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27일(토)

“지역 커뮤니티에도 혁신이 필요하다”… ‘헤이그라운드 뉴욕’ 이야기

[인터뷰] 장선문 커뮤니타스아메리카 대표

사회혁신가 공간 ‘헤이그라운드 뉴욕’ 개소
주민을 창업가로 육성, 지역문제 발굴·해결

뉴욕 할렘에서 사회혁신 조직을 발굴하는 장선문 커뮤니타스아메리카 대표는 출근길에 3개의 미국을 만난다. 사무실과 가장 가까운 지하철역에 내리면 컬럼비아대 경영대학원이 있고, 한 블록을 지나면 스타트업이 들어선 오피스 단지가 나온다. 여기서 좀 더 걸으면 흑인 문화예술의 중심지인 전통적 할렘 지구다. 장 대표는 “학생 커뮤니티와 스타트업 네트워크, 지역사회 주민이 5분 거리 내에 몰려 있는 셈”이라며 “사회혁신을 일으킬 수 있는 인적 자원이 집중돼 있는 최적의 환경”이라고 설명했다.

지난달 25일 서울 성동구 헤이그라운드 성수시작점에서 만난 장선문 대표. 코로나 팬데믹 이후 두 번째 한국 방문이라는 그는 “프로그램 운영을 정상화하고 헤이그라운드 뉴욕을 열기 위해 머슴같이 일했다”며 “지역 커뮤니티 레벨에서 어떻게 하면 사회문제 해결책을 만들 수 있는지 궁금했고 또 만들어내고 싶다”고 말했다. /이신영 C영상미디어 기자

커뮤니타스아메리카는 2018년 이곳에 자리잡고 지역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비영리단체나 스타트업을 발굴하고 있다. 주민을 사회혁신가로 키우는 ‘커뮤니타스 벤처스’를 통해 지금까지 200명 가까이 선발했고, 올해 3월에는 사회혁신가들의 공간 ‘헤이그라운드 뉴욕’을 개소했다.

“뉴욕 할렘은 흑인과 히스패닉, 아시아계, 동유럽계 등이 함께 지내는 다인종 지역입니다. 사회혁신을 일으키기 좋은 환경이면서 동시에 해결해야 할 사회문제도 많습니다. 커뮤니타스는 지역 단위로 창업가 생태계를 만드는 걸 문제 해결의 시작으로 보고 있어요. 할렘처럼 물리적 지역 커뮤니티를 정해서 지원하면 단기간에 유의미한 변화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죠.”

지난달 25일 서울 성동구 헤이그라운드 성수시작점. 오랜만에 한국을 찾은 장선문 대표를 만났다. 그는 “그동안 주목 받지 못했던 창업가에게 적절한 자원을 연결해 생태계를 살리면 이들이 지역의 고질적인 문제를 찾고 해결하고 로컬 커뮤니티까지 살릴 수 있다”고 말했다.

지역문제 해결, ‘하이퍼 로컬’ 관점으로

-헤이그라운드 뉴욕이 있는 할렘은 어떤 곳인가.

“사무실은 126가 암스테르담 애비뉴에 있다. 웨스트 할렘 지역이다. 센트럴이나 이스트보다 안전한 편이다. 과거 ‘할렘 르네상스’로 불릴만큼 문화 예술의 성지였지만, 지금은 정부 주도의 개발사업으로 젠트리피케이션이 일어났고 인근 브롱스 지역과 마찬가지로 소득격차 문제도 오래 지속하고 있다.”

-왜 할렘, 그리고 브롱스인가?

“브롱스 일부 지역의 가계소득 중간값이 2만달러 수준인데, 맨하튼 일부 지역의 중간 소득은 30만달러가 넘는다. 지하철로 30분 거리에 소득격차, 교육격차가 극심하다. 뉴욕은 맨해튼, 브롱스, 퀸스, 브루클린, 스태튼아일랜드 등 크게 5개 구로 나뉜다. 이 가운데 맨해튼 북동부의 할렘과 할렘강 너머의 브롱스 출신들이 ‘헤이그라운드 뉴욕’에 주로 참여한다. 교육, 금융 소외지역 사람들이다.”

