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16일(화)

“쓰는 만큼 돌려주자” 기업 생물다양성 보전, 현 주소는?

“사업의 자연 관련 의존도·영향·위험 등 분석해 보전 나서야”
기업에게 착한 일 아닌 ‘지속가능성’

생물다양성 보전에 대한 기업의 책무는 점차 강화되고 있다. 국제사회에서 기업의 의무공시 항목에 생물다양성을 포함하는 등 자연에 대한 기업의 책임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럽연합은 올해부터 시행된 ‘기업 지속가능성 보고지침(CSRD)’과 하위규정인 ‘유럽 지속가능성 보고기준’(ESRS)에서 ‘생물다양성과 생태계’를 의무공시 항목에 포함했다. 한국 정부도 지난해 12월 범부처 최상위 전략인 ‘제5차 국가생물다양성전략(2024~2028)’을 수립하면서 자연자본 정보 공시기업 확대를 유도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국내외로 기업의 생물다양성 보전 책임에 대한 공감대가 확산되는 가운데, 기업들의 움직임을 짚어봤다.

자연 자원 보전 목표 세우고, 10년 넘게 멸종위기종 연구해

“인간의 생명과 지구 생태계, 경제의 건강에 물보다 더 귀중한 자원은 없습니다. 물 소비자로서 코카콜라는 이 공유 자원을 보호할 특별한 책임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2020년까지 물 중립을 이루겠다는 목표를 설정한 이유입니다.”

지난 2015년, 코카콜라의 무타르 켄트(Muhtar Kent) CEO가 ‘물 환원 프로젝트’ 목표를 조기에 달성했을 당시 언급한 말이다. 2007년 글로벌 코카콜라는 2020년까지 사용한 물의 100%를 다시 돌려주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프로젝트를 시작했는데, 이보다 5년 앞선 2015년에 목표의 115%를 달성했다. 2004년에는 콜라 1리터를 생산하는데 약 2.7리터의 물이 필요했는데, 2017년에는 1.92리터로 약 25%의 물 사용량을 줄였다.

한국에서는 글로벌보다는 다소 늦었지만, 2017년부터 평창 올림픽과 연계해 ‘한국형 물 환원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대관령 일대가 건조화되지 않도록 물 막이 시설을 설치하고, 생물 다양성 보존을 위해 관목과 수변식물을 심기도 했다. 2018년에는 경남 김해시 시례마을에 저수지 확장, 창원시 무곡리 등 물 부족 지역에 저수지 준설 등을 시행했다. 한국 코카콜라가 해당 프로젝트를 통해 환원한 물은 2022년 기준 약 7억2000만 리터다.

이수란 한국 코카콜라 대외협력커뮤니케이션부 부장은 “물은 생산하는 모든 음료의 가장 중요한 자원인 만큼, 비즈니스 운영 전 과정에서 물 사용에 대한 효율성을 높이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보다 많은 사람들과 생태계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고, 비슷한 문제를 가진 다른 지역에서도 쉽게 배우고 따라할 수 있도록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물 환원을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경남 김해시 진례면 산본리 관동저수지에서 김정옥 산본마을 이장 (왼쪽), 김수진 관동마을 이장 (오른쪽)이 산본저수지의 물을 관동 마을에 나누는 합수식을 진행하고 있다. /한국 코카콜라

아모레페시픽은 원료의 상당 부분이 식물 자원에서 유래하기에, 생물다양성 보전은 핵심 비즈니스와도 연결된다. 류상우 아모레퍼시픽 홍보팀 차장은 “보다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생물자원을 이용하고 보전하기 위해 연구 투자를 지속하고 있다”며 “한반도 자생 식물은 기후 변화와 인간의 활동으로 자연 서식 환경이 악화되고 있으므로 관심이 시급하다”고 설명했다.

