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30일(화)

“평생 치료 고통보다 무관심이 더 아프다는 걸 아시나요”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 난치병 환자 지원
2011년부터 치료제·배변 보조용품 등 4년간 314명에게 5억원 상당 지원해
정부지원 134종 한정… 예산 점점 줄어

지난 18일 오전, 서울 연희동에 위치한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에서 만난 생후 4개월의 문정빈(가명)군. 문군은 분유통이 두 개다. 일반 분유와 소화를 돕는 ‘중쇄지방(MCT)’ 분유를 함께 먹는다. “태어나면서 ‘담도폐쇄증’ 진단을 받았어요. 소화를 못 시키는 병이죠.” 어머니 강민지(30)씨의 설명이다. 강씨는 “특수 분유를 끊으면 아이 변 색깔이 바로 흰색으로 바뀔 정도로 티가 난다”라고 했다. 아이에겐 필수적인 식량이기 때문에, 보호자는 필사적으로 분유를 마련해야 한다. 담도폐쇄증 환우회를 이끌고 있는 방현진(41) 회장은 “특수 분유 한 통(400g)에 1만원이 넘는데, 일주일도 안 간다”며 “고가의 의료비·검사비·입원비 등에 더해 부담이 쌓여가는 것”이라고 했다. 10년 넘게 ‘척수수막류’ 증상을 앓는 아들을 돌보고 있는 진청희(34)씨도 비슷한 어려움을 토로했다. “척수 쪽의 신경이 손상돼 대·소변 장애가 있어요. 기저귀나 관장용 ‘카테터'(자력으로 배변 활동이 어려운 환자를 돕는 보조기구)를 집에 꼭 갖추고 있어야 하는데, 월평균 50만원이 들죠. 우리한텐 한 달 생활비예요.”

지난 18일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에서 진행된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의 의료 보조용품 지원식 현장.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 제공
지난 18일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에서 진행된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의 의료 보조용품 지원식 현장.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 제공

담도폐쇄증이나 척수수막류처럼 발병 원인이나 치료법이 개발되지 않는 병을 ‘희귀·난치성 질환’이라고 한다. 국내에선 50만명의 환자가 2000여종의 질환을 앓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증상이 평생 따라다니기 때문에 치료비 부담이 매우 높고 치료를 포기하거나 중단하는 사례도 많다. 이들을 더욱 고통받게 하는 건 세상의 무관심이다. 강민정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 국장은 “환자가 워낙 소수다 보니 관련 연구자나 의료진의 관심이 적은 게 사실이며, 대중의 시선도 별반 다르지 않다”고 했다. 정부에서 지난 2001년부터 희귀·난치성 질환자 의료비 지원 사업을 시작했지만 대상 질환이 134종에 그치고, 급여비용에만 해당하는 등 포괄적인 복지로는 이어지지 못했다. 이마저도 2009년 432억1600만원이던 정부 지원예산이 올해 280억4300만원으로 감소하는 등 최근 들어 꾸준히 줄고 있는 추세다(보건복지부 희귀난치성질환센터, 2014). 특히 치료법이 없는 만큼, 평생 보조용품과 특수 식이에 의존해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제품들이 ‘의약품’으로 인정받지 못해 환자 부담을 크게 가중시킨다.

‘부신백질이영양증’ 치료제로 알려진 ‘로렌조오일’이 대표적이다. “한평생 이 병과 싸웠다”는 배순태(62) 부신백질이영양증 환우회 회장은 두 아들과 함께 이 질환을 앓았는데, 첫째는 이미 20년 전에 세상을 떠났다. “의학적으론 대안이 없어요. 유일하게 의지하는 건 로렌조오일뿐이죠. 한 병에 20만원 남짓 하는데, 한 달에 5병 정도 들어요.” 로렌조오일은 공공기관에서도 사실상 약효를 인정한 제품이다. 지난 1999년 9월 설립돼 기획재정부 산하 공공기관으로 지정된 한국희귀의약품센터의 구현민 수석부장은 “로렌조오일은 환자들의 증상 악화를 예방하기 위한 유일한 희망이지만, 국내에선 의약품으로 등록되지 않아 정부로부터 어떠한 지원혜택도 받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민간의 참여와 지원이 중요한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다. 실제로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는 기업이나 민간 재단의 후원을 받아 환자들에게 보조 용품을 지원하고 있다.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의 ‘의료보조용품 지원 사업’은 가장 대표적인 활동. 이 재단은 2011년부터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를 도와 생활이 어려운 환자를 대상으로 특수 식이 및 의료보조용품을 지원해왔다. 올해에만 20명에게 배뇨·배변 보조용품(기저귀)을, 10명에게 관장용 카테터를, 15명에게는 4개월(16병)분의 로렌조오일을 지원하는 등 4년간 총 314명에게 5억1000만원 상당 보조용품을 전했다. 유석쟁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 전무는 “의료 사각지대에서 고통받는 환자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자 진행하고 있는 사업”이라고 했다. 강민정 국장은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선 근간이 되는 법안이 마련돼야 하는데, 법이 만들어지기 전까진 뜻있는 민간 기업의 지속적인 참여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환자들은 재단의 이 같은 활동이 세상의 관심으로 확산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

“국내에 ‘아이스버킷 챌린지’ 붐이 일었을 때 사실 기대를 조금 했어요. 루게릭병에만 집중돼 있던 관심이 더 많은 희귀질환으로 확산되길 바랐던 거죠. 아쉽게도 그렇게 되진 못했지만 지금이라도 희귀병을 앓고 있는 환자들에게 조금만 더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그럼 자연스럽게 필요한 법도 더 빨리 만들어지지 않을까요.”(방현진 담도폐쇄증환우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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