-그래도 뉴욕인데, 상상이 안된다.

“브롱스 지역의 한 학교에는 복사기에 종이도 토너도 없다. 비영리단체의 도움 없이는 운영이 어려울 정도다. 한국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또 오프라인 서점은 딱 한 곳있다. 교육 격차를 단적으로 말하면 그 정도 수준이다. 이러한 크고작은 문제들을 제3자 입장에서 해결할 게 아니라 이 동네 출신으로 자라면서 문제를 겪은 당사자들이 해결할 수 있다고 봤다.”

-결과는?

“동네에 서점이 없으니까 스쿨버스를 개조해서 이동서점을 만든 ‘브롱스바운드북스’라는 팀이 있다. 또 ‘브롱스이즈리딩’이라는 팀은 아이들의 문해력을 높이고 유망한 저자를 발굴하기 위해 책을 무료로 나눠주고 저자와의 만남 행사를 연다. 안전한 식수를 공급받지 못하는 주민을 위해 공기중 수분을 흡수해 깨끗한 물로 만드는 ‘하이드로노미’도 주목받는 팀이다.”

장선문 대표는 "뉴욕에는 금융자본가 중심의 자선 생태계가 존재한다"라며 "이들이 관심을 보이고 있는 커뮤니티 중심의 창업 생태계 모델은 조만간 스케일업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신영 C영상미디어 기자
장선문 대표는 “뉴욕에는 금융자본가 중심의 자선 생태계가 존재한다”라며 “이들이 관심을 보이고 있는 커뮤니티 중심의 창업 생태계 모델은 조만간 스케일업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신영 C영상미디어 기자

-비즈니스 모델을 갖춘 팀은 없나.

“흑인 전용 수영모를 개발한 팀이 있다. 수영을 즐기는 흑인은 잘 없다. 흔히 ‘아프로헤어’라고 해서 머리카락이 크게 부풀어올라 수영에 적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영 문화가 자리잡지 못했고 익사 사망률도 흑인이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다. 흑인도 어릴 때부터 수영을 즐기면 사망률도 낮출 수 있다는 목표로 수영모를 만든 거다.”

-성과는 어떻게 측정하나.

“지역사회 기여를 측정한다는 게 명확한 기준 없이는 막연할 수밖에 없다. 초기에는 뉴욕주정부에서 요구하는 자료들이 내부 시스템을 만드는데 큰 도움이 됐다. 뉴욕주는 데이터를 가장 까다롭게 요구하는 곳이었는데, 일자리 창출을 추적하고 매출 추이와 수혜자의 소득, 협업 현황 등 다양한 자료를 원했다. 할렘이라고 하면 한국의 행정구역으로 치면 동(洞) 단위 지역이다. 로컬 커뮤니티라는 개념도 좁혀서 동 단위의 ‘하이퍼 로컬 커뮤니티’로 해야 변화를 빠르게 추적할 수 있다. 창업가들부터 동네 주민이고 주력 사업도 동네에서 이뤄지니까 가능한 일이다.”

혁신 없으면 로컬 커뮤니티도 붕괴

-올해로 6년째 지원 사업을 벌이고 있는데 만족할 수준인가.

“커뮤니타스 벤처스는 올해 진행 중인 11기를 포함해 총 195명을 선발했다. 이 가운데 90%가 활동 중이다. 그동안 지역 일자리 600개를 창출했고, 누적 펀딩 금액은 130억원에 이른다. 커뮤니타스아메리카의 한 해 운영비가 10억원 남짓 되는데, 투자 대비 효과는 무척 크다고 평가한다.”

