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3일(금)

방범용 LED는 고장나고 반사거울 위엔 광고 덕지덕지…주민들은 여전히 불안합니다

범죄예방디자인 ‘셉테드’ 현장, 직접 가보니
서울시, 2015년까지 120억 들여 우범지역에 적용
유지·보수 관련 예산과 전담팀 없어 관리 부실
주민 “범죄 예방 효과 미미… 밤길은 무섭다”

전국이 범죄예방디자인(CPTED·Crime Prevention Through Environmental Design·이하 셉테드) 열풍이다. 서울시는 2015년까지 120억8200만원을 들여 우범지역·공원·학교 등 서울 곳곳에 셉테드 지역을 확대하기로 했다. 지난해 부산시는 부산지방경찰청 주도하에 16곳 지역을 ‘셉테드 행복마을’로 조성했고, 현재 경기·대구·울산·광주 등에서도 지역별로 셉테드 사업을 추진 중이다. 더나은미래 특별취재팀은 지난 10월 한 달 동안 서울·부산 주요 셉테드 지역 6곳을 찾아가봤다.

“혼자 가시게요? 위험해요. 다음에 낮에 가보시는 게 어떨까요?”

서울시가 마포구 염리동에 셉테드를 적용한 지 2년, 지난달 30일 저녁 6시쯤 소금길 골목 앞에서 만난 동네 주민은 뜻밖의 말을 건넸다. “소금길 범죄가 많이 줄지 않았느냐”고 묻자 “사람들이 많이 들락날락하니깐 줄어든 듯해도 여전히 불안한 길이다”고 답했다. 이곳은 지하철 2호선 이대역 5번 출구를 나와 조금만 걸으면 나오는 좁은 골목길이다. 서울시는 2012년 방범용 발광다이오드(LED)로 1번부터 69번까지 번호가 표시된 샛노란 전봇대와 안전벨을 설치했다. 하지만, 이날 찾은 소금길엔 환한 불빛은 없었다. 소금길 B코스(0.6㎞) 초입을 밝혀야 할 69번 가로등마저 고장나 있었다. 골목에는 할머니의 수레 끄는 소리만 울려 퍼졌다. 블로그에 포스팅된 아기자기한 벽화는 흐릿한 조명 탓인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10여분가량 64번 가로등이 위치한 소금길 쉼터까지 걸어가서야 지킴이집 노란색 대문 위 밝은 조명이 시야를 밝혔다. 한 살 아래 동생과 집으로 향하던 이진수(가명·8)군은 “밤 9시에 학원에서 수업 마치고 집에 가는 길이 항상 무섭다”고 했다.

같은 날 저녁에 찾은 중랑구 면목동의 주민들 반응도 의외였다. 면목4동 주민센터 관계자는 “서울시에서 내려온 사업에 협조만 했을 뿐 별로 범죄 예방 효과도 없다”면서 “주민들도 잘 모른다”고 딱 잘라 말했다. 지난해 겨울 중랑천부터 면목시장에 이르는 1.2㎞ 거리에 조성된 ‘미담길’은 지역 주민의 미담 사례를 벤치와 계단 손잡이 등에 스토리텔링 형식으로 풀어내 눈길을 끌었던 셉테드 지역이다. 주택가 초입에는 면목동을 주제로 가로 70㎝, 세로 60㎝ 크기의 스토리보드가 벽에 달려 있었다. 9개 중 1개는 제자리에 없었다. 50대 주민 이희숙(가명·여)씨는 “갑자기 밤에 ‘쾅’ 소리가 나서 나와 보니 패널이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면서 “밑에 사람이 없었으니 다행이지 있었으면 크게 다쳤을 것”이라고 했다. 작년 겨울 이 스토리보드를 부착한 지 보름도 안 돼서 벌어진 일이었다. 면목동 관계자는 “미담길 조성 이후 유지·보수 관련 예산과 전담팀이 없어 모니터링이 전혀 진행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용산구 해방촌 지역 주민 반응도 시큰둥했다. 이 지역의 가장 큰 문제는 빈번한 쓰레기 투기 문제였다. 이에 서울시는 반사경과 CCTV를 16곳에 설치, 동네 환경을 개선코자 했다. 지난달 31일 저녁 해방촌 ‘소통길’ 일대 가파른 골목길을 찾았다. 영어와 한국어로 ‘쓰레기 무단 투기자를 신고하면 포상금을 지불합니다. 벌금 100만원’이라고 쓴 반사경이 눈에 들어왔다. 설치물이 무색하게 16곳 중 14곳에 쓰레기가 불법으로 버려져 있었다. 반사경에 전단이 덕지덕지 붙어 광고판이 된 곳도 있었다. 골목길에서 수퍼를 운영하는 장정복(78·여)씨는 “쓰레기 버리지 말라는 표지판 달아도 똑같다”면서 “가게 문 닫고 나면 사람들이 또 내다 버린다”고 하소연했다. 이곳에 산 지 1년가량 지났다는 레베카 주엘(33)씨도 “골목 앞에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이 많다”고 했고, 신흥시장 상가운영회 대표인 박일성(73)씨는 “불량 학생들이 화장실에 불을 지르거나, 쓰레기를 버리고 가는 경우가 많아 CCTV를 추가로 설치하고 싶다”고 했다.