일찍부터 멸종위기종을 복원하기 위한 연구도 지원하고 있다. 동의보감 문헌으로만 남아 있던 멸종위기의 ‘토종 흰감국’을 10여년에 걸친 연구를 통해 복원한 것이 대표적이 사례다. 이는 현재 아모레퍼시픽 브랜드 한율의 선크림과 핸드크림 등에 사용되고 있다. 2021년부터 자생종 관련 연구에만 약 32억원을 투자했다.

아모레퍼시픽 연구원이 강원도 정선의 한 농장에서 복원된 흰 감국을 화장품 재료로 사용하기 위해 살펴보고 있다. /아모레퍼시픽

생산 사업장이 있는 지역의 생태 환경을 보전하는 것도 주요 역할이다. 2016년 아모레퍼시픽은 생산·물류 기지인 ‘아모레 뷰티 파크’가 있는 경기도 오산시와 ‘오산천 생태하천 가꾸기’ 업무협약을 맺고 70억원을 기부했다. 오산시가 습지 생태원을 조성하고 생태 교육 시설을 설치하는 등 환경 개선 활동의 결과, 5등급까지 떨어졌던 오산천의 수질 등급이 2등급으로 정화되기도 했다.

데이터로 생태계 변화 기록, 자연에 미칠 영향 분석까지

개발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생물다양성 감소를 예방하기도 한다. SK하이닉스는 오는 2027년 준공될 계획인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서 2022년부터 생물다양성 프로젝트를 시행 중이다. 프로젝트명은 ‘안성천 에코시(ECOSEE) 프로그램’, SK하이닉스가 한국마이크로소프트, 숲과나눔재단과 협업해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주변 하천인 안성천의 생태계 변화를 관찰하고 기록하는 활동이다. 주로 용인시에 위치한 학교의 학생들이 ‘시민과학자’로 관찰 프로그램에 많이 참여한다.

핵심은 반도체 클러스터가 들어오기 전후의 생물다양성의 변화를 측정하는 것이다. 안성천은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가 조성될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인근의 하천으로, 남서 방향으로 흐르며 평택을 거쳐 서해까지 유입된다.

김용성 SK하이닉스 환경에너지 팀장은 “에코시 활동 지점인 후동교 인근의 하천은 안성천의 최상류”라며 “현재는 건천이지만,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가 들어서고 나서는 이곳에 정수된 물이 방류되며 안성천의 수량이 많아지고 이로 인해 먹잇감이 풍부해지면서 다양한 종류의 생물이 나타나는 등 긍정적인 변화가 예측된다”고 설명했다.

안성천에서 시민과학자들이 물 속 생물 탐사 활동을 진행 중인 모습. /SK하이닉스

프로젝트의 효과성을 높이기 위해 한국마이크로소프트와도 협력하고 있다. SK하이닉스 임직원과 지역주민은 AI 분석을 하기 위한 기초 데이터 수집을 맡고, 한국마이크로소프트 애저(Azure) AI가 종을 식별하고 범주화한다. 지난 4월에는 ‘지구의 날’을 맞아 양사 구성원 가족 30여명이 안성천 주변 탐사 및 환경 정화 활동에 참여했다. 이날 하루 구성원들이 직접 발견한 하천 생물은 총 16종에 달했다.

최준호 숲과나눔재단 산하 풀씨행동연구소 소장은 “개발사의 지원과 더불어 전문가, 또 자연을 사랑하는 시민과학자의 협력으로 안성천 일대의 예상되는 피해는 줄이고 더 나아가 회복을 꾀하고 있다”며 자부심을 드러냈다.

전문가들은 생물다양성 손실을 막기 위해서는 경제 구조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며 기업의 역할을 강조한다. 국립생물자원관 생물다양성총괄과의 이재호 연구원(박사)은 “기업이 의사결정을 할 때 자연과 관련된 영향, 의존도, 위험, 기회를 데이터로 분석하고 고려해야 한다”면서 “생물다양성 보전은 단순히 좋은 일이 아니라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조유현 더나은미래 기자 oil_lin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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