-미국은 비영리 시장이 무척 크다. 비슷한 프로그램도 많지 않나.

“뉴욕에서 주민 대상으로 창업을 유도하고 지원하는 액셀러레이팅 프로그램은 없다. 펀드레이징을 위해 여러 재단을 만났는데 지역 커뮤니티 문제를 창업 생태계로 풀어 내는 걸 이해 못하더라. 그래서 시작부터 유니크한 포지션으로 자리잡았다. 특히 선발 대상을 유색인종과 여성에 맞추면서 더 특별한 프로그램으로 인정받았다. 덕분에 지난해에는 뉴욕주정부 인증 기관인 ‘비즈니스 인큐베이터’로 선정됐다.”

미국 뉴욕에서 지역 주민들을 사회혁신가로 키우고 있는 장선문(오른쪽에서 두 번째) 대표와 커뮤니타스아메리카 직원들. 커뮤니타스 직원들 역시 브롱스와 할렘 출신의 주민들로 구성돼 있다. /이신영 C영상미디어 기자
미국 뉴욕에서 지역 주민들을 사회혁신가로 키우고 있는 장선문(오른쪽에서 두 번째) 대표와 커뮤니타스아메리카 직원들. 커뮤니타스 직원들 역시 브롱스와 할렘 출신의 주민들로 구성돼 있다. /이신영 C영상미디어 기자

-혁신의 상징이 미국인데, 의외다.

“임팩트 생태계도 주로 투자 관점에서 논의돼 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아무도 하지 않는 일을 한다는 건 그만큼 리스크를 짊어지는 거다. 정경선 창업자가 초기 실험적인 시도를 할 수 있도록 펀딩해준 게 컸다.”

-뉴욕은 비영리 사업을 하기 좋은 토양인가.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다. 우선 시장 규모가 워낙 커서 모멘텀이 오면 큰 임팩트를 만들 수 있다. 돈이 충분한 이 시장에서 원하는 건 ‘볼드 아이디어(bold idea)’, 즉 과감한 아이디어다. 커뮤니타스 선발팀 중에는 펀딩 1차 심사에서 탈락한 곳도 있고, 2차에서 떨어진 곳도 있다. 이 과정에서 시장 주목도가 높아지면 그 다음은 좀 더 쉬워질 거라고 생각한다.”

-비영리와 스타트업도 함께 지원하고 있다. 방향이 다르지 않나.

“스타트업은 벤처캐피탈(VC)로부터 투자를 유치해야 하는데, 미국에는 커뮤니티 중심의 투자자가 따로 있다. 한국으로 치면 새마을금고 같은 CDFI(커뮤니티 개발 금융기관)가 지역사회에 투자한다. 여기에 더해서 대학이나 필란트로피 성격의 재단으로부터 투자를 받을 수도 있다.”

-헤이그라운드 서울과 뉴욕 모두 경험했다. 무엇이 다른가.

“한국의 성장과 미국의 성장이라는 개념을 해석하는 게 다르다. 한국에서는 피라미드 사회 구조에서 더 뾰족하게 상위로 올라가는 것이 성장으로 여긴다면, 미국에서 문제를 고쳐나가는 ‘수리(repair)’하는 느낌이 강하다. 개선하려면 혁신이 필요하다. 그러니까 로컬 커뮤니티에도 혁신이 필요하다는 거다. 브롱스나 할렘은 동네의 문화를 충분히 고려한 교육, 보건 등의 혁신이 절실한 곳이다. 공통점도 있다. 한국의 성수동이 사회혁신의 본거지가 된 것처럼 지역 접근성은 파트너십을 만들어내고, 그 결과로 혁신 사례도 무한히 만들어낼 수 있다. 한국이나 미국도 지역 커뮤니티 단위로 세분화해서 깊게 들여다보면 해결 가능한 구체적인 문제를 반드시 확인할 수 있다.”

문일요 기자 ilyo@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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