서울시는 “밤에도 시민들이 안심하고 찾을 수 있는 공원을 만들겠다”며 양재시민의 숲, 중구 약수어린이공원 등 4곳에 셉테드를 적용했다. 지난 1일 밤 10시에 찾은 양재시민의숲 주위는 어두컴컴했고, 군데군데 빨간색 불빛만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 휴대폰 조명을 켜고 나서야 비상벨, CCTV, 출입구 표시가 돼있는 ‘안전 등대 시스템’이란 사실을 알았다. 하지만 축구장 크기의 100배가 넘는 숲(80만6831㎡)에 조성된 ‘안전 등대 시스템’은 총 12대. 안전을 보장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13년째 동네에 거주하고 있다는 현상훈(54·남)씨는 “2002년부터 한 주에도 몇 번씩 공원을 방문했는데, 안전 시스템이 만들어져 있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면서 ‘안전 등대 시스템’을 가리키며 “이렇게 등대 주변을 깜깜하게 해놨는데 어떻게 알겠느냐”고 반문했다. 야간 출사(出寫)를 위해 이곳에 들른 30대의 한 남성은 “비상벨이 좀 더 눈에 띄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미상_사진_복지_서울지역셉테드조성현황_2014

낮은 어떨까. 지난달 초 오후 4시쯤 관악구 행운동 서울미술고 부근 원룸촌을 찾았다. 총 63가구가 1층 입구에 미러(거울띠)를 부착했다. 길에서 순찰하던 행운동지구대의 한 순경은 “독신 여성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이라면서 “미러가 있으면 뒤에 누가 따라오는지 확인할 수 있다”고 했다. 원룸 주차장에도 노란 띠가 둘러져 있어 밤이 되면 조명 역할을 하고, 동네 중앙에는 360도 회전이 가능한 노란색 방범 CCTV도 보였다. 문제는 예산이다. “그냥 페인트가 아니라 형광물질이 들어가야 하고… 저 미러도 엄청 비싸대.” 셉테드 적용 지역이 협소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방범용 CCTV 하나 설치하는 데 드는 비용은 평균 2000만원 정도다.

지난 3월 부산지방경찰청은 부산창조재단, 경찰발전위원회와 함께 예산 5억원을 들여 총 16개의 ‘셉테드 행복마을’을 조성했다. 지난달 31일 오후 5시에 찾은 해운대구 ‘지내 행복마을’도 그중 하나다. 장산 기슭에 걸쳐있는 지내 행복마을은 해운대 근처에 있어 여행 성범죄가 빈번한 지역이다. 이곳에서 만난 지역 주민 7명은 “벽화를 구경하러 견학 오는 외부 사람이 많다”면서 “사람이 많이 다니니 덜 불안하다”고 입을 모았다. 행복마을 곳곳에는 아동이 위험에 처했을 때 찾아갈 수 있는 장소를 표시한 ‘아동안전지킴이집’ 표지판이 보였다. 지킴이집을 방문해 “어떻게 관리되고 있느냐”고 묻자, 한 주민은 “경찰이 와서 일방적으로 그냥 설치한 것일 뿐”이라 답했다. 우동지구대가 관리하는 ‘행복마을 안심카페’의 문도 잠겨 있었다. 또한 셉테드 지역으로 조성된 지 6개월 만에마을 초입을 화려하게 장식하던 무지개색 계단 페인트 곳곳은 이미 벗겨져 있었다. 이날에도 아침부터 흩뿌린 비에 벽화의 일부가 사라졌다.

특별취재팀=김경하 기자, 강보미·김정희·김효빈·신은정·이상훈·이소영·이호재 청년기자(청세담 2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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