 함께 노력한다면 떠나간 새들이 다시 이곳을 찾아줄 것”이라고 말했다.

에코씨 프로그램에 참가한 수강생들이 간이저서동물지수(SBMI)를 이용해 안성천 수질을 평가하고 있다. /용인=이건송 C영상미디어 기자
에코씨 프로그램에 참가한 수강생들이 간이저서동물지수(SBMI)를 이용해 안성천 수질을 평가하고 있다. /용인=이건송 C영상미디어 기자

수질 검사로 환경 분석까지

물속 생물 탐사 현장에서는 저서성 대형 무척추동물을 관찰했다. 저서성 대형 무척추동물은 하천에 사는 생물 중 바닥을 생활 터전으로 삼는다. 크기는 0.5㎜부터 수㎝까지 다양하다. 수강생들은 뜰채로 모랫바닥과 돌을 떠 물속 생물을 수집했다. 이날 포획한 생물은 잠자리목인 물잠자리와 등검은실잠자리, 연체동물문인 좀주름다슬기와 말조개, 노린재목인 물자라 등 다양했다. 이후 확대경을 통해 물속 생물의 외형과 특징 등을 관찰했다.

수강생 송호진(20)씨는 “물속에 사는 생물이라고 하면 대부분 어류를 먼저 떠올릴 텐데 오늘 탐사를 통해 물잠자리, 물자라 등 다양한 생물들이 하천 생태계를 이루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반도체 단지가 들어서도 안성천에 사는 물속 생물들이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맞은편에서는 수질 검사를 위한 채수(採水)가 한창이었다. 수강생들은 물이 흐르는 지점인 여울과 물이 고여 있는 소(沼)의 수온을 재고, 강물을 채취했다. 이후 검출 시약을 도포해 강물의 수소이온농도(pH), 용존산소량(DO), 화학적산소요구량(COD), 총 질소량(T-N), 총 인량(T-P) 등을 측정해 수질등급을 정했다. pH는 하천의 물의 산성화 정도를, DO는 물속 생물들이 호흡하기 위한 산소량을 뜻한다. 또 COD는 유기물을 분해하는 데 필요한 산소량을, T-N과 T-P는 물속 내 동물의 배설물 성분과 생활 하수 성분의 함량을 뜻한다. pH는 중성인 7에 가까울수록, DO는 높을수록, COD, T-N, T-P는 낮을수록 깨끗한 물을 뜻한다.

수질 탐사에 참여한 수강생 고다현(20)씨는 “환경이라고 하면 대부분 육상 생태계를 중심으로 떠올리기 쉬운데 수질 자체도 생태계의 중요한 요소라는 점을 배웠다”며 “특히 전공 시간에 배웠던 개념을 실제 현장에 적용해보는 뜻깊은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이날 현장 체험에 참여한 이윤지(22)씨는 “곧 들어설 반도체 공장으로 안성천이 어떻게 변화할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지만, 시민들이 힘을 합쳐 안성천의 생태계를 관찰하고 기록한다면 모두가 공생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용인=황원규 기자 wonq@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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